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미술'과 '역사'카테고리는 나같은 문외한에게 쉽게 접근할만한 분야가 아니다. 헌데 '미술사'라면? 솔직히 진중권의 책이 아니었더라면 '서양미술사'라는 책을 쉽게 집었을것 같지 않다. 진중권의 글은 어느 분야에 관한 것이든 재미있고 명쾌하다. '미학 오디세이'와 거의 유사한 주제라 '업그레이드'판이라 할 법도 한데 구성도 다르고 내용이 중복된다는 느낌도 없다.

미술작품에 관한 이야기들은 작품 사진이 필수다. (특히 나처럼 기본소양도 별로 없고 기억력도 좋지 않은 독자라면) 이 책은 거의 모든 면에 사진이 실려있고 본문과 사진에 번호를 붙여놓아 눈에 쉽게 들어온다. (앞이나 뒤에 참고자료 형식으로 사진들을 몰아놓은 책들은 들춰보아야 하는 번거로움때문에 잘 읽히지 않는다) 보통 역사책들이 갖는 단점 - 장황한 사실들의 나열 - 을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 소주제 중심으로 엮어가는것도 좋다. 쉽고 구체적인 설명으로 독자를 주눅들게 하지 않으면서 가볍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진중권식 글쓰기의 장점이다.

'미학 오디세이'는 특정 작가를 각 권의 테마로 잡아  "에셔(1권)/마그리트(2권)/피라네시(3권)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라는 부제를 달았었는데 이번 책의 부제는 '미학의 눈으로 읽는 고전 예술의 세계'다. (얼마전 다녀온 강연회에서 말하길 2권은 1.2차 모더니즘(추상)을, 3권은 1962년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구상)을, 4권은 미디어 아트-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다룰 것이라고) 1권에서는 '러시아 미술'이 인상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원근법을 뒤집어놓은 그들의 원근법ㅡ 먼것을 크게, 직선을 곡선으로, 이미 굽은 것은 절단(!)내고 공간의 균열은 다른 물체로 살짝 숨기거나 지진(!)으로 표현했다나. 우리 눈엔 '기상천외'한 것들이 그들에겐 '원칙'이었다니. 아무 생각 없이 봤던 그림속에 녹아있는 그들만의 '규칙'을 발견하는것도 재미있지만ㅡ 사고의 '상대성'. 즉 우리에게 '당연한'것이 사실은 '합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을때의 당혹스러움이란. 규정된 사고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편견/폭력들. (MB논리속에서는 촛불집회의 배후세력이 친북단체일수밖에 없는것이 떠오르는구나. 시절이 하수상하니 연상도 거기서 거기다. ㅋㅋ)

비평가의 역할에 주목한것도 눈에 띈다. 예술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는 화가나 조각가 뿐 아니라 뛰어난 비평가도 한몫 한다는 사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로제 드 필과 요한 요아힘 빙켈만은 당시 예술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닭이나 달걀이냐'를 연상시키는 소묘냐 색채냐의 논쟁에서 로제 드 필은 색채의 손을 들어 그 전까지 고전으로 숭앙받던 푸생을 버리고 루벤스를 찬양한다. (이 부분에서 대립되는 작품들을 비교하는것도 재미있다. '선'과 '색채'에 대한 구별을 짓고 나면 익숙한 그림들이 새롭게 보인다.) 빙켈만은 고대 그리스인을 거의 '우상'처럼 여겨 그 '고귀한 윤곽'을 미의 기준으로 삼았댄다. 선이 살아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이 바로 이 시대의 산물이다. 그런데 그리스 예술을 향한 빙켈만의 사랑 - 그의 남다른 시각은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괴테의 바이마르 고전주의, 헤겔의 고전주의 미학을 낳았다. - 이 동성애자였던 그의 취향의 반영이라면? 큰 흐름을 이야기하면서도 소소한 뒷이야기(?)를 꺼내보이는 진중권의 배려다.

** 요즘 프랑스혁명 관련 책을 읽어서인지 그 시기에 관한(11장 혁명의 예술, 예술의 혁명)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대개 크기가 작고 흑백인지라 별 감흥이 없었는데 올컬러 삽화에 작품별 설명/뒷이야기가 덧붙여지니 더욱 생생하다. 해당 시기의 역사책과 같이 보면 더욱 재미있겠다.

한달이 넘는 촛불집회 열기는 좀체 식을줄 모르고. '덕분'인지 '때문'인지 진중권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스타가 되어버렸다.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거침없는 독설때문에 팬과 안티가 극명하게 갈리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것이 일치하는 흔치 않은 지식인이라는건 분명하다. 명색이 학술서적인지라 칼럼/인터뷰에서 느껴지는 통쾌한 맛은 없지만 '교조적 주류'를 벗어나는 신선함이 있다. 서양미술을 전공하는 '전문가'의 눈엔 어떻지 모르나 나같은 대중에겐 딱딱한 전문서적보다 훨씬 재미있고 호감가는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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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8-06-15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재미있고 명쾌한 리뷰(어)네요.^^;

순오기 2008-06-21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00공원에서 우수리뷰로 뽑혔던데요~ 축하해요.
아무리 그래도 '알라딘의 Jade'라고 아이디를 쓰면 어떡해요? 내가 그거 보고 웃었잖아요.^^

웽스북스 2008-06-2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알라딘의 제이드, 제이드님 최고 ㅋㅋ

2008-06-25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