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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김정남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12월
평점 :
통속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뻔하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 같기도 하고, 사실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끼워 맞췄다는 생각도 든다. 신선?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여행의 기술’이란 소설책은 제목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내용 속 그것들은 쉽게 이해되는 것들로 채워졌다. 문제는 소설의 내용들이 극단적일 만큼 비극이란 사실이고, 이게 나를 포함한 주변에서 흔히 있는 일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뻔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일 거다. 이제 흔하게 된 자살에 대한 이야기. 이젠 다들 알고 공유되는 이야기인지 흔하다. 막장드라마가 범람하다 보니 이제 어지간한 막장은 쉽게 충격도 안 받는다. 그래서 눈에 전자빔이 나오거나 무당들이 판을 치는 막장까지 나왔을 것이다. 막장의 인기 요소인 극단적인 설정에 너무 취하니 이제 더 강한 극단적인 설정을 요구하는 것처럼. 그래서 마약에 손을 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소설은 참 슬프다. 현실과 가상의 공간이 무너진 채로 소설의 서사는 흘러간다. 다만 좀 극단적일 수 있는 망하는 사건들이 한 남자의 주변에 물밀듯이 몰려 온다. 그나마 비현실적이라 할 수 있지만 원래 안 좋은 것들은 한 번에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게 사실 인생이다. 문제는 21세기를 시작하는 지금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적으로 위기가 밀어닥치고 있다. 미국에서 거의 매주 터지는 총기사고는 그런 위기로 인해 드러난 치부일 뿐이다. 위기가 없었다면 그런 총질도 좀 많지 않았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의 치부는 바로 자살이다.
비극이었다. 바닥까지 간 한 인간의 인생이 말이다. 소소한 소시민의 삶만이 물씬 풍기는 그런 남자, 김승호는 부모, 친구, 그리고 아내와 자식까지 자신의 주변 모두가 엉망이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 자신의 경제적 무능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무너졌다. 소설은 바로 무너진 그 시점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그는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그의 과거사를 하나하나 풀어준다. 과거와 현재의 오고감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이야기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인생의 궤적을 따라간다. 김승호가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을 붙여도 아주 자연스런 그런 모습. 그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어느 때의 모습일 수 있었다. 현실을 살고 있는 오늘의 소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라고 할까? 아니면 독자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쉽게 유추시키려는 조작일 수 있다. 어떻든 김승호의 삶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의 관계는 그를 고통으로 만든 원인이다. 부모와 아내, 그리고 자식, 그리고 친구와 직장 등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은 그를 불편하게 만든다. 만남이 기쁨이어야 하지만 그건 낭만적인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사실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내용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과도한 책임에 힘들어 하는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어떤 면에서 그 관계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돈이라고 우리는 많이들 생각한다. 소설 속의 문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아들과 마지막 여행을 가려는 것이다.
슬픈 일들만 꼭 집어서 이야기를 푼다면 확실히 비극으로만 남게 된다. 소설의 트릭이랄 수 있겠다. 그러나 기쁨보다 아픔이 훨씬 많아진 지금의 생활을 고려해 본다면, 혹은 그런 아픔으로 인해 기쁨의 순간을 잊고 살게 된 많은 이들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비극만 나열한 것이 꼭 비현실적일 것은 없다. 안녕하지 못한 지금이라면 과거의 기쁨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위안이나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해법은 아니지 않는가?
소설의 마지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결말이 그나마 위로가 될 수 있지만 현실과는 좀 다르게 전개될 것임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 알 것이다. 정작 위로가 못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희망이 있었으면 한다. 그 희망으로 고려대 대자보에서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과하게 안녕합니다, 라고 답변하는 그런 호쾌함이 생겼으면 합니다. 그래서 김승호의 비극적인 여행을 하지 않고 좋은 구경거리를 찾기 위한 여행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