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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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연습

 

진실이 현재의 삶을 뒤흔들고 거짓이 다가올 삶의 기반이 된다. 완벽한 소통이 나를 무너뜨리고 불완전한 소통이 나를 위로한다. 삶에 대해 우린 정말 뭐 하나 제대로 알고나 있는 걸까?

 

폴링인폴

 

따지고 보면 완벽한 소통만 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삶은 평탄할 거다. 하지만 짝사랑이 있고, 세대 차이가 있고, 성장 배경에 따른 가치관 차이가 있고, 또 있고... 이렇듯 수많은 오해와 갈등으로 인해 삶은 진부하고 뻔하지만, 반짝거리며 입체적인 무엇인가로 존재하는 건지도.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 짓네

 

남의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때론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사랑은 모든 것을 내어주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원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감자의 실종

 

타인의 이해를 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단순히 소통의 문제라면 어떻게든 오해의 소지를 없앨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가치관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면 이해는커녕 다름만 도드라질 뿐이다. 용기를 내서 도움을 청해본들 진실한 손길을 뻗어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무관심해서? 아니. 손길을 뻗는 그 누군가 역시 자신의 삶이 부서질 수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전거 도둑

 

부족했던 배려와 질투와 시기가 불러온 오해. 자전거의 진짜 주인이 도둑으로 오해받게 되는, 룸메이트들의 자그마한 소동. 하지만 언제든 오해받을 수 있는 커다란 세상.

 

밤의 수족관

 

누군가는 궁금해한다. 물고기의 기억력이 3초만 지속된다면, 수족관의 물고기들은 슬픔이나 아픔을 곧 망각할 수 있기에 안심할까? 아니면 행복한 순간을 간직하지 못하기에 불안해할까?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그래서 세상은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존재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진실조차도.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

 

주변과 단절을 느낄 때가 있다. 국적이나 지역 같은 지리적 차이에서 생기기도 하고, 돈이나 신분 같은 계층적 차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많다. 신념, 가치관, 문화부터 사소하게는 취향에 이르기까지. 그중 최악은 사회적 약자가 편견 때문에 스스로 고립되는 단절일 거라 생각해본다.

 

꽃피는 밤이 오면

 

살다 보면 하고 싶었지만, 해야만 했지만 그러지 못한 말들이 있다. 사는 게 팍팍하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어서. 때를 놓친 말은 공허하게 삶을 잠식하고, 잠식당한 삶은 과거에 가라앉아 썩은 내를 풍긴다. 우린 그렇게 말을 많이 하면서, 모진 말은 서슴지 않고 내뱉으면서 어째서 타인을 감싸안는 말은 제때 하지 못하는 걸까?

 

유령이 출몰할 때

 

발전을 위해, 개발을 위해, 출세를 위해 우린 많은 것을 외면하며 산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사람들이 욕망으로 비대해질수록 세상은 여러모로 결핍되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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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민음 한국사 : 17세기, 대동의 길 - 조선 3 민음 한국사 3
문중양 외 지음, 강응천 엮음 / 민음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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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셨던 큰아버지가 계시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그 어려움은 큰아버지가 가장 어른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켜야 할 무언가를 많이 알고 계시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음식은 어디에 놓아야 하고, 순서는 이러이러하며, 누군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 집안의 누구도 다 알지 못하는 예법들을 완벽하게 꿰뚫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 가끔 다른 세상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럴 때면 문득 궁금해지곤 했다. 도대체 이 까다로운 예법들, 때론 숨 막힐 것 같은 이 형식들은 누가 만들어놓은 걸까?

 

16세기 두 번의 왜란으로 초토화된 조선은 그 이후도 순탄하지 못했다. 17세기, 광해군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새 왕을 추대하는 인조반정이 있었고, 청나라에 의한 두 번의 호란을 겪으면서 물리적 피해뿐만 아니라 오랑캐에게 굴복했다는 정신적 피해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들은 제도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든 것을 다잡아야 했다. 어쩌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당시 지식인들은 기존 질서를 강화하는 쪽을 택한다. 결국 주자학은 17세기 들어 원칙과 학문을 넘어 이념이자 종교로서 조선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특히 이전과 달리 예학을 강조한 학풍은 요즘 시각에서 볼 때 상상할 수 없을 현상을 만들어냈다. 요즘의 정당 개념과는 다르지만, 당시에는 지역과 학풍, 정책 지향에 따른 붕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핵심이었던 예학에 따라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것이 왕위의 정통성과 연관이 될 때 피바람이 불었다는 점이다. 누군가 죽었을 때 상복을 몇 년 입는지에 대한 문제로 왕을 포함한 조정 신료들이 몇 년간 논쟁하고 결과에 따라 사람이 죽어 나갈 수 있다는 거.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로선 그 상황을 바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건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 더. 16세기 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친 선조, 17세기 초중반 두 번의 호란으로 청의 황제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던 인조. 이 둘로 인해 왕의 위신은 저 밑바닥에 처박혔다. 그런데 호란 이후 30여 년이 지난 숙종 시기, 조선의 왕권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예학에 관한 논쟁에서 숙종 개인의 판단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따라 잘못된 주장을 펼쳤던 붕당은 정권 핵심에서 통째로 밀려나거나 목숨을 잃기도 했다. 왕권이 이처럼 강력하게 된 이유는 이 책에 직접 언급된 부분도 있고 내용을 통해 유추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책에 언급된 이유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인조 다음 왕들인 효종, 현종, 숙종이 모두 적장자였다는 점이다> 인조 다음 왕들인 효종부터 그의 큰아들 현종, 현종의 큰아들 숙종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적장자 계승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효종은 둘째 아들). 정실부인의 첫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는 얘기인데 <이게 바로 주자학에서 가장 이상적이라 보는> 이게 바로 예학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왕위 계승 형태다. (참고로 주자학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왕위 계승은 핏줄이나 태생에 상관없이 능력자에게 양위하는 형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방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서 예학에서 규정한 장자 상속의 원칙을 왕실에도 적용한다.) 다시 말해 존재 자체에서 정통성이 이미 확보된 상태이고, 그 정통성이 3대째 이어지면서 막강한 왕권을 수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단다. 그러니까 주자학은 그 시대의 헌법이자 법률이고, 종교 교리였으며 도덕이었다.

 

21세기 들어 큰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렸을 땐 큰아버지의 모습이 지독히도 엄격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유연한 태도를 갖추셨던 걸로 보인다. 예학이 전성기를 누리던 17세기로부터 400여 년이 흘렀으니 그 완고함이 가문에 따라 또는 현실에 맞춰 많이 변형되고 누그러졌음이 분명하다. 난 지금도 부모님 제사를 지낸다. 하지만 제사음식은 주문하고 상을 차릴 때도 대충 위치를 잡는다. 아마 매년 음식의 자리가 다를 수도 있다. 제문을 읽지도 않을뿐더러 술 따르고 몇 번 절하고 끝마친다. 장담하건대 내가 죽은 후 내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제사란 행위 자체도 수십 년 후면 대부분 가정에서 사라질 것이다.


세상은 변한다. 하지만 지우개로 지우듯이 이전 흔적이 말끔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덧칠하거나 덧붙임으로써 고쳐 나간다. 그래서 그 흔적은 자랑스러운 유산이 되거나 없애고 싶은 상처가 된다. 주자학이 전해지고 발전하는 긴 흐름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세계 유일 유학의 나라임을 자처하며 실생활까지 엄격하게 예학을 적용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보기엔 지나치게 형식적이라 굴레에 가깝게 보일 정도로.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그 시대의 치열한 삶에 들어가 본 적 없는 우리가 그렇게 쉽고 일방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린 편을 갈라 상대방을 배제한 적이 없으며, 무엇인가에 집착해 본 적이 없던가? 몇백 년이 지나 우리 후손들은 우리가 남겨놓은 흔적을 생뚱맞게 바라보며 욕할 거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 책 제목에 '대동의 길'이란 말이 있다. 이 시기에 지역에 따라 순차적으로 세제 개편이 이루어졌는데 그게 대동법이다. 대략 그렇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대동법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주자학과 그에 따른 정국 변화가 너무너무 인상 깊었던 나머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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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2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이북 도서라는 게 좀 아쉽네요. 이북의 경우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더라구요.

대굴대굴 2025-12-28 10:30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종이책으로 읽는 걸 추천합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설명해놓은 글이 e북으론 잘 보이질 않아요.

그나저나 이 서재 첫 댓글인거 같은데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하필 제 글에 틀린 부분이 있어서 고쳐야겠네요;;
 
[전자책] 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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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는 마음의 짐이 있다. 어린 시절 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 어린 나이에 제대로 의식하진 못했겠지만, 그는 그 짐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열심이었던 그 시도는 또 하나의 상처로 다가왔고, 해미의 삶은 이후 그 묵직함에 짓눌리듯 끌려갔다. 어느덧 마흔이 가까워진 현재,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해미는 자신의 기억들과 맞닥뜨린다. 언니의 죽음, 독일에서 3년간 살았던 일, 파독 간호사 이모들, 친구들과 함께했던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 그리고 거짓말. 해미는 이번에도 알게 모르게 열심히 그 시절의 흔적을 뒤쫓는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이번엔 거짓말에 대한 사죄가 필요했으니까.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본문 중)

 

대다수 사람은 마음의 짐을 하나씩은 지고 산다. (아닌가?) 그냥 지고 살면 그뿐이겠지만 그 묵직함은 그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 역시 짐이 있다. 공교롭게 내가 가장 싫어했던 존재와 관련이 있고, 미움과 안타까움과 죄책감이 뒤죽박죽된, 회색빛 묵직한 짐이다.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들은 흉터로 남아 뜬금없이 선명하게 자국을 드러내곤 한다. 아무리 내던지려 해도, 아무리 가라앉히려 해도 이제는 소용없다는 것도 안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본문 중)

 

다시 한번 어렸던 그 시절을 돌이켜본다. 지금 50대의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난 다른 선택, 다른 대응을 할 수 있을까? 결론은 언제나 한 가지. NO! 게을렀던 걸까? 지금도 여전히 게으른 걸까? 아니다. 게으르지 않은 거 같다. 아니, 모르겠다. 다만... 무엇보다 무서웠다. 내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 버릴까 봐. 다름을 인정하는 건 그저 시작일 뿐이다. 그 이후 이어질 지난한 과정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모든 게 부서질까 봐.

 

어찌 됐든 지금은 그 짐조차 내 삶의 완벽한 일부가 되어 있다. 내 경우는 털어냈다기보단 짊어지고 일어섰다고 해야겠다. 시간의 힘? 부정할 수 없다. 시간은 모든 걸 퇴색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거든. 그런데 나한텐 하나가 더 있었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을 수도 있다. 꼭 있었으면 좋겠다.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본문 중)

 

해미 역시 기억을 쫓으며 자신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깨닫는다. 자신이 거리를 두며 스스로 거부해 왔다는 사실까지도. 그리고 기억의 종착점에 도달했을 때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이미, 자신이 친구들과 담을 쌓는 원인이 되었던 그 순간부터 이미 구원의 문이 열려 있었음을.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본문 중)

 

<눈부신 안부>는 이모들로 대변되는 파독 간호사들의 삶의 이야기와 우재, 한수, 레나로 대변되는 해미의 개인적 인연들에 관한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해미가 선자 이모에 대해, 한수에 대해, 우재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면 해미의 삶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우리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삶은 인연의 엇갈림으로, 수많은 갈등으로 괴로울 필요가 없을 거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선 자리에서 생각하는 게 익숙하니까. 미루어 짐작하는 게 최선이고,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가는 중이고 또 살아내야 한다. 파독 간호사들이 그랬듯이, 또 해미가 그렇듯이. 대부분 사람에게 삶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본문 중)

 

내가 아끼는 모든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관심과 애정을 담뿍 담아.

 

우리는 모두 그 자체만으로도 태초의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존재들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말이야.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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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햄릿 (한글) 더클래식 세계문학 4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한우리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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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시대로다.

(본문 중)

 

유럽 전체로 보면, 르네상스란 화려한 토양을 바탕으로 인본주의 문화가 활짝 피어나던 시기. 영국으로 좁혀보자면,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 하지만 만개하던 꽃들이 고개를 숙이고 절정의 기세가 수그러들 때쯤, 셰익스피어는 감추어져 있던 또 하나의 시대상을 마주하게 된다.

 

정숙함이 미모를 정숙하게 만들기보다 미모가 정숙함을 음란하게 타락시키는 게 더 쉽지. 이전엔 이 말이 궤변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엔 상식이 되었네.

(본문 중)

 

그가 알게 된 건 인본주의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서 인간 중심의 사회와 문화를 이루어내겠다는 인본주의는 르네상스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즘으로 대표되는 현실은 인본주의를 한낱 이상에 불과한 것으로 추락시켰다. 앞에선 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하지만 그건 가면일 뿐 실제론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세상임을 깨닫게 된 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짐작은 했었지만 이젠 확신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햄릿 이전의 셰익스피어 작품들에서 이미 갈등 관계로 인한 비극이 등장하고 있었으니까.

 

인간은 참으로 조화로운 걸작이 아닌가! 고결한 이성에 무한한 능력! 훌륭한 자태와 감탄할 만한 거동! 그 행동은 천사와 같고 신과 같은 지혜를 갖춘 인간! 이 세상 아름다움의 극치요, 만물의 영장! 그런데 이것이 나에게는 쓰레기처럼 보이니 인간이 흥미롭지가 않아.

(본문 중)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대사를 통해 인본주의를 앞세우는 세상(인간)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님을 얘기한다. 현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상(인본주의)은 그 현실의 들러리로 몰락한다. 만물의 영장이 쓰레기가 되는 순간 이상은 좌절하고 만다. 르네상스란 토양을 양분 삼아 화려한 꽃을 피우려 했으나 토양의 썩은 내를 맡고 쓰디쓴 열매만 맺은 셈이다.

 

레어티즈에게 난폭한 짓을 한 것이 햄릿인가? 그건 절대 햄릿이 아니야. 햄릿이 미쳐 자기가 자기가 아닐 때 레어티즈를 괴롭혔다면 그건 햄릿이 한 짓이 아냐. 햄릿이 스스로 부정을 하네. 그럼 누가 한 짓인가? 그의 광기네. 광기가 불쌍한 햄릿의 적이라네.

(본문 중)

 

뭐든 인정하는 건 쉽지 않다. 그것이 치부를 건드리는 일이라면 더욱더. 햄릿은 미친 척을 하며 자신의 진심을 숨기지만 그가 진정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은 광기를 가장했을 때 품어져 나온다. 게다가 저 대사를 보라. 타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때 그는 자신의 광기를 핑계로 내세운다. 그의 광기가 ''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그 시대를 사는 누구도 당당하게 인정하지 않았겠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이 세상의 핵심이 되어 있었다.

 

연극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이를테면 자연에 거울을 비추듯이 선한 것은 선한 모습 그대로, 추한 것은 추한 대로, 이 시대와 이 시절의 참다운 모습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네.

(본문 중)

 

세상을 살피던 셰익스피어의 눈은 희망 가득한 세상에서 미묘한 균열을 감지했고 이 작품을 쓸 때쯤엔 그 균열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하다. 이상의 몰락과 좌절을 직시한 그는, 그 시대의 다른 예술가들처럼 이상과 현실의 갈등과 긴장 관계를 자신만 가능했던 개성 넘치는 글로써 표현한다. 그의 작품 속 상황이 현대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도 겉과 속이 다른 세상에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척하지 않고 대놓고 혐오하고 빼앗는다. 셰익스피어가 요즘을 살았다면, 햄릿은 미친 척하지 않았을 거다. 갈등하지도 않았을 거다. 르네상스의 갈등과 긴장 관계를 벗어던진 요즘을, 특히 대표 인물인 트럼프를 셰익스피어가 봤다면, 그는 햄릿에게 어떤 대사를 부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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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 원작소설 버티고 시리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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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크는 아내와 대학생인 딸, 고등학생인 아들을 둔 중산층 가장이다. 제지회사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오던 그는, 어느 날 정리해고의 대상이 된다. 소문은 있었다. 타업종들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정리해고가 언젠가는 이곳까지 들이닥칠 거라는.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버크는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고가 되더라도 자기 경력이 재취업을 보장해 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실업 상태로 2년을 보내야 했고 취업은 번번이 실패했다. 그 사이 집안 사정은 여러모로 나빠졌고 몰락의 공포와 맞닥뜨린 버크는 한가지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요즘은 세상이 그저 변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대변동이다. 끊임없는 대변동. 우리는 하이드로 변하는 과정의 지킬 박사에게 붙어사는 벼룩이나 다름없다.

(본문 중에서)

 

사회 변화에 휩쓸려 속수무책 나락으로 떠내려갈 때가 있다.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질 거라는 공포에 두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웬걸. 그 당시의 호랑이가 아닌 모양이다. 아님, 호랑이에도 등급이 있던지. 아무리 정신을 다잡고 현실을 직시해도 개인의 힘으론 모든 걸 지킬 수가 없다. ? 미국식 표현에 따르면 우린 하이드로 변하는 과정에 있는 지킬박사에 붙어사는 벼룩에 불과하니까. 하이드가 털어내기로 마음먹었다면 벼룩은 눌려 죽거나 외부로 튕겨 나갈 뿐이다. 벼룩에게 다른 길은 없다. 그런데 정말로 없을까? 아니, 있다. 동종 살해. 다른 벼룩들을 다 없애면 하이드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 나 혼자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버크는 마침내 살인을 시작한다. 버크가 실행에 옮긴 계획은 취업의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 버크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 아내에겐 듬직하며 믿음직한 남편이 되고 싶었고, 아이들에겐 물심양면 지원이 가능한, 든든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뿐이다.

 

이제 우리의 윤리강령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아이디어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본문 중에서)

 

버크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사람을 죽인다. 목표물뿐만 아니라 예기치 않았던 상황으로 인해 상관없는 사람까지도.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가족을 지켜야 했다. 그 목적 하나를 위해 그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목적만 옳다면 과정은 상관없다. 그것이 바로 버크가 깨달은 생존 방식이다. 현대 사회에서 뒷걸음질 치지 않으려면 나만 잘 버티며 걸음을 내딛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타인을 밀어버리는 게 선행되어야 한단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몇 개의 단어로 이 책의 내용을 대충 요약해 보겠다. 중산층 가장의 의도적 핏빛 우당탕 고군분투. . 잘 안 써 내려가던 글 마무리 성공이다. 목적만 옳다면 과정은 상관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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