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참을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다. 엄밀히 말하면 참을 수 '없는'것이 아니라 '참고 싶지 않은 것'에 가깝다. 참는다는 것은 개인의 능동적 행위이므로. 무엇이 한 생명의 존재를 '견디기 싫게'만드는 것일까. 아니, 참을 수 없게 '가볍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존재는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척도로 잴 수 있는 것일까.

밀란 쿤데라의 글을 처음, 읽었다. '체코'라는 나라. '프라하의 봄'. '공산주의'라는 말 만큼이나 신비할 정도로 멀게 느껴지는 얘기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우울과 무기력이 왠지 낯설다. '자본주의'의 막장, '팍스 아메리카나', 신자유주의의 상징 FTA, 소비행위에서 살아있다는 안도를 얻는 현 모습에서 별다른 희망을 느끼지 못해서일까. 소련군의 폭력이 '사회주의'의 폭력이라기 보단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폭력성이란 느낌마저 든다. 이념을 놓고 한 사람을 옥죄고 감시하는 건 특정 체제나 시기에 국한된 일이 아니지 않나. 비록 양상은 다를지라도.

크게 네 범주의 인간들이 등장한다. 익명의 대중의 시선을 추구하는 사람, 다수의 친숙한 사람들의 시선을 추구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을 추구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속에서 사는 사람. 소설의 주요 인물은 세 번째 유형인 토마스와 테레사다. 토마스는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지만 테레사를 만나면서부터 만나는 여자들에게 몰입할 수 없고 삶의 중심에 테레사가 놓인다. 테레사는 토마스의 여자관계에 끊임없이 상처받지만 그녀의 약함은 토마스를 붙들어놓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토마스의 정부 중 하나인 사비나는 매력적인 여성화가로 아름다움을 위장한 온갖 키치를 혐오하는데, 소설속에서 키치는 종종 테레사의 꿈으로 구현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른 유형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키치'속에 사는 것이다.

소설속에서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묘사되는 것들이 몇 개 있다. 잃어버린 반쪽인양 강하게 속박된 토마스와 테레사의 만남이 사실은 여섯개의 우연적 사건에 의해 허약하게 이어졌다는 빈약함. 배반의 순간들에 들떠 삶 자체가 끊임없는 배반 - 부모든, 남편이든, 사랑이든 - 이라는 모험의 연속이지만 배신의 목표를 찾지 못하는 - 어쩌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그녀의 목표였지도 모른다. - 사비나, 감옥에서 자신의 배설물때문에 모욕당해 죽음을 택한 '신(스탈린)'의 아들 등. 다른 소설과 달리 소설 중반부에 미리 예고되는 두 주인공의 '허망한' 죽음 등. 작가는 일련의 사건속에서 '무거움'과 '가벼움'사이의 보잘것 없는 간격, 때로는 역전되기도 하는 '허무한' 간격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종종 '삶의 무게'니 '삶의 진정성'이란 말을 쓰지만,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단 한번이기에 비교도 반복도 되지 않아 깃털처럼 가볍다고 할 수도 있다.  

 일전에 어느 선생님이 삶의 거룩한 것 다섯가지를 꼽으셨다. 숨쉬는것, 먹고싸는것, 섹스, 일하는 것과 자는것(일은 낮의 노동이고, 잠은 밤의 노동이다), 마지막으로 대화하는것. 모두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고 온전한 생명력의 발현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토마스와 테레사의 반려동물인 카레닌(개)는 영혼과 육체의 이원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혐오감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에게 시간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원형으로 존재하며 매일 아침 똑같은 일상들이 즐겁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않고 직선이기에, 반복을 요구하는 행복과 양립할 수 없다. 인간이 스스로에게 참을수 없는 가벼움과 혐오를 느끼는 것은, 스스로 정해놓은 실현 불가능한 '무거움'때문이다. 테레사는 카레닌에게 그의 존재 외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기에, 카레닌의 사랑을 받고, 자발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 동물들만이 천국에서 추방되지 않은 '원형'이다. 인간이 동물을 '살아있는 기계'취급하는 순간부터, 천국에의 연결 고리를 끊은 것이다.

스스로를 '가볍게' 만들 수 있는것이 인간에게 씌워진 굴레라면, 그 이면엔 스스로를 '무겁게'만들 수 있는 능력, 또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이분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 역시 존재한다. 무엇이 인간을 괴롭게 만드는가. 사실은 스스로 괴로움을 '선택'했다고 하는편이 옳다. 인생이 한번뿐이라면 괴로움이 괴로움이어야 할 이유도, 행복이 행복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상황은 바꿀 수 없어도 자신의 반응은 선택할 수 있다. 비교할 대상이 없는데 '꼭 그래야 할' 당위가 무엇일지.

머릿속에 들어앉은 '간절함'이란 화두 때문에, 읽는 책마다 그쪽으로만 읽힌다. 어차피 책이란 건 읽는 순간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법이니까...몇 년 쯤 지난 뒤엔 또 어떻게 읽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