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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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는 마음의 짐이 있다. 어린 시절 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 어린 나이에 제대로 의식하진 못했겠지만, 그는 그 짐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열심이었던 그 시도는 또 하나의 상처로 다가왔고, 해미의 삶은 이후 그 묵직함에 짓눌리듯 끌려갔다. 어느덧 마흔이 가까워진 현재,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해미는 자신의 기억들과 맞닥뜨린다. 언니의 죽음, 독일에서 3년간 살았던 일, 파독 간호사 이모들, 친구들과 함께했던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 그리고 거짓말. 해미는 이번에도 알게 모르게 열심히 그 시절의 흔적을 뒤쫓는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이번엔 거짓말에 대한 사죄가 필요했으니까.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본문 중)

 

대다수 사람은 마음의 짐을 하나씩은 지고 산다. (아닌가?) 그냥 지고 살면 그뿐이겠지만 그 묵직함은 그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 역시 짐이 있다. 공교롭게 내가 가장 싫어했던 존재와 관련이 있고, 미움과 안타까움과 죄책감이 뒤죽박죽된, 회색빛 묵직한 짐이다.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들은 흉터로 남아 뜬금없이 선명하게 자국을 드러내곤 한다. 아무리 내던지려 해도, 아무리 가라앉히려 해도 이제는 소용없다는 것도 안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본문 중)

 

다시 한번 어렸던 그 시절을 돌이켜본다. 지금 50대의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난 다른 선택, 다른 대응을 할 수 있을까? 결론은 언제나 한 가지. NO! 게을렀던 걸까? 지금도 여전히 게으른 걸까? 아니다. 게으르지 않은 거 같다. 아니, 모르겠다. 다만... 무엇보다 무서웠다. 내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 버릴까 봐. 다름을 인정하는 건 그저 시작일 뿐이다. 그 이후 이어질 지난한 과정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모든 게 부서질까 봐.

 

어찌 됐든 지금은 그 짐조차 내 삶의 완벽한 일부가 되어 있다. 내 경우는 털어냈다기보단 짊어지고 일어섰다고 해야겠다. 시간의 힘? 부정할 수 없다. 시간은 모든 걸 퇴색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거든. 그런데 나한텐 하나가 더 있었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을 수도 있다. 꼭 있었으면 좋겠다.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본문 중)

 

해미 역시 기억을 쫓으며 자신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깨닫는다. 자신이 거리를 두며 스스로 거부해 왔다는 사실까지도. 그리고 기억의 종착점에 도달했을 때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이미, 자신이 친구들과 담을 쌓는 원인이 되었던 그 순간부터 이미 구원의 문이 열려 있었음을.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본문 중)

 

<눈부신 안부>는 이모들로 대변되는 파독 간호사들의 삶의 이야기와 우재, 한수, 레나로 대변되는 해미의 개인적 인연들에 관한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해미가 선자 이모에 대해, 한수에 대해, 우재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면 해미의 삶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우리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삶은 인연의 엇갈림으로, 수많은 갈등으로 괴로울 필요가 없을 거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선 자리에서 생각하는 게 익숙하니까. 미루어 짐작하는 게 최선이고,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가는 중이고 또 살아내야 한다. 파독 간호사들이 그랬듯이, 또 해미가 그렇듯이. 대부분 사람에게 삶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본문 중)

 

내가 아끼는 모든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관심과 애정을 담뿍 담아.

 

우리는 모두 그 자체만으로도 태초의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존재들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말이야.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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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햄릿 (한글) 더클래식 세계문학 4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한우리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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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시대로다.

(본문 중)

 

유럽 전체로 보면, 르네상스란 화려한 토양을 바탕으로 인본주의 문화가 활짝 피어나던 시기. 영국으로 좁혀보자면,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 하지만 만개하던 꽃들이 고개를 숙이고 절정의 기세가 수그러들 때쯤, 셰익스피어는 감추어져 있던 또 하나의 시대상을 마주하게 된다.

 

정숙함이 미모를 정숙하게 만들기보다 미모가 정숙함을 음란하게 타락시키는 게 더 쉽지. 이전엔 이 말이 궤변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엔 상식이 되었네.

(본문 중)

 

그가 알게 된 건 인본주의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서 인간 중심의 사회와 문화를 이루어내겠다는 인본주의는 르네상스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즘으로 대표되는 현실은 인본주의를 한낱 이상에 불과한 것으로 추락시켰다. 앞에선 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하지만 그건 가면일 뿐 실제론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세상임을 깨닫게 된 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짐작은 했었지만 이젠 확신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햄릿 이전의 셰익스피어 작품들에서 이미 갈등 관계로 인한 비극이 등장하고 있었으니까.

 

인간은 참으로 조화로운 걸작이 아닌가! 고결한 이성에 무한한 능력! 훌륭한 자태와 감탄할 만한 거동! 그 행동은 천사와 같고 신과 같은 지혜를 갖춘 인간! 이 세상 아름다움의 극치요, 만물의 영장! 그런데 이것이 나에게는 쓰레기처럼 보이니 인간이 흥미롭지가 않아.

(본문 중)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대사를 통해 인본주의를 앞세우는 세상(인간)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님을 얘기한다. 현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상(인본주의)은 그 현실의 들러리로 몰락한다. 만물의 영장이 쓰레기가 되는 순간 이상은 좌절하고 만다. 르네상스란 토양을 양분 삼아 화려한 꽃을 피우려 했으나 토양의 썩은 내를 맡고 쓰디쓴 열매만 맺은 셈이다.

 

레어티즈에게 난폭한 짓을 한 것이 햄릿인가? 그건 절대 햄릿이 아니야. 햄릿이 미쳐 자기가 자기가 아닐 때 레어티즈를 괴롭혔다면 그건 햄릿이 한 짓이 아냐. 햄릿이 스스로 부정을 하네. 그럼 누가 한 짓인가? 그의 광기네. 광기가 불쌍한 햄릿의 적이라네.

(본문 중)

 

뭐든 인정하는 건 쉽지 않다. 그것이 치부를 건드리는 일이라면 더욱더. 햄릿은 미친 척을 하며 자신의 진심을 숨기지만 그가 진정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은 광기를 가장했을 때 품어져 나온다. 게다가 저 대사를 보라. 타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때 그는 자신의 광기를 핑계로 내세운다. 그의 광기가 ''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그 시대를 사는 누구도 당당하게 인정하지 않았겠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이 세상의 핵심이 되어 있었다.

 

연극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이를테면 자연에 거울을 비추듯이 선한 것은 선한 모습 그대로, 추한 것은 추한 대로, 이 시대와 이 시절의 참다운 모습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네.

(본문 중)

 

세상을 살피던 셰익스피어의 눈은 희망 가득한 세상에서 미묘한 균열을 감지했고 이 작품을 쓸 때쯤엔 그 균열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하다. 이상의 몰락과 좌절을 직시한 그는, 그 시대의 다른 예술가들처럼 이상과 현실의 갈등과 긴장 관계를 자신만 가능했던 개성 넘치는 글로써 표현한다. 그의 작품 속 상황이 현대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도 겉과 속이 다른 세상에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척하지 않고 대놓고 혐오하고 빼앗는다. 셰익스피어가 요즘을 살았다면, 햄릿은 미친 척하지 않았을 거다. 갈등하지도 않았을 거다. 르네상스의 갈등과 긴장 관계를 벗어던진 요즘을, 특히 대표 인물인 트럼프를 셰익스피어가 봤다면, 그는 햄릿에게 어떤 대사를 부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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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 원작소설 버티고 시리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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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크는 아내와 대학생인 딸, 고등학생인 아들을 둔 중산층 가장이다. 제지회사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오던 그는, 어느 날 정리해고의 대상이 된다. 소문은 있었다. 타업종들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정리해고가 언젠가는 이곳까지 들이닥칠 거라는.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버크는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고가 되더라도 자기 경력이 재취업을 보장해 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실업 상태로 2년을 보내야 했고 취업은 번번이 실패했다. 그 사이 집안 사정은 여러모로 나빠졌고 몰락의 공포와 맞닥뜨린 버크는 한가지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요즘은 세상이 그저 변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대변동이다. 끊임없는 대변동. 우리는 하이드로 변하는 과정의 지킬 박사에게 붙어사는 벼룩이나 다름없다.

(본문 중에서)

 

사회 변화에 휩쓸려 속수무책 나락으로 떠내려갈 때가 있다.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질 거라는 공포에 두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웬걸. 그 당시의 호랑이가 아닌 모양이다. 아님, 호랑이에도 등급이 있던지. 아무리 정신을 다잡고 현실을 직시해도 개인의 힘으론 모든 걸 지킬 수가 없다. ? 미국식 표현에 따르면 우린 하이드로 변하는 과정에 있는 지킬박사에 붙어사는 벼룩에 불과하니까. 하이드가 털어내기로 마음먹었다면 벼룩은 눌려 죽거나 외부로 튕겨 나갈 뿐이다. 벼룩에게 다른 길은 없다. 그런데 정말로 없을까? 아니, 있다. 동종 살해. 다른 벼룩들을 다 없애면 하이드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 나 혼자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버크는 마침내 살인을 시작한다. 버크가 실행에 옮긴 계획은 취업의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 버크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 아내에겐 듬직하며 믿음직한 남편이 되고 싶었고, 아이들에겐 물심양면 지원이 가능한, 든든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뿐이다.

 

이제 우리의 윤리강령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아이디어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본문 중에서)

 

버크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사람을 죽인다. 목표물뿐만 아니라 예기치 않았던 상황으로 인해 상관없는 사람까지도.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가족을 지켜야 했다. 그 목적 하나를 위해 그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목적만 옳다면 과정은 상관없다. 그것이 바로 버크가 깨달은 생존 방식이다. 현대 사회에서 뒷걸음질 치지 않으려면 나만 잘 버티며 걸음을 내딛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타인을 밀어버리는 게 선행되어야 한단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몇 개의 단어로 이 책의 내용을 대충 요약해 보겠다. 중산층 가장의 의도적 핏빛 우당탕 고군분투. . 잘 안 써 내려가던 글 마무리 성공이다. 목적만 옳다면 과정은 상관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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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사랑과 결함
예소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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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철봉 하자

 

너는 너를 돌봐야 해

(본문 중)

자신을 돌보지 못할 때가 있다. 주변 여건 때문에 그런 거라면 상황에 따라 개선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 태도가 나를 특정하는 성향이 되었다면 그때부턴 삶이 고달파질 따름이다. 나를 돌보지 못하는 자가 타인을 제대로 보듬을 리 없다. 그래도 석주는 좋은 친구를 뒀다. 맹지로 인해 석주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거고, 함께 조금씩 강해질 수 있으니까. 남한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서.

 

아주 사소한 시절

 

어쩌자고 다 망가져버렸어

(본문 중)

 

IMF로 모든 게 무너져 내리던 시절. 그때는 내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자신이 쌓아왔던 것들이 망가질 수 있는 시기였다. 어른들의 삶이 무너지면 그 그늘에 있던 아이들의 삶도 위태로워진다. 아직 영글지 못한 초등학생 희조의 사소한 오해와 사소한 객기. 그로 인해 평탄할 수 있었던 삶은 요동을 치고,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뒤틀린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팽배한 세상은 아이라고 해서 봐주는 법이 없다.


 

우리는 계절마다

 

이제 나는 그것이 결코 해방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던져짐 그 자체였다.

(본문 중)


중학생이 된 희조 앞에 몇 년 만에 다시 나타난 미정. 하지만 '일진'이란 비뚤어진 권력을 배경으로 둘의 관계는 또다시 꼬이고 만다. '우리'를 강요하는 가족은 희조에게 어떠한 심리적 울타리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우리'이고 싶은 미정은 희조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이번 일이 해결된다 해도 한번 찍힌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다음 학기에도, 다음 학년에도.


 

그 얼굴을 마주하고


나는 내 서사에 완벽하게 가담한 인물이었다.

(본문 중)


희조는 이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집을 나와 토킹바에서 일하면서 그는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 반복됨을 알게 된다. 내 관계는 왜 이렇게 되는 걸까? 그러다 깨닫는다. 자신이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내 욕심과 만족을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줬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혐오함으로써 자해를 한 꼴이 됐다. 희조는 그런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만 다가올 삶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을 만큼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랑과 결함


 

정신병도 유전이야. 유전.

(본문 중)

 

누군가의 삶을 가둬버리는 말들이 있다. 그 결과를 초래해야 했던 많은 상황을 말살해 버린 채 아주 간략하게. 20년만 살아도 수많은 관계 속에 부대끼면서 그 기억과 망각이 모여 한 사람을 형성하는데. 그런데 우리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이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는 것을 종종 간과하곤 한다. 그래서 나를 가뒀던 간략한 문장들에 치를 떨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간단한 문장으로 정의한다. 나를 가리키는 손가락엔 펄펄 뛰면서 내가 남을 가리키는 손가락엔 태연하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관계는 언제나 일방적이고 피곤할 뿐이다.


 


 

세대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다르다. 하지만 실패하거나 좌절했을 때, 또는 성공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별반 차이가 없다.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다를 게 없거든. 세대에 따라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도 다르다. 그런데 '기대'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보니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신이 있다면, 그 신이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면 마치 무한반복 재생되는 드라마를 보는 느낌일 거다.


 

그 개와 혁명


 

웃으면서 눈물을 글썽이게 만드는, 가족에 대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


 

분재


 

어떤 삶에 관여하는 일은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본문 중)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러고 산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도블


 

바람이 불 때 해수면을 변형시키려는 교란력과 그 변형을 막으려는 복원력이 함께 발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다가 부서지며 파도가 치는 것이라고.

(본문 중)

 

살면서 일관적이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남을 향한 기준과 나에 대한 기준에서. 우습게도 일관적이지 못한 그 태도는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삶을 고달프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면 바다에 파도가 치듯 우리 삶도 넘실거린다.


 

내가 머물던 자리


 

우리는 외따로 태어나서 홀로 자신을 길러낸 사람들이고 지금은 함께 살고 있어.

(본문 중)



세상에 존재를 알리는 순간부터 여러 관계를 맺고 살게 된다. 어떤 것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맺어지고 어떤 것은 선택에 기반해 형성된다. 뭐가 됐든 우린 그 관계가 긍정적이길 바란다. '함께'란 단어가 갖는 좋은 의미만을 함유한 긍정적 관계. 함께 나누는 관계. 하지만 나 때문에, 또는 상대방 때문에 그런 관계는 쉽지 않다. 게다가 무엇을 하려 들면,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 관계의 균형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세상 어렵지만 세상 쉽게 시작되는 그것,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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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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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되면서 느꼈던 건 회복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거였다. 2, 30대엔 단순 근육통으로 일주일 안에 나을 거를 40대엔 한 달 가까이 통증과 불편함을 인식하면서 살았다. 그 덕에 상비약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예전엔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1순위였는데 40대 어느 지점부터 파스가 굳건히 1위 자리를 꿰찼다. 큰 파스, 작은 파스, 뿌리는 파스, 바르는 파스. 종류도 다양하다. 그럼, 50대는?


아침에 눈을 뜬다. 젊은 시절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알람이 없어도 8시 전에 잠이 깬다. 잠이 줄었다. 왜일까? 반환점을 돌고서 남은 삶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라는 신의 뜻일까? 아, 몸이 굼떠졌으니,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할 거라는 신의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물 한 모금 마시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러 간다. 쪼그리고 앉을 때도 예전 같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무릎을 굽힐 때마다 '아우'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체중이 실린 채 관절을 한 번씩 쓸 때마다 몸이 질러대는 비명 같은 거다. 뒤를 돌아보니 화장실 임자인 고양이가 어느새 쫄래쫄래 쫓아와 근처에 앉아 있다. 내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녀석이지만 그만큼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녀석이다. 이제 4살. 한창때다. 한창때도 고양이는 놀고먹는다. 나도 저러고 싶은데...


고양이 빗질하고 간식 주고. 그 와중에 내 몸은 숱하게 비명을 지른다. 간신히 다 끝내고 기지개를 켜는데 왼팔이 올라가다 만다. 오십견이다. 쉰이 되자 귀신같이 알고 찾아온 오십견은 먼저 오른쪽 어깨를 차지했더랬다. 운동을 잘못해서 다쳤는데 근육이 굳으면서 팔이 올라가질 않더구먼. 머리를 감는 것도, 옷을 벗는 것도, 하다못해 왼쪽 몸 어딘가를 긁으려 할 때도 나는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내 팔로 무언가를 하는 게 이렇게 우스꽝스러울 수 있을까? 오른쪽 오십견은 다행히 1년 정도 머물다 떠났다. 그런데 떠나자마자 뭔가 아쉬웠는지 이번엔 왼쪽 어깨에 스며들었다. 정말 우습게도 왼쪽 오십견을 불러들인 건 잠을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잤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왼쪽 어깨를 깔아뭉개듯이 잠을 잤던 거다. 그래서 또다시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옷을 벗고, 몸을 긁고…. 그러고 있다.


유연한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내 우스꽝스러움은 더 도드라진다. 그래서 심술이 났을까? 고양이를 쳐다보다 저 녀석 발톱을 잘라야겠단 생각을 한다. 처음 입양했을 때만 해도 발톱깎이만 준비하면 됐는데 작년부터 하나가 더 추가됐다. 그건 바로 돋보기안경. 갑자기 고양이 발톱이 잘 안 보이더라. 잘못했다간 너무 깊이 잘라서 피를 볼 수도 있어서 돋보기를 하나 맞췄다. 도망 다니는 고양이를 붙잡고 돋보기를 쓰고 발톱 하나 자르면 녀석은 자르기 싫다고 바둥댄다. 어르고 달래서 어찌저찌 다 자르면 진이 빠져 그저 한숨뿐. 불현듯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8살 때. 아버지 연세는 그때 56. 나랑 놀아주고 나면 아주 힘들어하셨다. 그땐 몰랐다. 30대까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젠 안다. 당신의 몸 상태가 어땠었는지를.


50대면 아직 한창이지! 노인이 아니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을 이제 막 떠나보내는 중인 50대는 여러모로 당황스러운 연령대다. 그리고 나이의 앞자리가 6으로 바뀌는, 빼도 박도 못하는 어르신이 되는 연령대를 앞두고 내 몸은 무엇을 또 잃어야 하는지 한숨이 앞서는 나이대기도 하다. 확실한 건 하나. 상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본문 중에서)


그럼, 60대는? 2, 30대가 상상하는 60대, 40대가 상상하는 60대, 심지어 50대가 상상하는 자신의 60대조차 현실과 많은 괴리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겪지 않고선 알 수 없는 일. 그러니 현재의 내 삶을 충분히 누리자. 그러지 못하면 어느 순간 삶은 상실에 잠식되어 과거만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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