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몇 가지 있었다. 첫째, 비만 내리면 베란다로 새어 들어오는 빗물을 차단해야겠다. 그리고 그곳을 고양이가 마음껏 쓸 수 있게 하겠다. 둘째, 컴퓨터가 놓인 방에 제대로 된 난방을 깔고, 곰팡내도 잡아야겠다. 이 방은 베란다였던 공간의 벽을 터서 이미 확장이 된 상태다. 그런데 바닥에 나무판만 놓고 그 위에 장판을 깐 형태라 그 공간만큼은 난방이 되지 않았고, 나무판 아래 공간에 곰팡이가 생겨 수시로 냄새가 올라왔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이 글에서 필요한 내용은 이 정도. 현재는 수리를 끝내고 리모델링한 집에서 1년 5개월쯤 지냈다. 몇 번 적었지만 빗물의 완전 차단은 실패했다. 이건 우리 집만 고친다고 해서 해결될 사항은 아니었다. 윗집과 건물 자체까지 한꺼번에 건드려야 할 대공사가 필요했다. 어쨌든 비가 엄청 내려 워터파크 개장이 예상될 때만 문을 닫으면 되니, 절반의 성공이랄까. 그리고 올여름을 지나면서 곰팡내 제거도 실패로 판별이 났다. 단순히 청소하고 시멘트로 덮을 게 아니라 소독까지 한 후에 시멘트를 덮어야 했나 보다. 이건 그냥 실패. 살면서 가장 적극적인 대응을 했던 거였는데 이 정도면 가성비 최악의 대응이었던 듯.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고양이 급수기가 좀 묘했더랬다. 원래 급수기 가운데 구멍에서 물이 힘차게 퐁퐁퐁 올라와야 하는데, 그날은 물이 매가리 없이 숑숑숑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뭐지 싶었지만 그냥 무시. 다음 날, 고양이가 급수기를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갔다가 나 역시 인상을 쓰며 고양이와 함께 고민에 빠졌다. 물론 고양이는 ‘이것이 왜 물을 내뱉지 않는 것인가’란 의문이고, 나는 ‘어제 고장 전조 증상이었는데 펌프를 미리 주문해야 했어’란 자책이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태가 이 모양인 것은 삶 전체를 지배하는 현상일까, 아니면 지극히 개별적인 예일 뿐일까? 당연히 후자라 얘기하고 싶지만, 내 삶이 내 마음대로 되었던 적이 있나, 생각해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거 같고 말이지. 오, 이렇게 허무주의로 빠져드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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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6시 30분이라 출근 시간대는 아니었으나 강남에 도착하면 얼추 붐비기 시작할 시점이라 걸음을 서둘렀다. 공원을 가로질러 지하철역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 가드레일 바로 옆 찻길 쪽에 무언가가 있었다. 걸음을 멈추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으니 아주 짧은 순간 시야를 스치듯이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으로 강력한 효과음 하나가 아주 명징하게 울려 퍼졌다. 빠각. 그 언젠가 바로 눈앞에서 버스 바퀴에 깔리며 비둘기가 내뱉었던 소리. 아니, 비둘기였던 존재가 자신의 실존을 형체 없는 흔적으로 변환하며 그 대가로 세상에 내놓은 파열음. 다른 때 같으면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서 내려갔겠지만, 그저 가만히 서서 그 느린 흐름에 몸을 맡겼다.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들려오는 덜컥덜컥하는 소리가 무언가를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지도 앱 덕에 모르는 곳도 단번에 찾아갈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겐 지하 공간에서만큼은 무용지물이다. 3차원에 약한 건가? 오르락내리락 서너 번을 반복하다 그냥 지하상가 벽에 있는 약도를 보고 나서야 약속 장소를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지인과 아침을 먹고 다음으로 향할 곳은 극장. <전자오락수호대>라는 웹툰 원작의 애니메이션을 볼 예정이다. 지상으로 나와 길을 걷는데 옆으로 롯데월드타워가 높이 솟구쳐 있다. 목을 꺾어 빌딩을 올려다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빌딩 꼭대기에서 한 방향으로 희미한 선이 그어진 듯하면서 그 선을 경계로 양쪽 하늘의 색감이 미묘하게 달랐다. 뭐지? 건물 외벽 유리에 햇빛이 일정 방향으로 반사되어 그러는 건가? 공간이 어긋난 것 같은 느낌. 서울 촌놈 아니냐는 지인의 식상한 표현에 얼른 걸음을 다시 옮긴다. 오늘, 이상하다.


애니메이션은 집중하기 어려웠다. 언젠가부터 성우든, 배우든 더빙이 들어간 작품을 보는 게 쉽지가 않다. 외국말의 경우는 상관없는 걸 보면, 우리말 더빙이 이루어졌을 때 어떤 괴리감을 느끼지 않나 싶은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비현실 세상 속으로 몰두해야 했지만, 이번엔 거꾸로 그 괴리감 때문에 자꾸 현실로 패대기치듯 끌려 나왔다. 현실에 서 있을 땐 비현실을 감지하고, 비현실에 몸을 맡겨야 할 땐 현실을 놓지 못하다니.


돌아오는 길. 아침에 들어갔던 지하철역 입구를 이번엔 거꾸로 빠져나왔다. ‘빠각’하는, 딱딱한 것이 한순간에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굳이 차도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상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건 그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 소리가 문제는 아니었다. 내 감각에 금을 낸 건 이번엔 청각이 아니라 시각이었으니까. 아침에 비둘기의 흔적 옆에는 하나의 존재가 더 있었다. 아주 까만, 덩치가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 몸을 숙였다 들었다 하는, 쪼는 듯한 몸동작과 부리 끝에 매달린 비둘기 깃털. 그 잿빛 깃털은 까마귀의 까만 몸 색깔과 대비되어 뜬금없이 하얗게 도드라져 보였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상당한 거리라 아무것도 보일 리 없었다. 그런데 그곳엔 존재의 비명을 집어삼킨 무감각이 새까맣게 도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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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나 같으면 나중에 꼭 거기 가서 살겠다고. 진지하게 그 말씀을 듣던 어머니는 후에 삶을 정리할 시기에 다다르자 반드시 그 단체의 뜻에 따르겠다고 고집을 세우셨다. 그곳은 뭔가 분명치 않은, 사이비 같은 집단이라고 내가 아무리 만류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의 의지가 강할수록 어머니의 모습은 젊음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의 젊어진 모습을 한편으론 기쁜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러다 내 방에 들어와서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누나에게 물어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누나라면 내 편이 되어 주겠지 하면서. 어느덧 '에라, 모르겠다'란 심정이 되어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는데 책장 위에 자리 잡은 고양이가 보였다. 그런데 눈이 빨간 가짜였다. 진짜는 어디 갔냐며 내가 덤벼들었고, 가짜는 눈이 부풀어 오르더니 나를 할퀴었다. 그 사이비 단체가 벌써 힘을 발휘한다고 탄식하던 나는 가짜의 빨간 눈 한쪽을 발로 밟아 터뜨렸고, 진짜 고양이의 행방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짜의 남은 한쪽 빨간 눈을 밟기 직전, 내 옆구리에 붙어있는 진짜 고양이를 발견하고서 모호한 감정을 담아 외쳤다. 이 자슥이!


눈을 떴다. 멍한 정신이 가장 먼저 낚아챈 것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시계였다. 새벽 4시가 조금 안 된 시각. 두 번째로 건져 올린 건 내가 꿈을 꿨다는 자각이었다. 그리고 현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마루 소파에서 잠을 청했고, 고양이가 내 옆구리 자리를 차지했고, 그런 고양이한테 밀려서 하체와 상체가 따로 노는 이상한 자세로 소파에 낑겨 있다가 결국 그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났다는, 그런 집사의 현실.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 앉는다. 당연하게도 꿈의 이미지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 모습인데….


어째서 이런 꿈일까? 과거의 장소, 과거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모두가 그 당시 실제 모습과 반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뼈대는 지금 읽는 소설에서 비롯된 걸로 보이는데 배우 캐스팅은 기존 이미지와 역으로 간 셈이다. 그 시절의 갈등 관계가 사라지고 피붙이의 질긴 인연을 깨달아서일까? 가짜 고양이와 벌이는 난투극은 며칠 전 봤던 새의 모습 때문이다. 로드킬로 형태를 잃고 바닥에 찌부러진 비둘기와 그 옆에서 얼쩡거리던 까마귀 한 마리. 그리고 까마귀 부리에 걸려있던 비둘기 깃털. 가짜 고양이의 눈이 붉게 변하면서 커질 때 그 모습은 흡사 까마귀의 모양과 비슷했다. 고양이가 사라지면 나의 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하는 의구심. 그 의구심이 고양이와 까마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말았다.


저만치 옆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 고양이와 눈을 맞춘다. 그래, 개꿈인 것을. 꿈에 의미를 지나치게 부여해 내 실체를 흔드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지. 소파에서 일어나는데 진짜 싸운 것처럼 허리와 등이 뻐근하다. 너무 이상한 자세로 잤다.


고양이, 아저씨는 다시 자러 간다.


침대로 가면서 문득 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야, 그러고 보니 너는 어떻게 꿈에서도 한결같냐? 아저씨가 니 짝퉁이랑 그렇게 싸우는데 옆구리에 붙어서 구경만 하고. 실생활엔 하나도 도움이 안 돼요.


이 녀석이 말할 줄 알았다면, 분명 이렇게 내질렀을 것이다. 개꿈은 개한테 가서 따져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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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로 얻은 원룸에서 4주를 보냈다. 그 기간 중 밤에 잘 때 고양이는 내 머리 옆에서 잘 때가 많았다. 보통 다리 사이나 옆구리에 붙어서 자곤 했는데 장소가 바뀌자 불안했는지 자는 위치를 바꿨다. 집사의 체취를 가장 확실하게 맡으면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위치가 얼굴 근처다. 덕택에 녀석이 꼬리를 흔들 때 자주 얻어맞아야만 했다. ***


하나. 저쪽 창보다 이쪽 창이 더 좋다. 그러니 당장 나무판을 이쪽 창틀로 옮겨라.

하나. 비닐 팩에 임시로 담아온 사료는 냄새 나서 먹지 않는다. 그러니 원래 포장에 담긴 사료만 제공하라.

하나. 예고 없이 영역을 옮겼으니, 까까를 다른 때보다 하루에 두 번씩 더 제공하라.

하나. 밤에 잘 땐 아저씨 머리통 옆에 내 잠자리를 제공하라.


이게 내 요구 조건이다! 들어주지 않으면, 화장실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겠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사방에 모래를 흩뿌릴 거다!


“뭐래? 월이 너, 계속 야옹거리는 거 보니까 이제 좀 적응했나 보다?”


알아들어라, 이 생각 없는 아저씨야! 왜 니 말은 내가 알아듣는데 내 말은 니가 못 알아듣는 거냐? 불공평하다!


“아저씨 잔다. 너도 자라.”


이, 이 천하태평 아저씨, 무념무상 아저씨 같으니.


(침대 위로 점프. 아저씨 머리 바로 옆에 자리 잡음) 아 진짜,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내가 속이 터져서... 웅얼웅얼, 꿍얼꿍얼.


“... 야, 꼬리 좀 가만 놔두면 안 되겠냐?”


뭐래? 고양이는 잔다. 아저씨도 자라. (휙휙)


“너, 일부러 그러는 거 같은데?”


고양이 꼬리는 자아가 따로 있거든. 걔가 생각이 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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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랄라. 이른 아침부터 살짝 들떠있다. 아침 먹고 청소하면서 접혀있던 이동장을 슬쩍 빼내서 모양을 갖춘다. 아니나 다를까. 이동장이 펼쳐진 걸 알고는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낌새를 살핀다.


고양이, 너 오늘 병원 간다. 광견병 백신 맞아야 해서 살짝 따끔할 거다.


이동장엔 관심 없는 척 마루로 나와서 다시 청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얄미운 고양이를 골탕 먹이려는 악동 같은 기분이다. 고양이는 다시 마루로 달려 나와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본다. 그 눈에 담긴 질문은 단 하나다. 저걸 왜 꺼내는 건데?


빨래까지 마친 후 드디어 병원에 갈 시간. 내가 바지를 갈아입자, 고양이는 재빨리 침대 밑으로 피신한다. 모른 체 하면서 녀석의 물그릇과 밥그릇을 가져와 씻는다. 안방으로 따라 들어가면 녀석은 절대 침대 구석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참아야 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절반쯤 씻었는데 녀석이 쪼르르 나와서 내 옆으로 다가온다.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지금 이 상황의 마무리는 보통 간식 급여다. 간식 그릇을 꺼내고 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익숙한 말을 건넨다.


까까 먹을까?


함정의 완성. 나에게 바짝 다가온 고양이를 수월하게 들어 올리자, 그제야 고양이는 직감한다. 망했다냥. 두 앞발로 내 팔을 꼭 부여잡고 고개를 내 품에 파묻어보지만, 소용없다. 1년에 한 번 꼭 맞아야 할 주사고, 무엇보다 내 안의 악동이 오늘따라 기세가 등등하다. 우하하, 요 녀석, 따끔할 것이다!


20여 분 후. 집에 돌아와 이동장을 열자, 고양이가 튕기듯 나온다. 고양이가 그러든 말든 나는 얼른 바람막이부터 벗는다. 온몸이 땀투성이다. 20초나 됐을까? 의사 선생님 책상 위에서 도망치기 위한 고양이의 그 짧은 난동을 막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한 데다, 바람막이의 차단 기능이 그 열을 완벽하게 내부에 가두는 통에 거의 한여름 수준의 땀을 흘리고 말았다. 악동은 사라지고 퀭한 눈의 지친 중년 아저씨만 덩그러니 서 있다. 살면서 사람이 심보는 곱게 써야지. 아우, 힘들어라. 이동장을 접어서 보관하고 어디 있는지 모를 고양이를 향해 말한다.


까까 먹자. 진짜로.


다음 달에 종합 백신 맞으러 한 번 더 가야 되는데. 남은 한 달 동안 열심히 착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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