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무빙 -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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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모지상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는 요즘이라 나는 반대로 몸보다 정신을 더 높이 생각했었다. 외면을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을 먼저 아름답게 만들고 인격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쯤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바디무빙>을 읽었다.

 

한 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나는 몸을 보면서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하곤 한다. 나는 몸이 삶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삶은 몸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36~37.p)

 

  순천여행 중 일몰의 순간을 보기위해 전망대에 올랐었다. 그날 국가정원도 돌아보았기에 핸드폰에 깔아둔 앱에서는 2만보이상을 걸었다고 알려왔다. 평소 걷기 운동을 틈틈이 해두었기 때문에 종아리가 조금 아팠지만, 그 정도는 거뜬히 걸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그 이후에도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오른쪽 발목에 문제가 생겼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체중을 견뎌낸 발목이 쑤시고 아파왔다. 3년 전 골절 수술을 받은 발목이라 그런지 통증이 없는 왼쪽과 달리 자는 내내 뻣뻣해지더니 콕콕 찌르는 통증이 딱 견딜 수 있을 만큼씩 이어졌다. 나는 잊고 있었지만 몸은 기억하고 더 이상 무리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자만하는 순간 어김없이 몸에는 이상이 생긴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목과 종아리를 주무르고 약을 바르면서 영화 <걷기왕>이 생각났다. 선천적 멀미 증후군이라는 이상한 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 만복이, 만복이는 산을 넘고 여러 마을 지나 걸어서 학교에 가도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런 만복이가 육상대회에 나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멀미 때문에 정신을 잃고 경기를 망치는 장면을 보면서 몸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몸은 부모님께 받은 유전적 요소와 함께 그동안 각자가 길들여 온 생활습관들이 쌓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언제나 체중조절에 실패하고, 폭식과 과식을 반복하며 저주받은 몸매라고 자학하지만 그 역시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내가 내 몸을 잘못 길들여 온 것을. 우리가 매일 반복하고 있는 일들을 몸이 그대로 말해주고 있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몸은 곧 자기 자신이다. 그 안에 자신이 꾸준히 해온 일들이 그대로 녹여져 있다. 줄곧 소설을 써온 저자도 그것을 책 속 몸의 일기에서 만화로 재미있게 표현해놓았다.

 

소설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나는 겨울잠을 자야 할 처지였다. 왼쪽 어깨는 화강암처럼 굳어 있어서 곧바로 잘라 내 비석으로 써도 될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잔인한 문장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들의 숙명 같은 자세들이다. 스트레칭을 하면 몸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많은 부분들로 연결되어 있는지, 얼마나 뻣뻣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인간은 어쩌면 부드러운 존재로 태어나 점점 딱딱해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84~85.p)

 

  나도 책상에 앉아 집중적으로 공부에 몰입해야 할 때가 있었다. 컴퓨터를 두들기며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했을 때, 어깨가 쑤셔서 눈물이 났다. 허리에 무리가 왔고, 변비도 생겼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워 잠을 자지 못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말을 많이 할 때는 항상 목이 아파 손수건으로 목을 감싸고 따뜻한 차를 수시로 마셨다. 환절기에는 어김없이 비염을 앓고 있는 코가 재채기와 콧물을 통해 먼저 알려 준다.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었을 땐 마음도 우울해지고 작은 일에도 서운함을 느꼈다. 회복이 더딜 때는 이런 상태로 그냥 멈춰버리는 것은 아닌지 무서웠다. 아플 때는 언제나 몸보다 마음이 더 약해졌다.

  반면에 건강에 이상이 없고, 몸도 가벼워지면 저절로 마음도 즐거워진다. 세상 그 어떤 일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40일 동안 산티아고 길에 올랐을 때도 완주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무사히 800를 완주했을 때는 이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내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자부심까지 느낄 수 있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내 삶 앞에 놓여 있는 한 개의 산을 넘은 느낌이었다. 피부는 새까맣게 타고 머리카락은 거칠어졌지만, 탄탄해진 두 다리의 근육이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랑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몸은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너무 거창한 물음이다. 다시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움직이며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몸이 죽으면 정신과 인격, 영혼과 마음도 함께 죽는다. 몸과 정신 무엇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의 내면을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몸이 하는 일이며, 그 몸을 잘 다독이는 것은 정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인식보다 강력하며, 기억한다고 해서 아는 게 아닐 수 있으며, 안다고 해서 영원히 기억할 수 없으며, 우리가 대체 어떤 존재들인지 영원히 모르고 죽을 확률이 클 것이다. 아직 인생의 비밀 같은 것은 전혀 모를 나이이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지만, 죽을 때까지 팔다리를 흔들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버둥거리기보다 춤을 추며 살고 싶다. 춤을 추며 죽고 싶다. 조르바처럼? 아니 지르박을 추며.

(127.p)

 

 

  나는 조르바처럼 춤추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춤을 추며 나의 몸을 움직이고 싶다. 앞으로 시간을 내서 산책을 하고,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6층 우리 집 벨을 누르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할 것이다. 아주 가끔은 등산도 할 것이다. 물론 자만한 마음을 버리고 다치지 않게 천천히 올라갈 것이다. 몸과 함께 박자를 맞추어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내가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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