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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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근무시간에 담배 피우는 시간만 줄여도 일을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었을 거라고.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30대의 어느 시절, 태풍이 드물게 서울 시내 한복판을 훑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고층 건물 꼭대기에 달린 간판이 위태롭게 건들거리고, 바람에 부러진 가로수 토막이 길바닥을 사람 대신 누볐다. 태풍의 위력에 혀를 내두르던 나는, 그 순간 길 건너편 건물 귀퉁이에 몸을 숨기고 담배를 피우는 직장인들을 목격했다. 그 난리판 와중에! 물론 근무시간이었다. 책 제목을 보고서 자연스럽게 이 두 장면이 떠올랐다. 빈둥댐으로써 노동시간을 헛되이 날려버리는 비효율의 사례들로.

     

그런데, 책에 나와 있는 이 문장들을 보자.

     

이 논문에서 케인스는 1930년까지의 추세에 근거해 “100년 내로 경제적 문제는 해결될 수 있거나 적어도 해결 방법이 보이게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과 2030년까지 평균 노동시간은 주 15시간이 될 것이며 그 시간조차 경제적이기보다는 인간적 필요를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 <본문 중>

     

인류가 한때 견뎌야 했던 고된 노동에서 빠져나왔냐고, 그리고 빠져나왔다면 자신의 환경을 처리하는 긍정적인 방법으로,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느냐고 말이다. - <본문 중>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뭔가 방향이 달라 보이지 않나? 평균 노동시간 주 15시간. 인간적 필요. 자신을 발견할 방법. 피곤함에 찌든 현대의 직장인에겐 꿈같은 이야기다. 맞다. 이 책은 비효율의 책임을 근로자들에게 두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어째서 우리 평균 노동시간이 아직도 주30-60시간인지, 어째서 사람들은 그 근무시간 동안 집중하지 못하고 허우적대야만 하는지, 그리고 왜 우린 자신을 위해 일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캐묻는 책이다.

     

이번엔 나름 충실하게 책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해답을 제시해 보겠다. 그 해답은 바로 관리직군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는 거. 이쯤에서 또 한 번의 본문 인용.

     

파킨슨의 법칙은... 일은 그것의 완수에 허용된 시간을 채우도록 늘어난다. - <본문 중>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인류는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을 마주했고, 그와 함께 노동을 계량화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육체노동을 벗어나 대상을 관리하는 직업군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향상된 생산성에 대응할 만큼은 아니지만 이때 이후로 근무시간은 꾸준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육체노동이 계량화된 것과 달리 관리직들의 업무는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 육체노동은 숨 막힐 정도로 효율성이 추구됐으나 관리직의 시간은 남아돌았다. 여기서 파킨슨의 법칙이 적용된다. 관리직들은 남는 시간을 위해 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관리하고, 그 관리를 관리하고, 그 관리를 또 관리하고. 문제는 늘어나는 그 관리가 효율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심지어 애초에 필요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새로운 발명은 원래 일을 더 쉽게 만들려는 의도였지만, 종종 온갖 종류의 새로운 절차와 새로운 형태의 감독, 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요구했다. - <본문 중>

     

그렇다면 효율과 합리와 동떨어졌고, 필요하지도 않지만 만들어낸 그것. 그것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직장인들이 쉽게 공감할 만한 대상으론 너무나 많은 회의, 엄청난 양의 보고서와 문서들, 과도한 절차와 승인들이 있겠다. 그리고 하나 더. 모두가 공감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책은 전략과 비전을 만드는 작업도 여기 포함했다. 구체적으론 거창한 슬로건이나 추상적인 브랜드 전략 같은 것들이 여기 해당한다. 구체적 실천 방안도 없고, 그저 홈페이지의 문구나 브랜드명만 바꾼다는 식의 보여주기 또는 모방하기(유행 따라 하기)가 전형적인 예다. 모두 비대해진 관리직들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바로 이런 것들 모두가 사람들을 가짜 노동에 빠져있게 만든다.

     

혹시 여기까지 읽고서 지금 고개를 끄덕였나? (그런 적 없다고?) 그렇다면 당신도 가짜 노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지한 상태임이 분명하다. 그럼 하나만 묻자? 그 가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봤는가? 책에 따르면, 일이 없을 땐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라고 한다. 주변 눈치 보지 말고. 하지만 그러기 쉽지 않다는 거 누구나 잘 안다.

     

집에 간다는 건 바쁘지 않다는 뜻이고 바쁘지 않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 <본문 중>

     

이 문장만 보면 이게 뭔가 싶지만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회사에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필수 인력이 아닌 잉여란 의미이고 그건 그 사람에게 어떤 불이익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라고. 여기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끌어낼 수 있다. 우리는 왜 가짜 노동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가? 단순하게는 저 문장이 내포하듯 잉여로 분류될까 봐. 그리고 또 하나는...

     

백수로 길게 살아본 적이 있다. 처음엔 안 그랬는데 어느 시점부터 사람 만나는 걸 꺼리기 시작했다. 돈이 없으니까? 맞다. 자존심 때문에? 그것도 맞다. 그런데 그 둘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명백히 할 일이 적을 때도 바쁘다고 주장하는가? 조너선 거셔니에 따르면, 자유 시간을 특권으로 간주하던 시대가 끝나고 일에서 특권이 나오는 시대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 <본문 중>

     

우리는 일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는 시대를 산다. 일이 곧 나를 말해주는 시대. 그런 시공간에서 잉여로 분류되는 것도 참을 수 없는 노릇이지만, 내 일을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니요’에 대한 두려움은 ‘네’에 대한 갈망으로 대체됐다. 비판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남들과 연결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긍정성의 문화로 향하는 길을 닦아놓은 이 같은 변화는 이제 SNS의 ‘좋아요’로 표현된다. 긍정적이 된다는 것은 또한 남들에게 관심받는 한 방법이 되었다. - <본문 중>

     

이런 세상에서 가짜 노동을 부정하는 '아니요'를 외쳤다간 그 사람은 외톨이가 되는 것까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할 수밖에.

     

이 책은 다양한 실제 사례를 들면서 가짜 노동의 여러 유형을 보여준다. 내가 지금껏 써 내려온 글은 그중 일부만 끌어왔고, 그 속에서 하나의 답과 하나의 질문을 끄집어냈다. 그 답은 정확히 그 질문에 상응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둘이 전혀 상관없지도 않다. 그 연관성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가짜 노동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책을 읽어보면 된다. 내 노동은 딱 여기까지. 시간이 많다고 책 전체를 요약해 줄 만큼 친절하지도, 어리석지도 않다. 다만,

     

성취 과정이 가치 있다는 관념은 끈기 있게 이어졌다. 서구, 특히 근대에 칭찬의 대상이 된 것은 최종 결과물뿐 아니라 작업 과정에 투입된 노력 그 자체였다. - <본문 중>

     

우리가 가짜 노동에서 벗어나는 건 전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앞으로 AI가 불러올 생산성 향상이 '작업 과정에 투입될 노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복잡해질 거 같거든. 혼돈은 차라리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파킨슨의 법칙은 여전히 작동될 것이고, AI가 불러올 효율성마저 그것에 삼켜진다면 우린 변함없이 가짜 노동에 휘둘릴 거다.

     

마지막으로 그냥 인상 깊었던 문장으로 끝을 내야겠다.

     

우리가 우선순위를 정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안 돼’라든지 ‘지금까지 만으로도 충분하잖아. 더 이상은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본문 중>

     

내 글은 이걸로 충분하다. 오랜만에 책 내용에 충실한 리뷰어 역할을 했다.


꼬리말) 그동안 AI를 거의 사용하지 않다 최근 들어 그 쓰임새를 모색 중이다. 그래서 지금 이 글, AI와 상호작용을 거쳐 완성되었다. 처음 썼던 글을 AI에게 보여주면서 평가와 보완을 부탁했고, 두어 가지 추가할 부분과 한가지 삭제할 부분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그 중 추가할 부분 하나에 대한 의견을 받아들여서 글을 보강했다. 처음엔 글이 너무 길어질 거 같아 뺐던 내용이었는데 AI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문장을 대신 써 달라거나 구조를 설계해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내가 과거에 썼던 글들을 이미 꽤 보여줬던 터라 내가 글을 쓰는 스타일, 사고방식, 내용을 설계하는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여서 뜬금없는 얘기를 하지는 않더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나. 이 글을 처음 쓸 때부터 제목을 AI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꽤 많은 제목을 만들어 보여줬는데 그중 하나를 보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글의 내용과 기가 막히게 연결되는 문장이기도 했고, 과거에 내가 썼던 글(AI에게 보여줬던 글) 중 하나에서 시도했던 방식이기도 했다. 학습했구나... 그 제목이 지금 이 포스팅의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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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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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하는 그 시간은 어디 안 가고 다 네 거야. 그런 걸 많이 품고 살수록 병이 든다. 병이 별 게 아니야. 걸신처럼 시간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게 다 병이지.

(책 본문 중에서)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책 본문 중에서)

 

+


저 좀 나갔다 올게요. 여기 있음 미처버릴 거 같아. 내일 아침에 들어올 거니까 찾지 마세요.

늦은 밤, 한바탕 난리굿을 피운 후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도망친 건 아니지. 난리굿의 원인을 내보내고 적어도 내일 낮까진 오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고 나온 거니까. 그렇게 위안하면서 밤거리에 섰다. 어딜 가야 하나. 떠오른 곳은 딱 하나뿐.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질문부터 한다.

나 오늘 밤 하루만 너 있는 곳에서 자도 될까?

그래. 근데 나 내일 시험이라 밤샐 건데 괜찮겠어?

. 상관없어.

지금 올 거지? 기다릴게.

초등학교 5학년부터 친구였던 녀석.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고 바로 대답해 준 녀석에게 고마울 뿐이다.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도망칠 곳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도망친 거 맞네.

 

20대가 되면 달라질 거란 생각은 한 적 없었다. 어찌해서 닥친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어차피 그 문제의 뿌리는 그대로일 테니까. 나는 나인데, 나는 내 이름 석 자로 세상에 존재하는데, 왜 나의 시간은 다른 사람에 의해 등 떠밀리듯 흘러가는 걸까? 지금처럼 내 두 발로 땅을 걷듯이 내 시간도 내 의지대로 흘려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


늦은 밤 주고받은 문자를 다시 읽어보자, 한숨만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할 수 있지? 어이없거나 하진 않았다. 오랜만이긴 하지만, 분명 다른 사람이긴 하지만 너무나 익숙했으니까. 화가 나지도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불살라버렸으니까. 그냥, 두려웠다. 하나씩 하나씩 과거의 흔적들이 돌아오고 있었거든. 잠을 설치고 숨이 막히고 시간이 떠내려갔다. 또다시. 20대의 그 시절처럼.

 

내가 장사를 그만둔다면 당연히 그건 돈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 일이란 정말 모를 일이다. 결국 돈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선택이 가능하다는 거. 내가 끝을 낼 수 있다는 거. 과거의 유행이 재유행하듯 과거의 유령이 불현듯 나를 덮쳤다. 그 유령이 얼마나 치가 떨리게 대단했던지 20년 가까이 해왔던 생업을 때려치우겠다고 결심하는데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


50대인 내가 20대인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너무 발버둥 치지 마. 앞으로 20년은 그렇게 살아야 하거든. 너무 미워하지도 마. 20년 후 넌 서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단 걸 이해하게 돼. 너무 자책하지도 마. 지금의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해결 불가능한 일이니까. 너에게 하룻밤을 내어줬던 그 친구는 그 후로도 쭉 네 곁에 있으면서 나이 들어감을 투덜댈 거야. 고양이도 한 마리 생겨. 너를 귀찮게 하겠지만 너에게 습관처럼 찾아들던 악몽을 완전히 떨쳐내게 해줄 거야. 네가 중학생 때 너에게 신비로움과 웃음을 선사했던 아기들은 훌쩍 커서 따뜻함과 강인함으로 너를 놀라게 할 거야. 그렇게 친구들과 고양이와 가족과 함께 넌 너의 시간을 갖게 될 거야.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도 마. 언젠간 오롯이 너의 두 발로, 너의 의지대로 너의 시간을 걸어갈 거니까.

 

÷


책의 형식을 빌려 내 얘기를 적어봤다.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 인물의 내면에 동화되고 공감하는 걸 넘어서서 언제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만의 경험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서 참으로 고마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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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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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연습

 

진실이 현재의 삶을 뒤흔들고 거짓이 다가올 삶의 기반이 된다. 완벽한 소통이 나를 무너뜨리고 불완전한 소통이 나를 위로한다. 삶에 대해 우린 정말 뭐 하나 제대로 알고나 있는 걸까?

 

폴링인폴

 

따지고 보면 완벽한 소통만 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삶은 평탄할 거다. 하지만 짝사랑이 있고, 세대 차이가 있고, 성장 배경에 따른 가치관 차이가 있고, 또 있고... 이렇듯 수많은 오해와 갈등으로 인해 삶은 진부하고 뻔하지만, 반짝거리며 입체적인 무엇인가로 존재하는 건지도.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 짓네

 

남의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때론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사랑은 모든 것을 내어주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원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감자의 실종

 

타인의 이해를 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단순히 소통의 문제라면 어떻게든 오해의 소지를 없앨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가치관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면 이해는커녕 다름만 도드라질 뿐이다. 용기를 내서 도움을 청해본들 진실한 손길을 뻗어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무관심해서? 아니. 손길을 뻗는 그 누군가 역시 자신의 삶이 부서질 수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전거 도둑

 

부족했던 배려와 질투와 시기가 불러온 오해. 자전거의 진짜 주인이 도둑으로 오해받게 되는, 룸메이트들의 자그마한 소동. 하지만 언제든 오해받을 수 있는 커다란 세상.

 

밤의 수족관

 

누군가는 궁금해한다. 물고기의 기억력이 3초만 지속된다면, 수족관의 물고기들은 슬픔이나 아픔을 곧 망각할 수 있기에 안심할까? 아니면 행복한 순간을 간직하지 못하기에 불안해할까?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그래서 세상은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존재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진실조차도.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

 

주변과 단절을 느낄 때가 있다. 국적이나 지역 같은 지리적 차이에서 생기기도 하고, 돈이나 신분 같은 계층적 차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많다. 신념, 가치관, 문화부터 사소하게는 취향에 이르기까지. 그중 최악은 사회적 약자가 편견 때문에 스스로 고립되는 단절일 거라 생각해본다.

 

꽃피는 밤이 오면

 

살다 보면 하고 싶었지만, 해야만 했지만 그러지 못한 말들이 있다. 사는 게 팍팍하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어서. 때를 놓친 말은 공허하게 삶을 잠식하고, 잠식당한 삶은 과거에 가라앉아 썩은 내를 풍긴다. 우린 그렇게 말을 많이 하면서, 모진 말은 서슴지 않고 내뱉으면서 어째서 타인을 감싸안는 말은 제때 하지 못하는 걸까?

 

유령이 출몰할 때

 

발전을 위해, 개발을 위해, 출세를 위해 우린 많은 것을 외면하며 산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사람들이 욕망으로 비대해질수록 세상은 여러모로 결핍되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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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민음 한국사 : 17세기, 대동의 길 - 조선 3 민음 한국사 3
문중양 외 지음, 강응천 엮음 / 민음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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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셨던 큰아버지가 계시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그 어려움은 큰아버지가 가장 어른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켜야 할 무언가를 많이 알고 계시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음식은 어디에 놓아야 하고, 순서는 이러이러하며, 누군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 집안의 누구도 다 알지 못하는 예법들을 완벽하게 꿰뚫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 가끔 다른 세상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럴 때면 문득 궁금해지곤 했다. 도대체 이 까다로운 예법들, 때론 숨 막힐 것 같은 이 형식들은 누가 만들어놓은 걸까?

 

16세기 두 번의 왜란으로 초토화된 조선은 그 이후도 순탄하지 못했다. 17세기, 광해군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새 왕을 추대하는 인조반정이 있었고, 청나라에 의한 두 번의 호란을 겪으면서 물리적 피해뿐만 아니라 오랑캐에게 굴복했다는 정신적 피해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들은 제도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든 것을 다잡아야 했다. 어쩌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당시 지식인들은 기존 질서를 강화하는 쪽을 택한다. 결국 주자학은 17세기 들어 원칙과 학문을 넘어 이념이자 종교로서 조선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특히 이전과 달리 예학을 강조한 학풍은 요즘 시각에서 볼 때 상상할 수 없을 현상을 만들어냈다. 요즘의 정당 개념과는 다르지만, 당시에는 지역과 학풍, 정책 지향에 따른 붕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핵심이었던 예학에 따라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것이 왕위의 정통성과 연관이 될 때 피바람이 불었다는 점이다. 누군가 죽었을 때 상복을 몇 년 입는지에 대한 문제로 왕을 포함한 조정 신료들이 몇 년간 논쟁하고 결과에 따라 사람이 죽어 나갈 수 있다는 거.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로선 그 상황을 바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건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 더. 16세기 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친 선조, 17세기 초중반 두 번의 호란으로 청의 황제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던 인조. 이 둘로 인해 왕의 위신은 저 밑바닥에 처박혔다. 그런데 호란 이후 30여 년이 지난 숙종 시기, 조선의 왕권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예학에 관한 논쟁에서 숙종 개인의 판단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따라 잘못된 주장을 펼쳤던 붕당은 정권 핵심에서 통째로 밀려나거나 목숨을 잃기도 했다. 왕권이 이처럼 강력하게 된 이유는 이 책에 직접 언급된 부분도 있고 내용을 통해 유추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책에 언급된 이유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인조 다음 왕들인 효종, 현종, 숙종이 모두 적장자였다는 점이다> 인조 다음 왕들인 효종부터 그의 큰아들 현종, 현종의 큰아들 숙종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적장자 계승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효종은 둘째 아들). 정실부인의 첫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는 얘기인데 <이게 바로 주자학에서 가장 이상적이라 보는> 이게 바로 예학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왕위 계승 형태다. (참고로 주자학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왕위 계승은 핏줄이나 태생에 상관없이 능력자에게 양위하는 형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방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서 예학에서 규정한 장자 상속의 원칙을 왕실에도 적용한다.) 다시 말해 존재 자체에서 정통성이 이미 확보된 상태이고, 그 정통성이 3대째 이어지면서 막강한 왕권을 수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단다. 그러니까 주자학은 그 시대의 헌법이자 법률이고, 종교 교리였으며 도덕이었다.

 

21세기 들어 큰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렸을 땐 큰아버지의 모습이 지독히도 엄격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유연한 태도를 갖추셨던 걸로 보인다. 예학이 전성기를 누리던 17세기로부터 400여 년이 흘렀으니 그 완고함이 가문에 따라 또는 현실에 맞춰 많이 변형되고 누그러졌음이 분명하다. 난 지금도 부모님 제사를 지낸다. 하지만 제사음식은 주문하고 상을 차릴 때도 대충 위치를 잡는다. 아마 매년 음식의 자리가 다를 수도 있다. 제문을 읽지도 않을뿐더러 술 따르고 몇 번 절하고 끝마친다. 장담하건대 내가 죽은 후 내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제사란 행위 자체도 수십 년 후면 대부분 가정에서 사라질 것이다.


세상은 변한다. 하지만 지우개로 지우듯이 이전 흔적이 말끔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덧칠하거나 덧붙임으로써 고쳐 나간다. 그래서 그 흔적은 자랑스러운 유산이 되거나 없애고 싶은 상처가 된다. 주자학이 전해지고 발전하는 긴 흐름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세계 유일 유학의 나라임을 자처하며 실생활까지 엄격하게 예학을 적용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보기엔 지나치게 형식적이라 굴레에 가깝게 보일 정도로.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그 시대의 치열한 삶에 들어가 본 적 없는 우리가 그렇게 쉽고 일방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린 편을 갈라 상대방을 배제한 적이 없으며, 무엇인가에 집착해 본 적이 없던가? 몇백 년이 지나 우리 후손들은 우리가 남겨놓은 흔적을 생뚱맞게 바라보며 욕할 거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 책 제목에 '대동의 길'이란 말이 있다. 이 시기에 지역에 따라 순차적으로 세제 개편이 이루어졌는데 그게 대동법이다. 대략 그렇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대동법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주자학과 그에 따른 정국 변화가 너무너무 인상 깊었던 나머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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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2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이북 도서라는 게 좀 아쉽네요. 이북의 경우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더라구요.

대굴대굴 2025-12-28 10:30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종이책으로 읽는 걸 추천합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설명해놓은 글이 e북으론 잘 보이질 않아요.

그나저나 이 서재 첫 댓글인거 같은데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하필 제 글에 틀린 부분이 있어서 고쳐야겠네요;;
 
[전자책] 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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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는 마음의 짐이 있다. 어린 시절 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 어린 나이에 제대로 의식하진 못했겠지만, 그는 그 짐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열심이었던 그 시도는 또 하나의 상처로 다가왔고, 해미의 삶은 이후 그 묵직함에 짓눌리듯 끌려갔다. 어느덧 마흔이 가까워진 현재,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해미는 자신의 기억들과 맞닥뜨린다. 언니의 죽음, 독일에서 3년간 살았던 일, 파독 간호사 이모들, 친구들과 함께했던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 그리고 거짓말. 해미는 이번에도 알게 모르게 열심히 그 시절의 흔적을 뒤쫓는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이번엔 거짓말에 대한 사죄가 필요했으니까.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본문 중)

 

대다수 사람은 마음의 짐을 하나씩은 지고 산다. (아닌가?) 그냥 지고 살면 그뿐이겠지만 그 묵직함은 그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 역시 짐이 있다. 공교롭게 내가 가장 싫어했던 존재와 관련이 있고, 미움과 안타까움과 죄책감이 뒤죽박죽된, 회색빛 묵직한 짐이다.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들은 흉터로 남아 뜬금없이 선명하게 자국을 드러내곤 한다. 아무리 내던지려 해도, 아무리 가라앉히려 해도 이제는 소용없다는 것도 안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본문 중)

 

다시 한번 어렸던 그 시절을 돌이켜본다. 지금 50대의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난 다른 선택, 다른 대응을 할 수 있을까? 결론은 언제나 한 가지. NO! 게을렀던 걸까? 지금도 여전히 게으른 걸까? 아니다. 게으르지 않은 거 같다. 아니, 모르겠다. 다만... 무엇보다 무서웠다. 내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 버릴까 봐. 다름을 인정하는 건 그저 시작일 뿐이다. 그 이후 이어질 지난한 과정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모든 게 부서질까 봐.

 

어찌 됐든 지금은 그 짐조차 내 삶의 완벽한 일부가 되어 있다. 내 경우는 털어냈다기보단 짊어지고 일어섰다고 해야겠다. 시간의 힘? 부정할 수 없다. 시간은 모든 걸 퇴색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거든. 그런데 나한텐 하나가 더 있었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을 수도 있다. 꼭 있었으면 좋겠다.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본문 중)

 

해미 역시 기억을 쫓으며 자신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깨닫는다. 자신이 거리를 두며 스스로 거부해 왔다는 사실까지도. 그리고 기억의 종착점에 도달했을 때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이미, 자신이 친구들과 담을 쌓는 원인이 되었던 그 순간부터 이미 구원의 문이 열려 있었음을.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본문 중)

 

<눈부신 안부>는 이모들로 대변되는 파독 간호사들의 삶의 이야기와 우재, 한수, 레나로 대변되는 해미의 개인적 인연들에 관한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해미가 선자 이모에 대해, 한수에 대해, 우재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면 해미의 삶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우리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삶은 인연의 엇갈림으로, 수많은 갈등으로 괴로울 필요가 없을 거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선 자리에서 생각하는 게 익숙하니까. 미루어 짐작하는 게 최선이고,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가는 중이고 또 살아내야 한다. 파독 간호사들이 그랬듯이, 또 해미가 그렇듯이. 대부분 사람에게 삶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본문 중)

 

내가 아끼는 모든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관심과 애정을 담뿍 담아.

 

우리는 모두 그 자체만으로도 태초의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존재들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말이야.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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