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剖(부) : 쪼갤 부

棺(관) : 널 관

斬(참) : 벨 참

屍(시) : 주검 시


한자 그대로의 의미다. 관을 쪼개어 시체의 목을 베다. 조선시대에 행해진 형벌 중 하나다. 주자학의 나라였던 조선에선 신체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었다. 죽은 후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부관참시는 조선시대 최악의 극형이었다. 이미 죽은 자에게 벌을 내린다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형벌이기도 했다.


작년 북악산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한양 도성길을 따라가다 보면 인왕산에서 북악산으로 들어가는 방향은 산보다 계단에 질려 버린다. 다른 곳은 계단과 산길이 어우러졌는데 유독 이곳만은 정상 턱밑까지 계단으로 일관한다. 그때 계단을 오르며 했던 생각. 조상들이 산 정상까지 성벽을 쌓았으면, 그 후손들은 정상까지 나무 계단 정도는 만들어 주는 게 맞지. 누가 봐도 그 선조에 그 후손이네.


요즘 몇몇 뉴스를 보다 한양 도성과 나무 계단이 떠올랐다. 그 선조에 그 후손. 유학에 파묻힌 선조들을 이해하지 못 하겠다던 후손들은 그래서인지 부관참시를 아무렇지 않게 남발한다. 주로 돈벌이를 위해서. 장담하건대, 선조들도 그 후손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다. 주자학의 조선인이 자본주의 조선인을 무슨 수로 이해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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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이다. 연말정산도 그렇지만 종합소득세 역시 홈택스에 접속해서 비교적 손쉽게 신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대를 뒤쫓아갈 여력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다. 70대인 큰누나는 컴퓨터라곤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스마트폰을 쓰지만 ‘폰’에 방점이 찍힌 사용법을 고수하고, 은행 업무는 ATM을 이용한다. 매형은 누나보다 더 못해서 기계치에 가깝고. 며칠 전 매형 앞으로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라는 통지가 집으로 온 모양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환급 대상이라 ARS로 계좌번호만 입력했었는데 세금을 내라는 통지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멀리서 사는 자식들에게 보여줬지만 둘의 의견이 갈렸다. 내야 한다, 이미 냈으니 상관없다. 결판이 안 났으니, 통지서 들고 구청 세무과로 출동. 1층 민원실에서 이러이러하면 된다고 상담을 들었지만, 홈택스니, 컴퓨터니 누나가 알아들을 리 없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노트북을 들고 누나 집으로 출동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형 핸드폰이 누나 명의로 되어 있던 것. 홈택스 회원 가입은커녕 앱을 통해 인증서조차 발급받을 수 없었다. 2026년, 온갖 존재가 인터넷에서 활보하는 이 시점에 매형은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실존을 증명할 방법이 전무했다.


언제였더라? 서울의 대중교통체계가 완전히 뒤바뀐 적이 있었다. 버스 번호가 전부 바뀌고, 환승을 위해서 내릴 때도 교통카드를 대고 내려야 했다. 정류장마다 노선도가 그려졌고, 안내원이 배치됐다.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다들 적응했다. 하지만 당시 70이 넘으셨던 어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는 이미 자식들 문제로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상태였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예전과 달리 낯설어졌다. TV 리모컨엔 정체 모를 버튼이 늘어났고, 밥솥조차 여러 선택을 강요했다. 그런 당신 앞에 이번엔 선택의 여지없이 대중교통의 변화가 들이닥쳤다. 어머닌 결국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대를 쫓아갈 수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좋고 편리했지만, 어머니에겐 아니었다. 자기 삶이 세상을 따라가기는커녕 세상으로부터 내팽개쳐진 셈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겠지만, 세월은 잔인했다.


그때로부터 시간은 10년이 넘게 흘렀다. 거의 20년이 흘렀나? 큰누나는 당시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가 됐고, 이젠 편리함의 다른 얼굴이 누나를 덮치는 중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큰누나는 성격도 급하고 욱하는 성질이 있는 데다 참지도 않는다. 나이 든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전부 이렇게 해 놓냐며 세상을 향해 삿대질한다. 아직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누나가 세상을 따라가긴 힘들겠지만, 기세만큼은 남부럽지 않다. 내팽개치려는 세상을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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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의 매일 글을 쓴다. 20년 전의 블로그 글을 읽으며 정리하다가 무심코 AI에게 감상을 물었고, 그렇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과거의 나를 돌아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글에 관한 판단은 나나 AI나 크게 다르지 않더라. 어차피 정답이 있는 부분은 아니니 환각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다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다시 살아났다. 아마 내 글에 대한 의견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는 게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얼마나 오래 갈진 알 수 없다. 글은 매일 쓰지만 블로그에 올리는 건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일상에 관한 글은 소재를 찾은 후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적기 때문에 내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다행히도 AI의 피드백이 의지를 북돋우는 데 어느 정도 이바지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그 충고를 이 글에 전적으로 반영하진 않는다. 이 카테고리 글은 어디까지나 형식이나 내용에 얽매이지 않는 방향이라 스스로 다듬었으면 그뿐이다. 충고는 다음 글을 위한, 미래의 글쓰기를 위한 방향타로 쓰면 되니까.


AI가 했던 조언 중에 인상 깊었던 것 하나. 책을 읽고 쓴 리뷰에서 들었던 말인데, ‘지나친 확언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AI 자신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한 얘기. 어쩌면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가 경계해야 할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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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를 채비를 한다. 날이 더워져서 오후 4시 반쯤에야 집을 나서는 요즘이다. 오늘은 닭가슴살이 아닌 참치 등살을 챙긴다. 하나에 6천 원이 넘는 비싼 간식이건만 우리 집 녀석은 안 먹겠단다. 괜히 열받아서 한 번 째려본다. 그러건 말건 캣타워에 콕. 이 좋은 걸 안 먹다니. 삼색이한테 줄 거다, 흥!


휘리릭. 시간이 흘러 정상. 못 보던 고양이가 있다. 이번엔 카오스 고양이다. 완벽한 카오스는 아니고 삼색이에서 카오스로 되다만 느낌. 체구가 작다. 넌 누구니? 삼색이가 나타났지만 서로 적대하지 않는다. 아마 부모가 같거나, 어느 한쪽만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 참치 등살을 하나씩 뜯어주자, 부스러기까지 싹 긁어 먹는다. 이렇게 잘 먹어주면 얼마나 좋아. 입 짧은 어떤 녀석을 향해 산 정상에서 당당하게 욕을 한다. 개눔의 자슥.


정상 부근 바위에서 고양이 두 마리 당당하게 거느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오늘 삼색이는 코뽀뽀도 해줬다. 삼색이가 따라오며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야, 너, 목소리가 꾀꼬리구나!


냐옹~ (아까 그거 더 내놔라)

배웅까지 해주고 고맙네.

냐옹~ (있는 거 다 내놓고 가라)

거기 있어, 그만 따라오고.

냐옹~ (아직 배고프다, 하나 더)

간다, 다음에 보자~


자기만족에 내려오는 발길마저 가볍다. 산 중턱에 다다를 무렵 이상한 풍경에 발을 멈춘다. 단풍나무? 빨간 단풍? 벌써?


저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월 중순인데 착각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거 같다만)

거, 적당히 좀 합시다. 자아도취가 지나치시오.

... (네가 할 소린 아니래도. 지나가던 고양이가 웃겠다)


참 성격 급하시네. 병이 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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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 쿵쾅, 우웅웅. 웨에앵~.


바로 위층이 집수리를 시작했다. 아침 8시부터 뭔가 심상찮다 생각했는데 9시가 되니 본격적인 소음이 시작된다. 우리 집 쫄보 고양이는 하늘이 무너진다고 여겼는지 침대 밑으로 들어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느닷없이 부여된 나만의 자유시간. 시끄러워 정신은 없다만 묘하게도 예고가 된 소음이라 거슬리진 않는다. 그에 반해 과거 윗집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와 문소리, 커다란 목소리 같은 층간 소음은 정말 신경이 쓰였었다. 사람 심리라는 게 참. 그러고 보니….


비슷한 경험이 있었네. 쿵쾅거리고 삐걱대는 내부의 소리를 외면하며 언제 무너질까 두려워하던 시절이. 외부가 아닌 내면이 진원이었지만 그 시절 난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낯을 찌푸리고 지냈다. 잠재되어 있으나 불규칙한 출현이 어찌나 삶을 위축시키던지. 그러다 폭발하면, 거슬림 따윈 없었다. 그저 분노에 몸을 맡기고서 오로지 돌진. 하지만 불사르고 난 후 풍기는 냄새는 결코 유쾌하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런 시절을... 어떻게 지나쳐 올 수 있었을까?


작년, 나 역시 집수리를 했었다.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쯤 됐고, 이곳에 산 지는 20년이 넘었다. 물이 새고, 마루는 들뜨고, 천장은 내려앉고. 수리를 시작하고 4주 남짓의 기간 동안 아래층으로 연결된 화장실 배관이 새는 바람에 그 또한 급하게 고쳐야 했다. 주말이었지만 냄새가 심하게 나서 지체할 수도 없었고. 집수리를 마치고 며칠 후 비가 내렸는데 바로 베란다 천장에서 물이 샜다. 심지어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우리 집 문제가 아닌 당시 위층에 살던 분들이 손을 써야 할 문제였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본인들 집으로 향한 누수만 해결했고, 아래층에 사는 내게 향한 누수는 외면했다. 그렇게 자신만을 추스르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그랬을까? 주변을 돌아보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 시절, 나 역시 그랬다면 그 미안함을 이제 와서 어찌해야 하나.


고양이가 슬쩍 나오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겁을 먹고 경계하면서 땅바닥에 바짝 붙은 자세로 저만치 사사삭 달려간다. 그렇게 납작 엎드린다고 무너질 하늘이 널 안 덮치겠니? 이번 수리가 끝나면 베란다로 새는 빗물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거다. 수리하는 동안 다른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있다 하더라도 원만하게 수습되었으면 한다. 내가 느낀 미안함을 굳이 공유할 필요는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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