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이나 예금이 아닌, 투자와 관련된 돈 관리를 시작한 건 20대 후반부터였다. 시작은 펀드였다. 주식에 직접 투자한 건 그보다 훨씬 뒤다. 30대 후반쯤이지 싶다. 가장 처음 배워야 했던 건 참는 법이었다. 시장의 변동성을 견뎌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니까. 두 번째로 배운 건 사는 법. 불확실성과 공포를 이겨내고 시장에 들어갈 시점을 찾아야 했다. 세 번째로 배운 건 파는 법. 욕심을 다스릴 줄 알아야 했다. 모든 배움엔 손실이란 대가가 따랐다. 또 배웠다고 해서 모든 걸 깨우쳤다는 얘기는 아니며, 항상 그대로 실천했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이 시장은 법칙이 있을지는 모르나, 펄펄 날뛰어 예외를 일상으로 만드는 곳이다. 전문가의 예측은 무의미하다. 그저 결과론만 존재할 뿐.


그동안 투자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투자는 여유 자금으로만 하자. 펀드는 총수익률 12~13%에 도달하면 환매한다. 주식은 총수익률 20%가 되면 판다. 이런 대원칙은 있었지만 1년에 얼마를 벌겠다, 또는 투자를 통해서 얼마를 벌겠다 같은 목표는 없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목표를 세웠다. 작년 집수리를 했으니 그 비용의 일정 부분을 올해 보충해야겠다는. 알다시피 주식 시장이 한동안 좋았으니, 목표는 순항했다. 1년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5월에 이미 목표 금액의 70%가량을 채웠다. 당시 내 계획은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단 판단하에 5월부터 보수적인 투자로 방향을 트는 것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처음 세웠던 투자 목표가 내 발목을 잡았다. 남은 30%를 향한 집착이, 그 30%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 결과는? 고양이, 어째 이번 생은 그른 거 같다...


돌이켜 보면, 내겐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본보기가 이미 있었다. 대공원 그 아저씨도 미국 증시에 오랫동안 투자 중인데, 장기적인 목표 금액을 정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더해지는 나이와 줄어드는 월급에 조급증이 발동해 테마주에 단타로 뛰어들었다. 결과는? 형님, 어째 이번 생은 그른 거 같습니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 멍청하게도 저 모습이 내 거울이었다는 걸 대가를 치른 후에야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 거면, 배움에 돈을 내는 게 당연하긴 하지. 파란 숫자가 쏟아질 것만 같은 푸르른 하늘을 보며 나름 위로해 본다.


비관론자의 얘기는 어쩌다 하나 맞추면 명성을 얻는 터라 우울한 학자의 논문 같은 느낌이고,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거라는 낙관론자의 얘기는 ‘멸종하기 전까지 인류는 살아 남을 것’이라는 말만큼 공허하고, 기업의 가치를 소리쳐 외치는 가치투자자의 얘기는 심리적 장벽 앞에서 언제나 무력하다. 누군가는 버블이 붕괴하는 중이라 말하겠지만, 더 정확하게는 스스로 투자라 생각했지만 투기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인 개인 자금들이 녹아내리는 과정처럼 보인다. 시퍼렇게 달아오른 시장을 살필 게 아니라 내 마음가짐을 살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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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입양했던 시기, 평일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주말엔 8시 넘어서 일어나곤 했다. 그때마다 옆에서 같이 자고 있던 고양이 머리를 한참 쓰다듬다가 일어났다. 이런 일과가 계속 반복되자 고양이는 자기 입장만을 고려해 상황 판단을 내렸다. 고양이가 강아지보다 머리가 좋은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다만 자기중심적 판단력과 잔머리는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


아~함. 잘 잤다. (뒹굴) 푹신하고 따뜻하네. (뒹굴) 냥. 일어나라, 아저씨. 일어날 때가 됐다. 죽었나? 왜 꼼짝도 안 하지? 냐아~웅. 일어나라, 항상 일어나던 시간이다. 에잇! (퍽) 어쭈? 이래도 안 일어날래? (배 위로 올라감) 꼼짝도 안 하네. 진짜 죽었나? 아저씨, 살아 있는 거냐? (킁킁. 귓구멍에 코를 대고 냄새 맡는 중)


으응...(손으로 귀를 긁음)


안 죽었네. 배고프다, 까까! 심심하다! 아이 씨. 가만, 아저씨가 일어날 때 어떻게 했더라? 내 머리를 막 만졌는데. 그럼 저 손에 내 머리를 밀어 넣고 막 돌리면? 아저씨, 손 좀 쫙 펴봐. 그렇지, 그렇게. 이제 머리를 넣고... (부비부비) (뒹굴)


으응... (옷에다 오줌 싸는 꿈을 꾸는 중)


에잇, 더 세게. (부비부비) (뒹굴뒹굴)


으응... (나이 들어서 오줌도 못 참고 싸지른다고 좌절 중)


이제 일어나겠지? (부비부비)


으응? 너... 거기서 뭐 하냐? 야, 손바닥이 갑자기 따뜻해져서 오줌 싼 줄 알았잖아!


아저씨, 나랑 놀자!


푸하하하. (고양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깨닫고 웃음이 터짐)


냥? 왜? 왜 웃는데?


오늘 토요일이라 늦게 일어날 거거든. 지금 6시밖에 안 돼서 두세 시간 더 잘 거야. 그러니까 깨우지 마라.


왜 또 자는데? 내 머리 막 문질렀잖아!? 그럼 일어나야지!


(등 돌림)


이 씨, 내가 오늘만 봐준다. 내일 안 일어나면 또 깨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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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해님이 열심히 제 갈 길 가느라 베란다에 햇볕이 살포시 걸쳐 있다. 난 이 날씨에 햇볕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지만, 고양이는 아니다. 까까를 얻어먹은 고양이는 떠나려는 햇볕을 부여잡고 벌렁 드러누워 그루밍을 한다.


막 참치 먹고 그루밍 하면 몸에서 참치 냄새 나지 않니?


볼 때마다 궁금하다. 먹고 나서 그루밍 하는 것은 간식 냄새를 몸에 남기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뒤로 한 채 녀석은 열심히 몸을 핥는다. 앞발을 핥을 때면 언제나 얄미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너 일부러 나 쳐다보면서 그러는 거지?


볼 때마다 궁금하다. 앞 발바닥을 그루밍 하며 나와 눈을 마주치는 건 나를 약 올리기 위함이 아닌지. 타당한 의혹을 뒤로 한 채 녀석은 자세를 바꿔 등을 핥는다. 몸이 굴러가지 않게 뒷발 하나를 야무지게 끌어안고서 그루밍에 몰두한다.


고양이, 그러고 있을 때 자세 뒤집어지게 다른 한쪽 뒷다리 내가 들어 올리면 때릴 거지?


이건 궁금하지 않다. 예전에 한 번 해봤다가 맞은 적 있다. 고양이한테 맞으면 아프진 않은데 뭔가 의기소침해진다. 하찮음이 내뿜는 후유증이랄까.


잠깐 휴식 중. 그 틈에 질문을 던진다.


고양이, 그렇게 열심히 핥으면 혓바닥에 쥐 안 나냐?


그럴 리 없다는 듯 다시 열심히 몸을 핥는다. 이번엔 배를 할 차례다. 무슨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번쩍 들어 그쪽을 쳐다본다. 혀는 메롱 한 채. 가끔 혀 수납을 깜빡한다. 혓바닥에 쥐가 나는 게 아니라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걸까? 그러다 베란다 바닥에 철퍼덕 앉아 고양이 그루밍을 감상하는 내 모습이 의식에 잡혔다.


고양이, 나는 왜 여기서 너를 구경하고 있는 걸까?


고양이가 나를 불렀으니까. 자기 뭐 하는지 지켜보라고. 정말? 진짜로? 고양이가 그루밍을 마치고 등을 돌려 눕는다.


오구, 오구, 참 잘했어요~ (짝짝짝)


조건반사 급의 칭찬. 고양이는 좋겠다. 뭘 해도 칭찬받고. 삶은 자각과 착각의 연속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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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 거의 도착했다. 바로 아래쪽, 나무로 그늘이 지고 바위로 평평한 부분부터 살폈다. 없다. 아저씨 한 분만 앉아서 쉬고 있다. 정상에 올라 성곽 구멍들을 쭉 훑었지만 역시 없다. 지난주부터 고양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 주엔 젖소(모지리)와 새로 등장한 삼색이만 봤다. 사람이 근처에 있건 말건 항상 그늘을 차지하고 쉬던 고양이 두 녀석도 보지 못했다. 아쉬움에 정상에서 서성이는데 작년 가을 삼색이가 처음으로 튀어나왔던 수풀 속에서 뭔가 귀여움이 스쳐 지나간다. 뭐지? 빤히 쳐다보다가 그 안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와 마주친다. 헉! 아기 고양이들! 그것도 하나, 둘, 셋, 넷! 가까이 다가가자, 수풀 속으로 쑥 들어가서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교육 잘 받았구나. 일단 사람이 다가가면 피하는 게 맞지.


기다려봐도 나오지 않길래 어쩔지 망설이는데 모지리 등장. 모지리에게 닭가슴살 두 개 투척. 다시 수풀 앞으로 다가가 닭가슴살 하나를 잘게 쪼개서 아기들이 머물던 자리에 흩어놓는다. 그리곤 돌아가려는데 조금 용감한 두 녀석이 나타나서 열심히 먹어 치운다. 치즈냥이와 젖소냥이다. 이 산에서 치즈는 귀한데. 다 먹길 기다렸다가 마지막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놓아준다. 두 마리 추가로 등장. 삼색이와 고등어인가? 색이 애매하게 섞였네. 카오스인가? 연이어 엄마 등장. 지난주 처음 봤던 새로 온 삼색이다. 닭가슴살 없는데. 애를 넷이나 키우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주식이 아닌 간식거리라도 주려고 가까이 다가가자 대차게 하악질 작렬. 하나도 안 무섭거든. 덩치나 좀 키우고 하악질을 하던지. 그렇게 하찮아서 어디 새 한 마리나 쫓겠냐? 조그만 체구가 안쓰러워 툴툴대다가 조금 전 모지리에게 준 닭가슴살 두 개가 아까워서 녀석 쪽을 휙 돌아본다. 저 자슥, 다른 때는 잘 안 보이더니만 오늘은 눈에 확 띄고! 새끼들과 함께 열심히 간식거리를 주워 먹는 삼색이를 보며 생각한다. 그 하찮은 하악질로 여기 고양이들 다 내쫓았니? 아님 다른 고양이들이 피해 준 건가? 어, 가만 있어봐... 아기 중에 젖소가 있고, 지난주부터 보이는 건 모지리 뿐인데…. 모지리 너, 이 아이들 아빠야?! 이런 세상에나. 모지리 너 모지리가 아니구나. 정상에 있던 사람들이 아기 고양이의 존재를 알아챘다. 다행히 거리를 두고 사진을 찍는다. 모지리는 다시 스텔스 모드. 저 녀석,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구먼.


고양이 가족들을 지켜본 후 산에서 내려온다. 정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내리막길. 아기들 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다가 옆에 있는 새와 마주친다. 까치? 다른 새인가? 어른인가? 완전 성체는 아닌가? 길옆에 새가 옆으로 누워있다. 근처에서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리지만 날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몸이 너무 깨끗하다. 상황은 죽음이 연상되지만, 외모는 멀쩡해서 그 괴리감 때문에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뱀한테 물렸나? 말벌에 쏘였나? 얘를 저쪽으로 옮겨도 상관없나? 살아가는 고양이에게 먹거리를 가져다주고 걱정하면서 죽어가는 새에게 관여하는 걸 주저하는 태도는 뭐지? 하필이면 사람조차 지나가지 않는다. 내가 소리를 내도 새는 돌아보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다. 자연은 한 치의 예외 없이 공평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산이 내게 물었다. 너도 그럴 수 있냐고. 고양이가 내 앞에서 죽어가면 어떻게 하겠냐고.


꼬리말) 6월 25일에 썼던 글. 공교롭게 고양이와 새가 나와서 최근 길고양이 관련 이슈와 겹치지만 직접 관련은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나 생각 같은 것들이 있고, 그것으로 갈등하며 고민한다. 이 글은 딱 여기까지다. 하지만 지금 덧붙이자면 그 결과가 나와 다른 무언가를 제물로 삼는 거라면, 난 그런 세상을 주저하지 않고 혐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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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토요일에도 그칠 생각은 없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마루 쪽 베란다 방충망을 열고 안을 살핀다. 잘 버틴다 싶었는데 빗물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휴. 건물을 새로 짓기 전엔 누수를 막는 건 꿈도 꾸지 말아야 할 듯. 고양이, 오늘 베란다는 워터파크 개장 관계로 영업 안 한다. 열심히 손을 흔들어보지만, 사춘기 딸내미의 빨리 나가라는 눈빛만 한 움큼 얻어맞았다. 흥, 못된 자슥.


일요일. 퇴근하고 돌아오는데 드디어 집 근처 도로에 아스팔트를 깔고 있다. 흙먼지로부터 이제야 해방이 되는구나. 없어 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하지만, 솔직히 아스팔트가 이리 반가울 줄은 몰랐다. 아스팔트 없는 도로에 차들이 다니면서 일으키는 흙먼지는 정말이지 엄청났다. 너무 기뻤던 탓일까? 베란다 외부 창 앞에 앉아서 고양이와 함께 아스팔트 깔리는 광경을 멍때리고 관람했다. 오, 요즘은 깔자마자 위로 차가 다녀도 되는구나. 야, 저 방정맞게 움직이는 조그마한 불도저는 뭐냐? 어라, 아스팔트 위 글씨는 저렇게 해서 사람이 쓰는구나. 반백 년을 넘게 살아도 궁금하고 신기한 건 어쩔 수 없다. 고양이야 말해 무엇 하겠나.


월요일 늦은 오후. 산에 오른다. 금요일부터 토요일에 걸쳐 내린 많은 비가 산에 있는 많은 것들을 깨운 모양이다. 푸르름이야 여전하지만 식물들은 벌크업을 했는지 길을 막고 텃세를 부린다. 인간, 지나갈 거면 돈... 아니, 공손히 게걸음으로 지나가라. 다행히 난 옆으로 가는 걸 좋아한다. 지하철만 수십 년째다. 러브버그도 늘었다. 아우, 눈꼴 시러버라. 저리 꺼져라, 꼴 보기 싫다. 들고 있는 물병으로 역시 길막하는 벌레들을 탁탁 쳐내며 걷는다. 그러다 무심코 만난 말벌. 둥글고 큰 녀석이 아니라 날씬하고 무늬가 선명해서 마치 로봇 같은 느낌이 나는 녀석이다. 한동안 말벌이 없었는데. 느닷없는 출현에 나도 모르게 공손해져 물병 내리고 슬금슬금 지나간다. 드디어 정상. 식물이랑 곤충과 기싸움하며 올라오느라 마음에 안식을 가져다줄 존재가 필요했는데…. 고양이가 한 마리도 없다! 이럴 수가. 좌절하는 와중에 주위를 둘러보다 성벽 아래쪽 까만 줄이 움직이길래 가까이 가 보니 개미 떼다. 성벽을 따라 1m 정도 줄을 지어 이동 중이다. 많아도 너무 많구나. 너희도 비 때문에 집에 물이 새니? 내가 그 심정 잘 알지. 나는 두 손 놓고 있는데 너희는 집을 새로 짓니? 아님 구멍을 다시 파나? 대단하다.


변화가 심했던 요 몇일.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서 변화를 알아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내 삶은 충분히 여유로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꼬리말) 6월 말 풍경이다. 올해 러브버그는 확실히 기세가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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