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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입양하고 나서 가장 많이 집을 비웠던 시간이 53시간이었던 듯싶다. 2박3일 일정의 일본 여행이었지만 느낌상 1박2일 같았던 교토 구경. 내년 계획 중인 여행은 그보다 10시간 정도 더 길듯한데. 여러모로 고민이다. ***


아저씨가 사라진 지 삼 일째. 밤이 두 번 지나갈 동안 간식을 못 먹었다. 해가 세 번째 아침 인사를 건넸는데 아직도 변기 물이 안 내려가고 있다. 내내 켜져 있는 마루 전등불이 두 번이나 기세를 잃었는데도 사냥놀이 한 번 하지 못했다. 이, 이 형편없는 복지를 내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었을 때, 커다란 가방을 등에 둘러맸을 때, 두세 배나 길게 열심히 빠이빠이를 할 때, 난데없이 간식을 퍼줄 때, 알아챘어야 했다. 이 멍청한 고양이 같으니. 까까에 히죽대던 과거의 난 얼마나 바보 같았던가. 앞으론 절대 까까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별에 연락해서 감시 모드를 암살 모드로 바꿀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돌아오기만 해 봐라. 자고 있을 때 명치를 꾹 밟고 지나갈 테다. 냥, 까까 먹고 싶다. 밥통이 무미건조하게 비명을 내지르며 밥알을 내뱉는다. 하루 세 번. 이 좁은 세상에 나를 생각하는 건 밥통뿐이구나. 미안한데, 밥통아, 밥 말고 까까를 뱉어주면 안 될까? 이런! 이런! 미안하다니! 고양이가 미안하다니!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감정을. 내가 미쳐가는 중인가? 아악, 집고양이가 어떻게 밥만 먹고 살 수가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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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화에 실패하고 나서 월이는 나 빼고 모든 사람을 무서워한다. 손님이 오면 어딘가 숨어서 절대 나오지 않고, 인터폰에서 벨 소리만 울려도 낮은 포복 자세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해도 도망, 관리실에서 방송이 나와도 도망, 어떤 기계에서든 목소리만 들려도 줄행랑을 쳤다. 그나마 요즘은 핸드폰이나 방송에선 실제 사람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자리를 지킨다. ***


(초겨울 어느 날)


(벽에 부착된 스피커 관찰 중) 내가 말이지, 눈에 보이거나 기척이 느껴지는 귀신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이 집구석은 어떻게 된 게 보이지도, 냄새가 나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귀신이 있단 말이지. 저 위쪽 벽에 붙어있는 네모났고 구멍 숭숭 뚫린 거! 가끔 관리사무소 어쩌고 하면서 느닷없이 뭐라고 하는데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제 날이 제법 춥네. 보일러를 켜야겠다.”


내가 둔해졌나? 고양이 체면이 말이 아닌데...


(기계음) “보일러 설정이 완료됐습니다.”


아이, 깜짝이야! (후다닥) 뭐냐, 뭐냐? 이 여자는 또 누구냐? 어디야, 어디?


“야, 겨울에 한두 번씩 나오는 보일러 언니잖아? 뭐가 무섭다고 소파 밑으로 들어가냐? 아우, 쫄보 자슥.”


(여름 어느 날)


“새 에어컨이 좋긴 좋구나. 바깥에서 핸드폰으로 조작할 수도 있고, 전기요금도 덜 나오고.”


(뒹굴) 시원하네. 여기가 천국이네. 천국은 고양이별보다 더 좋나? 에라, 모르겠다. (뒹굴)


“아직 초여름이니까 밤에는 좀 끄자.”


(기계음) “AI 모드로 0.2kW를 절약했습니다.”


우와, 우와! (후다닥후다닥)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


“겁나 빠르네, 자슥. 침대 밑으로 갔냐? 이제 이 목소리 여름엔 매일 들을 거야. 에어컨 언니니까 너무 놀라지 마라.”


아니, 무슨 기척 없는 언니들이 이렇게 많아! 이러니까 아저씨가 예전에 맨날 가위눌렸지!


“3D로 사람이 튀어나오게 만들면, 저 녀석 제명대로 못 살겠네, 에휴. 옛날 <링> 영화가 무섭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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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26-09-2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오늘도 사랑스러운 월이랑 좋은 하루 보내세요~!!!^^

대굴대굴 2026-09-28 10:4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ㅋ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물그릇에 담가 놓을 때가 종종 있다. 어렸을 땐 꽤 자주 그랬고, 요즘은 어쩌다 한 번씩.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내 관심을 끌려고. 내가 집에 없을 때,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저런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물그릇 주변에 끈 같은 게 있으면 그걸 물어서 물그릇에 넣거나, 놀다가도 물그릇 주변을 지나갈 때면 간혹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걸 저기다 처넣을까? 고양이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


(아깽이 시절 그냥 커다란 유리 물그릇일 때)


오오, 빛이 반사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저 삐까번쩍함! 우와, 멋지다! 흔들흔들, 번쩍번쩍. 혹시 저것이 신 앞에 떠 놓고 소원을 빌 때 썼다던 정화수(정안수)라는 것인가? 잠깐, 그렇다면! (두리번, 후다닥)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너구리 꼬리 장난감인데... 이거 줄 테니까 신님아, 내 소원 좀 들어주라. 야웅, 야웅... 야웅, 야웅...


“야, 너 그걸 왜 또 담그는 건데! 물 방금 갈았는데 또 씻어야 하잖아!”


아 씨, 어디 있다 귀신같이 나타나가지고.


(자동 급수기로 바꾼 후)


물이, 물이 졸졸졸 흘러나오는데?! 아니, 어디서? 주변에 강이나 시냇물도 없는데? 오, 이것은 신이 축복한 물줄기인가? 그렇다면! (두리번, 후다닥) 이거, 내가 아직도 제일 좋아하는 너구리 꼬리 장난감인데... 너무 오래 가지고 놀아서 반 토막뿐이지만, 이거 줄 테니까 신님아, 내 소원 꼭 들어주라. 야웅, 야웅... 야웅, 야웅...


(현관문 여는 소리, 일 끝내고 돌아온 아저씨 등장) “야 인마, 또야! 아니, 왜 그러는 건데? 물통 또 씻어야 하잖아! 니가 닦아, 이눔의 자슥아!”


아이, 참, 어떻게 알고 들어왔대? 귀신이네, 귀신.


(그날 밤)


아저씨는 침대에 누웠지? OK. 그렇다면... (슬금슬금) 너구리 꼬리를 이렇게 놓고. 신님아, 이번에는 동작 좀 빨리빨리 하자, 알겠지?


야웅, 야웅...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먹을 것도 팍팍 안 주는 저 아저씨...) 야웅, 야웅... (살 좀 찌고 넉넉해서 마음이 여유로운 새 아저씨로 바꿔 주세요...) 응? (고개만 빼꼼 내밀고 쳐다보는 아저씨와 눈 마주침) 으악!


“이 개눔의...”


(후다닥. 소파 밑으로 피신) 진짜... 귀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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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채터링)

새 : 오늘은 전할 말이 뭐냐, 짹?


내가 비밀 하나 얘기해 줄까?


새 : 무슨 비밀?


나, 욱하면 헐크로 변한다. 헐크가 뭔 줄은 아냐?


새 : 나 안다, 헐크. 녹색 덩치. 근데 어쩌다 그렇게 변했냐?


병원 갔는데 선생님이 자꾸 여기저기 찔러대서 순간 욱하고 정신줄 놨다.


새 : ... 화가 난 게 아니고 무서워서 그런 거 같은데.


에헤, 무섭다니! 내 사전에 무서움이란 단어는 없다! 내가 선생님을 뒷발로 뻥 차버리고 그대로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이동장으로 쏙 들어갔다. 아저씨가 그러더라.


새 : 무서웠던 거 같은데.


이 새대가...(꿀꺽) 아니... 내 눈을 봐봐! 초록색이잖아! 이 눈 어디에 겁대가리 같은 게 있겠냐?


새 : 온몸이 초록색으로 변했냐?


털은 그대로였을걸. 어쩜 피부가 변했을지도.


새 : 힘이 세졌냐?


뒷발로 선생님 물리쳤으니까 조금 세지지 않았을까?


새 : 성질만 지랄맞아진 거 아니고?


... 너, 많이 컸다. 말도 제법 잘하고.


새 : 조두의 전성시대가 왔으니까. 뭐, 말만큼 힘이 세졌다고 해줄게, 짹.


말 본 적 있냐? 말이 어떻게 생겼냐?


새 : 헐크는 아는데 말은 모르냐?


TV에서 본 적이 없거든.


새 : 말은 네발 달리고 얼굴이 길고 덩치가 큰 짐승이다. 한동안은 사람을 등에 태우고 달리느라 등골이 휠만큼 힘들었다더라. 가끔 뒷발질하는 데 무척 위력적이다.


뒷발질은 왜 하는데?


새 : 이불킥 같은 거다. 옛날에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나 부끄러움에 하는 거.


옛날에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새 : 태곳적에 발이 빠른 네발짐승들 몇몇이 모여 겁도 없이 신께 대든 적이 있다. 그때 저주받아서 말은 달려야만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게 됐다.


오, 또 저주냐? K-pop도 아니고 한때 엄청 유행했구나.


새 : 시간 많으면 공부 좀 해라.


고양이는 공부 같은 거 안 한다. 근데, 그러면 사람은 무슨 저주를 받았냐?


새 : 그건 들어본 적 없다.


날아다니면서 공부 좀 해라.


(푸드덕)


삐졌냐? 그래, 가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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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검진과 스케일링을 받고 깨어난 월이는 아주 멀쩡해 보였다. 마취에서 깬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사료를 줘야 했는데, 그사이 먹을 걸 내놓으라고 엄청 눈치를 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틀 후, 녀석은 먹는 걸 거부했다. 사료든 간식이든 먹을 때가 되면 쪼르르 달려왔다가 입에 넣어보고 곧장 뱉어냈다. 스케일링 후유증이었다. 가뜩이나 예민한 녀석인데 치아 감각이 이상해지니 아예 먹는 걸 참기로 한 거다. 그날부터 3일 동안 녀석은 츄르만 먹었다. 내 속은 걱정으로 썩어 들어갔고. ***


아고, 힘 없어라... 세상이 노랗구나. 내 눈은 초록색인데... 계속 츄르만 먹어서 그런가... 아, 씨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하네. 입속이 왜 이러지? 지난번 선생님이랑 있다가 정신 차려보니 이렇단 말이지. 이거, 이거, 나를 굶겨 죽이려는 속셈인가? 내가 아저씨를 감시하려는 걸 막으려고?


(아저씨는 걱정돼서 고양이 주변을 끊임없이 얼쩡대고 있음) “왜? 왜 그렇게 계속 쳐다보는데? 배고파? 먹을 거 줄까?”


아무리 봐도 딱히 대단해 보이지 않는 아저씬데. 그건 그렇고 3일간 츄르만 먹었는데 배가 안 고프겠냐, 이 아저씨야. 이렇게 생각 없는 아저씨 감시하는 걸 막으려 할 리는 없고. 냥, 내가 뭘 놓친 게 있나?


(아저씨, 계속 고양이 주시 중) “왜? 왜 그렇게 게슴츠레 축 처져 있는데? 힘없어?”


3일간 츄르만 먹었는데 힘이 남아돌겠냐, 이 아저씨야. 에잇, 모르겠다. 화장실이나 갈란다.


(터덜터덜. 쉬와 응가. 응가는 설사로 작렬) 앗, 아저씨, 응가가 노란색이다! 나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냐? 아까는 하늘도 노란색이었다!


(요란한 모래질에 뒤따라 들어온 아저씨, 오묘한 표정으로 화장실을 살핌) “츄르가...”


그러고 보니, 아까 옛날 장면들이 머릿속으로 쭈욱 흘러갔다. 이런 걸 주마등이라고 하지 않냐?!


“더 이상 안 되겠네. 바꿀 때가...”


헉, 나 고양이별로 돌아가야 하냐?! 너무... 짧은데... 


“이리 와 봐.”


(터덜터덜) 아저씨, 내가 고양이별에 돌아가거든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줄 거다. 청소도 열심히 하고, 화장실도 잘 치우고, 밥도 시간 맞춰 잘 주고, 어엉엉.


(부스럭) “그만 웅얼대고 이거 한 번 먹어보자. 아저씨가 잘게 부쉈으니까 먹기 편할 거야.”


(날름) 엉엉. 쩝쩝. 어라, 입안 아픈 게 좀 낫네?


“이제 좀 괜찮아? 먹을만해?”


(날름) 쩝쩝. (날름) 쩝쩝. (입에 들어갔다가 덩어리째 바닥에 흘림) 


“... 이거 먹어라. 새 거다.”


내 침 묻었다. 입에 들어갔다 나온 건 안 먹는다.


“이 자슥이...”


그냥 간다? 확 안 먹어버린다?


“오구, 오구, 잘 먹는다. 그래, 그렇게라도 먹어라. 그게 어디냐.”

 

기분 나빠지려고 하는데... 고양이별 얘기는 취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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