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의병장의 꿈 -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한 나남출판 30년, 제2판 나남신서 1450
조상호 지음 / 나남출판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남,’ 참 익숙하다.
  지금 살고 있는 성북 지역구 의원이 ‘나남’과 인연 깊은 ‘신계륜’ 의원이고, 한 때 살았던 곳이 교하였다. 현재 ‘나남’이 위치한 곳이다.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매력적인 건물들을 보면서 건축미를 즐기곤 했다. 분명 ‘나남’ 건물을 봤을 것이다. 또한 언젠가 기자를 꿈꿨던 내 친구가 한 계간지를 보면서 글 정말 좋다며 침 튀기는 열변을 토한 잡지가 ‘계간 사상’이었다. 출판사는 ‘나남’이었다. 언젠가 자유주의 특집이 실렸던 ‘사회비평’이란 잡지를 보고 열심히 자유주의를 이해하려 노력한 적이 있었다. 비록 능력 부족만을 느꼈지만 자유주의란 것을 정말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잡지도 ‘나남’이랜다.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에게 부모님을 제외할 때, 그 분은 전 고대 총장이셨던 ‘김준엽’ 선생님이다. 그 분의 작품인 ‘장정 1, 2, 3, 4권’은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나보다 어렸던 분의 선택은 많은 고민과 자성의 시간을 이끌었으며, 그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분에 대한 인상을 만들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고대 출신이란 점이 있어서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전설처럼 회자됐던, 군사정권의 강권에 의한 총장 퇴진을 반대하는 고대생들의 저항이 있었다는 것은 꿈 같은 과거의 이야기는 과거에 존경 받았고,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존경 받을 수 있는 생의 품격을 지녔다는 것으로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그 분이 주도적으로 만드셨던 ‘사상계’란 잡지, 그리고 뒤이은 ‘계간 사상’이란 계간지는 비록 빈약한 관계를 갖고 있는 나이지만 그런 빈약함도 의미 있는 현실을 만들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책들이다. 그런데 이 분과 관련된 책들 역시 ‘나남’이다.
  좀 묘한 기분이 든다. 알 수 없는 관계의 지속? 그러나 익숙한 것과 삶의 격이 같을 리는 없다. ‘나남’이 걸어온 도전적이고 성실함, 그리고 그것들이 서있는 그 바닥에 ‘나남’의 설립자이자 현재에도 일꾼인 ‘조상호’ 사장이 있다. 시대적 비극을 온몸으로 막아선 채, 사회적 비극을 피부 속 깊은 곳까지 밝히려 했던, 그래서 체제의 위협이었던 ‘한맥’이란 잡지로 인해, 고려대학교에서 제적당한 그의 인생과 그 이후의 궤적은 그다지 우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운동권 학생의 비극은 지금의 모두에게는 아련한 추억쯤으로, 혹은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먼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당한 자, 그래도 감히 도전한 자에겐 지금도 현재 진행형의 고달픈 삶이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몸부림의 연속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현재의 ‘나남’이 되기 위한 고달픈 선택을 과거에 또 했다. 왜 했다고 묻기 보다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될 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굳건히 일어섰고, 이제 내가 읽은 책인 ‘언론 의병장의 꿈, 제 2판’까지 낼 정도가 됐다. 그는 성공한 것이다.
  출판사도 엄연히 돈 벌어서 운영해야 할 기업이다. 그런 점에서 30년 이상 지속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당시 10대 기업으로 올랐던 사업체들 중 과연 지금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은퇴 아닌 강제 퇴출이 될 수 있는 그 기간 동안 자신의 고집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시대를 앞서나간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베스트 셀러가 아닌 사회과학, 그것도 언론이란 특정분야에 집중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다지 신빙성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남’에겐 그런 필연적인 운명론이 통하지 않았나 보다. 도리어 자신이 밀어부친 뚝심으로 인해 그 분야에서 ‘나남’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고 말았다. ‘나남’이 책을 만들던 사람을 만들던 중요한 것은 그 일을 30년 이상 한다는 사실이다. ‘나남’의 족적은 어쩌면 100주년 기념에서 다시 재평가될 것이다. 다만 그 평가가 지금과 그리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이때보다 그때 사람들이 좀 더 객관적일 것이기에 더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남’, 그리고 ‘조상호’의 필연적인 연관성의 시작은 아마도 조상호 본인이 너무나 존경하는 인물인 조지훈 선생으로부터 기인한 지 모르겠다. 사석에서의 만남이 거의 없었지만 조지훈 선생이 남겼던 책과 고대에서의 인품 등으로 그는 감화됐다. 고달픈 삶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꾼 조지훈 선생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존경은 그가 꺾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의 주변에 지훈이란 이름이 산더미인 것 역시 존경을 넘어 존경하는 이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려는 치열한 비극을 뛰어넘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언젠가 조지훈 선생을 이어 조상호란 인물을 존경해서 그의 길을 걷겠다는 인물들 역시 나올 것이다. 어차피 존경의 대상은 계속 이어가는 법이다. 그게 학맥이고, 인연이며, 삶이다.
  30년이란 어렵고도 긴 시간을 훌륭히 이겨낸 것을 자축하기엔 책 하나로 좀 부족하다 싶을 정도의 소박함이 담겨 있는 규모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소박하지 않고, 매우 크다. ‘언론 의병장의 꿈’은 출판사 이름인 ‘나남’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단재 선생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란 문장에서 나온 것 같은 ‘나’와 ‘남’이란 구성이 책 구성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참 재미있는 구성이다. 그리고 이 점이 이 책의 재미와 가치를 더했다.
  우선 ‘나 (I)’의 시작이다. 스스로를 ‘언론 의병장’이길 원했던 저자의 속내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이란 제 1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출판사 사장 정도 되면 어느 정도의 글 솜씨가 있는 지를 보여주는 장이라 할까? 아무튼 정말 잘 썼다. 무엇보다 인간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쓴 내용들은 많은 감동을 줬다. 매력적인 비유와 상징들은 저자의 법대 출신과 같은 이력으론 도저히 연관 맺기 힘들 정도다. ‘나남’도 문학을 출판하는 회사라는 것을 과시하듯 인상적인 표현들 때문에 글을 읽은 시간을 더디게 했다.
  이에 더해 저자와의 인연을 맺게 된 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읽히게 된다. 특히 ‘토지’의 위대한 저자 ‘박경리’ 선생과의 여러 이야기들은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고인의 생생한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하고 소박한 듯 하면서도 자신의 것에 무한한 애정을 품고 산 이의 다정다감한 인간미는 신비화로 인해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고인의 진정한 매력을 다시 소생시킨다. 또한 ‘김준엽’ 선생과의 각별한 인연에 뒤이은 그분에 대한 행적에 대한 글 역시 페이지 넘기는 손을 더디게 했다. 자신에게 엄격하셨지만 타인에게 관대하셨던 귀한 인품을 이렇게라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흥미로운 부분은 ‘천신일’ 회장과의 인연에 기인한 글이다. 아마도 고대 교우의 관계였기에 서로 어떤 일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글 속에 담긴 따뜻한 비판은 이 시대에 진정한 인간관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어설픈 이해관계를 교우란 이름으로 덮기 보단 객관적인 정서 속에 피운 진정한 신뢰관계가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그만큼 조상호란 인물은 정직하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남’을 세웠고 그렇게 밀고 나가고 있다.
  자연스레 ‘남(You)’의 부분으로 넘어간다. 타인의 시선으로 기록된 2부와 3부는 이 책의 또 다른 별미를 제공한다. 사회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즉 아웃사이더로서 출판인을 선택한 조상호에 대한 각개의 다양한 평가와 관련 내용들로 채워진 이 부분들은 타인들의 글 솜씨를 확인하고 즐기는 부페식 요리와 같다. 사적으로 친한 이들뿐만 아니라 여러 신문기자들의 글까지 담은 이 부분들은 글로 생활하는 이들의 과시욕을 유감없이 발휘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남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라는 엘리베이터 안의 작은 글귀는 모든 이들에겐 화재거리였나 보다. 그리고 다들 이것을 실증하듯 현재의 ‘나남’을 냉정하게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는 속내에서도 질투는 없어 보였다. 도리어 기뻐하는 모습들이 주를 이뤘다. 그들 모두가 자연채무에 시달리면서도, 언론 의병장의 임무를 자인하고 미친 듯이 달린 어느 출판사 사장에게 좋은 점수를 주고 있다.
  각계의 다정 어린 글귀가 많아 평범한 기념식 책일까 하는 의심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편견임을 자연스레 깨게 하는 재미있는 작품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의아했던 부분은 조선일보 문갑식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인데 한 쪽에 편식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감싸 안으려는 조상호 사장에 대한 매서운 공격적 부분이다. 30년 정도의 역사를 지녔고 좌우를 아우르겠다는 좌우명이 분명 많은 이들에게 전달됐고, 결과도 있었을 텐데 준비 부족이었는지, 아니면, 회사의 지침에 따른 것인지 시대적 비극의 연장선 속에 있는 기자의 입장에서인지 모르지만 행간의 격렬한 분쟁은 눈에 띄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 속살도 있지만 인간 조상호란 인간을 드러낸 걸작들이 많았다. 특히 사회과학도이면서도 깊은 향기를 드러낸 송호근 교수의 ‘70학번형 인간’은 백미이지 않나 싶다. 시적인 표현력은 물론,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과 분석은 짧은 지면이 아쉬울 정도로 쉼 없이 읽어 내려가도록 이끌었다. 또한 조상호 사장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오생근 교수’의 백암산 골짜기에서 맺어진 인연’은 한 인간의 슬픈 사연을 관조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일신사’ 대표이사인 ‘윤백규’의 글은 자칫 신비화되던 인물의 즐겁고도 솔직한 이면을 유머 있게 서술하고 있다.
  글들을 잘 쓰는 이들 덕분에 이 책은 공치사나 하는 그런 무료하고 무거워서 하품 나오게나 하는 사보가 아니게 됐다. 출판사는 출판사인가 보다. 어떻게 글을 만들고 편성해야 책다운 책을 만드는지를 알고 있는 것을 보니까. 그리고 이런 장점이 앞으로도 계속 되길 빈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긴장의 끈이 더욱 팽팽해져 가고 있다. 2013년이 끝나가는 12월 현재 고려대 정경대 뒷문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갑갑한 대자보들이 붙어서 현재 큰 이슈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나남’이 세상에 처음 나온 1979년에도 대자보는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안정이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2000년대 들어 대자보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는데 이제 다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대자보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다시 70년대의 긴장으로 한국사회는 깊이 빠져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때를 위해 ‘나남’이 30년간 버텼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더 한 시간 동안 ‘나남’이 사회적 문제를 안고 사업했으면 한다. 다른 곳은 몰라도 ‘나남’이 외면하면 안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론 의병장이 운영하는 출판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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