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오로라 위픽
최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 사람 인. . 살짝 굽은 하나의 선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모습. 하나의 선만으론 균형이 맞지 않아 서 있지 못하지만 서로 기댐으로써 온전히 서게 되는 글자. 존재. 오래전부터 무서우리만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저 글자.

 

관계가 싫었다. 인연이란 단어가 끔찍했다. 혼자 있고 싶었고 그래서 사람이 싫었다. 외면하고 무시하고 분노하고 체념하고. 그런 감정들에 휘말려 몇 년이나 되는지 모를 긴 시간을 보내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그렇게 끔찍해하면서도 내가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어느 공원에서였다. 야간 알바를 끝내고 공원 한쪽 벤치에 앉아있다가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 거창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니었다. 나를 구원해 줄 필요도 없고, 나 대신 싸워줄 필요도 없고, 나를 사랑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냥 나를, 온전한 나를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 픽 웃었던가? 한숨을 쉬었던가?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투덜거린 건 확실하다. 아우, 이 지긋지긋한 희망. 예나 지금이나 난 투덜거리는 걸 좋아한다.

 

작가의 얘기처럼 <오로라>는 믿음과 사랑을 얘기한다. 기억과 망각이 있고, 인연과 깨달음이 있으며, 그 주변을 죽음이 얼쩡거린다. 마치 삶의 그림자인 것처럼. 그림자가 없는 존재는 유령일 터이니 삶과 죽음을 언제나 한 세트로 몰고 다니는 작가의 선택이 우울하다거나, 음울하다고 몰아세울 필요는 없겠다. 동전의 한 면만을 고집하는 건 꽤 위험한 일이니까. 계속 글을 써 나가겠다는 작가의 말이 기대된다. 그의 질문이, 질문에 대한 답변 아닌 답변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떻게 변화되어 갈까? 작가의 글을 몰아 읽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살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왜 서로를 갈구할까? 그토록 절망하면서 왜 그 절망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 할까?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난 어떻게 이 질문들을 한동안 놓아버릴 수 있었지? 앞의 두 질문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할 수 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 한겨레출판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장만 잘 읽히는 게 아니라 그 내용까지 쏙쏙 머릿속에 들어온다. 내 어머니가, 내 누나들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세대였다. 인식의 틀과 굴레에 갇혀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틀과 굴레의 산물인 늦둥이 아들로 태어난 내가 모를 수가 없었다. 소설을 다 읽지도 않았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런데 소설을 다 읽은 후 가슴이 내려앉았고, 그동안 중구난방 날뛰던 모든 단어가 그 밑에서 바스러졌다. 뭘 어쩌라고. 안타까움인지 허탈함인지, 뭔지 모를 감정에 허우적대며 바스러진 단어들을 뒤적이는데 딱 두 단어가 갑자기 선명하게 드러났다.

 

, 괜찮다.’ 어디 아픈 데 없으세요? 어디 불편하진 않으세요? 맨날 그 옷만 입지 말고 다른 옷 좀 사러 갑시다. 내 물음에 언제나 돌아오는 어머니의 대답은, 난 괜찮다. 조금은 누리고 사셔도 되는데, 아주 많이 누리고 사셔도 되는데, 왜 항상 괜찮았을까?

 

...

 

엄마, 그거 아나? 대를 이으려고 늦둥이로 태어난 아들내미는 엄마 세대에선 생각지도 못한 선택을 한 거?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살기로 한 거지. 대를 잇지는 못할 거 같고. 그래도 제사는 꼬박꼬박 지내니까 아버지랑 같이 와서 밥은 먹고 가요. 그보다 요즘 걱정이 있는데. 몇 년 전에 고양이를 입양했거든. 독립심 강하고 도도하고 우아하고 뭐 그럴 줄 알았지. 그렇긴 해. 나한테 딱 달라붙진 않는데, 독립심 강하고 도도하고 우아해서 그런지 항상 조금 떨어져서 나만 바라봐. 얘 세상에는 나뿐인 거지. 입양한 순간 내가 그렇게 만든 거야. 내 세상에 얘를 가둔 셈이야. 버려진 아이긴 했는데. 걱정도 팔자지? 다 어무이 닮아서 그런 걸 어쩌겠어. 그래도 이 아이는 싸우지 않고 빼앗지 않고 나와 많은 걸 나누는 세상에서 사니까 괜찮은 건가? 모르겠네. 동물을 사람처럼 생각하니까 영 헷갈리기도 하고. 암튼 결혼 안 한다고 아부지 뭐라 하시면 엄마가 말 좀 잘해줘요.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아들내미가 당신들의 고통, 고민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해 못 하는 고통과 고민이 많을 거라고.

 

우리 아 없다고 또 다른 아 때리고 그라믄 안된다. 누굴 패고 싶으면 차라리 공을 차라. 뛰고 달리고 땀 흘리고,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우리 집에 온나. 오믄, 우리가 뜨뜻한 밥 해주께. 알았제?


(본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원도 - 《구의 증명》이 있기 전 《원도》가 있었다!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혼해서 자식이 생기면 쓸 돈이 많다. 집도 구해야 하고 교육도 해야 하고. 기본적인 걸 충족시키면 그 이상을 해야 한다. 더 좋은 집을 사고 유학도 보내야 할 거 같고. 그러기 위해서 돈을 벌다 벌다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궁금증이 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삶을 부정하는 의문이 아니다. 어느덧 시간과 함께 사라져 버린 젊음이 그리워서, 돈 버는 기계가 된 듯한 현재가 안타까워서,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나이의 앞자리가 부담스러워서 나오는, 더 좋은 삶이 있지 않나 하는, 삶에 대한 애착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누구나 한번은 거쳐 가는 질문. 그런데 여기 비슷하면서도 다른 질문이 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왜 죽지 않고 살아 있는가?' 여기에 오기까지 지나온 길이 그토록 끔찍했는데 어째서 버텨내는가? 고통에서 비롯된 질문이다. 내 삶을 싹 다 부정해 버리고 싶을 만큼 거대한 고통에서.

 

어떤 아이는, 배고프다며 울다가도 엄마가 밥을 차려주면 숟가락을 집어 던지며 더 크게 운다.

원도가 그런 아이였다.

엄마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니야.

그런 아이였다.

엄마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야.

(본문 중)

 

원도는 많은걸, 아니 모든 걸 원하는 아이였다. '전부'란 단어만큼 명확한 건 없다. '공평'하게 '나눈다'라는 건 물질에서나 가능하지, 추상적인 관념에 있어선 어림도 없는 얘기다. 그래서 원도는 전부를 원했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명확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럴수록 세상은 원도 주변에서 멀어져 갔다. 모든 걸 원하면 원하는 만큼 세상을 밀어낸다는 걸 원도에게 제대로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이해와 용서, 자유와 책임, 만족과 믿음. 좋은 단어들이 원도 곁에 즐비했지만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나 불확실했다. 원도는 버둥거린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서 '인간관계'란 나쁜 의미로 바라보면 거미줄이나 다름없다. 버둥거릴수록 옴짝달싹 못 하게 되거든. 그렇게 원도는 세상을 밀어내고 혼자가 된다.

 

다시 질문. 왜 죽지 않았는가? 살아 있으니까.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은 이것뿐이다.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도 다른 답은 못 내놓을 듯하다. 삶에 정답이 있던가? 살면서 던지는 수많은 질문 중 명확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죽음은 아예 몰라서 두렵지만 삶은 알 듯 모를 듯, 그래서 버둥대고 후회하고 아쉬워하고. 그래서 모두에게 똑같지 않은. 그런데도 내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또는 내가 원하는 삶을 타인에게 강요하려고 하는. 그런 게 이 세상 속 삶이겠지. 그럼 또 다른 질문. 이런 삶을 살면서 어떻게 해야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레 미제라블 1 (한글) 더클래식 세계문학 81
빅토르 위고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장발장'이란 그림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현재 관점에서 본다면 저작권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세계 문학을 아동용 그림책으로 바꾼 시리즈가 아닐지 싶은데. 페이지마다 그림이 반을 차지하고 커다란 글씨가 나머지 반을 차지하는 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줄거리는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빵 한 개 훔쳤다고 지나친 벌을 받았고 출소 후 신부님의 관용으로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정도. '레미제라블'이란 버젓한 제목을 가진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중고등학교 시절쯤. 다행히 장 발장이란 주인공 이름은 머리에 각인된 상태였는데 '머리가 긴(장발) '이라는 뜬금없는 어린 시절 연상작용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다.

 

그렇게 가짜도 아니고 진짜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내 머릿속에 존재하던 소설을 이번에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싶어 도전했는데. 어라, 5권이다. 빵 훔치고 벌 받고 용서받아서 훌륭한 사람이 됐는데 어쩌자고 5권씩이나? 그래 어쨌든 일단 시작하자. 전자책을 내려받고 글씨를 보기 좋게 세팅한 후 페이지 수를 봤더니 전체 페이지가 800페이지다. 볼수록 놀라운 녀석이로세. 그래, 가 보자. 결론만 얘기하자면, ', , 용서, 훌륭한 사람'1권에 다 들어가 있다. 대략 2/3 정도 내용이다. 이것만으로도 기가 다 빠질 판인데 작가가 프랑스 혁명 전후의 인물들, 사상, 정치, 유행 등 거의 모든 시대 배경을 잔뜩 집어넣었다. 만약 각주를 따로 넣었다면 800페이지 중의 100페이지쯤은 가뿐히 차지했을 거다. 그래, 가 보자. 1권을 다 읽고 난 느낌은, 내가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장 발장(그림책)을 만났던 거였구나. 넌 대하소설이었어. 그것도 아주 불친절한. 그나마 다행인 건 할당된 페이지가 많은 탓에 작중인물이 갈등하면서 벌어지는 심리에 대한 묘사가 아주 세세하다. 그래서 함께 빠져들어 허우적대다가 ''하는 짧은 탄성과 함께 헤어 나오게 되는, 그런 힘을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이제 1권 읽었다. 주요 인물이라는 코제트는 아직 입도 뻥긋 못한 상태지만, 책에 있는 글씨 중 10~20% 정도는 전혀 이해 못 한 상태지만, 그래 가 보는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초를 키운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집에 있었고 2년 전까지도 베란다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의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몇 개가 추가되고 몇 개는 사라지긴 했지만, 개중엔 내 기억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던 녀석들도 있었다. 화분으로서 수명만 40년이 훌쩍 넘었단 얘기다. 어린 시절 주택에 살았을 땐 물을 주거나 비가 내릴 때면 무거운 녀석들을 낑낑대며 마당으로 들고 나가곤 했다. 화분이 내게 직접 무엇을 해준 건 없다. 하지만... 어쩌면... 화분을 나르며 낑낑대던 어린 시절 나는 '공존'이라는 개념을 무의식적으로 배우며 실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께 살아갔다.

 

사람은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내지 못한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세상엔 별의별 존재가 다 있으니까.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혼자서 버거워한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삶을 지탱한다. 삶을 더 윤택하게 한다. 너무 긍정적인가? 그렇다면 삶이 함몰되지 않게 한다. 소설 속 일화와 월화, 목화와 목수, 미수와 복일, 목화와 루나처럼. 같은 듯 완전히 다른 둘이지만 동전의 앞뒤처럼 둘은 같이 있음으로써 더욱 온전한 하나가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을 버텨낸다.

 

하지만 버텨낸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서 개인의 삶이 오롯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삶은 80억 지구 사람들의 삶 중 그냥 하나일 뿐일까? 아니면 나란 존재가 살아가는 삶과 다른 누군가의 삶, 또 다른 누군가의 삶들이 하나하나 합쳐져 80억 지구 사람들의 삶을 이룬 것일까? 말장난 같지만 '아무나 하나'인 것과 '오직 하나뿐'인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또한 그건 존엄의 문제이자 인간성의 문제이기도 하고, 존재 그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설에 나오는 특이한 능력. 눈앞에(꿈속에) 펼쳐지는 수많은 죽음 중에 지명된 단 한 명만을 살릴 수 있는 능력. 이 능력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갈등하고 고민한다. 사람마다 다른 태도를 보이지만 그 갈등과 고민은 다름 아닌 존재에 대한 거다. 어려운 시절 다양한 죽음을 몸소 겪은 임천자에겐 그 능력은 기적이었고, 발전을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린 시대를 살았던 장미수에겐 악마의 재능이었고, 이미 물질적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에 발을 딛고 있는 목화에겐 자기 자신과 모든 대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몰가치의 능력이다. 그래서 임천자는 순응했고, 장미수는 신복일과 함께 버텨냈고, 목화는 목수와 함께 아무나 하나가 아닌 의미 있는 단 한 명(자기 자신이든 구하는 대상이든)이 되기 위해 길을 찾아 나섰다. 세대마다 배경과 가치관이 다를 테니 대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것 하나. 함께. 같이.

 

화분을 죽였다. 40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집안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다 지켜보았을 텐데. 내 희로애락을 모두 함께 겪었는데. 3년 전 고양이를 입양했다. 길에 버려졌던 생후 2개월 된 새끼 고양이를. 바깥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화분을 돌보고 고양이를 돌보고. 그러다 보니 소홀해졌다. 식물은 불만을 얘기하지 않으니까. 4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그들은 내게 아무나 하나였을 뿐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그건 아니란 결론에 도달했다. 이별을 아주 과격한 방식으로 했을 뿐.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이고 삶을 파괴당한 그들은 소설처럼 내게 고약한 선택을 강요할까? 그렇다면 3년쯤 나와 함께 산 고양이는, 지금 내 옆 책상 위에서 자는 중인 고양이는 나를 도와줄까? ... 그럴 거 같다. 츄르만 계속 준다면.

 

세상엔 세상 사람만큼의 신이 있고, 세상 사람만큼의 삶이 있다. 자기의 신을 가질 수 있는 그들이 온전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관계를 통해 함께, 서로 보듬는 것. 하지만 관계는 긍정적인 만큼 부정적이기도 하다. 40년을 함께 한 내가 화분 속 식물 입장에선 유일한 관계였던 것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