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5월20일) 하루 종일 내리던 비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비는 여지없이 샜고, 그 여파는 비가 그친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톡. 베란다 저쪽 창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떨어질 걸 알고는 있지만 띄엄띄엄 소리가 날 때마다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돌아온다.


밥 먹어라, 밥. 간식 안 돼. 간식이 수납된 싱크대 앞에서 애교 폭발 중인 고양이를 향해 일침을 놓는다. 일정 시각에 특정 간식을 주지만 고양이는 그래도 일단 떼를 써본다. 밑져야 본전이겠지. 애교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아니야, 꿈도 꾸지 마! 가서 밥 먹어. 두 번째 일침. 그와 함께 갑자기 어린 시절의 내가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다. 엄마는 맨날 밥만 먹으라 그래! 약간의 불만과 심통을 담은 어린아이의 투정. 나는 배고픔을 모르고 컸지만, 어머니는 아니었다. 무려 1930년 태생.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통과하셨던 분이다.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시절을 보내고 살만한 시기가 왔지만, 가난과 굶주림은 삶에 각인처럼 새겨졌을 터. 늦둥이 아들에게 삼시세끼도 모자라 틈만 나면 밥을 권하셨던 이유는 몸이 기억하는 굶주림의 처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톡. 물방울 소리에 어린 시절이 흩어진다.


나보다 열 살이 많은 누나는 역시 배고픔을 모르고 컸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내뱉는 얘기가 달랐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 아이들에게, 국물 떠먹어, 국물. 어느 날, 어린 조카 녀석이 엄마는 맨날 국물만 떠먹으라고 한다고 투덜대는 걸 보며 한참을 웃었다. 배고픔이 아닌 편식을 걱정하던 시대. 먹고 싶은 것만 먹으려 드는 아이들을 향해 부모들은 골고루 먹을 것을 강요했다. 밥의 양도 줄었다. 내가 어린 시절 먹던 밥그릇이 지금도 있는데 여기에 그득 담아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저렇게 먹고 어떻게 숨을 쉴 수가 있었지? 톡. 응?


물방울 소리가 나를 현실로 잡아당긴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냅다 애교를 투척한다. 이얏, 받아랏! 뒹굴. 절로 미소가 새어 나온다. 졌다. 질 거라는 걸 아는 싸움이었다. 한 시간쯤 빠르긴 한데, 그래, 간식 먹자. 넌 조그마해서 살이 조금 더 쪄도 상관없을 거 같긴 하다. 지금은 살찌는 걸 걱정하는 시대인가? 톡. 아, 진짜!


지금은, 혼돈의 시대인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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