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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철학자들의 서 -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숭고한 철학적 죽음의 연대기
사이먼 크리칠리 지음, 김대연 옮김 / 이마고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도망갈 기회가 있었던 상황에서, 마음만 바꿔 먹으면 추방 정도에 그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소크라테스는 끝내 그러길 거부하고 사형판결을 받아들인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그 법에 따를 것을 주장하며 덧떳하게 죽었다. 그것이 악법일지리도 말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떳떳하게 죽은 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으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두고 세상은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죽은 철학자들의 서(書)]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다른 철학자들의 죽음은 그렇지 않다. 스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크라테스, 탈레스, 에피쿠로스 등 그리스 철학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가까운 중국 철학자들의 죽음에 관해선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한 바 있으나 로마의 철학자들이나 중세 철학자들의 죽음에 관해선 아는 바가 없는데 이 책은 여러 철학자들의 다양한 최후를 알려주고 있다. 덤으로 철학자들의 삶이나 사상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곁들여 있어서 철학자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어 좋았다.
[죽은 철학자들의 서(書)]가 알려주는 철학자들의 최후는 우습고, 엉뚱하고, 어이 없는 죽음에서부터 안타깝고, 기이하고, 가슴 아픈 죽음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최후를 8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소똥에 질식하거나 화산에 뛰어들거나, 독약을 마시거나 숨을 참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미쳐 죽거나, 사약에 죽거나 시를 쓰고 죽거나, 스스로 무덤에 들어가거나 분신하거나, 참수 당하거나 고문으로 죽거나, 강도에 비명횡사하거나 아편으로 죽거나, 비서의 칼에 죽거나 흑사병에 죽거나.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소똥에서 질식사했고, 플라톤은 슬증(이 감염)으로 죽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자신의 불멸을 증명하고자 화산에 뛰어들어 죽었고, 티코 브라헤는 오줌을 참다가 방광이 터져 죽었고, 베이컨은 런던 거리에서 닭 박제에 눈을 채워넣고 냉각 효과 실험을 하다가 기관지염에 걸려 죽었다. 몽테스키외는 애인의 품에서 죽었고, 루소는 대량 뇌출혈로 죽었는데 2년 전 파리 거리에서 커다란 개와 충돌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칸트는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었고, 제러미 벤담은 스스로 박제가 되어 유리상자에 앉은 채로 죽었고, 니체는 정신병을 앓다가 죽었고, 토머스 모어는 참수형을 당해 그의 머리가 런던브리지에 내걸렸다.
살아서 죽음에 대하여 사유하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철학자들의 죽음은 자신의 사유와 어긋나 있음을 보았다. 살아서 죽음을 논하고 죽음에 대한 처방을 내리는 철학자들일지라도 죽음의 일면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방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는 것을 책은 알려준다. 철학자들의 죽음은 왠지 철학적일 것 같고 근사할 것 같은 기대가 살짝 무너지긴 했지만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나쁘진 않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죽음에 관해 생각해보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