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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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겨울 매서운 한파가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간 친구는 집 밖을 나가기가 무섭다고 매일 밤 소식을 알려 왔다. 겨울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꽁꽁 얼게 만든다. 나는 겨울이란 단어를 들으면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고 실내에서도 한기를 느끼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언가 은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은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꽁꽁 얼어버린 차가운 바람에 맞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따뜻한 세상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사람들. 아일랜드 스토니브리지에 있는 스톤하우스를 호텔로 만든 치키, 리거, 올라 그리고 미스 퀴니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 작품의 목차는 모두 사람들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까 작품 속 인물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일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란 결국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신의 축복과 은총도 사람을 통해 오고, 불행과 시련도 사람을 통해서 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엮여진 사연들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 없다. 비극 같은 인생 속에도 순간순간 우리를 찾아온 천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치키, 리거, 올라는 각자 다른 이유로 고향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다가 또 각자의 사연을 안고 돌아와 스톤하우스를 호텔로 만드는 일에 합류한다. 그 중심에는 오하라 집안에 자신의 스톤하우스를 빼앗길 수 없다는 미스 퀴니의 의지가 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사람들의 재능과 능력을 알아보고 그것을 꿈꾸게 한 그녀의 혜안이 스톤하우스를 살리고 다른 사람의 삶에 생기와 아름다운 일상을 만들어내게 했다. 물론 최후의 결정은 개인의 몫이었지만.

 

 

너는 이곳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 거야. 너 같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로 말이지.”

저 같은 사람은 없어요. 저처럼 유별나고 사연 많은 사람은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걸. 치키. …… 그러니까 지금 결정해야 해. 그래야 우리가 스톤하우스를 다시 아름답게 만들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33~34.p 

      

  만약에 치키에게 캐시디 여사와 미스 퀴니가, 리거에게 외삼촌과 치키가, 올라에게 데일리 선생님이 없었다면 그들은 이 힘겨운 인생의 고비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각자의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가 만난 사람들 중에 분명히 천사가 숨어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의 작가 메이브 빈치의 마지막 작품이다. 내가 읽은 책은 티저북으로 치키, 리거, 올라의 이야기까지 나와 있다. 이제 그녀들이 개장한 호텔로 찾아온 손님들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문득 우리가 그 호텔로 찾아갈 손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쯤 그녀가 떠난 아일랜드는 매우 추운 겨울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남긴 작품을 읽으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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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
이승우 지음 / 복있는사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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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성경, 문학과 사유에 대한 좋은 에세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충분히 읽고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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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발상에서 좋은 문장까지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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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 품절되어 살 수 없는 책!
소설가 이승우를 좋아하기에 도서관 서고에 잠들어 있던 책을 빌려와 읽었답니다.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뿐 아니라
소설을 좋아 하는 사람들,
소설을 좀 더 잘 읽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소설가 이승우 선생님은 글은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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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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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 나에게 걸어온 말들

        김영하 <오직 두 사람>, 김애란 <바깥은 여름>, 이승우 <모르는 사람들>

 

 

  나는 언젠가부터 한국 소설은 안 읽어.”라고 친구가 말했다. 왜 한국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을까. 어떤 특정 작가의 소설을 지칭했다면 이상하지 않았을 테지만, 소설이란 말 앞에 굳이 한국이란 말을 붙였는지 알고 싶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일을 겪는 인물들은 내게 인생이 무엇인지, 어떤 존재가 되어 살아가야 할지 질문했다. 무작위로 쏟아낸 답도 없는 질문들이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했고, 몰랐던 세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살아도 될 것에 대하여 알게 했고, 부담감을 갖게 하기도 했다. 그것은 세계문학이든 우리문학이든 마찬가지였다. 소설 속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보편적 정서와 물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만이 느낄 수 있고, 질문하며 답할 수 있는 특수성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을 모를 친구가 아니기에 나는 궁금했다. 무엇이 친구의 마음을 우리 소설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는지.

 

 

 

인생은 해피엔딩이 아니야 -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

 

 

 김영하의 단편집 오직 두 사람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견고한 세계가 무너져 갈 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단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던 아빠와 딸에게 다른 가족들은 주변인에 불과했다. 아빠를 통해 큰딸의 세상이 확장되고 견고해질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 멀어져 갔고, 결국 아빠와 딸,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 그러나 딸은 든든한 세계로 남아 있을 줄 알았던 아빠가 유리벽처럼 깨지기 쉬운 존재였다는 것을, 또한 세련되고 점잖은 교수라고 믿었던 존경의 대상이 구질구질하고 위선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시시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절망한다.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저 낯선 몸뚱어리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허망한 존재에게 인생이 바쳐졌구나 싶어요.

 

 

절망하는 그 딸은 곧 내가 되고, 우리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자기가 선택한 세상에 문제가 생기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나아갈 때가 많다. 문제나 허점보다 그것이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인정하는 것이다. 내 선택과 결정, 방법 등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도움의 손길을 찾고, 주어진 시간을 견디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나약한 인간이 무너져가고 있는 자신의 세계 앞에서 느끼는 것은 지독한 외로움이며,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외로움을 견디는 것뿐임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아이를 찾습니다편을 읽었을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고, 힘을 다해 일어난 일을 되돌리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다. 예전의 평안했던 일상은 사라지고 삶은 변해 버린다. 그 뒤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삶은 또 다시 장난처럼 사건을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때부터 또 다른 운명이 삶을 고통 속으로 몰고 간다. 젊은 부부는 복잡한 마트에서 아들을 잃어버렸고, 그 아들을 찾다가 빈곤과 질병을 얻은 채 삶의 밑바닥으로 내려간다. 시간이 흐르고 운명처럼 잃어버린 아들을 찾게 되지만, 여전히 세 사람은 불행하다. 누구의 책임일까. 수학공식처럼 풀릴 수 있는 문제라면 좋겠지만 인생에는 풀 수 없는 문제가, 진흙 구덩이에 빠진 채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소설은 이런 세상에 대해 답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정답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행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는 것 같다.

 

 

 지나간 걸 어떻게 바꿔요? 누가 잘못 했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살면 안 돼요?”

 

 

아들 성민이 하는 말을 읽으며 나약한 인간이 한없이 가엾어졌다.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예전처럼 그대로 살아가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현실이 슬펐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진다 해도 이미 우리는 그전에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삶이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이 소설을 읽었던 8, 여름은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지금은 무더웠던 여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을 가방에서 꺼냈을 때 옆에 있던 후배가 정말 바깥은 여름이네요.”라고 하며넛 나가기 싫어했던 일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재미있게도 첫 소설 제목은 입동이다. 소설은 젊은 부부가 복분자액이 튄 벽에 도배를 하면서 시작된다. 도배를 하게 된 1차적 이유는 시어머니가 쏟은 복분자액이 아내가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부엌벽면에 흉하게 튀었기 때문이다. 그 도배를 하기까지 그들의 일상 속에는 서울 변두리에 처음으로 자기 명의의 아파트를 장만한 한 가장의 기쁨이 있고, 그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아내와 그 속에서 이제 막 자신의 이름을 쓰기 시작하는 어린 아들 영우가 있다. 그 세 사람은 위태로운 삶속에서 안정적이고 표면적인 일상의 행복을 누린다. 그러나 영우가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죽음으로써 세 식구의 삶은 한 순간에 바뀌게 된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살아있는 사람은 먹고, 자고, 일해야 하며, 꼬박꼬박 나오는 세금과 카드 값을 치루기 위해 돈을 벌고 움직여야 한다. 부부를 통해 인간이란 슬픈 상황에서도 살아가기 위하여 발버둥 쳐야 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아들의 죽음으로 나온 보험금을 헐자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고달픔과 피곤함을 밀려왔다.

 

마지막 소설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제자를 구하려다 함께 목숨을 잃은 남편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 나온다. 슬픔을 견디어 나가는 연약한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 죽은 아이의 누나에게 온 편지를 읽게 된다.

 

 

 평생 감사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평생 궁금해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때 권도경 선생님이 우리 지용이의 손을 잡아주신 마음에 대해 그 생각을 하면 그냥 눈물이 날 뿐, 저는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

 

 

죽어가는 제자를 향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게 만든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나도 그것이 무엇이었다고 답할 수가 없다. 그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무책임하게 죽음을 향해 뛰어들었다고 남편을 원망했던 는 아이의 편지를 쥐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동생을 잃은 뒤 밥도 먹지 못한 채 야위어 가는 죽은 아이의 누나를 걱정한다. 죽기 직전의 남편을 생각한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어떤 불행이나 죽음보다도 삶의 힘이 더 세다는 것을 깨달았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견디는 것이 삶이다- 이승우의 <모르는 사람들>

 

 

서로 다른 세상에 속한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같은 세상에서 긴 시간 동안 살아가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의 세상은 B이다. 그래서 B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주고 싶지만, A의 관심은 다른 세상이다. 그래서 둘은 서로에 대해 알 수가 없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속해 있는 시간 동안 각자의 방법으로 견디며 살아간다. 견딘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상대방을 향해 모멸감을 느끼거나 문을 닫아 버리면서도 정해진 시간을 다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 살면서 자주 내가 참으로 살기를 갈망했던, 살지 못하고 있는 다른 삶을 그리워했다. 그리워만 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하찮은 것에 간절해지지 말자는 말은 하찮은 것에 간절해지는 나를 향해 주문처럼 하곤 했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견디고 혐오스러운 나를 견디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뭐라고 말하든 나는 세상에 붙들려 있었고, 세상과 어울려 있었고, 세상의 일부였고, 그러니까 세상을 견딘다는 것은 나를 견딘다는 뜻이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

 

 

아버지가 다른 세상을 견디고 있을 때, 어머니 또한 자신이 선택한 세상을 견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한 여자가 때때로 느꼈을 슬픔과 모멸감과 그것들을 뭉그러뜨리기 위해 구사해야 했을 인위적인 몸짓에 대해 생각했다. …… 살고 싶은 삶을 살았으니, 네 아버지는 행복했겠구나, 하고 잦아드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말했다. …… 어머니가 견디고 있는 세상이 비로소 보였다.” <모르는 사람>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다. 세상은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관계를 맺고 다시 그 관계를 끊으며 살아가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기쁨과 슬픔, 고통을 겪고, 개인과 사회 안에서 맺은 인연과 함께 주어진 삶을 견디며 살아간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 사물 까지도 말이다. 다양한 것에 생명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성장과 소멸을 겪는다. 나아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삶과 죽음이 있고, 그 사실이 위로와 안심이 된다. 결국 나는 모든 존재가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세상을 견디고 버티며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진리를 확인했다.

 

  친구의 말 한 마디 때문에 나는 봄부터 닥치는 대로 우리 소설만 골라 읽었다. 그러는 사이 내가 몰랐던 소설들이 찾아와 말을 걸었고, 나를 통과했으며, 지금도 내 안에서 무엇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게 읽은 소설 중에서 세 권만 선택하고, 또 그 중 한정된 작품에 대하여 글을 쓰기가 미안했다. 그렇지만 그만큼 다시 읽고 깊이 들여다보며 나와 내가 속한 세상을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수많은 질문 속에서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작가나 독자는 그 질문 때문에 소설을 쓰거나 읽기 시작해서 답을 찾기도 하고, 길을 헤매거나 잃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그것은 상관없다. 자기만의 질문을 갖고 길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니까. 그 출발에 있어 소설의 출신국가를 따질 수 없다는 생각이 크다. 또한 번역을 거쳐야 하는 외국문학과 달리 작가와 시대,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정서적 유대감이 큰 우리 소설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소설을 읽으며 친구의 닫힌 마음이 열리길, 그리고 우리 소설의 건투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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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무빙 -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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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모지상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는 요즘이라 나는 반대로 몸보다 정신을 더 높이 생각했었다. 외면을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을 먼저 아름답게 만들고 인격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쯤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바디무빙>을 읽었다.

 

한 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나는 몸을 보면서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하곤 한다. 나는 몸이 삶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삶은 몸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36~37.p)

 

  순천여행 중 일몰의 순간을 보기위해 전망대에 올랐었다. 그날 국가정원도 돌아보았기에 핸드폰에 깔아둔 앱에서는 2만보이상을 걸었다고 알려왔다. 평소 걷기 운동을 틈틈이 해두었기 때문에 종아리가 조금 아팠지만, 그 정도는 거뜬히 걸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그 이후에도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오른쪽 발목에 문제가 생겼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체중을 견뎌낸 발목이 쑤시고 아파왔다. 3년 전 골절 수술을 받은 발목이라 그런지 통증이 없는 왼쪽과 달리 자는 내내 뻣뻣해지더니 콕콕 찌르는 통증이 딱 견딜 수 있을 만큼씩 이어졌다. 나는 잊고 있었지만 몸은 기억하고 더 이상 무리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자만하는 순간 어김없이 몸에는 이상이 생긴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목과 종아리를 주무르고 약을 바르면서 영화 <걷기왕>이 생각났다. 선천적 멀미 증후군이라는 이상한 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 만복이, 만복이는 산을 넘고 여러 마을 지나 걸어서 학교에 가도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런 만복이가 육상대회에 나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멀미 때문에 정신을 잃고 경기를 망치는 장면을 보면서 몸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몸은 부모님께 받은 유전적 요소와 함께 그동안 각자가 길들여 온 생활습관들이 쌓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언제나 체중조절에 실패하고, 폭식과 과식을 반복하며 저주받은 몸매라고 자학하지만 그 역시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내가 내 몸을 잘못 길들여 온 것을. 우리가 매일 반복하고 있는 일들을 몸이 그대로 말해주고 있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몸은 곧 자기 자신이다. 그 안에 자신이 꾸준히 해온 일들이 그대로 녹여져 있다. 줄곧 소설을 써온 저자도 그것을 책 속 몸의 일기에서 만화로 재미있게 표현해놓았다.

 

소설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나는 겨울잠을 자야 할 처지였다. 왼쪽 어깨는 화강암처럼 굳어 있어서 곧바로 잘라 내 비석으로 써도 될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잔인한 문장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들의 숙명 같은 자세들이다. 스트레칭을 하면 몸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많은 부분들로 연결되어 있는지, 얼마나 뻣뻣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인간은 어쩌면 부드러운 존재로 태어나 점점 딱딱해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84~85.p)

 

  나도 책상에 앉아 집중적으로 공부에 몰입해야 할 때가 있었다. 컴퓨터를 두들기며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했을 때, 어깨가 쑤셔서 눈물이 났다. 허리에 무리가 왔고, 변비도 생겼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워 잠을 자지 못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말을 많이 할 때는 항상 목이 아파 손수건으로 목을 감싸고 따뜻한 차를 수시로 마셨다. 환절기에는 어김없이 비염을 앓고 있는 코가 재채기와 콧물을 통해 먼저 알려 준다.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었을 땐 마음도 우울해지고 작은 일에도 서운함을 느꼈다. 회복이 더딜 때는 이런 상태로 그냥 멈춰버리는 것은 아닌지 무서웠다. 아플 때는 언제나 몸보다 마음이 더 약해졌다.

  반면에 건강에 이상이 없고, 몸도 가벼워지면 저절로 마음도 즐거워진다. 세상 그 어떤 일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40일 동안 산티아고 길에 올랐을 때도 완주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무사히 800를 완주했을 때는 이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내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자부심까지 느낄 수 있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내 삶 앞에 놓여 있는 한 개의 산을 넘은 느낌이었다. 피부는 새까맣게 타고 머리카락은 거칠어졌지만, 탄탄해진 두 다리의 근육이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랑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몸은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너무 거창한 물음이다. 다시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움직이며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몸이 죽으면 정신과 인격, 영혼과 마음도 함께 죽는다. 몸과 정신 무엇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의 내면을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몸이 하는 일이며, 그 몸을 잘 다독이는 것은 정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인식보다 강력하며, 기억한다고 해서 아는 게 아닐 수 있으며, 안다고 해서 영원히 기억할 수 없으며, 우리가 대체 어떤 존재들인지 영원히 모르고 죽을 확률이 클 것이다. 아직 인생의 비밀 같은 것은 전혀 모를 나이이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지만, 죽을 때까지 팔다리를 흔들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버둥거리기보다 춤을 추며 살고 싶다. 춤을 추며 죽고 싶다. 조르바처럼? 아니 지르박을 추며.

(127.p)

 

 

  나는 조르바처럼 춤추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춤을 추며 나의 몸을 움직이고 싶다. 앞으로 시간을 내서 산책을 하고,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6층 우리 집 벨을 누르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할 것이다. 아주 가끔은 등산도 할 것이다. 물론 자만한 마음을 버리고 다치지 않게 천천히 올라갈 것이다. 몸과 함께 박자를 맞추어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내가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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