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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화초를 키운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집에 있었고 2년 전까지도 베란다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의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몇 개가 추가되고 몇 개는 사라지긴 했지만, 개중엔 내 기억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던 녀석들도 있었다. 화분으로서 수명만 40년이 훌쩍 넘었단 얘기다. 어린 시절 주택에 살았을 땐 물을 주거나 비가 내릴 때면 무거운 녀석들을 낑낑대며 마당으로 들고 나가곤 했다. 화분이 내게 직접 무엇을 해준 건 없다. 하지만... 어쩌면... 화분을 나르며 낑낑대던 어린 시절 나는 '공존'이라는 개념을 무의식적으로 배우며 실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께 살아갔다.
사람은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내지 못한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세상엔 별의별 존재가 다 있으니까.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혼자서 버거워한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삶을 지탱한다. 삶을 더 윤택하게 한다. 너무 긍정적인가? 그렇다면 삶이 함몰되지 않게 한다. 소설 속 일화와 월화, 목화와 목수, 미수와 복일, 목화와 루나처럼. 같은 듯 완전히 다른 둘이지만 동전의 앞뒤처럼 둘은 같이 있음으로써 더욱 온전한 하나가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을 버텨낸다.
하지만 버텨낸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서 개인의 삶이 오롯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삶은 80억 지구 사람들의 삶 중 그냥 하나일 뿐일까? 아니면 나란 존재가 살아가는 삶과 다른 누군가의 삶, 또 다른 누군가의 삶들이 하나하나 합쳐져 80억 지구 사람들의 삶을 이룬 것일까? 말장난 같지만 '아무나 하나'인 것과 '오직 하나뿐'인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또한 그건 존엄의 문제이자 인간성의 문제이기도 하고, 존재 그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설에 나오는 특이한 능력. 눈앞에(꿈속에) 펼쳐지는 수많은 죽음 중에 지명된 단 한 명만을 살릴 수 있는 능력. 이 능력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갈등하고 고민한다. 사람마다 다른 태도를 보이지만 그 갈등과 고민은 다름 아닌 존재에 대한 거다. 어려운 시절 다양한 죽음을 몸소 겪은 임천자에겐 그 능력은 기적이었고, 발전을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린 시대를 살았던 장미수에겐 악마의 재능이었고, 이미 물질적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에 발을 딛고 있는 목화에겐 자기 자신과 모든 대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몰가치의 능력이다. 그래서 임천자는 순응했고, 장미수는 신복일과 함께 버텨냈고, 목화는 목수와 함께 아무나 하나가 아닌 의미 있는 단 한 명(자기 자신이든 구하는 대상이든)이 되기 위해 길을 찾아 나섰다. 세대마다 배경과 가치관이 다를 테니 대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것 하나. 함께. 같이.
화분을 죽였다. 40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집안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다 지켜보았을 텐데. 내 희로애락을 모두 함께 겪었는데. 3년 전 고양이를 입양했다. 길에 버려졌던 생후 2개월 된 새끼 고양이를. 바깥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화분을 돌보고 고양이를 돌보고. 그러다 보니 소홀해졌다. 식물은 불만을 얘기하지 않으니까. 4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그들은 내게 아무나 하나였을 뿐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그건 아니란 결론에 도달했다. 이별을 아주 과격한 방식으로 했을 뿐.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이고 삶을 파괴당한 그들은 소설처럼 내게 고약한 선택을 강요할까? 그렇다면 3년쯤 나와 함께 산 고양이는, 지금 내 옆 책상 위에서 자는 중인 고양이는 나를 도와줄까? 흠... 그럴 거 같다. 츄르만 계속 준다면.
세상엔 세상 사람만큼의 신이 있고, 세상 사람만큼의 삶이 있다. 자기의 신을 가질 수 있는 그들이 온전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관계를 통해 함께, 서로 보듬는 것. 하지만 관계는 긍정적인 만큼 부정적이기도 하다. 40년을 함께 한 내가 화분 속 식물 입장에선 유일한 관계였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