바베트의 만찬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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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필리파를 사랑했던 예술가 아실 파팽은 노란 집에 사는 두 자매에게 위험에 처한 바베트를 도와달라고 편지한다. 그의 편지는 바베트를 살리기 위한 간절함과 함께 감추어진 축복이 담겨져 있었다. ‘바베트는 요리를 할 줄 아오.’ 두 자매가 진정한 요리사이자 예술가인 바베트의 손을 잡아주었을 때, 노란 집은 점점 따뜻하고 축복이 머무는 집으로 변해 갔다. 두 자매 또한 가난하였지만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동안 배고프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으며, 서로를 좋아하고 존중해주는 등 마음의 풍요를 경험한다.

 

  바베트는 부지런했고 검소했으며,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냈다. 그런 그녀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복권이 당첨되어 만 프랑을 받게 된 것이다. 두 자매는 자기들보다 부자가 된 바베트를 축복한다. 안타깝지만 그녀가 자기 집을 떠날 때, 기꺼이 고마워하며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두 자매의 생각과 달리 바베트는 자신의 행운으로 죽은 목사의 생일 날, 사람들에게 만찬을 베풀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마님들은 매일 같이 기도하시죠. 기도할 것이 없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상상할 수 있으세요? 바베트가 뭘 위해 기도하겠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오늘 밤 저는 진정으로 기도할 것이 있어요.

35.p

 

  그녀는 자신의 돈으로 재료를 사고, 초대받은 사람들을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며, 그것으로 인해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기도는 어떤 사람들이 할 수 있을까? 갈급하고 겸손하며, 낮은 마음으로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위가 기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바베트의 기도는 만찬이 베풀어지는 저녁 시간에 이루어졌다. 친절한 마음으로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들은 과거 서로에게 잘못했던 일들에 대하여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며, 감사의 찬양을 부른다. 식탁은 점점 더 풍성해지고, 아름답게 변해 갔다. 두 자매를 위한 가난한 시골 사람들의 배려는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교양 있는 사람들로 만들어 주었다. 그날 밤 눈이 내렸다. 우리의 죄가 가리우지고 사해지는 것처럼.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 <고은의 순간의 꽃중에서>

 

  바베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대접했다. 그리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며, 더 큰 행복을 누렸다. ‘바베트는 요리를 할 줄 아오.’ 다른 사람의 재능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 또 자신이 가진 달란트로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요 가장 행복한 선물이다. 신의 은총이다. 자기 삶의 진정한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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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에논
폴 하딩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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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에 항상 살아있어요

                             

 

  노란 책표지를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초판 인쇄 날짜를 확인했다. 마지막 페이지에 2016310일이라고 찍혀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몇 해 전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친구가 엄마는 돌아가셔도 사라지지 않고 가슴에 영원히 남는다고 말했다. 내게도 언젠가 닥칠 일이겠지만 내가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딸 케이트를 교통사고 잃은 아빠 찰리의 고통은 극에 달한다. 철저하게 자신을 파멸로 몰아놓고, 죽음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삶을 시작한다. 슬픔을 밑바닥까지 내려가야만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것이 애도라는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오랜 시간 슬픔과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 슬퍼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그런 말들을 해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아빠가 어렸을 때 여기 오래된 오두막이 있었어. 케이트.” 문지방이나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덤불을 발로 긁어보면서, 나는 소리 내어 속삭였다. 그런데 없네. 그냥 사라졌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66

 

  책을 읽는 내내 찰리의 이 독백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태어나 13년을 함께 살면서 찰리에게 기쁨과 삶의 소중함을 안겨준 케이트는 이제 세상에 없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딸 케이트를 잃고, 슬픔에 젖은 아내를 고향으로 떠난 보낸 상처 입은 가엾은 아빠 찰리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두 사람이 떠나고 혼자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슬퍼하는 것뿐이다. 혼자 살아있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같이 죽지 못한 것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등 모든 것이 쌓여서 가장 커다란 슬픔이 된다. 그 슬픔을 덜어내기 위한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본인만이 알 수 있다. 자신을 망가지게 하고, 약과 술에 육신과 정신을 모두 바쳐도 삐죽삐죽 뚫고 올라오는 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은 남아있는 자의 시간을 지옥을 만든다. 그리고 그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슬픔의 바다를 건너 다시 태어나야 하는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하며, 주위 사람들은 그 시간을 기다려 주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도의 시간이 유통기한처럼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케이트가 내 삶에 기쁨을 주었다. 나는 그 아이를 전적으로 사랑했고,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하는 동안 세상은 사랑이었다. 내 딸이 죽고 나니 세상은 페허에 불과한 곳, 온통 괴물들만 나오는 연기 매캐한 꿈에 지나지 않은 곳임이 드러난 듯했다.”

315

 

  딸은 잃은 아빠의 고통이 바늘 끝에 찔린 것처럼 깊숙이 들어왔다.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처럼 과거로 돌아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 여자 주인공이 엄마를 만지고 따라다니는 장면을 보면서 내 친구는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아빠 찰리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슬픈 사람들이 충분히 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과 견뎌주는 것, 그리고 지금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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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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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유모는 그후에 이 일을 어떻게 견뎌냈어요?˝

니콜라이 레스코프 <분장예술가>중에서.

나는 이 문장을 만나기 위해 이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그후에 남은 시간을 견디는 것은 개인의 몫이니까.
이승우 소설의 문장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세상을 견딘다는 것은 나를 견딘다는 뜻이기도 했다.‘

견딜수 있다면, 견디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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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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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승우를 알게 해 준 책.
소설가의 문장속에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 좋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과 다양한 것에도 생명이 있고, 성장과 소멸을 겪는다.


<복숭아 향기>중에서
ᆢ어떤 이야기는 살고 살리기 위해 말해질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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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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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친구는 <수인>을 읽으면서 깔깔깔 웃었다고 했다. 자신이 소설가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곡괭이질을 했는데 정작 소설이 아닌 그 곡괭이질로 주인공이 가고 싶은 나라에 보내지게 되었다는 사살이, 그 풍자가 너무나 슬프면서 웃겼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엉엉 울고 싶었다. 마치 이 바쁜 세상에 아직도 소설 나부랭이나 읽느냐고 조롱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 어쩌면 허상을 쫓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소설이 없는 세상이란 별이 뜨지 않는 밤하늘 같다. 달빛만으로는 밤이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저 벽 뒤에 자신의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로선 계속 벽을 파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제안을 수행한 자의 관성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회색 시멘트벽 그 자체가, 그의 존재였고, 그의 실체였는지도 몰랐다. 그는 그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그 자신이 완벽한 연장이 되었다는 것을 …… 연장은 미리 벽 뒤를 내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 연장은 연장일 뿐.

226.p

 

  그러나 곡괭이와 한 몸이 되어 단단하게 굳어 버린 대형서점의 벽을 뚫는 소설가의 행동이 깊이 잠들어버린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에 곡괭이질을 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곡괭이질을 하는 것이니까. 자신이 쓴 소설이 저기 있다고, 아니 저기 있을 것이라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저기에 없으면 어떻게 하지 고민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곡괭이질을 한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소설을 위하여 말이다. 그러나 그는 매일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반복적으로 노동을 했고, 그로 인해 책들의 소리를 들었으며, 그 책과 세상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주었다. 매일 반복하는 일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발전한다. 조금씩 쌓이고 벌어지는 실력이 우리의 인생을 서서히 바꾸어 줄 것이다. 그것이 허상을 쫓는 소설 쓰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그가 라이터를 켜면 그곳에 소설이 있었고, 그가 라이터를 끄면 소설은 사라졌다. 그는 반복해서 라이터를 켰다 껐다.

어둠 속, 축구장 크기만한 서점 안에, 수많은 발명품들이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는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어디선가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232.p

 

  그래서 오늘도 우리의 소설가들은, 우리들은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는 세상 속에서 각자의 연장과 한 몸이 되어 끊임없이 곡괭이질을 한다. 돈키호테처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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