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봤다. 행복이 비극으로 전환되는 순간. 알 수 없는 그 찰나의 순간이 이후 도래할 모든 시간을 뒤덮는다는 게... 하아. 떠난 자도 안타깝지만 남은 자들은 어찌해야 하나? 어떤 위로도 소용없고, 시간이 허용하는 한 그 순간을 돌이키며 피눈물을 삼킬 텐데. 삶이 이렇게 잔인해도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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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민음 한국사 : 18세기, 왕의 귀환 - 조선 4 민음 한국사 4
김백철 외 지음, 강응천.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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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장점 중 하나는 동시대의 서양사를 짧게나마 정리해 준다는 점이다. 내가 요약해도 되겠지만 본문을 인용함으로써 18세기 세계의 흐름을 살펴보자.


=== 모든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인식은 신의 이름 아래 굴종을 강요당하던 시민계급에게 모욕감을 안겨 주었고, 이는 프랑스대혁명으로 폭발했다. 시민계급을 포함한 대중은 절대왕정에서 사제와 귀족에 이은 제3신분으로 불렸다. 이 미천한 제3신분은 시에예스의 다음과 같은 부르짖음과 함께 카페에서 거리로 뛰쳐나갔다. “제3신분은 무엇인가? 전부이다. 제3신분은 지금의 정치 질서에서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제3신분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무언가가 되고자 한다!” (본문 중) ===


=== 서유럽이 상업적 이윤을 좇아 아시아 대륙 곳곳을 식민지로 삼아 나가는 역사적 과정을 ‘서세동점’이라 한다. 18세기에 밝게 빛나고 있던 서유럽의 뒤안길에는 노예무역과 서세동점이라는 어둡고 처참한 아비규환이 있었다. 이제 지구상에서 서유럽의 발길에 유린되지 않은 지역은 오스만튀르크제국이 버틴 이슬람 세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세계뿐이었다. (본문 중) ===


=== 앞뒤 맥락 없이 18세기만 놓고 보면 국력의 크기나 문화의 성숙도에서 동아시아는 서유럽을 능가한다. 그러나 19세기에 서유럽은 시민사회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완성하고 절정의 문학예술을 꽃피우며 전 세계의 지배자로 우뚝 선 반면, 동아시아는 이전 세기에 세계의 다른 지역이 겪었던 식민지의 길을 더 비참한 모습으로 답습한다. (본문 중) ===


마지막 인용은 질문이기도 하다. 조선은 왜 영조와 정조에 이르는 76년간의 개혁과 발전을 뒤로 한 채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을까?


책의 제목이 ‘왕의 귀환’이기도 하니, 우선 영조부터 살펴보자. 역사책이나 드라마를 통해 흔히 접하는 부분은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긴 재위 기간(52년), 탕평책, 균역법, 사도세자(영조의 아들) 등이다. 극적인 요소가 가장 두드러지는 게 사도세자 관련 문제겠지만 공교롭게도 영조의 정치적인 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들이 현재의 정국을 헤쳐 나갈 만한 능력이 없다는 판단, 살려두었다간 분쟁의 씨앗이 되어 세손마저 위험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 어떤 행위를 했을 때 특정 분파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 이런 정치적 판단을 근거로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세자시킨 후 뒤주 속에 그냥 방치한다. 그가 자신의 위치를 얼마나 처절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균역법 시행 과정을 통해서 다른 면모를 살피는 것도 가능하다. 균역법은 17세기 대동법에 이어 세제 개혁을 끌어낸 주요 정책 중 하나다. 대동법 시행이 만만치 않았던 것처럼 균역법 역시 그랬다. 이해당사자인 양반이 개혁의 주체이자 대상이었던데다 중앙 재정에 막대한 지분을 가진 분야였기 때문이다. 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조선 전체가 공감했지만, 실행 여부가 난관을 거듭하자 영조는 독단적인 결단을 내린다. 양민(평민)들의 세 부담을 절반으로 줄인 후, 자신은 대개혁의 방향을 결정짓는 역할이고 그에 따라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탕평 관료의 몫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니까, ‘일 제대로 안 해? 너희만 세금 안 내겠다고 버티면 왕이고 양반이고 나발이고 다 죽는 거야!’라고 협박한 셈이다. 그 결과, 균역법이 시행되고 양반들도 세금 체계 안에 포함된다. 당시 왕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영조란 인물이 관료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물론 독재자의 측면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 “백성을 위해 군주가 있는 것이지, 군주를 위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백성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임금의 자리에 있어도 독부(獨夫)에 지나지 않는다.” (본문 중) ===


다행히 영조는 깨어있는 군주였다. 또한 앞서 보았지만, 말만 앞서는 군주도 아니었다. 그는 개천 바닥을 파내는 준설 작업과 주변 정비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도시 빈민들의 삶을 보살폈고, 상업 발달의 흐름을 알아채고 상인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붕당을 억제하고 백성을 바라본 52년의 긴 재위 기간. 그것은 조선으로선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리고 1776년, 숱한 시련을 극복하고 드디어 정조가 왕위에 오른다.


=== 반면 일체의 사정을 배제하고 공의에 준거하고자 했던 정조는 의리론을 둘러싸고 각 정파의 대립과 갈등이 표출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러한 대립과 갈등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서 공론 대결에 의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한 것이다. (본문 중) ===


정조는 영조와 결이 다른 왕이었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같다. 규장각을 세워 젊은 학자들을 관료로 키워내고, 장용영을 만들어 무예가 뛰어난 군관들을 배출했다. 그들이 문무 관료로 자리 잡으면서 정조는 자연스럽게 정국을 장악했다. 그 장악력을 바탕으로 정조의 탕평책은 훨씬 범위가 넓어졌다. 다시 말해 사용할 수 있는 인재의 범위가 풍부해졌다. 문장으론 몇 문장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붕당이 대립하던 시기에 상당한 정치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정조는 재위 기간에 꾸준히 해 나간다. 최근 10여 년 우리 정치에 부족했던 점들, 즉 갈등과 충돌을 조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을 조장한다는 것과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정조는 해냈다. 그것도 억압이나 권력이 아닌 정치력으로. 다른 어떤 실질적인 업적보다 정조를 돋보이게 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쯤에서 왕을 떠나 당시 사회 분위기를 살짝 요약해 보겠다. 책의 문장을 조금 바꿔본다면, 18세기 조선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청을 등한시하던 당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북학’이란 이름으로 청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흐름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천주교 신자가 증가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처음엔 교리 연구 중심이었지만 최초의 세례자가 나왔고, 양반에서 하층 계급까지 영향력이 확산한다. 상공업의 발달로 17세기부터 진행되었던 신분의 분화는 그 양상이 더욱 다양해지는 중이었다. 과거엔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문학 활동에 중인과 하층 계급까지 참여함으로써 신분 상승 욕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광대들 역시 궁중이나 높으신 분들 앞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장터로, 바다로, 농경지로 민간의 수요가 있는 곳을 찾아 움직였으며 독자적인 영리활동을 시작했다. 이처럼 조선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꿈틀대며 요동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처음에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조선은 왜 18세기의 흐름을 살리지 못하고 다가오는 세기에 그토록 무너져 내렸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정조의 죽음 때문. 정조가 죽고 즉위한 순조의 나이는 11살.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신료들을 장악하면서 정국을 이끌어가던 영조, 정조와 달리 순조는 그럴 만한 나이가 아니었다. 대리청정이 이루어졌으나 곧 권력 싸움으로 변했고 세도 정치의 시대로 넘어간다. 왕권을 강화했던 모든 조치가 되돌려졌고, 탕평은 무너졌으며, 인재들도 쫓겨났다. 개혁은 그렇게 무너졌다. 이런 이유로 ‘정조가 더 오래 살았다면?’ 이란 가정이 꾸준히 등장하는 것일 테다. 다른 이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유럽과 미국이 19세기에 강자로 등장한 원인 중 하나는 과학 기술을 산업화에 적극적으로 적용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정조는 기술을 우대했지만 어디까지나 통치 기반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서 접근했다. 이 방향성의 차이가 두 세계의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냈다.


=== 정조가 가다가 멈춘 지점, 정조가 자신의 한계를 드러낸 지점에서 조선은 급속히 쇠락의 징후를 드러냈다. (본문 중) ===


영조와 정조는 분명 뛰어난 군주였다. 그들의 업적 뒤에는 시대와 변화를 읽어낸 두 왕의 날카로운 안목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조선이란 공간은 여전히 주자학의 공간이었다. 이질적인 것들이 자생적으로 꿈틀거리고, 외부에서도 억지로 밀고 들어왔지만 아직은 역부족이었던 시대. 조선 후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영‧정조는 그와 같은 시대의 흐름을 간파했지만, 단 한 발짝도 앞서 나가지 못했다.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닌, 그것이 인간이 갖는 한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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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없다. 예전엔 안 그랬었는데 언젠가부터 햇볕이 없는 날엔 우울해진다. 20대엔 이런 날씨를 오히려 좋아했다. 난 어둠의 아이야. 그런 낯간지러운 생각도 했던 거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객기 같아서 픽 웃게 하지만, 그 객기 또한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일부분이라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이런 날은 나만 우울한 게 아니다. 햇볕을 좋아하는 고양이 역시 축 늘어지기 일쑤다. 괜히 힘이 없고 오갈 데 없어 보인다. 흑임자 인절미처럼 바닥에 촤악 퍼져 있다. 맹수라며 객기를 부리던 녀석인데 이럴 때 보면 하찮기 그지없다. 녀석이 흑임자 인절미라면 나는 뭐가 되면 좋을까? 그런데 하필 그 타이밍에 고양이의 하얀 각질이 눈에 들어온다. 건조해서 올라온, 검은 털 위에 하얀 가루 같은. 불현듯 떠오르는 한 가지. 콩고물. 인절미엔 콩고물이지. 고양이가 인절미면 집사는 콩고물이지.


...

갑자기 더 우울해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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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누나는 나보다 스무 살이 많다.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자식들 키우고 예금이나 적금이 유일한 투자 수단이었으며 느지막하게 자기 집을 마련해 삶을 꾸려왔다. 알뜰하게 아끼고 필요한 것만 지출하면서 허리띠 졸라매며 살아온 세대다. 그 자식들은 이제 40대. 모두 가정을 꾸렸지만, 삶의 방식은 완연히 다르다. 예·적금 보단 주식을 투자 수단으로 이용하고, 인터넷을 통해 최저가를 검색해 구매하지만 쓸 건 쓰면서 사는 세대다. 그래서 가끔 충돌이 생길 때가 있다. 누나는 롤러코스터 같은 주식의 아찔함을, 쓰면서 살겠다는 소비의 쾌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늘따라 산길에 파리가 많이 꼬이네. 손을 휘휘 휘저으며 다시 상념에 빠져든다. 2~30대는 또 다른 듯하다. 주식, 코인, 경매 같은 부동산 시장까지. 투자에 대해선 훨씬 적극적이다. 소비 역시 그렇다. 누나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신들은 벌이에 맞춰 삶을 꾸렸지만 요즘 세대들은 소비에 맞춰 벌이를 추구하는 양상처럼 보일 것이다. 일반화시키는 건 아니다. 예전에 비해 요즘 세대의 다양성은 확실히 풍부해 보이긴 하니까. 맞고 틀리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라 생각한다. 소비의 시대. 재테크의 시대.


정상에 도착했는데 고양이들이 없다. 비가 올 거 같아서 일찍 나왔더니 때를 잘못 맞춘 모양이다. 쯧. 언젠가부터 실질 수익률, 실효 수익률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같은 뜻인가?) 단순히 돈을 버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물가 상승을 고려해서 벌어야 한단다. 이러면 예·적금은 투자가 아니라 소극적이고 때론 멍청한 돈 관리법이 된다. 다른 사람은 주식으로 돈을 버는데 나는 예·적금이나 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 누군가는 코인으로 수억씩 챙겼는데 나는 주식으로 몇백 버는 게 제대로 하는 걸까? 시선은 언제나 외부로 향한다. 그저 모으고 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나보다 더 버는 사람이 있다면 기준은 득달같이 그쪽으로 달려간다. 더 스마트해야, 더 잘해야 하는 세상.


내려오는 길, 발을 내딛다가 시커먼 무언가 꾸물거려서 얼른 옆으로 움직인다. 죽은 벌레에 개미들이 들러붙어 있다. 그들의 움직임을 한참 바라보다 걸음을 뗀다. 요즘 주식 시장을 AI 버블이라 한다. 좀 특이하긴 하다. 다른 때 같으면 버블의 경계선을 저만치 앞에 두고 사람들이 움직이지만, 지금은 경계선 바로 위에 서서 그 경계선을 계속 밀어 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경계선이 갑자기 뒤로 밀리면 그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속절없이 밑으로 떨어질 거고,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미리 겁에 질려 얼른 도망을 치겠지. 그런데 내 생각엔 기술의 버블이 아니라 욕망의 버블이다. 기술은 시대에 맞춰 제 갈 길 가지만 욕망은 시대를 앞서려 한다. 그게 가능할까?


날이 점점 어두워진다. 집에서 나왔을 땐 햇살이 미약하나마 있었는데 지금은 먹구름에 다 가렸다. 비가 내리기 전에 집에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주식 시장은 공인된 도박장이다. 오른다, 떨어진다, 멈춘다. 단순화하면 이 세 가지에 거는 도박. 예측? 웃기는 소리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희망이 있었다면, 주식 시장의 판도라 상자 안엔 예측이 있었을 거다. 도박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빚을 내서 도박을 한다고 하면 다들 말릴 것이다. 그런데 빚을 내서 주식을 하는 세상이다. 외부로 향한 시선은 항상 비교 대상을 찾기 마련이고 주식으로 돈 버는 사람은 항상 있으니까.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주식 시장이 활화산처럼 터져도 판단과 선택은 사람의 몫이다. 내 몫이다. 하지만 시선을 안으로 돌리지 않으면, 그 판단과 선택은 자신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닐 테고 그에 따른 책임은 삶을 피 말리게 할 수도 있다. 더 비참한 건 그 책임마저 외부로 돌리게 될 거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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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산이다. 어린이날인데 산에는 어린이가 없다. (어린이날에 썼던 글이다) 어린이날과 산은 딱히 인과관계가 없는 모양이다. 지난 설 연휴 때 무심코 산에 올랐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이미 산 아래서 위를 올려다봤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산에서 정체가 생길 줄이야! 그래서 오늘은 아예 4시 반쯤 늦게 나왔다. 그래도, 많긴 하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정상에 오르자 신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정상까지 이어진 한양도성 옆으로 그늘이 졌는데 그 안에 사람들이 쭉 앉아 있었다. 기차놀이인가? 그곳뿐만 아니라 정상 이곳저곳에 사람들은 많았다. 다양한 연령대에 외국인까지. 어린이는 없구나. 해발 300m 이상에선 어린이날은 없는 걸로. 그리고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고양이 한 마리가 동그마니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저, 저, 저 바보 자슥. 사람이 이렇게 많을 땐 나오지 말고 숨어 있어야지. 삼색이는 현명하게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넌 가서 삼색이한테 더 배우고 와야겠다.


놀라우리만치 정상의 아무도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웃으며 사진 찍기에 바쁘거나 그늘에 앉아서 얘기를 나눈다. 아, 이번 고양이는 젖소냥이다. 흰 바탕에 검은 얼룩. 녀석도 무관심에 놀랐는지 어리둥절. 저기만 다른 차원인가? 아님 자기애의 끝판왕들이 이곳에 모인 건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다른 애들은 멍충미에 귀요미까지 갖추었는데, 너는 그냥 멍청... 흠. 아니다, 아니야. 고양이면 된 거지 뭐. 슬쩍 가서 닭가슴살 하나를 바위에 놔줬더니 얼른 입으로 문다. 하지만 도저히 그 자리에선 먹을 자신은 없었는지 먹이를 물고 수풀 속으로 달아난다. 그제야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진다. 저 녀석, 보호색인 건가? 먹고 다시 나오면 하나를 더 줄까 해서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다. 닭가슴살 하나에 모든 배짱이 사라졌나 보다. 이틀 후에 보자. 잘 지내야 한다. 나 역시 정상에서 도망친다. 어린이날인데 어린이는 왜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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