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딜레마 - 국가는 정당한가
홍일립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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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딜레마

홍일립 Ι 다산북스 Ι 사무사책방시리즈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p.79~80

어릴 적, 특히 학생 시절 조회시간에 수없이 듣고 외쳤던 '국기에 대한 맹세'이다. 「국가의 딜레마」를 읽기 전에는 이 문구가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조차 해본적 없다. 오히려 어른이 된 지금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게 되는 경우도 손꼽을 정도이니 이 문구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바뀌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의 전성기 때는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종교의식 같은 것으로 오후 다섯 시만 되면 어디서든 어김없이 울려 펴졌다고 한다. 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국가에 충성을 다하라고 강요하는가? 도대체 국가가 무엇이길래?

국가론에 대해 정말 쉽고 깊이 있게 다룬 「국가의 딜레마」, 읽는 족족 왜 이해가 되냐며 신기해하면서 다 읽었다. 정치사회 도서 분야와는 친숙하지 않아 거의 그쪽으로는 읽은 책이 전무할 정도인 나조차도 재미있게 이해가 되니, 신기한 나머지 이 저자 완전 능력자라며 저자의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최초의 국가'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p.45

「국가의 딜레마」 2장의 첫 문장을 보는 순간 '정말 '최초의 국가'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느 나라인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겨 바로 옆에 있던 아이들에게 물었다. "선사시대 알죠?! 그때부터 네 땅 내 땅 하면서 싸우고 하다가 나라가 만들어진 거 아니겠어요?"라고 대답하는 아이, 네 땅 내 땅이라니 땅따먹기도 아니고 표현이 귀엽다며 웃어넘겼는데... 아니, 이게 답이랑 근접하다고?!

어떤 사람이 "이 땅은 내 것이다."라며 공동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기자 순진한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단다. 그로 인해 특권을 가지게 된 그 사람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권위를 누렸고 그 특권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세력을 만들어 나간다. 더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 시작된 전쟁과 범죄 그리고 살인, 영토 확장을 추구하며 인적·물적 자원의 약탈을 일삼던 수많은 국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소수의 무리에 의해 장악되어온 역사적 사실을 루소의 '최초의 사기꾼'을 등장시키며 재미나게 풀어놓아 더 쉽게 이해가 되었다.


국가에 충성하는 사람은

국가에 묶여 있는 사람이다.

p.155

책을 읽다 보면 루소가 제시한 최초 국가, 헤겔의 국가 찬미, 국가보다는 개인이 우선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시민 불복종을 주장한 소로,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국가가 약탈과 정복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스푸너의 강도 국가론 등 다양한 국가론에 대해 만날 수 있다. 각자가 주장하던 국가론을 보며 지금 현재의 국가는 그 당시와 비교했을 때 어떻게 변화해 왔을지 떠올리며 읽는데 어떻게 그 당시와 바뀐 게 많이 없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국가는 항상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조직화된 폭력을 동원해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한다. 그리고 국가는 필요할 때마다 국민의 희생을 요구한다. 개인을 위해 존재해야 할 국가가 어느새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국민이 된 거 같다.

자신의 의사를 대변할 만한 사람을 찾아 뽑아 놓은 사람들은 자신과 정파의 이해득실을 따지기 바쁘고, 국가적 정책 과제를 심의하는 데서 이성적 숙의와 진지한 토론은 뒷전이다. 공공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할 '대표자'의 자리에 직업적인 정치꾼 무리가 들어서 '국민을 위한 헌신'이나 '책임의 윤리'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기보다는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들 자신이 시민의 대리인이지 주인이 아니라는 걸 잊고서 살아가는 거 같다.




선거일이 왔을 때 간혹 뽑을 사람이 없다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런데 그럴 때 다 나쁜 놈이지만 그중 덜 나쁜 놈으로라도 뽑아야 하지 않겠냐는 대답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란 국민의 이사를 대변하겠다고 나선 자들이 국민의 대표임을 자임하고 행정, 입법, 사법 권한을 행사하는 나라를 말한다고 한다.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면 권력의 남용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물론 정치적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소명의식을 갖고 책임의 윤리를 실천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손에 넣게 되면 가장 위대한 자유 투사라 해도 압제자로 변한다는 바쿠닌리의 말이 더 와닿는 건 왜일까?



한 국가 아래 모여 사는 국민이란

나이고 너이고 우리이다.

p.284

국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실재한다고 국가의 형체를 통째로 담은 하나의 명문화된 문서 '헌법'으로 증명한다. 법위의 법, 법중에 가장 기본 법인 헌법! 국가 운영의 기본이고 국민과 국가와의 기본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헌법!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8차례를 걸친 헌법 개정이지만 권력자와 정치집단, 그리고 일부 법률 전문가에 애해 주도된 엘리트 개헌이다. 2020년 기준으로 보면 1968년에서 2002년 사이에 태어난 국민은 현행 헌법에 동의한 적 없다. 이 헌법 아래 살아가고 우리. 국가가 무엇이고 시민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헌법에 대한 공부 할 필요가 있으며 국민의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에 대해서도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생각하며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자기가 사는 공동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딜레마, 인상 깊은 글귀

국가를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인간의 시도가 결국 국가를 지상의 지옥으로 만든다(독일 낭만주의 시인 횔덜린의 경고)

p.124

희생은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 통치자들은 야만적인 권력욕을 뒤로 숨긴 채 조국이고 민족이라고 외쳐댄다. '국민 모두가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거나 '국가를 위한 희생이야말로 최대의 영광이다'라는 미치광이식 선동으로 평범한 개인의 일상을 참혹한 전장의 불구덩이로 내몬다.

p.135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닌"이상 '각자의 방식대로 숨 쉬고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권리'가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p.187

따라서 그들에게 정치란 '허구의 세계'와 같다. 그들의 정치권 권리라고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선거철에 그저 투표하는 일밖에는 없다. 정치는 그 판에 뛰어든 소수자의 몫이 되었고, 정치라는 일은 그들에게 평생의 직업으로 굳어져 버렸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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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친하지 않은 분야의 책이라 읽기 전 걱정을 많이 하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그 걱정은 사라진다. 어쩜 이렇게 쉽게 잘 풀어놓으셨지?! 싶을 정도로 국가론에 대해 이해가 쉽게 되는데, 그저 읽으면서 이해되는 거 자체가 너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었던 헌법과 국기에 대한 맹세 그리고 국가의 존재에 대한 생각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며 지금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좋은 책을 읽게 되어서 너무나 뿌듯한 이 순간! 다음에 또다시 나태해질 때 재독 가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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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날의 거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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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로 알고 읽기 시작했으나 ‘맺음말을 대신하는 머리말’을 읽는 순간 현실에서 일어난 사실로 다가와 책 정보를 다시 찾아 확인하게 만든 「심판의 날의 거장」, ‘소설’이라는 영역을 확인하고 다시 읽었음에도 편자 후기를 접하는 순간 또 한 번의 혼란이 찾아왔다.

소설인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난 일인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이 이야기는 레오 페루츠 저자가 독일어권 환상 문학의 거장이라고 왜 불리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요슈 남작이 쓴 수기의 형식을 빌려 진행되는 이 소설은 이중의 액자 구조로 진행된다. 오직 요슈 남작의 눈으로 보는 이 이야기엔 환상과 현실, 사실과 허구가 어지럽게 뒤섞였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길 반복하며 읽는 나로 하여금 주인공조차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유명 궁정 배우 오이겐 비쇼프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사람들에게 들으면 기분이 오싹해 오늘 밤늦도록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이상한 일이 있다며 기묘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자신이 최근 알게 된 해군 장군의 남동생이 아무런 동기도 없고 유서조차 남기지 않은 채 자살을 했고, 남동생의 자살 동기를 찾기 위해 남동생처럼 하루 일과를 모두 따라 하던 장군 또한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그런데 이 기묘한 이야기를 하고 자리를 비운 오이겐 비쇼프도 권총으로 자살을 한 상태로 발견된다. 모두 함께 있던 공간에서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었길래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 이러한 죽음은 생각지도 못했던 나였기에 그의 죽음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그의 아내 디나와 처남 펠릭스는 예전 디나와 연인 관계였던 요슈 남작을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으로 지목하고, 그 자리에 함께 한 엔지니어 졸그루프는 남작이 무죄라 주장을 한다. 앞서 있었던 의문의 연쇄 자살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한 엔지니어와 고르스키 박사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고, 현실을 외면하며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려던 요슈 남작 또한 나름의 추리를 해나가며 오이겐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려고 한다.

그들이 사건의 진상에 가까워지는 과정 속에서도 의문의 자살 사건은 계속되는데... 그들은 자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을까?




자살 사건이라 생각했던 이 사건들이 자발적이 아닌 강요받은 자살 사건으로 모두 동일인이 관여되어 있을 거라 의심을 하는 그들과 함께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나 또한 범인을 추리하기 바빠졌다.

오이겐 비쇼프가 죽은 날 의문의 여자에게 걸려온 전화, 그리고 그 여자가 말한 ‘최후의 심판’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왜 요슈 남작은 엔지니어와 협공하지 않고 각개 플레이를 하는지 궁금증에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그런데 요슈 남작의 눈으로 보는 이 사건들이 그의 불안한 정신 상태로 인해 더 미궁 속으로 빠진다. 정말 그로 인해 제일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요슈 남작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정말 요슈 남작 저에게 왜 그러시나요?!




우리가 타인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우리 각자는 나름의 최후의 심판을 안에 지니고 있습니다.

p.234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책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었던 이야기, 예술의 삶을 살아갔을 그들의 일생들이 생각나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가 떠오르게 하는 이 소설. 짧은 이야기 속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길지 않은 이 이야기에서 범죄 스릴러, 미스터리 추리, 판타지 등 다양한 요소를 만나볼 수 있었으니 ‘에이 설마... 설마...’하다가도 ‘헉! 진짜?! 대박!’이 절로 나왔다. 그 누구 하나 믿을 수 없고 의심하게 만들면서 혼란에 혼란을 준다. 그러다 결국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게 만드는 「심판의 날의 거장」, 연쇄 자살 사건의 비밀을 통해 전해지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곱씹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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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지 알 수 없는 피터의 등장으로 인해 매들린은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그가 다가가자 비명을 질렀고 사지가 뻣뻣해지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저 '나'만 침착하게 대응할 뿐이다. 브링크 부인의 목숨까지 빼앗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피터라는 인물이 과연 누구인걸까?

궁금증을 남긴채 세월이 지나 1부가 시작되고 프라이어 양이 밀뱅크 감옥에 간 이야기가 나온다. 감옥을 안내받으며 수감되어있는 수감자들을 만나는 프라이어 양, 그녀는 왜 감옥을 방문한 것일까? 그리고 그녀에게 감추어져 있는 듯한 과거가 있어보인다.

안개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끌림'의 시작,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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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p.79-80


어릴적 '국기에 대한 맹세'를 수없이 했었다. 학교에서.... 그러게 그 문구에 대한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던가?!

박정희 정권의 전성기인 1970년대 '국기에 대한 맹세'는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종교의식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오후 다섯시만 되면 어디서든 어김없이 울려 펴지는 '국가의 소리' 그러면 그 자리에 멈추어야 했던 사람들... 지금은 상상도 되지않는 모습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나라에 대한 마음이 강요한다고 생겨나는 것일까?! 지금은 '맹세'문구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들어있는 '충성'이라는 단어! 여전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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