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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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 그래

                                                                   (책 본문 중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조를 나눠서 연극을 한 적이 있다(그걸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연기는 둘째 치고 극본을 직접 써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우린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시간이 1년 정도 지났을 때 내가 그 연극에 대해 기억했던 건, 여자 아이가 극본을 썼고 극중 상대방이 나를 너무 세게 밀어서 내동댕이치듯 넘어졌었다는 거 뿐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연극을 할 때 같은 조였던 아이들은 다 뿔뿔이 다른 반으로 흩어졌고 학교에선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체육 시간에 다른 반과 축구 시합을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나를 향한 어떤 아이의 커다란 적대감과 마주치게 됐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다. 4학년 때 한 동안 내 짝이기도 했었고 아주 친한 건 아니었지만 서로 잘 어울렸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수제'라는 단어가 있다. 기본적으로 '직접 손으로 만든' 정도의 의미가 부여되지만 단어는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다른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수제'가 '감자칩'과 결합되어 만들어진 '수제 감자칩'. 소설 속 토니는 식당에서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까닭에 더 얇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식당 종업원 입장에선 그저 '두터운' 감자칩이란 의미로 인식될 뿐이다. 이렇게 되면 둘 사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단순한 단어 하나가 이 정도인데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사람들의 삶은 오죽할까?

 

누군가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대한 해석은 바라보는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거기에 시간까지 덧붙여져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 넘어간다면 비슷함과 다름을 떠나서 아예 맞고 틀림의 문제를 따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끔찍하게도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바로 우연. 누군가는 필연이라 하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난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 삶을 끔찍한 현실이라 부를 수는 있어도 끔찍한 지옥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거든. 생각해 보라. 우연이 빚어낸 기가 막힌 상호 작용 하나만으로도 토니의 인생이 흔들린 판국에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필연이라면 도대체 사람들이 무얼 할 수 있겠는지. 관계는 애초에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 관계를 통해 퍼져 나가는 나비 효과를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예측 가능한 삶이 될 수 있을 진 몰라도 아마 책임이란 커다란 바위를 머리에 이고 인생이란 고행길을 돌파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필연이 아닌 우연이 추가되면서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 아예 불확실성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도 이걸 알 수가 없다. 예측 불가능할 뿐더러 나로 인해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수밖에 없는 불확실이란 것이 삶에 주어진 축복인 걸까? 가끔은 그렇단 생각이 들곤 하는데 내가 현실 도피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겠다. 앞으로도 그렇고.

 

체육 시간에 마주쳤던 그 적대감의 원인을 난 바로 깨우치질 못했다. 며칠, 어쩌면 몇 주가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아차렸던 거 같다. 4학년 시절 연극을 할 때 그 아이는 나와 같은 조였고, 극본을 담당한 두 아이 중 한 명이었다. 그 아이가 쓴 극본은 선택되지 못했고(다른 여자애의 극본이 선택됐다), 그 과정에서 난 그 아이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줄 만한 행동과 말을 했었다. 완전히 잊고 있다가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런 행동을 해 놓고 그 당시엔 왜 미안해하지 않았던 걸까? 그 엄청난 일을 왜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걸까? 전과 달리 무서운 선배들과 종종 어울린다는 소문을 듣고서 나완 상관없는 일이라고 방어막을 치기라도 했던 걸까? 사건과 기억과 우연이 어우러져 일구어낸 삶의 한 모습. 그 모습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관계라는 것이, 그를 바탕으로 한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예감은 고사하고 현실에 대한 감을 잡아본 적도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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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비를 바라는 기도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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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부러진 뼈들이 드디어 시큰거리나 보네?" "그 동안 부러진 인생이 그래." 앤지는 무릎을 편 다음 다시 물속에 손을 담갔다. "어떻게 할 건데?"
... "몰라. 그냥... 너무 지쳤다는 생각."

(책 본문 중에서)


보지 말아야 할 꼴, 보기 싫은 꼴을 너무 많이 보다 보면 지치게 마련이다. 단순히 지칠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희망까지 사라지는데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상황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마저 흔들리고 만다. 실망과 회의에 빠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계속 반복되는 실망 실망 또 실망, 그리고 삶에 대한 염증.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해 보지만 언제나 그 끝에서 기다리는 건 무기력이다. 하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이 끔찍한 실망과 무기력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어쩌면 발악일지도 모른다. 손톱만한 희망이라도 찾아서 내 삶에 조그만 가치라도 부여하고 싶은 발악.

패트릭이 한 여자의 죽음에 집착하는 건 단순한 죄책감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는 발악, 사람으로서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은 몸부림... 이제 그 발악과 몸부림의 결말을 보는 것도 딱 한 편 남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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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독일인의 사랑 (한글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22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음, 배명자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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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반지에 박힌 진주보다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훨씬 아름답지 않니? 어딘지 모를 곳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맑은 시냇물이 베르사유 궁전의 분수보다 훨씬 훌륭하잖아.

(책 본문 중에서)


순수한 사랑에 관한 얘기다. 경제력, 신분, 편견 등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내 모든 게 당신을 위함이고 당신의 모든 게 나를 위해 존재하는, 그런 사랑 얘기. 상처 받아 움츠러든 사람들을 치유하고, 타인을 향한 보편적 사랑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마치 신의 섭리와도 같은 사랑 얘기. 그래서일까? 마지막 즈음 사랑이 현실 세계를 떠나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해버린 느낌을 받는 건. 개인의 아픔과 슬픔이 담긴 사랑을 타인을 향한 보편적 사랑으로 승화시키려 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다. 작가와 내가, 또는 작품이 씌어진 시대와 요즘 시대가 다를 뿐이지 둘 중 무엇이 맞고 틀리고 하는 문제는 아니니까 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노의사의 선택 또한 마찬가지다. 남자 주인공의 선택과 사뭇 다른 선택이지만 둘 모두 자신이 살아온 삶과 생각을 바탕으로 내린 선택이므로 어느 한 사람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거라면 당연하지만 그 뒤에 따르는 과정과 결과엔 마땅히 책임을 지는 것. 그것만이 끝이 존재하는 삶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옳은 방식이라 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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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가라 아이야 가라 2 밀리언셀러 클럽 47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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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그녀가 다시 흐느꼈다. 나는 문득 하느님이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 울먹이는 소리는 들었을까? 데빈이 ... 미란다를 읽어주는 소리는? 당신, 도대체 세상에 관심이 있기는 한 거요, 씨발.

 

 

불우한 아이들을 보며 사람들은 태어난 게 죄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 속뜻이야 어떻든 사실 잘못된 표현이다. 아무런 기회도 얻지 못하고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아이한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죄는 싸질러놓은 어른들한테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해를 끼치는 부모들에게 분노가 향한다. 분노는 분명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어 줄 수 있다. 동시에 분노는 극단적 선택을 이끌어내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불행히도 그렇게 되면 나타나는 양상은 딱 하나다. 뒤틀린 존재나 상황을 바로잡겠다고 자신까지 뒤틀려버리는 것이다.

6,70년대 하드보일드 소설과 느와르 영화들이 모호한 선악의 경계를 바탕으로 방황하며 충돌하는 세상을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많은 가치와 대상이 뒤틀려버린 가운데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세상을 그려낸다. 앞선 세상이 도출하는 결론은 허무와 초연이겠지만 이 소설이 보여주는 세상은 좌절과 무기력함을 이끌어낸다. 거대한 절망 속에서 사소한 희망이라도 찾는 게 정말이지 어려운 세상인 셈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늘에 대고 삿대질하는 것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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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한글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1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허승진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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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마음보다는 나의 이성과 재능을 더 높이 평가한다네. 하지만 내 마음만이 나의 유일한 자랑이고, 내 마음만이 모든 힘과 모든 행복, 그리고 모든 불행의 근원일세. 아, 내가 아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으니 내가 유일하게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이 마음뿐이라네.

(책 본문 중에서)

 

유일한 내 것이자 모든 것의 근원인,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의미해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베르테르는 좌절하고 고립된다.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랑 때문이라 단순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의 좌절과 고립은 자유로운 개인과 정형화된 사회(또는 제도)의 충돌 때문이기도 하다. 원인이야 어떻든 결론은 하나다. 고통스러운 삶.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의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은 그 고통을 극복해내고 사회의 보편적 구성원으로 편입되어야만 한다. 사회가 인정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르테르의 선택은 다르다. 그는 죽음을 향해 내닫는다. 그에게 자살이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고통만 느껴지는 삶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능동적 수단인 셈이다. 도피 또는 죄악이라는 종교적 제도적 관점과 완전히 다른,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랄까.

감정이 차고 넘치는 1700년대 이 독일 소설에서 시선을 문득 이 곳, 이 시각으로 옮겨본다. 지금 이 곳에선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줘 가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모든 힘과 행복, 불행의 근원이 능력이 아니라 마음이라 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이 '아니오'라면 베르테르의 선택은 한낱 웃음거리일 뿐이다. 사랑도 능력에 따라오는 부록에 불과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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