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
마르크 함싱크 지음, 이수영 옮김 / 문이당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띠지는 "사도세자는 뒤주에서 죽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럼 사도세자는 어떻게 죽은 것일까? 나는 조선조 최대의 비극을 소현세자와 사도세자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소현세자와 사도세자는 차기 왕으로 봉해진 상태에서 모두 부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세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에 의해 독살당했고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서 굶어 죽었다. 소현세자를 독살한 혐의자가 부왕 인조라는 점과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어 죽게한 장본인이 부왕 영조라는 점은, 두 세자의 신산한 일생을 한미디로 축약해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단지 부왕에 의해 죽었다고 조선조 최대의 비극이라는 것은 아니다. 두 세자의 명민함과  뛰어난 학문, 세계정세에 대한 식견, 도타운 인품을 고려해 볼 때 성군이 될 자질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죽음은 조선의 좌절이며 조선 왕조의 비극이라는 것이다.

 

흔히 사도세자를 광인이나 신경정신과 계통의 병을 앓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영조실록]에 의하면, 마구간을 뛰쳐나가 콩밭을 상하게 한 군마의 주인 위사(衛士)를 처벌하고 밭주인에게 후히 보상하도록 명령하는 사도세자를 볼 수 있다. 사도세자는 또한 백성을 고통에 빠뜨리는 부역을 감해주라고 명령하고,  온양 읍내의 부로들과 이름 없는 선비들을 불러 도타운 말로 학문에 힘쓸 것을 권하기도 한다. [영조실록]의 이러한 기록은 사도세자가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음을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역사와 주변 인물들은 사도세자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부인 혜경궁 홍씨까지 사도세자를 미친사람으로 몰고갔다. 궁녀를 죽이고, 궁궐 내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 숨고, 궁궐을 몰래 빠져 나가고, 온양으로 온천을 즐기는 행동을 영빈 이씨에게 고하고, 영빈 이씨는 이를 영조에게 고한다. 남편보다도 노론의 영수인 아버지 홍봉한의 손을 들어주었던 아내 혜경궁 홍씨와 아들이 폐위되는 일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차가운 어머니 영빈 이씨와 대노하는 아버지와 누이동생 틈바구니에서 사도세자는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짐작컨대 사도세자는 미친 게 아니라 우울증을 앓지 않았을까 싶다.

 

[충신]은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뒤주사건을 사실적 기록과 작가적 상상력에 근거한 팩션이다. 작가는 과연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었는지 의문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의문을 제시한 작가가 놀랍게도 외국인이다. 어린 나이게 벨기에로 입양된 마르크 함싱크는 우연히 이천보가 기록한 [진암집]의 가치를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이 고서의 가치를 조사하는 중에 마르크 함싱크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삼정승 자살사건을 마주하고 이들의 죽음에 강한 의문을 품게 된다. 영의정 이천보, 우의정 민백상, 좌의정 이후는 왜 자살을 했으며, 영의정 이천보는 어떻게 ’불천위’(不遷位)에 봉해졌는지, 자살을 하면서까지 삼정승이 지켜야 했던 비밀은 무엇인지, 삼정승들의 자살과 사도세자의 죽음 간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작가는 이천보의 아들 이문원과 그의 두친구와 함께  의문점들을 하나 하나 풀어나간다.

 

역사는 왕세자를 죽인 직접적인 장본인으로 홍봉한을 지목한다. 홍봉한은 사도세자의 장인이며 영조 때 노론의 영수였던 인물이다.  홍봉한은 딸을 조종해 사위를 정신병자로 몰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했다. 훗날 영조가 사도세자의 뒤주사건을 뉘우치고 괴로워할 때 헤경궁 홍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훗날 아들 정조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 피를 토하며 방성대곡하는 것을 보고 어미로서 어떤 심경이었을까? 설마 그 시간에 [한중록]을 써내려가며 자신의 입장과 백주 대낮에 대리청정하는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노론의 입장을 정당화하지 않았는지. 그녀의 기록인 [한중록]을 진실처럼 믿고 있는 우리는 역사 앞에서 냉철해져야 한다. 남편을 정신병자라고 시아버지를 성격이상자라고 쓴 세자 부인의 기록이 서서히 의심을 받고 있어 다행이고, 자결하면서까지 충성한 삼정승이 있어 위로가 된다. 또한 수시로 수원 화산의 형륭원에 행차해 아버지를 그리며 엎드려 땅을 치면서 목메어 흐느끼는 아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현릉원에서 한두 발자국 걷다가 엎드려 흐느껴 울고, 걷다가 또 울며 엎드리는 정조에게 사도세자는 씻을 수 없는 한이며 홧병의 근원이다. 그러나 아버지로 인해 정조는 더욱 빛나는 정치, 노회한 정치를 펴게 되어 조선의 문예부흥을 일으켰고, 조선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고종이 바로 사도세자의 후손이어서 적으나마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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