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원씽
게리 켈러 & 제이 파파산 지음, 구세희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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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읽으면 배지를 준다는. 배지 같은 거 하나쯤은 달아줘야지. 그래서 읽었고, 읽고 나니 그 다양한 자기계발서들이 어째서 항상 베스트셀러 순위에 드는지 대략 알겠더라. 분명 책이 내포한 대전제(성공)에 내가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해 봐야겠어라는 의지가 뿜어져 나오더라는 거.

 

일단 책의 내용은 대부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하다. 출판된 지 꽤 오래된 책이기도 하고 워낙에 유명한 책이라니 인용이나 재생산되었을 부분도 있을 테니까.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 저걸 이렇게 적용할 수도 있는 거구나.’ 그러니까 체계화시켜 우리 실생활에 잘 적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말이 쉽지, 그게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천. 계획이나 관념이 아무리 명확해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하루, 이틀, 한 달, 1, 5. 그렇게 습관이 되어야 변치 않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법이다.

 

여전히 책의 대전제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도움은 됐다. 두어 달 전부터 차일피일 미루던 한 가지 일을 드디어 시작했거든. 이 책을 읽고 실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도 뒤로 미루고 있었을 거다. 분명 말하지만, 실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깨달은 거다. 삶을 올바르게, 아니면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모르는 일은 의외로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실행으로 옮기느냐, 미적거리느냐, 그 차이가 엄청난 간격을 만들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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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안전가옥 오리지널 27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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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무비와 고어 감성을 지닌 나로선 이 소설의 소개를 읽고 책을 펼쳤을 때 테디베어가 도끼를 들고 무참하게 휘두르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처키 버전의 테디베어를 기대했다가 너무(?) 착한 곰 인형과 마주쳤다고나 할까. 그래도 신선하긴 했다. 욕망과 악령의 대척점에 귀여운 곰 인형이라니. 그러다 문득 내 삶의 어느 한 지점, 곰 인형이 지나갔었다는 게 떠올랐다. 구체적인 시기까지 기억이 나서 그때 써놓은 글을 찾아봤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 신촌역으로 가면서 연대 앞을 지날 때쯤이었다. 무심히 밖을 내다보던 내 눈길에 무언가 이상한 게 들어왔다. 뭘까? 저게 뭐지? 흙으로 덮인 축대 중간쯤,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널브러져 있었다. 한참을 봤다. 다행히 버스가 신호에 걸려 제자리에 오래 서 있던 터라 난 그 정체를 알아내는 게 가능했다. 곰 인형. 품에 안으면 성인 여성 상체쯤은 충분히 가려버릴 만큼 커다란 곰 인형이었다. 누군가의 사랑을 듬뿍 받다가 저리 내팽개쳐진 것일까? 어쩌면 아예 누군가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선물 받을 사람 품에 안기기도 전에 연인들의 변덕으로 저리 기구한 운명이 되었을 수도 있으니까. 버스가 움직이자 곰 인형이 한쪽으로 사라져갔다. 머리를 아래쪽으로 향한 채 비스듬한 축대 중간쯤 널브러진 곰 인형. 엎드려 있는 탓에 그 얼굴조차 볼 수 없었던 곰 인형이 자꾸 신경에 거슬렸다.

 

시간이 흘렀다. 같은 날 오후. 볼일을 마치고 지하철 2호선을 기다린다. 신촌역으로 가서 오전에 왔던 길을 되짚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탄 칸에 커다란 곰 인형을 안은 사람이 있다. 색감도, 모양도 아까 그 곰 인형과 똑같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누군가에게 소중히 안겨 있다는 점. 뭐 이런 희한한 날이 다 있누? 속으로 투덜대면서 외면해 보지만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버리고 간직하고. 그것이 삶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제대로 버릴 줄 모르고 제대로 간직할 줄 모르는 게 사람이라서 항상 삶이 안타깝고 두려운 것이 아닌가.

 

갈림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한 요즘, 내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택했는지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내가 버리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리라 여겼던 것들이 어느 순간 버려진 곰 인형처럼 아무 곳에서나 나뒹굴지나 않을지 하는 점이다. 사람이 힘이 들면 회피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기 마련이다.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 다짐해 보지만 지금, 이 순간도 나약함에 휘둘리는 내가 어찌 미래를 장담할 수 있을까?

 

200812월의 글. 공부만 하던 내가 장사를 하려던 시점이라 지금까지도 상황이 명확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그 시절의 내가 무엇을 버리려 하지 않았는지, 그게 기억이 안 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망각한 셈이다. 16년 동안 제대로 살아온 거 맞나? 스스로 변한 게 없다 여기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런 거고, 다른 사람이 본다면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른 나일 텐데. 소설 속 테디베어(정확히는 해피 스마일 베어)는 여러 캐릭터에게 아주 중요한 소품이다. 위안이자 희망이고 안식처이며 연결 고리다. 그래서 누군가의 테디베어는 죽었고 누군가의 테디베어는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내 곰 인형은 어떻게 되었을까? 삶에 파묻혀버린 내 곰 인형의 손을 아직도 잡고 있을 거라, 나도 모르게 꼭 움켜쥐고 있을 거라 조용히 희망해본다. 생각해 보니 책에 관한 리뷰가 아닌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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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개정증보판)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3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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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침서나 설명서 느낌의 책을 잘 읽지 않았다. 자기계발서는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책이고, 작가의 생각이 일방적으로 술술 들어오는 책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읽는 건 어쩌면 그걸 빌미로 상상과 생각을 하기 위함인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건 좀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들어서 요즘은 예전 같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들도 읽어보려고 한다. 알라딘에서 사는 책은 내가 읽고 싶은 책들로, 밀리의 서재에선 추천되는 책들로, 간혹 선물 받을 일이 생기면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역사의 쓸모>는 추석 때 선물 받았던 책이다. 교보문고에 갔다가 책을 사준다길래 1위부터 10위까지 쭈욱 진열된 인문 서적 코너에서 그냥 덥석 집어 들었다. 읽어보니 재미있더라. 그냥 받아들이니 편하기도 하고.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은 상대가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헤아려보는 일 아닐까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서로의 시대를, 상황을, 입장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관점도 달라질 겁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왜 할머니, 할아버지는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왔을까, p156)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에 대한 화두는 꽤 오래전부터 나왔다. 이 책에선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후로 등장한 태극기 부대를 한 예로 든다. 난 이제야 알게 된 단어지만 틀딱충이란 단어로 그들을 혐오, 비하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들이 살아온 시대의 얘기를 한다. 전쟁과 폐허, 가난, 박정희 대통령, 한강의 기적. 이 중 일부는 내 어린 시절을 관통했던 사실들이지만 50대인 나에게조차 이젠 희미해진 기억들이다. 그러니 내 아랫세대들에겐 말해 무엇할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단순히 대통령의 퇴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60대 이상 세대들의 과거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거란다. 박근혜를 통해 공유되었던 과거의 기억들(유물들)이 자연스러운 순서가 아닌 강제적인 절차를 통해 끄집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을 우리가 이해한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분들은 여전히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를 외칠 것이고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한다. 하지만 적어도 틀딱충이란 단어는 탄생하지 않았을 거란 게 저자의 이야기다. 공감하려 한다면, 이 시대가 혐오와 비하의 시대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멀어질 수 있다는 거다.

 

시선을 2024년으로 돌려본다. 요즘 부쩍 실감하는 점은 단체의 리더들이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거다. 뭐 대통령이야 직진 이외엔 모르는 분이니 말할 필요도 없겠고. 아시안컵 축구 이후로 대한축구협회에서 슬슬 불이 나기 시작하더니 아시안 게임 직후엔 배드민턴 협회 문제가 불거졌고, 곧이어 대한체육회 쪽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하지만 해당 단체장들은 안하무인이다. 노조가 들고 일어나고 국회에서 문제를 지적받아도 ‘My Way’를 고집할 뿐이다. 이 현실을 완벽한 세대 갈등이라고 볼 순 없겠으나 권위주의의 끝자락을 붙잡은 세대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벌어지는 일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공감해야 하는가?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데. 모르겠다. , 이래서 작가의 가르침이 명확한 책을 읽는 거구나. 그러니까 이게 결론이다. 지침서나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유.

 

어차피 두서없이 하고 싶은 말을 휘갈기는 거 같으니 하나만 더. 트럼프, 푸틴, 네타냐후, 김정은. 이 조합은 예전에도 한 번 있었다. 내년쯤엔 트럼프 2기가 시작되니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추가된다. 역사가 말해주듯 출중한 리더일수록 다양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잘 씀으로써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간다. 이번에도 부디 그랬으면 싶다. 트럼프란 돌발 변수를 상수처럼 안고 가야 하는 세상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하늘이 나를 살려준 이유가 있다고들 말해준다.’ 트럼프가 한 말이다. 이 말이 자신이 내리는 결정에 아주 조금이라도 기반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리더와 운명론은 때론 지극히 위험한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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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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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우 키즈>

아이들이라고 다를까요. , 늘 집에 가고 싶다고 울잖아요. 그게 그 말이죠.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 나를 상처 주지 않는 곳에 가고 싶다는 거잖아요. (본문 중에서)

 

부모가 없어서, 바빠서, 부유하지 못해서, 이유야 어떻든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또는 그릇된 관심을 받는 아이들의 이야기. 투명 인간을 만들어내는 우리들의 이야기.

 

<고기와 석류> ‘고독사란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혼자 살다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게 오래 방치되어 썩는 냄새가 난 후에야 발견되는 사람들. 정신과 육체가 동시에 무기력해지는 죽음을 맞는 경우는 드물다. 내 몸 같지 않은 육체 속에 덩그러니 정신만 남아 있을 때 그들은 어떤 감정에 빠져들까? 외로움을 넘어서 버려지듯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슬프고 막막하고 억울하고 두렵고... 모르겠다. 혼자 남은 옥주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옥주는 홀로 맞이할 죽음이 두려워 자신을 먹어 치워줄 어떤 존재를 돌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존재로 인해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삶이란.

 

<릴리의 손> ‘이방인이란 단어가 나온다. 따지고 보면 우린 모두 서로에 대해 이방인이지 않던가. 만나서 알아가고 함께 기뻐하며 슬퍼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좁혀가는 존재들. 동시에 뜻대로 되지 않아 이별하고 미워하고 때론 그리워하는, 그런 존재들. 사랑 이야기다. 읽다 보면 , 그렇구나라고, 반전까지는 아니고 소소한 놀라움을 선사하는 단편.

 

<새해엔 쿠스쿠스> 요즈음도 그런 부모가 있겠지만 과거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자식이 살아줬으면 하는 부모들이 많았다. 풍요롭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며 살아온 세월이 어떻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자식들은 그런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멱살 잡고 끌고 가다시피 했다. 나 역시 그런 시기를 겪었기에 그때의 감정들, 상황들이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이 단편은 그런 상황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공포나 SF나 판타지가 아닌 일반적인 소설이다. 하지만 공포란 꼭 귀신이 나와야 성립되는 건 아니다. 숨이 막힐 정도의 일방적인 관심과 사랑. 그 또한 누군가에겐 공포일 수 있다. 글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가을소나타>가 떠올랐다. 너무 오래전에 봐서 이젠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지만, 모녀가 나와서 감정의 대립을 보이는 이 영화를 난 지금도 공포영화로 인식하고 있다.

 

<나쁜 꿈과 함께> ‘몽마는 사람에게 악몽을 꾸게 해 그 두려움과 공포를 먹고 사는 초자연적인 존재다. 악몽에 따라 모습이 변하기에 실제 모습을 자신조차 본 적이 없다. 항상 배가 고파 여기저기 사람을 찾아다니지만, 악몽을 꾸는 자의 손에 닿으면 타는 듯한 뜨거움 때문에 그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떤 존재랑 비슷하지 않나?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 그러니까... 고양이별이 진짜 있는 거였어! 우리집에 있는 고양이 녀석이 아무것도 안 하고 눈빛만으로 나를 부려 먹을 때 이 녀석이 외계인이라는 걸 진작에 알아차렸거든. 개눔의 자슥.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일종의 타임 트랩에 걸려버린 사람들을 다룬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릴리의 손>도 그랬지만 인과관계를 떠나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작가인 걸까? 세 편 모두 적절한 복선과 삶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잘 버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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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 조선 2 민음 한국사 2
한명기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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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생각하는 성리학의 나라, 족보와 가문을 따지는 문화, 장자 우선의 질서, 여성의 사회적 차별 등은 엄밀하게 말하면 중후기 조선 사회에 집중된 현상이다. (‘()의 시대중에서)

 

요즘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말 중 헬조선이란 표현이 있다. 이때 조선은 전근대 사회의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진 의미일 테고 그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현상들이 아마 맨 처음 인용한 문장에 나온 내용들일 거다. 16세기의 조선을 다룬 이 책은 어째서 저런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책에 따르면 그 씨앗은 15세기 세조 때 뿌려졌다. 조카인 단종을 끌어내리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정통성 문제로 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기편을 많이 만드는 수단으로 공신 책봉을 이용한다. 벼슬을 높여주고 경제적 이득을 줌으로써 정치적으로 세조 편에 설 수 있게끔 유인책을 남발한 셈이다. 당연히 자격이 없는 자들이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관직을 사고판다든지 부정한 수단으로 이익을 꾀하면서 조선 사회 전체의 기강이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어떤 사회든 부정부패가 심해지면 그것을 개혁하려는 시도가 있기 마련이다.

 

과거 제도를 통해 관리로 들어서는 게 보편화된 상황에서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학자층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사림) 중심으로 사회 개혁의 의지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성리학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재해석된 성리학을 현실에 엄격하게 적용하려 했다. 15세기 말,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성종 시대에 이르러 언로를 담당하는 삼사(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전하, 아니 되옵니다~!). 지금은 어떻게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8, 90년대 역사 교과서에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으로 알려진 시대가 개막하게 된다.

 

16세기,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에 이르기까지 사림은 꼬장꼬장한 깐깐함과 도덕성을 앞세워 줄기차게 개혁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신하의 도는 의를 따르는 것이지 군주를 따르지 않는다.

(왕과 사()의 충돌중에서)

 

사림의 통치 이념 또는 정치 이념을 간략하게 표현한 문장이랄까. 이러니 때론 왕마저도 등을 돌려버려 힘든 싸움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결국 공신 세력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선조가 왕이었을 시절엔 사림이 정계를 장악하게 된다. 개혁이 완성된 것일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건 확실하다. 왕권이 견제되면서 신료들의 공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요즘을 사는 우리는 정치에서 중요한 요소엔 도덕성과 강직함 뿐 아니라 협상과 타협, 중재의 기술이 있다는 것도 안다. 아마 저 시대에도 어느 순간부터 이런 점들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한 가지만 더. 한 나라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는 결코 따로 놀지 않는다. 세조 시대 정치가 흔들리면서 성리학 근본주의에 가까운 사림이 등장했고, 그들이 정치의 주요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조선의 사회 양상과 문화, 경제도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책의 제목처럼 성리학 유토피아가 열리고 만 것이다.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며 현재를 살핀다면 우리가 투표를 통해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엔 협상이나 타협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곧 미국 대선이 있지만 결과에 따라서 그곳도 허울좋은 포장일 뿐이지 사실 협박이나 다름없는 기술을 쓰는 대통령이 등장할 수도 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나를 포함한 현재를 사는 누구도 확언하지 못한다. 분명한 건 선택엔 대가가 뒤따른다는 점이다. 먼 미래의 역사는 이 시대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할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선조 시대가 포함되어 있으니 당연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국란이 나오면 사람들은 보통 그것을 투쟁의 역사로만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과 의병장들과 많은 대첩들. 그에 대비되는 무능력한 몇몇 존재들. 그들은 양의 방향으로든 음의 방향으로든 특출난 인물들이다. 그렇지 못한 보통 사람들은 혼란에 이리저리 휩쓸려 삶에 대한 주체성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만다. 역사에서 중요하지 않지만, 그런 것이 대다수 사람의 역사다. 고난과 치욕의 역사. 첫 번째 침략과 두 번째 침략인 정유재란 사이 명과 일본이 강화회담을 하면서 전쟁 소강상태가 있었다. 전쟁 당사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였던 조선 정부는 이 회담에서 고의로 철저히 배제된다. 치욕의 역사. 우린 이런 역사를 외면하면 안 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 우린 실수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임진왜란 직전 정부가 파악한 수치 : 조선 인구 1,000

임진왜란 직후 정부가 파악한 수치 : 조선 인구 150

(본문 중)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에서 왜군을 하나라도 더 죽이려 했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아니 근데, 어떻게 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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