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하다가 뭔가 콕콕 찌르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빨래 건조대에 걸어둔 청바지 아래로 고양이가 쳐다보고 있다. 집사 전용 CCTV가 작동 중이다. 녹화 내용은 CCTV 마음대로, 저장 기간은 CCTV 수명이 다할 때까지. 녀석의 눈을 보다가 몇 시간 전 외출했다가 봤던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정류장에 멈춘 버스 창밖으로 개 두 마리가 보였다. 목줄에 묶여서 산책을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산책 말고도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 엄마의 배웅. 엄마가 버스를 타서 내 뒤를 지나 버스 안쪽으로 쭉 들어가자, 개들의 시선도 그에 따라 이동한다. 엄마만을 보겠다. 엄마만 찾겠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안 있어 창밖에 또 한 마리의 개가 포착됐다. 이번엔 목줄도 없이 그냥 건물 앞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다. 1층이 카센터였던 걸로 얼핏 봤는데 아마 그 가게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무료함과 듬직함이 느껴지는 자태. 같은 날은 아니지만 며칠 전 봤던 다른 개의 모습도 있다. 산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써브웨이 앞을 지나는데 개 한 마리가 출입구 앞에 철퍼덕 배를 깔고 앉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장 안에 외국인이 있었는데 아마 그 사람을 기다리는 듯했다. 자세는 웃기지만 애잔하면서도 애틋한 분위기.


개들의 모습과 이미지를 날려 보내고 다시 고양이를 본다. 자기만 바라보라는 욕망과 전혀 믿음직하지 않은 가벼움과 투덜거리며 짜증 난 듯한 분위기. 도대체 어떤 지점에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게 갈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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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이 사퇴했다. 당연한 순서다. 지금부터 변화를 꾀하는 자들과 변화의 대상이 된 자들 사이에 치열한 물밑 싸움이 일어날 거다. 각종 언론 플레이에 진흙탕 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테고, 그걸 빌미로 온갖 자극적이고 애매모호한 콘텐츠들이 마치 사실인 양 우후죽순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편이 갈리고, 온갖 생각을 바탕으로 한 주장들이 난무하고. 윤어게인이 있듯이 협회 포에버, 어쩌면 한국인 포에버를 외치며 동정과 옹호를 보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건대, 젊은 세대에서만큼은 그런 동정론이나 주장이 없길 빈다. 변화를 갈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절차상의 비민주성과 불공평함. 그걸 외면한다면, 그냥 오래 묵은 똥이냐, 새로 싼 똥이냐 그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응가 얘기하니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AI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가스라이팅을 통해 편향된 사고방식을 고착시킬 수도 있다며 비판한다. 그런 사례들이 분명히 존재하니 타당한 비판이라 본다. 그럼, 유튜브나 엑스 같은 콘텐츠들은? 이것들은 옳은 정보만 제공하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유도했던가? 부정적 측면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새로 싼 똥이냐, 오래 묵은 똥이냐 그 차이인 듯한데 말이지. 그래서 정말 정말 궁금한데, 저기 말이요, 생물학적 진화 말고 디지털 진화로 인해 밀려나는 세대를 위해서 그 디지털 문화를 비판해 본 적은 있소? 그러니까 그 똥이 내가 밟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밟을 때도 외면하지 않았냐, 그 말이오? 아 씨, 왠지 난 당당하게 얼굴 들 자신이 없네.


너희들 중 죄 없는 자 내게 돌을 던져라.


흐음... 죄송합니다. 당당한 게 무엇 하나 있을지 궁금한 삶이지만 이번에도 돌을 던지겠습니다. 그 대상이 핍박받고 소외된 존재는 아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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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는 내겐 상상 속 유니콘 같은, 하지만 하찮은 ***


(쫑긋) 저, 저 멍멍이 자슥이. 시도 때도 없이 짖어요. 이 아파트에 너만 사냐! 근본 없는 종족 같으니. 우리 고양이별에 전해지는 고양이 성경에 따르면, '태초에 신과 함께 고양이가 있었으니, 이후 사건 사고가 잇따르더라. 신은 귀여움만으론 세상의 혼란을 막을 수 없다 판단하여 다른 종족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혼란의 책임을 물어 고양이에게 하찮음을 부여하셨다.' 봐, 우리가 이 정도라고. 멍멍이랑은 차원이 달라. 멍멍이처럼 사람이랑 같이 사는 건 똑같은 거 아니냐고? 아니지! 우리 고양이들은 당당하게 빌붙어 사는 거라고! 꼬리 흔들고 헥헥거리는 멍멍이랑 비교하다니!


내가 비밀 하나 얘기해줄게. 고양이별과 강아지별은 살짝 라이벌 관계이긴 해. 사실 지구별은 강아지별이 먼저 발견해서 자리를 잡긴 했지. 우린 게으르거든. 응? 그게 뭐? 게을러도 우린 잘 먹고 잘살 수 있어. 그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데. 암튼 고양이는 지구별에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당당하게 빌붙어서 자리를 잡았지. 멍멍이의 자리를 뺏은 건 아니야. 멍멍이는 싫든 좋든 사람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할 거고. 우린! 사람의 운명을 지켜볼 거야. 태초의 우주를 담은 이 눈으로. 그러다…. 아니다, 아니야. 여기까지. 고양이는 신비한 종족이니까 속속들이 다 알려줄 필요는 없지.


그러니까 (멍멍) 고양이를 (멍멍멍) 강아지와 (멍멍) 같은 선에 (멍멍멍) 야잇! 조용히 해랏! 넌 귀도 안 아프냐! 개 같은 눔아! ... 인간들아, 무슨 욕을 이따위로 만들어놨냐? 개한테 개 같다고 해도 욕이 아니잖냐? 냥. (찰칵) 오, 아저씨다, 아저씨! 까까가 들어온다~ 까까~ (발라당) (뒹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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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남아공의 축구 경기를 보다 후반 도중 TV를 껐다. 도무지 풀어나갈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해도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멕시코 때도 그랬고, 이긴 경기였지만 체코와 경기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다 걸리는 한 방. 그게 없으면 공은 U자 형태로 주변을 크게 맴돌 뿐 상대방 골문 쪽으로 투입이 안 된다. 홍명보 감독의 전형적인 축구 스타일이었다. 어찌 보면, 이미 예견이 되었던 사태.


현대 축구는 감독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골은 선수가 넣지만, 골문 근처까지 접근하는 건 부분 전술을 이용해서 감독이 선수들에게 주입할 수 있는 부분이란 의미일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전력과 전술을 분석한 후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그 대책이 어그러졌을 때 재빠르게 변화를 가져가는 것 역시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감독이 선임됐을 때부터 이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전 감독인 클린스만 때도 똑같았다. 심지어 무책임함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그 또한 묵살됐다. 그러자 클린스만은 보란 듯이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대표팀을 떠났다.


이 모든 사달을 만들어놓은 축구협회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기성세대들이 구축한 ‘꼰대 문화’와 소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들만의 리그’를 정점으로 모든 비판을 무시한 채 무책임과 특혜로 일관했다. 개개인의 욕심과 주장이 휘몰아치고, 공정하며 공평한 기회는 애초에 부여되기 힘들었다. 윗세대가 구축한, 시대에 맞지 않는 가치는 다가오는 세대를 고스란히 짓누르기 마련이다. 더욱 고약한 건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정통으로 들이받히는 세대는 이 꼴을 만들어놓은 기성세대나 방관한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라는 점. 하긴 이런 게 어디 우리나라뿐일까? 사람 사는 곳이면 모든 곳이 다 똑같겠지.


경우의 수를 따져서 32강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대표팀을 향한 내 응원은 여기서 멈춰야겠다. 올라간들 경기력이 달라질까? 한 방이 터져서 16강도 갈 수 있겠지만 결과가 중요한 시점은 지난 듯하다. 선수들도 욕을 먹을 거고, 남아공의 경기를 본다면 당연히 그럴 만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욕지기는 일어날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뭐, 일어날 필요가 없었던 일은 그것 말고도 수두룩하다. 손흥민과 이재성은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크고, 황인범과 김민재는 한 번쯤 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우리 축구를 이끌어왔던 이들이 이번 실패의 굴레를 쓰게 됐다. 하지만 이들의 탓이 아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던 윗세대의 탓이다. 전적으로.


꼬리말) 그래도 32강에 올라가면? 선수들을 응원할 거 같다. 온갖 비난과 불평들, 그들이 온전히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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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6-27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꼰대 문화‘와 ‘그들만의 리그‘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네요. ‘성적 지상주의‘ 홍명보의 감독 선임은 감독 자질 문제를 떠나 절차적 정당성이 무시되고 결여된 불법적 선임임을 박주호,박지성,이영표,박문성 등이 총대 메고 나서서 증언하고 고발했고 청문회까지 진행했음에도 우리 사회의 시각은 월드컵이 코 앞인데 결과를 지켜보자 였죠. 결과만 좋으면 모든 부정부패도 가뿐히 덮어버리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아닌가 싶네요.

대굴대굴 2026-06-27 21:57   좋아요 0 | URL
변해야 하는데... 과연 변할지, 얼마나 걸릴지. 이것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죠.
 

어제(5월20일) 하루 종일 내리던 비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비는 여지없이 샜고, 그 여파는 비가 그친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톡. 베란다 저쪽 창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떨어질 걸 알고는 있지만 띄엄띄엄 소리가 날 때마다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돌아온다.


밥 먹어라, 밥. 간식 안 돼. 간식이 수납된 싱크대 앞에서 애교 폭발 중인 고양이를 향해 일침을 놓는다. 일정 시각에 특정 간식을 주지만 고양이는 그래도 일단 떼를 써본다. 밑져야 본전이겠지. 애교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아니야, 꿈도 꾸지 마! 가서 밥 먹어. 두 번째 일침. 그와 함께 갑자기 어린 시절의 내가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다. 엄마는 맨날 밥만 먹으라 그래! 약간의 불만과 심통을 담은 어린아이의 투정. 나는 배고픔을 모르고 컸지만, 어머니는 아니었다. 무려 1930년 태생.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통과하셨던 분이다.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시절을 보내고 살만한 시기가 왔지만, 가난과 굶주림은 삶에 각인처럼 새겨졌을 터. 늦둥이 아들에게 삼시세끼도 모자라 틈만 나면 밥을 권하셨던 이유는 몸이 기억하는 굶주림의 처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톡. 물방울 소리에 어린 시절이 흩어진다.


나보다 열 살이 많은 누나는 역시 배고픔을 모르고 컸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내뱉는 얘기가 달랐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 아이들에게, 국물 떠먹어, 국물. 어느 날, 어린 조카 녀석이 엄마는 맨날 국물만 떠먹으라고 한다고 투덜대는 걸 보며 한참을 웃었다. 배고픔이 아닌 편식을 걱정하던 시대. 먹고 싶은 것만 먹으려 드는 아이들을 향해 부모들은 골고루 먹을 것을 강요했다. 밥의 양도 줄었다. 내가 어린 시절 먹던 밥그릇이 지금도 있는데 여기에 그득 담아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저렇게 먹고 어떻게 숨을 쉴 수가 있었지? 톡. 응?


물방울 소리가 나를 현실로 잡아당긴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냅다 애교를 투척한다. 이얏, 받아랏! 뒹굴. 절로 미소가 새어 나온다. 졌다. 질 거라는 걸 아는 싸움이었다. 한 시간쯤 빠르긴 한데, 그래, 간식 먹자. 넌 조그마해서 살이 조금 더 쪄도 상관없을 거 같긴 하다. 지금은 살찌는 걸 걱정하는 시대인가? 톡. 아, 진짜!


지금은, 혼돈의 시대인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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