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김정남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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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속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뻔하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 같기도 하고, 사실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끼워 맞췄다는 생각도 든다. 신선?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여행의 기술’이란 소설책은 제목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내용 속 그것들은 쉽게 이해되는 것들로 채워졌다. 문제는 소설의 내용들이 극단적일 만큼 비극이란 사실이고, 이게 나를 포함한 주변에서 흔히 있는 일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뻔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일 거다. 이제 흔하게 된 자살에 대한 이야기. 이젠 다들 알고 공유되는 이야기인지 흔하다. 막장드라마가 범람하다 보니 이제 어지간한 막장은 쉽게 충격도 안 받는다. 그래서 눈에 전자빔이 나오거나 무당들이 판을 치는 막장까지 나왔을 것이다. 막장의 인기 요소인 극단적인 설정에 너무 취하니 이제 더 강한 극단적인 설정을 요구하는 것처럼. 그래서 마약에 손을 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소설은 참 슬프다. 현실과 가상의 공간이 무너진 채로 소설의 서사는 흘러간다. 다만 좀 극단적일 수 있는 망하는 사건들이 한 남자의 주변에 물밀듯이 몰려 온다. 그나마 비현실적이라 할 수 있지만 원래 안 좋은 것들은 한 번에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게 사실 인생이다. 문제는 21세기를 시작하는 지금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적으로 위기가 밀어닥치고 있다. 미국에서 거의 매주 터지는 총기사고는 그런 위기로 인해 드러난 치부일 뿐이다. 위기가 없었다면 그런 총질도 좀 많지 않았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의 치부는 바로 자살이다.
  비극이었다. 바닥까지 간 한 인간의 인생이 말이다. 소소한 소시민의 삶만이 물씬 풍기는 그런 남자, 김승호는 부모, 친구, 그리고 아내와 자식까지 자신의 주변 모두가 엉망이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 자신의 경제적 무능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무너졌다. 소설은 바로 무너진 그 시점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그는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그의 과거사를 하나하나 풀어준다. 과거와 현재의 오고감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이야기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인생의 궤적을 따라간다. 김승호가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을 붙여도 아주 자연스런 그런 모습. 그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어느 때의 모습일 수 있었다. 현실을 살고 있는 오늘의 소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라고 할까? 아니면 독자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쉽게 유추시키려는 조작일 수 있다. 어떻든 김승호의 삶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의 관계는 그를 고통으로 만든 원인이다. 부모와 아내, 그리고 자식, 그리고 친구와 직장 등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은 그를 불편하게 만든다. 만남이 기쁨이어야 하지만 그건 낭만적인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사실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내용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과도한 책임에 힘들어 하는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어떤 면에서 그 관계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돈이라고 우리는 많이들 생각한다. 소설 속의 문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아들과 마지막 여행을 가려는 것이다.
  슬픈 일들만 꼭 집어서 이야기를 푼다면 확실히 비극으로만 남게 된다. 소설의 트릭이랄 수 있겠다. 그러나 기쁨보다 아픔이 훨씬 많아진 지금의 생활을 고려해 본다면, 혹은 그런 아픔으로 인해 기쁨의 순간을 잊고 살게 된 많은 이들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비극만 나열한 것이 꼭 비현실적일 것은 없다. 안녕하지 못한 지금이라면 과거의 기쁨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위안이나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해법은 아니지 않는가?
  소설의 마지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결말이 그나마 위로가 될 수 있지만 현실과는 좀 다르게 전개될 것임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 알 것이다. 정작 위로가 못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희망이 있었으면 한다. 그 희망으로 고려대 대자보에서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과하게 안녕합니다, 라고 답변하는 그런 호쾌함이 생겼으면 합니다. 그래서 김승호의 비극적인 여행을 하지 않고 좋은 구경거리를 찾기 위한 여행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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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섬 나오시마 - 아트 프로젝트 예술의 재탄생
후쿠타케 소이치로.안도 다다오 외 지음, 박누리 옮김, 정준모 감수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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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복받은 세상을 인간은 참 쉽게 망가뜨렸다. 인간의 손이 미치는 곳마다 아우성이고, 또한 피폐해진다. 인간의 자성은 요구되는데 정작 인간은 그런 자성을 할 생각이 없다. 피폐된 곳에서도 어떻게든 이기적인 욕구를 채우려는 것이 인간이다. 인류에 재앙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자업자득이리라. 이런 인간의 움직임에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도전이 있다. 예술을 통해서 말이다.
  세토내해라는 매우 아름다운 지역에서의 이 조용한 도전은 매우 인상 깊은 도전이다. 피폐해져서 인구의 고령화가 심각해진 나오시마 섬은 사실 일본의 현재를 축소한 곳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미래이기도 하다. 경제위기 속에 세대 간의 갈등의 점차 첨예해지며 일자리를 서로 차지하려는 위험한 관계로만 치닫고 있는 한국에 있어서 나오시마를 탈바꿈하는 새로운 계획은 매우 중요한 실험이다.
  아름답지만 이미 망가진 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실험을 예술이 담당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이채롭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자연과 호흡할 뿐만 아니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지역주민들까지 함께 하는 예술작업이 이 조그만 섬에서 진행된다. 또한 예술을 위해 사용되는 자재들을 가능하면 섬 자체에서 나온 것으로 하려는 노력은 인상 깊다.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갖고 오는 것을 통해 이질감을 느끼게 하고, 그것을 신선하다고 믿는 모든 이들에게 나오시마에서의 도전은 매우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것이다.
  한 사람의 개인의 생각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후쿠타게 소이치로’라는 사람의 도전정신과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봐주지 않는다면 사실 그 노력은 노력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그의 생각에 동참한 무수히 많은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의 노력으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인구의 고령화라 나락에 떨어지고 있는 지역을 재생시키겠다는 후쿠타게 소이치로의 의지가 실현되고 있다.
  외딴 섬일 뿐만 아니라 인구도 계속 줄어드는 섬을 재생시킨다는 것은 무척 고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 섬 주위의 섬들 조차도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세이렌쇼의 다 쓰러져가는 제련소는 그런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물일 것이다. 이런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시도한 후쿠타게 소이치로의 모험은 유별나다. 특히 현대예술가들의 참여를 통해 어렵기만 한 현대예술이 실생활과 함께 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일본의 대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이끈 그의 도전정신은 앞으로 예술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에게 앞으로 뭘 해야 할지에 대한 지침서를 마련해준다. 무엇보다 그의 성공이 감사할 따름이다.
  한국에도 이런 섬을 볼 수 있을까? 꿈꿔 본다. 그리고 그런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 때 경제에만 이끌리는 예술이 더 이상은 아니게 될 것이고, 우리의 삶도 경제에 예속되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될 것이리라. 나오시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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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루스 노부스 - 탈근대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미학사 진중권 미학 에세이 2
진중권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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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참 잘 지은 책이다. 10년 전의 작품을 재발매 하면서도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지은이 본인이 ‘거기에 고칠 만한 내용도 없다’라고 쓴 것을 보면 말이다. 학자적 자존심이 있다면 대중에게 선보일 책 속의 불편함을 그냥 둘리는 없다. 이 책이 개인적으로 소장할 일기장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태도로 볼 때 ‘앙겔로스 노부스’는 잘 된 작품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참 짧았던 것 같다. 신나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 같다. 에세이든 책이든 이것도 예술이라면 존재미학을 느꼈다고 할까? 개인적인 허점이나 단점, 그리고 없던 것을 충족시켜주는 그 무엇이 있는 이 작품은 매 장이 시작될 때마다 뭔가 있을 기대가 있었고 상당히 충족시켜줬다. 과연 괜히 유명인사가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10년 전의 작품이 다시 재출판되는 것도 그렇고 과거의 작품이 현실적 동력을 상실할 수 있음에도 현재의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을 보면 저자 진중권의 글쓰기는 확실히 뭔가가 있다.
  그의 작품을 이성적으로, 혹은 합리적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이성을 기반으로 한 지식사회에 대한 엄중한 비판이다. 예술이란 분야에서 말이다. 참 재미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필요한 추상화 능력과 이성이 그의 비판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말이다. 비록 예술이란 분야에 한정됐지만 사실 그 비판은 전방위적이다.
  탈근대는 근대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근대를 가장 대표하는 합리적, 인간우위적인 이성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리스 시대부서 시작되는 인간중심적인 시각과 이성의 분해는 좀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메스를 받게 된다. 특히 이성과 관계된 어휘에서 근대는 무수한 폭력들을 고발하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 근대의 폭력에 희생된 개성, 자연 등은 가련하기조차 하다.
  책 속의 과잉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합리성을 기반하는 사회과학 역시 그 뒤에 감춰진 주관성이 현재 계속 파헤쳐지는 상황이고 보면 완벽한 차분함도, 그리고 냉철한 이성도 기대하긴 힘들다. 단지 설득력이 좀 더 강화되는 시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저자의 냉정한 비판은 여러 가지 면에서 들어 볼만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탈근대의 정신이라면 하나의 대안인 것도 사실이다.
  인간적인 면을 억압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들의 합리적 생활태도 강조는 좀 지나친 면이 있는 것 같다. 책을 보니 말이다. 고도의 합리성과 수학화로 인해 개성을 말살하게 되고, 그래서 디오니소스적인 특성을 말살하게 됐는지 된 것 같다. 데카르트도 좀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원했던 것이 이런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근대이론가들이든 탈근대이론가들이든 하늘의 신기를 타고난 에언가가 아닌 바에야 그런 항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강조점은 반대에 또 반대하는 난잡한 싸움이 아니다. 설사 저자가 그런 식으로 쓰고 싶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 좀 더 세련된 인간과 사회가 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좀 더 멋진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탈근대라는 패러다임을 통한 어떤 노력이 보여진다. 이것을 통해 추론해 볼 때 개인적인 감상이 하나 떠오른다. 동양식으로 말하면 중용이나 중도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균형 잡힌 시각?
  편파적인 시각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는 파편적인 사회적 활동은 현재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문제를 야기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근대를 굳이 말할 것도 없다. 과거에 뭉치려는 힘보다 헤어지려는 힘이 강할 때, 그 사회의 건강성은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시대적 양심을 담은 장을 맨 마지막 장에 놓았다. 노력해도 안 될지도 모른다는 고민 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으려는 도전 의식 말이다. 어쩌면 좌우의 극단처럼 근대와 탈근대가 양극과 음극처럼 떨어지려고만 한다면 결국 사회는 물론 그 속의 인간의 행복은 갈 곳이 없게 된다.
  저자의 걱정이 무척 인상 깊다. 클레의 ‘앙겔루스 노부스’란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저자의 감성이 이 글을 읽는 현재의 모든 독자들도 공유할 것 같다. 그래서 10년 전의 작품을 다시 내어놓은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다만 10년 전의 고민이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아 무척 아쉽다. 고대 그리스의 대가들처럼 절제를 통해 영원을 추구했던 테크네가 지금 무척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칼로카가티아를 맘껏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지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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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의병장의 꿈 -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한 나남출판 30년, 제2판 나남신서 1450
조상호 지음 / 나남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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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남,’ 참 익숙하다.
  지금 살고 있는 성북 지역구 의원이 ‘나남’과 인연 깊은 ‘신계륜’ 의원이고, 한 때 살았던 곳이 교하였다. 현재 ‘나남’이 위치한 곳이다.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매력적인 건물들을 보면서 건축미를 즐기곤 했다. 분명 ‘나남’ 건물을 봤을 것이다. 또한 언젠가 기자를 꿈꿨던 내 친구가 한 계간지를 보면서 글 정말 좋다며 침 튀기는 열변을 토한 잡지가 ‘계간 사상’이었다. 출판사는 ‘나남’이었다. 언젠가 자유주의 특집이 실렸던 ‘사회비평’이란 잡지를 보고 열심히 자유주의를 이해하려 노력한 적이 있었다. 비록 능력 부족만을 느꼈지만 자유주의란 것을 정말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잡지도 ‘나남’이랜다.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에게 부모님을 제외할 때, 그 분은 전 고대 총장이셨던 ‘김준엽’ 선생님이다. 그 분의 작품인 ‘장정 1, 2, 3, 4권’은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나보다 어렸던 분의 선택은 많은 고민과 자성의 시간을 이끌었으며, 그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분에 대한 인상을 만들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고대 출신이란 점이 있어서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전설처럼 회자됐던, 군사정권의 강권에 의한 총장 퇴진을 반대하는 고대생들의 저항이 있었다는 것은 꿈 같은 과거의 이야기는 과거에 존경 받았고,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존경 받을 수 있는 생의 품격을 지녔다는 것으로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그 분이 주도적으로 만드셨던 ‘사상계’란 잡지, 그리고 뒤이은 ‘계간 사상’이란 계간지는 비록 빈약한 관계를 갖고 있는 나이지만 그런 빈약함도 의미 있는 현실을 만들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책들이다. 그런데 이 분과 관련된 책들 역시 ‘나남’이다.
  좀 묘한 기분이 든다. 알 수 없는 관계의 지속? 그러나 익숙한 것과 삶의 격이 같을 리는 없다. ‘나남’이 걸어온 도전적이고 성실함, 그리고 그것들이 서있는 그 바닥에 ‘나남’의 설립자이자 현재에도 일꾼인 ‘조상호’ 사장이 있다. 시대적 비극을 온몸으로 막아선 채, 사회적 비극을 피부 속 깊은 곳까지 밝히려 했던, 그래서 체제의 위협이었던 ‘한맥’이란 잡지로 인해, 고려대학교에서 제적당한 그의 인생과 그 이후의 궤적은 그다지 우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운동권 학생의 비극은 지금의 모두에게는 아련한 추억쯤으로, 혹은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먼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당한 자, 그래도 감히 도전한 자에겐 지금도 현재 진행형의 고달픈 삶이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몸부림의 연속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현재의 ‘나남’이 되기 위한 고달픈 선택을 과거에 또 했다. 왜 했다고 묻기 보다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될 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굳건히 일어섰고, 이제 내가 읽은 책인 ‘언론 의병장의 꿈, 제 2판’까지 낼 정도가 됐다. 그는 성공한 것이다.
  출판사도 엄연히 돈 벌어서 운영해야 할 기업이다. 그런 점에서 30년 이상 지속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당시 10대 기업으로 올랐던 사업체들 중 과연 지금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은퇴 아닌 강제 퇴출이 될 수 있는 그 기간 동안 자신의 고집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시대를 앞서나간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베스트 셀러가 아닌 사회과학, 그것도 언론이란 특정분야에 집중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다지 신빙성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남’에겐 그런 필연적인 운명론이 통하지 않았나 보다. 도리어 자신이 밀어부친 뚝심으로 인해 그 분야에서 ‘나남’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고 말았다. ‘나남’이 책을 만들던 사람을 만들던 중요한 것은 그 일을 30년 이상 한다는 사실이다. ‘나남’의 족적은 어쩌면 100주년 기념에서 다시 재평가될 것이다. 다만 그 평가가 지금과 그리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이때보다 그때 사람들이 좀 더 객관적일 것이기에 더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남’, 그리고 ‘조상호’의 필연적인 연관성의 시작은 아마도 조상호 본인이 너무나 존경하는 인물인 조지훈 선생으로부터 기인한 지 모르겠다. 사석에서의 만남이 거의 없었지만 조지훈 선생이 남겼던 책과 고대에서의 인품 등으로 그는 감화됐다. 고달픈 삶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꾼 조지훈 선생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존경은 그가 꺾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의 주변에 지훈이란 이름이 산더미인 것 역시 존경을 넘어 존경하는 이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려는 치열한 비극을 뛰어넘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언젠가 조지훈 선생을 이어 조상호란 인물을 존경해서 그의 길을 걷겠다는 인물들 역시 나올 것이다. 어차피 존경의 대상은 계속 이어가는 법이다. 그게 학맥이고, 인연이며, 삶이다.
  30년이란 어렵고도 긴 시간을 훌륭히 이겨낸 것을 자축하기엔 책 하나로 좀 부족하다 싶을 정도의 소박함이 담겨 있는 규모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소박하지 않고, 매우 크다. ‘언론 의병장의 꿈’은 출판사 이름인 ‘나남’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단재 선생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란 문장에서 나온 것 같은 ‘나’와 ‘남’이란 구성이 책 구성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참 재미있는 구성이다. 그리고 이 점이 이 책의 재미와 가치를 더했다.
  우선 ‘나 (I)’의 시작이다. 스스로를 ‘언론 의병장’이길 원했던 저자의 속내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이란 제 1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출판사 사장 정도 되면 어느 정도의 글 솜씨가 있는 지를 보여주는 장이라 할까? 아무튼 정말 잘 썼다. 무엇보다 인간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쓴 내용들은 많은 감동을 줬다. 매력적인 비유와 상징들은 저자의 법대 출신과 같은 이력으론 도저히 연관 맺기 힘들 정도다. ‘나남’도 문학을 출판하는 회사라는 것을 과시하듯 인상적인 표현들 때문에 글을 읽은 시간을 더디게 했다.
  이에 더해 저자와의 인연을 맺게 된 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읽히게 된다. 특히 ‘토지’의 위대한 저자 ‘박경리’ 선생과의 여러 이야기들은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고인의 생생한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하고 소박한 듯 하면서도 자신의 것에 무한한 애정을 품고 산 이의 다정다감한 인간미는 신비화로 인해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고인의 진정한 매력을 다시 소생시킨다. 또한 ‘김준엽’ 선생과의 각별한 인연에 뒤이은 그분에 대한 행적에 대한 글 역시 페이지 넘기는 손을 더디게 했다. 자신에게 엄격하셨지만 타인에게 관대하셨던 귀한 인품을 이렇게라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흥미로운 부분은 ‘천신일’ 회장과의 인연에 기인한 글이다. 아마도 고대 교우의 관계였기에 서로 어떤 일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글 속에 담긴 따뜻한 비판은 이 시대에 진정한 인간관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어설픈 이해관계를 교우란 이름으로 덮기 보단 객관적인 정서 속에 피운 진정한 신뢰관계가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그만큼 조상호란 인물은 정직하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남’을 세웠고 그렇게 밀고 나가고 있다.
  자연스레 ‘남(You)’의 부분으로 넘어간다. 타인의 시선으로 기록된 2부와 3부는 이 책의 또 다른 별미를 제공한다. 사회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즉 아웃사이더로서 출판인을 선택한 조상호에 대한 각개의 다양한 평가와 관련 내용들로 채워진 이 부분들은 타인들의 글 솜씨를 확인하고 즐기는 부페식 요리와 같다. 사적으로 친한 이들뿐만 아니라 여러 신문기자들의 글까지 담은 이 부분들은 글로 생활하는 이들의 과시욕을 유감없이 발휘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남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라는 엘리베이터 안의 작은 글귀는 모든 이들에겐 화재거리였나 보다. 그리고 다들 이것을 실증하듯 현재의 ‘나남’을 냉정하게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는 속내에서도 질투는 없어 보였다. 도리어 기뻐하는 모습들이 주를 이뤘다. 그들 모두가 자연채무에 시달리면서도, 언론 의병장의 임무를 자인하고 미친 듯이 달린 어느 출판사 사장에게 좋은 점수를 주고 있다.
  각계의 다정 어린 글귀가 많아 평범한 기념식 책일까 하는 의심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편견임을 자연스레 깨게 하는 재미있는 작품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의아했던 부분은 조선일보 문갑식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인데 한 쪽에 편식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감싸 안으려는 조상호 사장에 대한 매서운 공격적 부분이다. 30년 정도의 역사를 지녔고 좌우를 아우르겠다는 좌우명이 분명 많은 이들에게 전달됐고, 결과도 있었을 텐데 준비 부족이었는지, 아니면, 회사의 지침에 따른 것인지 시대적 비극의 연장선 속에 있는 기자의 입장에서인지 모르지만 행간의 격렬한 분쟁은 눈에 띄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 속살도 있지만 인간 조상호란 인간을 드러낸 걸작들이 많았다. 특히 사회과학도이면서도 깊은 향기를 드러낸 송호근 교수의 ‘70학번형 인간’은 백미이지 않나 싶다. 시적인 표현력은 물론,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과 분석은 짧은 지면이 아쉬울 정도로 쉼 없이 읽어 내려가도록 이끌었다. 또한 조상호 사장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오생근 교수’의 백암산 골짜기에서 맺어진 인연’은 한 인간의 슬픈 사연을 관조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일신사’ 대표이사인 ‘윤백규’의 글은 자칫 신비화되던 인물의 즐겁고도 솔직한 이면을 유머 있게 서술하고 있다.
  글들을 잘 쓰는 이들 덕분에 이 책은 공치사나 하는 그런 무료하고 무거워서 하품 나오게나 하는 사보가 아니게 됐다. 출판사는 출판사인가 보다. 어떻게 글을 만들고 편성해야 책다운 책을 만드는지를 알고 있는 것을 보니까. 그리고 이런 장점이 앞으로도 계속 되길 빈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긴장의 끈이 더욱 팽팽해져 가고 있다. 2013년이 끝나가는 12월 현재 고려대 정경대 뒷문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갑갑한 대자보들이 붙어서 현재 큰 이슈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나남’이 세상에 처음 나온 1979년에도 대자보는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안정이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2000년대 들어 대자보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는데 이제 다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대자보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다시 70년대의 긴장으로 한국사회는 깊이 빠져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때를 위해 ‘나남’이 30년간 버텼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더 한 시간 동안 ‘나남’이 사회적 문제를 안고 사업했으면 한다. 다른 곳은 몰라도 ‘나남’이 외면하면 안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론 의병장이 운영하는 출판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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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이렇게 멋진 날들 - 베네시아의 자연 속에서 보낸 사계절 이야기 라이프스타일 아이콘 Lifestyle Icon 2
베네시아 스탠리 스미스 지음, 카지야마 타다시 사진,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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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삶이 있을까?
 
  참 착한 삶을 사는 것 같다. 먼 영국에서 온 어느 영국 여인의 일본 생활은 별다른 것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냥 동양의 신비에 반했다 정도? 그러나 그건 잘못됐다. 그녀는 자신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 오하라에서…

  책 행간에 읽힌 한 영국여인의 과거의 삶은 좀 지쳐 보였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성숙하는 시간은 어쩌면 방황이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혼에 따른 어머니의 새 남편을 그녀는 씨로 표현했다. 아마도 영국 방식의 인간관계겠지만 또한 그녀가 대한 세상에 대한 인간관계였으리라.

  고달프다면 고달팠을 그런 생활에 자신의 이혼 경력 역시 덧붙여졌다. 그런 과정은 도시 속의 삶이 더해져 그냥 그렇게 산 도시인이었을 것 같다. 그런 인생에 변화, 참 반갑고 착하다. 그녀는 자연으로 갔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간의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런 생활을 들여다보게 해준 그녀, 베네시아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허브로 상징되는 다양한 자연의 삶 속에서 그녀는 치료되고 있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어딘지 모를 병을 치유하는 느낌이다.

  사람은 도시에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가 진화 중이라면 분명 도시의 삶에 적응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을 거란 생각은 든다. 그러나 그 과정, 참 녹녹하지 않고, 그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그래서일까? 베네시아의 자연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한없이 부럽다.

  겨울을 위해 집안에 장작을 때는 난로가 있단다. 난방이란 인위적 기구가 아닌, 몇 백 년간 인류의 삶을 지탱해줬던 그 고전적 삶의 향취가 책 곳곳에 넘친다. 봄과 여름의 생기 있는 시간에 그녀의 우아한 삶은 과장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자연의 흥겨움과 기쁨이 넘친다. 가을엔 어딘지 모를 성숙함이 돋보인다. 겨울이 오기 전의 성숙의 시간을 보내는 이 아름다운 시간에 그녀는 참 예쁘게 산다. 착하기도 하고.

  책 곳곳에 담긴 독자들을 위한 깨알 같은 배려 역시 좋다. 다양한 차와 여러 자연적인 소재들의 소개는 이 책의 진미일지 모르겠다. 그녀와 같아지고 싶다면 그런 것이 무척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자연적인 소재를 통해 자연에 상처를 주지 않는 자세 역시 배워야 할 것이다. 사실 인간만 아픈 것이 아니다. 자연도 아프니까.

  나도 이런 곳에 살고 싶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기회를 스스로 박탈했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여유를 갖게 된다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가장 위험한 생각이다. 이제부터 허브 향에 취해 지금의 내 생활을 자연의 삶처럼 바꿔야 하지 않을까?

  허브 차, 참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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