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화에 실패하고 나서 월이는 나 빼고 모든 사람을 무서워한다. 손님이 오면 어딘가 숨어서 절대 나오지 않고, 인터폰에서 벨 소리만 울려도 낮은 포복 자세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해도 도망, 관리실에서 방송이 나와도 도망, 어떤 기계에서든 목소리만 들려도 줄행랑을 쳤다. 그나마 요즘은 핸드폰이나 방송에선 실제 사람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자리를 지킨다. ***
(초겨울 어느 날)
(벽에 부착된 스피커 관찰 중) 내가 말이지, 눈에 보이거나 기척이 느껴지는 귀신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이 집구석은 어떻게 된 게 보이지도, 냄새가 나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귀신이 있단 말이지. 저 위쪽 벽에 붙어있는 네모났고 구멍 숭숭 뚫린 거! 가끔 관리사무소 어쩌고 하면서 느닷없이 뭐라고 하는데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제 날이 제법 춥네. 보일러를 켜야겠다.”
내가 둔해졌나? 고양이 체면이 말이 아닌데...
(기계음) “보일러 설정이 완료됐습니다.”
아이, 깜짝이야! (후다닥) 뭐냐, 뭐냐? 이 여자는 또 누구냐? 어디야, 어디?
“야, 겨울에 한두 번씩 나오는 보일러 언니잖아? 뭐가 무섭다고 소파 밑으로 들어가냐? 아우, 쫄보 자슥.”
(여름 어느 날)
“새 에어컨이 좋긴 좋구나. 바깥에서 핸드폰으로 조작할 수도 있고, 전기요금도 덜 나오고.”
(뒹굴) 시원하네. 여기가 천국이네. 천국은 고양이별보다 더 좋나? 에라, 모르겠다. (뒹굴)
“아직 초여름이니까 밤에는 좀 끄자.”
(기계음) “AI 모드로 0.2kW를 절약했습니다.”
우와, 우와! (후다닥후다닥)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
“겁나 빠르네, 자슥. 침대 밑으로 갔냐? 이제 이 목소리 여름엔 매일 들을 거야. 에어컨 언니니까 너무 놀라지 마라.”
아니, 무슨 기척 없는 언니들이 이렇게 많아! 이러니까 아저씨가 예전에 맨날 가위눌렸지!
“3D로 사람이 튀어나오게 만들면, 저 녀석 제명대로 못 살겠네, 에휴. 옛날 <링> 영화가 무섭긴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