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랄라. 이른 아침부터 살짝 들떠있다. 아침 먹고 청소하면서 접혀있던 이동장을 슬쩍 빼내서 모양을 갖춘다. 아니나 다를까. 이동장이 펼쳐진 걸 알고는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낌새를 살핀다.


고양이, 너 오늘 병원 간다. 광견병 백신 맞아야 해서 살짝 따끔할 거다.


이동장엔 관심 없는 척 마루로 나와서 다시 청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얄미운 고양이를 골탕 먹이려는 악동 같은 기분이다. 고양이는 다시 마루로 달려 나와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본다. 그 눈에 담긴 질문은 단 하나다. 저걸 왜 꺼내는 건데?


빨래까지 마친 후 드디어 병원에 갈 시간. 내가 바지를 갈아입자, 고양이는 재빨리 침대 밑으로 피신한다. 모른 체 하면서 녀석의 물그릇과 밥그릇을 가져와 씻는다. 안방으로 따라 들어가면 녀석은 절대 침대 구석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참아야 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절반쯤 씻었는데 녀석이 쪼르르 나와서 내 옆으로 다가온다.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지금 이 상황의 마무리는 보통 간식 급여다. 간식 그릇을 꺼내고 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익숙한 말을 건넨다.


까까 먹을까?


함정의 완성. 나에게 바짝 다가온 고양이를 수월하게 들어 올리자, 그제야 고양이는 직감한다. 망했다냥. 두 앞발로 내 팔을 꼭 부여잡고 고개를 내 품에 파묻어보지만, 소용없다. 1년에 한 번 꼭 맞아야 할 주사고, 무엇보다 내 안의 악동이 오늘따라 기세가 등등하다. 우하하, 요 녀석, 따끔할 것이다!


20여 분 후. 집에 돌아와 이동장을 열자, 고양이가 튕기듯 나온다. 고양이가 그러든 말든 나는 얼른 바람막이부터 벗는다. 온몸이 땀투성이다. 20초나 됐을까? 의사 선생님 책상 위에서 도망치기 위한 고양이의 그 짧은 난동을 막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한 데다, 바람막이의 차단 기능이 그 열을 완벽하게 내부에 가두는 통에 거의 한여름 수준의 땀을 흘리고 말았다. 악동은 사라지고 퀭한 눈의 지친 중년 아저씨만 덩그러니 서 있다. 살면서 사람이 심보는 곱게 써야지. 아우, 힘들어라. 이동장을 접어서 보관하고 어디 있는지 모를 고양이를 향해 말한다.


까까 먹자. 진짜로.


다음 달에 종합 백신 맞으러 한 번 더 가야 되는데. 남은 한 달 동안 열심히 착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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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장사를 하면서 겪게 된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최진영의 <일주일>에 관한 글에서 언급했듯 ‘고객은 왕이다’란 고리타분한 명제를 폐기 처분했다는 거. 다른 하나는, 내가 뽑은 근무자들을 내 동료이자 내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거. 사실, ‘나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확률이 가장 높은 존재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문장을 20대 때 적어놓은 걸 보면, 이미 비슷한 개념을 깨달은 상태긴 했다. 다만 장사를 시작할 땐 그 개념을 근무자들에게 적용하지 못했을 뿐이었지.


그 인식을 촉발한 가장 일반적인 예는, 느닷없는 결근이나 퇴사다. 대체 또는 보완 인력이 전혀 없는 소규모 자영업 특성상 그 공백의 여파는 고스란히 나 아니면 남아 있는 근무자에게 전가된다. 다른 예라면, 성격상 문제다. 자신을 중심에 두는 사고방식 덕에 다른 근무자들과 화합이 안 되거나 상대방의 말이나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조직을 아예 와해시키는 경우다. 이럴 때마다 더 나를 가라앉게 만드는 건 내가 알면서도 그 사람을 뽑았다는 점이다. 비논리적인 얘기이지만, 다양한 사람을 자주 접하게 되면 어떤 사람을 볼 때 감이라고 해야 할까, 느낌 같은 게 있다. 이 사람은 같이 일하면 안 될 거 같은데. 그런데도 뽑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가 아주 많다. 일하는 사람의 공백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견뎌낼 수 없을 때가. 그런 경험을 반복하다 알게 됐다. 언젠가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도래할 텐데, 그 순간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경제적 문제도, 진상 손님도 아닌 내 손으로 뽑은 근무자일 거라고. 장사를 시작하고 16년쯤 지났을 때 그 일은 현실이 됐다.


살면서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선택을 한다. 다만, 그 선택의 대부분은 삶의 연속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마치 우리가 집안의 문을 아무 생각 없이 여닫고 지내는 것처럼. 하지만 흐름을 깨고 변화해야 할 순간이 닥치면, 우린 그 선택의 순간을 명확하게 인지한다. 바뀔 것인가, 그냥 흘러갈 것인가. 변화를 택했다면 삶은 전과 다른 방향을 잡을 테고, 똑같은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우린 다른 시각으로 그 상황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만 더. 오래 같이 일하던 근무자들과 매장에서 수다를 떨 때가 있곤 했다.


“진짜 신기한 게 점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일할 수가 있어요? 난 절대 나중에 편의점은 안 할 거야.”

“너도 장사해 봐. 네 일이면 너도 이러고 있을걸?”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한 녀석이,

“나는 더 신기한 게 점장님 어떻게 안 죽고 살아있어요?”

“... 이 자슥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내 옆에서 자리를 지켜준 근무자들 덕에 16년이 넘게 버텨낼 수 있었다. 언제나 희망은 사람에게, 절망도 사람에게 있었다.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자각도 내 선택 중 하나였을 것이고, 지금은 딱히 일부러 인식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삶의 일부일 뿐.


AI가 제시한 문장 : 문을 나서면, 그 문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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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쓸데없는 짓을 하는 중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원래 쓸데없다고 생각하던 짓을 나이 들어 시도하는 중이라고 해야겠다. ‘나이 들어’란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둘 다 건강에 관련된 행위다. 첫 번째는 건강기능식품 섭취. 예전엔 선물이 들어오면 먹곤 했는데 지금은 내 돈으로 사 먹는다. 검색을 통해서 그나마 효능에 대한 검증이 조금이라도 더 이루어진 성분 중심으로 내용물을 구성했다. 당장의 효과를 보겠다는 건 피로 회복과 관련한 비타민B 정도고, 나머지는 예방 차원이다. 먹은 지 3개월쯤 됐는데, 노란색 영롱한 오줌 빛깔을 볼 때마다 돈을 입으로 넣어서 오줌으로 빼는, 착즙기가 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손가락 패치 부착. 오른쪽 손가락 일부가 무언가를 꽉 쥐고 힘을 줄 때마다 불편함이 느껴진다. 직업병일 가능성이 크다. 병원에 가면 어째 뻔한 얘기를 들을 것만 같다. 관절이 아프면 그 관절을 덜 쓰면 된다는 식의. 그렇다고 고양이한테 청소를 시킬 수도 없고. 로봇 청소기를 사야 하나? 어쨌든 그래서 선택한 게 원적외선 패치인데, 하루 8시간 정도 부착하면서 경과를 살피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정도로 완치된다면, 20년 가까운 내 장사 경력을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억울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단 말이지. 지금 억울한 게 중요한 건 아닌데.


뭐, 알면서도 하고 있다. 얄팍한 희망에 기대 그래도 무언가는 해 보겠다고. 게다가 지금 이 글은 그런 나를 나름 합리화하는 과정이고. 아무것도 아닌 글이지만, 내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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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사소했다. 고양이 장난감 중에 털로 짜서 만든 캣닢볼이 있다. 공 모양에 고양이 얼굴 크기 정도고 털실을 뭉쳐놨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의 말캉함을 지녔다. 고양이와 놀아주다가 이 볼을 고양이 쪽으로 굴렸는데, 이 녀석 피할 생각 없이 멀뚱히 보고 있다가 얼굴에 정면으로 맞았다. 물컹하다고 해도 부피가 있으니, 녀석이 생각했던 것보다 충격이 있었던 모양이다. 충격보단 놀라움이 더 컸겠지만. 그 즉시 숨숨집으로 달려가더니 콕 박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쫄보 녀석 같으니.


이 사소한 일상에 평소 하던 생각이 들러붙었다. 고양이와 함께하면서 밤의 일상이 완전한 평온함으로 가라앉았다는 내 평소 생각. 세상에, 이런 쫄보 덕에? 그러니까 그 평온은 어떤 물리력이나 권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고양이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 외로움이 끌려 나왔다. 내가 외로움을 탔던가? 그 틈을 고양이가 채워준 건가? 꼬리를 물던 의문은 어떤 의문에 도달하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부재하면, 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나?


새벽에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려고 잠에서 깼다. 식탁 위쪽 불을 켜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화들짝 놀랐다. 거실 쪽 베란다 창에 식탁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4인용 식탁이지만 벽에 붙여놓은 관계로 2인용 식탁이 되어 버렸고, 각종 잡동사니를 올려놓아서 실제론 나 혼자 쓰기에 딱 적당한 공간만 남은 식탁. 어쩌면 내 생활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그 후로 며칠 동안 첫날의 오싹함까진 아니지만, 창에 투영된 이 모습을 볼 때마다 꺼림직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어떤 날의 비슷한 시각. 부스스 일어나서 다용도실에 있는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몸을 일으키다가 창밖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가로등 불빛 아래 주차된 자동차 하나. 주변의 어둠으로 인해 그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처음엔 빛 때문에 차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았고, 눈을 한참 깜빡이고 나서야 모든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20년을 넘게 봐온, 별다를 것 없는 익숙한 공간. 그런데도 잠깐의 낯섦이 그 공간을 아주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게 했었다. 낯섦이라. 공간은 그대로인데 빛과 어둠과 내 시력만으로 그 공간을 왜곡 해석한 것을 낯섦이라 할 수 있나?


마루로 나와 베란다 창을 바라봤다. 식탁은 여전히 창에 선명히 맺혀있었다. 하얀색 식탁과 파스텔톤 의자와 식탁 위에 놓인 다양한 색깔의 잡동사니들. 하지만 창에 맺힌 그것들은 모두 식탁 위 조명색인 주황색 한 가지로 뭉뚱그려진 채 현실감을 상실하고서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저 창, 스크린 역할을 하는 저 창은 새벽에 선선해지면서 최근에야 ‘다시’ 닫기 시작했다. 그 얘기는 4~5개월 전에 이와 똑같은 장면을 분명 오랜 기간 봐왔을 거라는 의미다. 고작 4~5개월이 나에게 낯섦을 선사한 것이었던가? 그런 걸 낯섦이라고 해도 되나? 식탁 위 조명이 애초에 주황색이 아닌 하얀 형광등 불빛이었다면, 저 반사된 장면이 내게 어떤 인상이라도 남겼을까? 내 인식과 감정의 흐름이 고양이와 한밤의 평온을 거쳐 외로움으로 지나가지 않았다면, 일련의 상황이 일어나기나 했을까?


‘나’라는 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틀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불명확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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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화 농사가 여러 해 동안 흉년인데, 다행히 황해도와 평안도의 작황은 조금 나은 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부상(富商)들이 독점해 이익을 농단하는 폐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화의 거래는 저절로 이루어지게 놔두어야 합니다. 법을 세워 금하면 오히려 백성을 동요시켜 원근의 상인들이 소문을 듣고 모이지 않을 것이니, 이는 실로 난처한 일입니다.”


“물가는 억지로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근래 포도청에서 곡식을 무역하는 경강상인을 마치 도적처럼 대우합니다. 무릇 시기를 틈타 이익을 꾀하고 물가가 오를 때를 이용해 물화를 농단하는 것이 상술입니다. 이는 포도청에서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 대상인들의 독점과 횡포로 백성들의 피해가 잇따르자,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다. 그때 일부 대신들이 했던 말이 위의 두 인용문이다. 상업을 천시했던 조선에서 마치 시장 경제의 자유 경쟁에 맡겨야 한다는 듯한 논리다. 조선은 상업에 대해서 큰 원칙 아래 나머지는 불간섭한다는 태도로 대응하긴 했다. 하지만 저 발언의 이면에는 상업의 이익이 권력의 주머니로 들어올 것이라는 현실이 숨겨져 있다. 완벽한 통제도 말이 안 되듯, 완벽한 자율도 그만큼이나 불가능하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말만큼 자본주의와 자율 경쟁을 완벽하게 대변하는 말은 없겠지만, 그 말은 언제나 의심하고 곱씹어 봐야 한다.


“근대적 인간형에 가까웠기 때문에 중세에 천대를 받았던 상인들. 그런 그들이 끝내 자신들이 속한 사회 체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그 사회의 논리에 포섭되어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스스로 사회의 주체로 나서지 못했고, 조선 사회를 변화시키지도 못했던 것이다.”


우린 이 사회를 변화시킬 주체로서 나설 수 있을까?


꼬리말) 모든 인용문은 <민음 한국사 : 19세기, 인민의 탄생>에 나온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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