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저녁을 먹고 느긋한 마음으로 거리를 걷는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 친구의 일 끝나는 시각이 9시 전후라 늦은 식사에 두어 시간 보낸 후 후딱 헤어졌겠지만, 이날은 다행히 우리 모두 쉬는 날이었다. 이 동네는 내가 대여섯 살부터 20년을 넘게 살았던 곳이다. 동네를 떠난 후 다시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익숙한 무엇이 존재하는 장소. 우린 모처럼 함께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간다. 그땐 ‘국민학교’였고, 특이하게도 대학 캠퍼스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겼고, 대학의 다른 건물로 사용 중이다. 학교 건물을 지나 당시 옆문으로 불렀던 조그마한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친구와 보조를 맞추며 걷던 내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며 그 옛날 어느 시절의 풍경 속으로 뒷걸음질 친다.
80년대 중반. 아마 4학년쯤. 학교에서 대절한 버스에서 내린 남자아이는 이제 집으로 가면 된다는 홀가분한 마음에 젖어있었다. 전체 학교 학급 임원들을 모아 어딘가에 견학을 갔다 온 후였다. 그런데 선생님과 인사하고 일행이 모두 흩어지고 나서도 남자아이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같은 반 여자아이가 자기를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다. 부탁을 거절할 만큼 똑 부러지지 못했던 남자아이는 그러자고 하며 발길을 떼었다. 대학 건물 뒤쪽의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고, 옆문을 통과했다. 이성에 일찍 눈뜬 여자아이와 이성을 감도 잡지 못했던 남자아이. 어른들이 그때 그 광경을 봤다면 피식 웃었겠지만, 당사자 둘은 나름 심각했었을 시간이 흘렀다. 기대감에서 초조함으로, 당황함에서 더 큰 당황함으로. 같은 길을 걷는 발걸음에 다른 감정이 스며들었다. 남자아이에겐 아주 긴 시간이었다. 여자아이가 대문 뒤로 사라지자, 남자아이는 의문을 가득 품고 무작정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니, 쟤가 갑자기 왜 저런데?’
내가 이곳에서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왜, 다리 아파? 아니, 여기 많이 변했네. 그러게, 예전엔 단독주택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 연립으로 바뀌었어. 그랬다. 외형이 변했다. 심지어 길도 변했다.
5학년. 남자아이는 여전히 이성에 둔감했지만 한 학년 많은 어떤 선배 누나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알았다. 그땐 몰랐다.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달은 건 한참이 지나서였으니까. 작년 짐 정리를 하면서 초등학교 앨범을 뒤적였다. 무심코 기억을 더듬던 나는 선배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엔 알아보지도 못했다. 짝사랑이란 감정에 얽힌 추억이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시켜 놓은 탓이다. 세상에나. 건물도, 길도 변해버린 장소에서 기억은 잊지 않고 추억을 더듬는다. 하지만 추억이란 건 보정 작업을 거친 기억과 같은 것. 그 너머를 살피지 않는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억의 여백을 주의하지 않는다면 과거는 내가 만들어낸 가상 현실일지도 모른다. 친구가 말한다.
이 시간에 이렇게 걸어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현실은 확고한 것. 우리 발걸음을 통해 지금 이 길에 어떤 감정이 스며들지 알 수 없으나, 네가 있어서, 내가 있어서, 그렇게 우리가 여전히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꼬리말) 이번에 AI가 던진 문장은, ‘기억은 도시의 지도이고, 잊음은 그 지도의 여백이다.’ 지난번 썼던 <도시는 걷는 속도로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의 연장선에서 나온 문장인 듯하다. 한동안은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며 과거를 헤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