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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 조선 2 ㅣ 민음 한국사 2
한명기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21년 8월
평점 :
흔히 생각하는 성리학의 나라, 족보와 가문을 따지는 문화, 장자 우선의 질서, 여성의 사회적 차별 등은 엄밀하게 말하면 중후기 조선 사회에 집중된 현상이다. (‘사(士)의 시대’ 중에서)
요즘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말 중 ‘헬조선’이란 표현이 있다. 이때 ‘조선’은 전근대 사회의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진 의미일 테고 그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현상들이 아마 맨 처음 인용한 문장에 나온 내용들일 거다. 16세기의 조선을 다룬 이 책은 어째서 저런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책에 따르면 그 씨앗은 15세기 세조 때 뿌려졌다. 조카인 단종을 끌어내리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정통성 문제로 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기편을 많이 만드는 수단으로 공신 책봉을 이용한다. 벼슬을 높여주고 경제적 이득을 줌으로써 정치적으로 세조 편에 설 수 있게끔 유인책을 남발한 셈이다. 당연히 자격이 없는 자들이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관직을 사고판다든지 부정한 수단으로 이익을 꾀하면서 조선 사회 전체의 기강이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어떤 사회든 부정부패가 심해지면 그것을 개혁하려는 시도가 있기 마련이다.
과거 제도를 통해 관리로 들어서는 게 보편화된 상황에서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학자층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사림) 중심으로 사회 개혁의 의지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성리학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재해석된 성리학을 현실에 엄격하게 적용하려 했다. 15세기 말,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성종 시대에 이르러 언로를 담당하는 삼사(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전하, 아니 되옵니다~!). 지금은 어떻게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8, 90년대 역사 교과서에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으로 알려진 시대가 개막하게 된다.
16세기,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에 이르기까지 사림은 꼬장꼬장한 깐깐함과 도덕성을 앞세워 줄기차게 개혁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신하의 도는 의를 따르는 것이지 군주를 따르지 않는다.
(‘왕과 사(士)의 충돌’ 중에서)
사림의 통치 이념 또는 정치 이념을 간략하게 표현한 문장이랄까. 이러니 때론 왕마저도 등을 돌려버려 힘든 싸움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결국 공신 세력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선조가 왕이었을 시절엔 사림이 정계를 장악하게 된다. 개혁이 완성된 것일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건 확실하다. 왕권이 견제되면서 신료들의 공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요즘을 사는 우리는 정치에서 중요한 요소엔 도덕성과 강직함 뿐 아니라 협상과 타협, 중재의 기술이 있다는 것도 안다. 아마 저 시대에도 어느 순간부터 이런 점들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한 가지만 더. 한 나라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는 결코 따로 놀지 않는다. 세조 시대 정치가 흔들리면서 성리학 근본주의에 가까운 사림이 등장했고, 그들이 정치의 주요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조선의 사회 양상과 문화, 경제도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책의 제목처럼 ‘성리학 유토피아’가 열리고 만 것이다.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며 현재를 살핀다면 우리가 투표를 통해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엔 협상이나 타협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곧 미국 대선이 있지만 결과에 따라서 그곳도 허울좋은 포장일 뿐이지 사실 협박이나 다름없는 기술을 쓰는 대통령이 등장할 수도 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나를 포함한 현재를 사는 누구도 확언하지 못한다. 분명한 건 선택엔 대가가 뒤따른다는 점이다. 먼 미래의 역사는 이 시대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할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선조 시대가 포함되어 있으니 당연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국란이 나오면 사람들은 보통 그것을 투쟁의 역사로만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과 의병장들과 많은 대첩들. 그에 대비되는 무능력한 몇몇 존재들. 그들은 양의 방향으로든 음의 방향으로든 특출난 인물들이다. 그렇지 못한 보통 사람들은 혼란에 이리저리 휩쓸려 삶에 대한 주체성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만다. 역사에서 중요하지 않지만, 그런 것이 대다수 사람의 역사다. 고난과 치욕의 역사. 첫 번째 침략과 두 번째 침략인 정유재란 사이 명과 일본이 강화회담을 하면서 전쟁 소강상태가 있었다. 전쟁 당사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였던 조선 정부는 이 회담에서 고의로 철저히 배제된다. 치욕의 역사. 우린 이런 역사를 외면하면 안 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 우린 실수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임진왜란 직전 정부가 파악한 수치 : 조선 인구 1,000만
임진왜란 직후 정부가 파악한 수치 : 조선 인구 150만
(본문 중)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에서 왜군을 하나라도 더 죽이려 했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아니 근데, 어떻게 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