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아니면 몇 달 전일 수도 있다. 마루에 있는데 보일러가 설치된 베란다 쪽에서 ‘쩡’하는 금속성 소리가 크게 들렸다. 간혹 새들이 연통에 앉았다 날아갈 때면 비슷한 소리가 들리곤 했었는데 이번엔 좀 과하게 컸다. 가서 살펴봤지만 내 눈엔 특별히 잘못된 건 없어 보였다. 같이 들어온 고양이에게 의견을 묻듯 쳐다봤지만 녀석이라고 별다른 게 있겠나. 그저 눈만 크게 뜨고 놀란 표정만 지을 뿐. 그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됐고, 시간이 흘렀다.
며칠 전, 1년에 두 번 있는 도시가스 점검이 있었다. 점검하시던 분이 나를 부르더니 보일러 연통이 어긋나 있다면서 해당 부분을 가리켰다. 연통을 바로 맞추고 그 주변에 내열 실리콘을 바르셔야 할 거라고 했다. 처음엔 내가 직접 해 보려 했다. 하지만 연통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얼마 전 그 금속성 소리의 정체가 이거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AS를 신청. 그 후 도착한 AS 기사분 말씀하시기를, 연통 자체의 어긋남도 문제지만 연통의 방향도 잘못되어 있어서 일산화탄소 유출뿐 아니라 누전의 위험까지 있단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국지성 집중 호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결론은? 보일러와 연통을 새로 다시 설치했다. 보일러도 수명이 거의 다 된 상태여서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교체하는 게 좋다는 얘기를 이미 들었던 터였다. 아우, 작년 집수리할 때 한꺼번에 할 걸. 연통 주변 창문이 열리지 않아 외부 마무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그쪽으로 또 비 새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다음 날 아침,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보다가 참 용감하게 잘도 살아왔단 생각이 들었다. 일산화탄소 유출에 누전이라. 소설 <1984>에 ‘무지가 힘’이란 구호가 있었는데, 딱 맞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 문장이 확 다가왔다. 50년을 넘게 살면서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내 삶의 위험 요소는 얼마나 있었을까? 어느새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시원함보단 눅눅함이 훅 덮쳐온다. 얼른 창문을 닫았는데 몸을 휘감았던 습기로 인해 어떤 생각이 떠올랐고, 인상을 찌푸린다. 제습기를 산다고 돈을 썼고, 내년 1월 예정인 일본 여행을 위해 비행기표를 구매했고, 어제는 보일러까지. 갑자기 흥분해서 방언이 터지듯 고양이에게 주절거린다.
고양이, 아저씨가 요즘 돈을 저렇게 쓰거든. 국지성 폭우가 내리듯 큰돈을 펑펑. 요 몇 달 카드 대금이 밑으로 내려갈 생각을 안 해요! 저 비야 자연이 제공하는 빵빵한 습기를 등에 업고 인정사정없이 뿌려대지만, 이 아저씨 돈은 뭐를 등에 업어야 하냐?! 고양이, 너 확신의 유튜버가 돼라! 요즘은 그게 돈벌이가 되는 모양이더라.
고양이가 말할 수 있었다면, 대번에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이 무지렁뱅이 아저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