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을 쫙 피고 들여다본다. 올해 들어서 오른쪽 손가락 관절 일부가 통증을 호소하곤 한다. 청소하거나 무언가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처럼 일정 시간 이상 힘이 가해지면 그렇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을 쫙 펴보지만, 축 처진 어깨처럼 금방 오그라든다. 하아, 세월 진짜. 아직 다섯 살인 고양이가 높은 곳에 올라앉아 바닥에 있는 나를 내려다본다. 언젠가 고양이도 예전 같지 않을 텐데, 그때가 되면 나처럼 무심한 세월에 투덜댈까?


오른손을 쥐락펴락 해본다. 움직일 때마다 감각이 느껴진다. 내 모든 감각은 나를 정의한다. 정의한다고? 그보단 인식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나를 인식하고, 고양이를 인식하고, 그 너머 세상을 인식한다. 세월이 흘러서 죽음과 맞닥뜨리면, 무(無)가 된다면, 대상을 인식하던 나는 증발하듯 단절되는 걸까? 누구나 몸의 퇴행을 겪으며 육체의 소멸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정신의 소멸은 그만큼 확신하지 않는다. 물질의 영역을 넘어서 종교나 철학, 또는 미지의 영역이라 그러겠지. 지금 나를 인식하고 있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완전히 지워질까?


오른손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뒤집어본다. 이 모든 걸 인식하는 나는 태어나기 전엔 무엇이었을까? 아니, 사실 그건 별로 궁금하지 않다. 죽음 이후가, 완전한 무(無)가 된다는 게 가장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이 의문에도 내 이기심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이전에 무엇이었든, 이후에 무엇이든, 지금의 내가 완전히 지워지듯이 사라지는 게 살짝 억울한 거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전의 내가 있었을까?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후의 내가 존재할까? 생각 속에서 방향을 상실하면 언제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또 나뿐이다. 계속 나를 쳐다보는 고양이에게 묻는다. 고양이, 너는 이 막막함과 이 또렷함이 뒤섞인 이질감을 어떻게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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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입양하고 나서 가장 많이 집을 비웠던 시간이 53시간이었던 듯싶다. 2박3일 일정의 일본 여행이었지만 느낌상 1박2일 같았던 교토 구경. 내년 계획 중인 여행은 그보다 10시간 정도 더 길듯한데. 여러모로 고민이다. ***


아저씨가 사라진 지 삼 일째. 밤이 두 번 지나갈 동안 간식을 못 먹었다. 해가 세 번째 아침 인사를 건넸는데 아직도 변기 물이 안 내려가고 있다. 내내 켜져 있는 마루 전등불이 두 번이나 기세를 잃었는데도 사냥놀이 한 번 하지 못했다. 이, 이 형편없는 복지를 내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었을 때, 커다란 가방을 등에 둘러맸을 때, 두세 배나 길게 열심히 빠이빠이를 할 때, 난데없이 간식을 퍼줄 때, 알아챘어야 했다. 이 멍청한 고양이 같으니. 까까에 히죽대던 과거의 난 얼마나 바보 같았던가. 앞으론 절대 까까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별에 연락해서 감시 모드를 암살 모드로 바꿀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돌아오기만 해 봐라. 자고 있을 때 명치를 꾹 밟고 지나갈 테다. 냥, 까까 먹고 싶다. 밥통이 무미건조하게 비명을 내지르며 밥알을 내뱉는다. 하루 세 번. 이 좁은 세상에 나를 생각하는 건 밥통뿐이구나. 미안한데, 밥통아, 밥 말고 까까를 뱉어주면 안 될까? 이런! 이런! 미안하다니! 고양이가 미안하다니!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감정을. 내가 미쳐가는 중인가? 아악, 집고양이가 어떻게 밥만 먹고 살 수가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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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은 비교적 단조롭다. 공간은 변함없고, 가구는 굳건하다. 까만 고양이와 마른 집사가 간혹 투닥대지만, 그 역시 5년이나 지속되었던 일이라 소란스러운 고요에 가깝다. 계절의 변화도 이 안에선 다채롭지 않다. 드나드는 바람이 시원해진 이후론 더욱 그렇다. 남아 있는 여름의 흔적이라곤 내 옷차림과 여름용 홑이불과 그 이불을 덮고 잠들었다가 잠결에 저 멀리 내치는 내 행동 정도. 그걸 제외하면 가을의 영역이 폭넓게 여름의 뒤꽁무니를 뒤덮고 있다. 지루하다. 바깥보다 안을 좋아하는 나는 무덤덤함에 익숙하지만, 간혹 발작적으로 투덜댈 때가 있다. 아무 생각이 안 나!


컴퓨터 앞에 앉아 쓸데없이 머리만 굴리다가 고양이의 동태를 슬쩍 살핀다. 캣타워에서 방석에 머리를 기대고 자는 중이다. 이제 곧 내려와 까까 내놓으라고 보챌 시각이다. 점심 먹고 한 시간이 넘게 모니터와 눈싸움을 벌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름이 몽니를 부린 것일까? 잠결에 이불을 걷어차는 내 발길질에 차이기라도 했을까? 이 집구석에서 유일하게 활기찼던 내 상상력을 함께 데리고 간 모양이다. 네가 그걸 어디에 써먹으려고! 에잉, 오늘은 뜨거운 김치찌개나 끓여서 가을이나 반겨야겠다. 어이 고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여름이 손잡고 창문 틈으로 끌고 나가는 애 있으면 좀 챙겨둬라. 걔 없으면, 나 너무 심심해서 안 되거든.


꼬리말) 정말, 정말 여름이 간 거 같다. 이 글을 쓴 뒤로 며칠 사이에 이불과 나는 새벽녘,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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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님은 두 분 모두 1920년대생이다. 큰누나는 50년대, 누나는 60년대, 나는 70년대에 태어났다. 부모님과 세대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식끼리도 세대 차이가 있다. 큰누나는 어린 시절을 다른 곳에서 보냈지만, 누나와 나는 어머니의 극진한 보호 속에서 컸다. 과보호의 피해는 이후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갔지만, 누나의 타격이 가장 컸다고 해야겠다. 나는 누나를 반면교사 삼았으나 누나는 그럴 대상조차 없어서 몸소 부딪히고 깨져야 했으니까. 큰누나는 일찍 결혼해서 출가한 탓에 그 혼돈을 직접 겪진 않았다. 그래도 웬만한 과정을 다 듣거나 지켜봤고,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니 큰누나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큰누나는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자식들에게 똑같이 집착했다. 특히 아들에게. 세부적인 사건·사고는 달랐지만, 어머니와 누나와 내가 휩쓸렸던 혼란에 큰누나 역시 휩쓸리고 말았다. 달랐던 점이라면, 내가 빠진 혼란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마무리됐고, 큰누나의 혼란은 큰누나가 직접 선을 그으면서 정돈했다는 거. 큰누나가 한 성격 하거든. 다만 뒤에 남은 서운함은 부모 처지에서든, 자식 처지에서든 어쩔 수 없는 일.


우린 살면서 항상 어딘가로 향한다. 가다가 가다가 계속 갈 수도 있고, 흠칫 놀라 되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되돌아왔다고 해서 그 자리가 처음과 같은 자리일 리도 없다. 어떤 경험을 했다면 사람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고 변했을 테니까. 그런데 이렇게 변한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까? 희한하게도 우린 같은 방향으로 다시 전진하고 또 흠칫 놀라 돌아온다. 당사자가 이 모양인데 그걸 지켜본 타인이 다 알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건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니까 우린 살면서 항상 어딘가로 향한다. 삶의 굵직한 방향성을 따라 어떤 대로를 따라 걷다가 벽에 부딪혀 다른 길로 되돌아와서 멈춰 선다. 잠시 망설이다 다시 비슷한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하지만 이전에 갔던 길은 아니다. 우리 발자국은 언제나 한 방향만 향한다. 삶의 모든 길은 일방통행일지도 모르겠다.


꼬리말) 글의 제목이 AI가 내놓은 문장이다. 듣자마자 ‘함흥차사’가 떠올랐지만 바로 고개를 저었고, 다음엔 다소 추상적인 이미지의 ‘길’을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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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원 그 아저씨가 하루 입원을 할 일이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엄청난 두 자릿수 주식 수익률(단, 마이너스)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두어 달에 걸쳐 매주 주말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오더니 평일엔 쉬지 않고 일에 매진하는, 그야말로 치열한 삶을 7월부터 살았다. 그러다 팔꿈치 쪽에 기스가 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그는 마지못해 하루만 병원 신세를 지기로 했다.


6인 병실. 중국인 노인분이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 병실 생활을 참아내고 있었다. 베트남 환자분은 애인이 간병을 담당하며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노인 한 분은 아내가 간병을 맡았는데, 환장의 티키타카로 말씀들을 쏘아 올리며 세월을 감내하는 중이었다. 대공원 그 아저씨는 꾹 참으며 조용히 밤을 기다렸다. 미안하고 조심스러운 마음 같은 건 진작에 사라졌다. 드디어 밤이 왔고, 조용히 누워 눈을 감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내 경험에 따르면, 대공원 그 아저씨의 코골이는 가히 예술의 경지다. 듣는 이의 신경을 들었다 놨다 하는 스펙터클한 높낮이와, 심장을 덜컥 하게 만드는 폭풍전야 같은 무호흡과, 정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로 쉼 없이 휘몰아치는 들숨 날숨의 향연은 정말이지…. 복수의 밤이 지나갔고, 그의 모험담은 내게 전설이 됐다. 아, 좀, 적당히 좀 살자, 이 아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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