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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을 만났을 때 자기 조카 얘기를 하면서 투덜댔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면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저 큰소리로 자기 할 말만 했단다. 교사한테 집으로 전화가 와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단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지인의 불만은 아이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 부모, 그러니까 동생 부부에 대한 게 더 컸다.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질 못하고 끌려만 다닌다고. 생각해 보니 내 조카 중 남자애도 그 비슷한 행동을 보인 적이 있었다. 어린이집에 갔는데 선생님께 다짜고짜 반말을 투척했지 아마. 이랬던 녀석이 지금은 아빠가 되어 있는 걸 보면 참 시간이란 신비하고 오묘하다.


시간 자체의 힘만은 아닐 것이다. 그 사이사이에 녹아든 교육과 의지가 아니었다면 아빠나 애나 별반 다를 게 없겠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에겐 교육에 실패한 사례가 하나 있다. 일단 어렸을 때 내 무지로 인해 사회화 교육에 실패했다. 그리고 새벽에 나를 깨울 때마다 강력한 의지로 죽은 척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새벽마다 두 번씩 간식을 바치게 됐다. 그 결과, 이 집의 핵심은 내가 아닌 녀석이 됐다. 오늘도 녀석은 외친다. 세상의 중심에서. 냐옹을. 냐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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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과 하이드처럼 글을 분리해서 쓴 적이 있었다. 이 글은 지킬이, 저 글은 하이드가. 완연히 달랐다. 지킬이 쓴 글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지만,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하이드가 쓴 글은 오로지 한 방향, 분노와 공포와 불안을 향해 내달렸다. 그때도 알았다. 둘 다 나임을. 하지만 현실에서 날뛰는 하이드를 마주한 뒤 난 내가 무서웠다. 받아들여야 했지만 당장은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글에서나마 둘을 분리했다. 제대로 된 대처였는진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그 글들은 분출구의 역할을 했고, 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돌아보게끔 했다. 그렇다고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그저 나를 추슬렀을 뿐.


손을 씻다 옆에 놓인 빨랫비누가 눈에 들어왔다. 기존에 쓰던 비누가 너무 작아져서 역할을 못 하면 새 비누를 꺼내고, 자그마한 조각들을 새 비누와 함께 사용하면 그 둘이 달라붙는다. 모두가 다 붙진 않는다. 어떤 것들은 붙어서 하나처럼 되고, 어떤 것들은 붙지 못하고 더 작게 바스러진다. 지킬과 하이드를 분리했던 이후의 삶이 새로운 삶은 아니겠으나, 그 이전의 흔적이 그 이후의 삶에 들러붙은 건 분명하다. 저 비누처럼. 나를 정의하고 나를 표현하고. 그렇다면 내게 들러붙지 못하고 떨궈진 무언가도 있을 법한데, 그게 무언지 아직 모르겠다. 떨어져 나간 것,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선택에 따라 버려진 것. 그 공백 또한 나를 정의하는 것이라면. 난, 모르겠다. 내가 누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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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산이다. 지난주에 오르고 이번 주는 처음이지만 날짜로는 사흘밖에 안 지났다(월요일에 썼던 글이다). 그런데 상황이 완전 다르다. 푸르름의 밀도가 어마무지하다. 식물들이 조금만 뭉쳐있어도 그 너머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봄의 생명력은 정말이지 놀랍다. 소나무의 모양새도 달라졌다. 중력을 거스르듯 위쪽으로 꼿꼿이 선 수꽃들이 머리를 잔뜩 쳐들었다. 조만간 이들이 터지면서 꽃가루를 퍼뜨리겠구나.




소나무 수꽃의 생김새 때문에 자연히 이 산 곳곳에 쌓아 올린 조금만 돌탑들이 떠오른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반쯤은 진심으로, 반쯤은 재미로 돌들을 포개놓은 30cm 미만의 수많은 탑을. 산을 짓누르는 그 많은 상념을 소나무가 빨아들여 공기 중으로 날려 보내는 상상도 해본다. 훨훨 날아가라. 날아가서 그 욕망을, 그 바람을 흩뜨려서 세상의 무게를 덜어내라. 그렇게 해서 모두의 어깨가 펴졌으면, 모두가 허리를 곧추세울 수 있으면. 그럼 더 넓게,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을 텐데. 아니, 아니다. 이건 애초에 사람 중심 얘기구나. 그냥, 이 산에서 함께 하는 존재들을 위해, 하늘을 우러러 기원한다고 하자. 땅의 기운을 모아, 식물들의 생명력을 모아, 고양이들의 투정을 모아. 그 기원을 세상에 퍼뜨려 세상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하는 걸로.


내려오는 길. 발밑을 바라보며 걷는데 저만치서 들려오는 소리. 할머니한테 갈래? 고개를 들어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 듯하다. 아이는 걸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자기 다리보단 남의 다리를 이용하는 걸 더 좋아하는 나이로 보인다. 할아버지한테 안겨 있다 할머니의 등으로 옮겨지는 순간. 버둥대던 아이가 헤헤하면서 웃는다. 할아버지 가슴팍보단 할머니의 등판이 더 좋은 건 아이들의 공통된 취향인 거 같다. 이눔 보소, 이눔. 할머니가 투덜대지만, 그 안엔 당신만을 위한 마음 따윈 없다. 보고 싶은 얼굴을 떠올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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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빨래가 마무리됐다. 이불, 베갯잇, 패딩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한 주 한 번씩 겨울 빨래들을 욱여넣었더니 이제야 끝. 게으름도 살짝 들어갔었고, 다른 일들도 했고. 밀려 밀려 롱패딩을 마지막 주자로 더 이상의 겨울 빨래는 없다. 롱패딩을 세탁기에 돌릴 때마다 드는 의문. 저게 지금 세탁이 되는 거야, 아님 물놀이를 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저 덩치를 전체 손빨래할 객기는 없는데. 다행히 어두운 계통이라 매년 입고는 다닌다만….


내 롱패딩은 쓰임이 하나 더 있다. 겨울에 열심히 일했으니 푹 쉬라고 고이 개어 장롱에 모셔 두는데 쉬질 못한다. 이 상태의 패딩을 푹신하고 따뜻한 방석쯤으로 생각하는 녀석이 있어서. 다른 쉴 곳, 잘 곳 많은데도 장롱문을 열어달라 보채고, 못 이긴 척 열어주면 롱패딩에 몸을 맡긴다. 양복을 제외하면 내 옷 중에 제일 비싼 건데. 빨기도 힘든데. 귀여워서 차마 욕은 못 하겠고, 다 내 죄려니 하고 한쪽 문을 닫아준다.


이만치 걸어왔는데 안 따라 나온다. 컴컴하니까 그대로 잘 모양이다. 고양이는... 모르겠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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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야 이 씨.


새벽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옆에서 자던 고양이가 내 배를 밟고 지나간 탓이다. 4kg의 체중이 온전히 전해지진 않았지만 잠을 깨우기엔 충분하다. 아깽이 때 놀아달라며 자는 나를 암살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다 큰 이후론 처음이다. 아마도 실수겠지. 갑작스러운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녀석도 후다닥 달려 나가더니 식탁 의자 밑에서 내 동태를 살핀다. 새벽 2시쯤.


얼마 전, 누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이었는데 차에 치였다. 건너기 전 좌우 확인하고 절반 넘게 건넌 상황에서 좌회전 차량이 그대로 들이받은 모양이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치료가 오래 걸릴 듯하다. 게다가 사고가 난 시점이 오랜만에 일을 해보려고 마음먹고 막 일자리를 구한 때였다. 하지만 사고로 그 일도 어긋나버렸다. 건널목에서 사고라 형사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어 담당 형사도 만났고, 상대방 변호사한테 연락도 받았단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는 중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침대에 걸터앉아 고양이를 째려본다. 다른 때 같으면 온몸을 드러내고 나를 쳐다보겠지만, 지금은 의자에 걸쳐놓은 옷자락 아래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다. 자기가 뭔가 잘못했다는 걸 안다. 나만 조심한다고 해서, 나만 잘한다고 해서 내 삶이 흔들리지 않는 건 아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해서 모든 가지를 쳐낸들, 새들이 와서 나무를 쪼고, 멧돼지가 와서 밑동을 들이받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등을 부딪쳐대는 것을 막을 순 없다. 내가 아무리 침대 위에서 조신하게 잔들, 고양이가 지그시 나를 짓밟는 걸 막을 순 없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고양이.


일어난 김에 간식이나 줘야겠다.


까까 먹자, 까까.


ㄲ 발음에 귀가 쫑긋하더니 내 발걸음을 따라 종종종 쫓아온다. 꼬리가 바짝 올라가 있다. 기분 좋단다. 나한텐 날벼락이었는데 이 녀석한텐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꼴이다. 세상일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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