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2주

  정부가 사악해지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공동체를 대표하는 정부 혹은 정부기관들이 영화 속에서 악당과 다르지 않은 불신 받는 존재로 나온다.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기관들이 공공기관들이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면서도 도리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시민들을 희생시키는 내용은 이제 영화에선 자주 볼 수 있는 테마다. 정부는 행태는 여느 불법집단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그 속에서 시민은 위태롭게만 보인다. 거대한 집단이라 할 정부 혹은 정부기관들과 싸우는 시민은 허약하고 나약해 보이기만 하고, 위험해 보인다.
  정부와 싸우는 시민들의 사투는 스릴러가 될 수도 있고, 범죄영화가 될 수도 있고, 소외된 자들의 고백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뭐가 되든 불행한 모습들이다. 다행히 영화가 긍정적인 시선으로 정부의 부당함을 폭로하며 생존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위험하고 슬프기조차 하다. 강한 자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슬프다. 이런 구성은 아마도 냉혹해진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고, 정부 역시 공복이 아닌 이기적인 집단일 뿐이란 현실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권이 만든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킬 것은 자신뿐이란 엄연한 사실을 관객들에게 일깨우고 있다. [Enemy of the State], [센츄리온], 그리고 [골든 슬럼버]가 그런 것들을 보여줄 것이다  

Enemy of the State 



  잘 나가는 시민이 정부의 적이 됐을 경우 벌어지는 상황을 실감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정의를 밝히고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을 향해 정부의 어느 특수기관이 어떤 만행을 할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인공위성을 통해, 그리고 신용카드와 핸드폰 등을 통해 어느 시민을 마치 사냥하듯 몰아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상징성을 드높인다. 이 영화는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문학과 영화 작품이지만 그 사실성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작게 만든다. 어쩌면 귀신이 나오는 공포물보다 더 무서운 영화일지 모르겠다. 진 해크만과 존 보이트의 출연이 무척 반갑고 윌 스미스의 흥미진진한 열연 역시 인상적이다.  

센츄리온 



  정부기관이 시민이나 자신의 국민들을 희생시키려는 행태는 현대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야만적 사회인 피트 족을 공격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국의 국민들을 희생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 로마의 관료들의 모습은 공동체의식을 통해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관료의 이익 때문에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시민 혹은 군인의 충성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자문하게도 된다. 그리고 야만과 문명의 차이 역시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얼마나 우아하게 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리라.  

골든 슬러버 



  정치적 이익을 위해 허약해만 보이는 시민 하나를 정부기관이 희생시키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멋모르고 사귀었던 친구가 사실은 음모를 꾸미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알면서 주인공은 충격에 빠지고, 택배회사 직원 하나를 희생시킴으로써 중요한 정치현안을 해결하려는 특수경찰들의 만행은 공포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주인공을 살리는 것은 그의 과거의 인연이며, 결국 곁에 있던 그들이라는 점에서 인간관계의 소중함도 엿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지막에 결코 정의는 승리한다는 공식은 결코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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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4주

  꿈은 한국에선 미래에 대한 어떤 암시로 보는 경향이 있다. 미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분석은 한국인들의 미래에 대한 염려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돼지꿈이나 용꿈 등의 해몽은 그래서 생겼는지 모른다. 돼지꿈 꾸고 산 복권에 대한 것은 한국인의 미래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에서의 꿈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들이 새롭게 개척한 심리학이란 과학을 통해 보인 꿈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바로 인간의 근저에 있는 심리적인 요소들이며, 대개는 현실적 욕망에 대한 투영이거나, 죄의식 등의, 겉으론 드러나지 않은 무의식적 영역에서의 내용들이 태반이다. 그래서인지 서구 영화에서의 꿈은 언제나 욕망이나 무의식의 내용을 다룬다.
  서구의 이런 내용들을 영화가 놓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의 영화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인간의 심리와 갈망, 혹은 감추고 싶은 죄의식 등을 담고 있다. 즉, 무의식의 반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선 마치, 훔친 물건을 들킨 아이들처럼 당황스럽고 자신을 되돌아보게도 된다. 그런 내용들은 다음의 영화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바닐라 스타이,’ ‘매트릭스 (The Matrix),’ 그리고 ‘인셉션’ 이 그런 맥락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바닐라 스카이 (2001) 

 


  잘 나가던 남자에게 불행이 찾아온다. 멋진 외모를 무기로 많은 여심을 흔들었는데, 그만 자신이 사귀었지만 버린 여자의 가혹한 보복으로 얼굴이 망가지는 부상을 당하고, 그는 더 이상 매력적인 외모로 상대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고, 이것으로 인해 방황하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현실과 같은 꿈을 통해 자신의 갈망을 이루지만 동시에 허상 속에서의 방황일 뿐, 이룰 수 없는 갈망을 마지막에서 확인할 때, 가히 공포물을 보는 것만 같았다. 외면에 대한 집착이 부른 무서운 결과, 아마 영화는 외면으로만 살려는 인간의 허망한 즐거움을 비난하는 것만 같다.  


더 셀 (the Cell) (2000) 


 


  가히 충격적인 영화다. 인간의 무의식 세계에서의 심리를 영상화한 이 영화의 장면들은 환상적인 매력과 전혀 예상 못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살인자의 무의식 속으로 진입하면서 위험에 처한 소녀를 구하는 기본 구도는 전혀 예상 못할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꿈과 같은 영상을 제공한다. 제니퍼 로페즈는 아마도 자신의 출연작 중 최고라고 할 것만 같다. 그리고 현실 속에선 만들 수 없는 아이디어를, 꿈을 통해 얻은 장면들은 서사의 힘은 물론, 영상에 압도될 만큼 대단한 작품이다. 
 

인셉션 (the Inception) (2010) 


 


  꿈에 관한 혁명적인 인상을 준 영화로, 영화 역사에 있어 대단한 평가를 받을 것임을 보는 내내 확신할 수 있다. 꿈 속에서 현실의 자아들이 의식 속에서 움직인다는 가정은 기존의 꿈의 영화가 무의식만을 다루었다는 것과는 차이를 내면서 매우 이색적인 재미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사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의도적으로 타인의 무의식 속에 새로운 자극제, 즉 이미지를 심는다는 내용 역시 매우 독특했다. 또한 영화 속에서 볼 수 있었던 무의식 속에서의 갈망과 죄의식 등을 볼 때,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까지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후속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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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세스 내비게이터십>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석세스 내비게이터십 - 행복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자기창조경영
구건서 지음 / 시그마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은 논리적 오류가 가장 눈에 띄었다. 성공했기에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는 식의 논리 전개는 획일적이고 어쩌면 과도한 일반화와 과도한 주관적 편견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노력이 성공의 주요 변수이겠지만 종종 가장 큰 원인으로만 볼 수 있진 않다. 또한 성공한 자들에 대한 과도한 편향성 역시 약점으로 보인다. 대기업 총수에 대한 인식은 물론, 두바이를 통해 드러난 개발주의적 사고 역시 오늘날의 몰락한 두바이를 고려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책 속에 보이는 성공에 대한 집착은 과정이 어떤 것이든 결과만 좋다면 좋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드러났다고도 할 수 있다. 성공에 대한 집념, 책은 이런 내용으로 가득했다. 이런 것들은 책을 읽는 와중에 눈에 띄는 약점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나’라는 인식을 느낄 수 있는 강점이 존재한다. 즉, 최선을 다해 성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책 사이사이에 소개된 저자의 인생은 가혹하기 그지 없다. 그런 인생은 저자로 하여금 열심히, 그리고 끈질기게 도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인생관을 자연스럽게 심어줬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엄한 인생에서도 저자 자신의 혹독했던 인생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꿈일 잃지 말아야 하는 자명한 사실을 증명해주는 근거였다. 어쩌면 힘들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만연되고,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최근의 뉴스 소식들을 보게 된다면, 저자의 인생과 그의 인생 극복기는 분명 주목해야 할 내용들이다.
  이 책은 그렇다고 저자의 이야기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성공을 위한 자신의 리더십 개발과 그 진화된 것인 내비게이터십의 제시는 성공을 위한 자신의 능력 강화와 그것에 대한 개발을 의미한다. 또한 꿈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부분이나, 준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강조, 그리고 결코 바뀌지 않은 성공 방정식들은 현재에서도 온고지신이 될 수 있는 좋은 내용들로 채워졌다.
  이 책은 성공을 열망한 자들을 위해 쓰여졌다. 그리고 그 내용이 진부할 수는 있지만 분명 현실감이 있고, 생명력 역시 풍부하다. 무엇보다 뻔한 답이 있는데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타성을 질타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선 과거의 지혜를 사용하기엔 너무 많은 제한요소가 있는 것만 같고, 또한 열망에 단순한 환상이나 동화로 만들 수도 있는 인간적 약점이 많은 것만 같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한 것일 것이다. 타성으로부터 벗어나 성공이란 갈망을 얻기 위해 바로 실천하고 도전하며, 자신을 확인하면서 스스로의 계획을 실천할 수 있는 자기계발이 중요하다는 것,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다시 한 번 과거의 것을 들춰내서,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그리고 저자 자신도 그런 열정 한가운데 있으며, 그것을 위해 노력했으며, 앞으로 새로운 목표를 세워 다시 최선을 다할 것임을 책을 통해 밝히고 있으며, 역시 주목해야 할 내용이다. 그런 노력이야말로 독자의 감흥을 자극하고 또한 노력해야 할 것임을 보여준다. 이 책, 진부하지만 새로운 활력을 제시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책이 갖고 있는 약점이 있지만 한 번 생각할 것들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활력, 다시 한 번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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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 Incep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는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엔 그런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발한 상상력은 관객의 관심을 끌 수 있지만 감동을 줄 수 없고, 깊은 사색의 시간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영화는 그런 것을 넘어 깊이 있는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으며, 감독 ‘크리스터퍼 놀란’의 과거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하지 않은,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는 고달프지만 의미 있는 작업을 통해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사실 ‘배트맨: 다크 나이트’에서 그랬고, 그 전 작품에서도 그랬다. 감독의 탁월한 인식이 부러울 뿐이다.
  인간의 깊은 내면은 어쩌면 인간이 알지 못하는 공간인 것 같다. 자신의 것이지만 결코 알 수 없는 내면,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들이 잠재해 있다. 그런 잠재적이고 추상적인 인간의 내면과 연결되어, 그 내면을 형상화하는 매개체는 꿈이다. 최소한 서양은 그렇게 여기고, 또한 연구되고 있다. 꿈의 이해를 통해 인간 내면을 연구하는 심리학 등은 그래서, 꿈에 대한 해석을 중히 여긴다. 그런 꿈을, 영화 ‘인셉션’은 매우 기이한 서사를 통해 또 다른 세계이면서도 현실의 인식이 현실화되는 공간으로 꿈을 구성했다.
  이해하기 무척 힘들었다. 과연 내가 꾸는 꿈 속에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는지 지금 역시도 궁금할 정도다. 언제나 수동적인 공간으로만 알고 있는 꿈이란 가상적 공간이 계획과 의지가 통용되는 세상으로 변화하는 것에서 기발함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없는 굉장한 인상을 받았다. 또한, 꿈 속에서의 세계를 꿈으로 가기 전에 만들 수 있고, 그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꿀 수 있다는 이야기는 불가해한 이야기였다. 이런 꿈에 대한 괴이한 인식은 이상하게도 공포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독특한 구성으로만 이 영화가 관객을 끌려 했다면 그것은 수준 낮은 작품이 됐을지 모른다. 영화는 꿈이란 매체를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이 감추고 싶은 내면을 드러내면서 인간의 허약함은 물론, 인간의 본질로까지 영화의 앵글을 비추고 있었다. 어쩌면 이 점이 이 영화의 강한 매력이었던 것 같다. 감추고 싶다는 것은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잊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감출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것이다. 정신 한 켠에 잠재하면서 현실의 자아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생각의 근원인 이것들은 인간의 가장 가슴 아픈 상처로서, 언제나 스스로의 열등감과, 비애감, 그리고 현실 속에서의 공포로까지 존재한다. 또한, 이런 죄책감과 함께 갈망은 또 다른 잠재적인 힘으로써 현실의 자아를 움직이고 통제한다. 자신의 죄책감으로 인해, 현실로 돌아오길 망설이는 자아의 행동에서, 결국 세상은 인간에겐 가장 큰 두통거리이자 불만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구도 속에서 보이는 것은 현실에 대한 인간의 불행과 불만, 그리고 공포다. 현실을 살면서 언제나 위험의 일상화에 힘들어하는 인간은 꿈이란 매개체를 통해 현실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이라고 표현하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꿈도 사실은 행복에 대한 실패를 의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꿈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면서 주인공과 관객이 만난 것은 일탈이라도 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아닌, 죄책감과 소외감으로 억눌려있던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었다.
  꿈은 그런 공간이었다. 그나마 일탈이자 행복의 공간으로 볼 수 있는 꿈 역시, 현실과의 연계성 속에서 인간의 도피를 자극하는 공간일 뿐, 결코 영원한 행복을 보장해주는 공간이 아니며, 어쩌면 현실과 다르지 않은 고통의 공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힘들어하는 인간의 모습은 갈망을 통해 그것을 벗어나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이는 구도에선 매우 힘들어 보인다. 어쩌면 인간의 세상살이 역시 그런 것이리라. 그래서 매우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 켠엔 슬픔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속편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을 것만 같다. 꿈 속에서 시간이 5일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획된 이상, 영화는 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더 보여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 매우 궁금하다. 그 속에서 인간의 불행을 벗어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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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 The Man from Nowher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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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트맨도, 스파이더맨도 아니었다. 소외된 것들의 구체적 대상들이 희생될 위기에 빠졌을 때, 그들을 구한 것은 괴력의, 신통한 힘을 지는 영웅들이 아닌, 우리들 중 하나다. 다만 그런 존재 역시 이상적인 영웅일 뿐이었다.
  영화는 상상 이상의 액션과 강인함, 그리고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연기자들로 인해 쉼 없는 즐거움이 있었다. 원래의 인식은 깨지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원빈은, 과거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의 약한 모습의 그를 벗어난, 내면적 갈등을 겪으면서도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전당포 아저씨로서의 멋진 변신을 이루어냈다. 침묵 속에서 자신의 어두운 과거에 힘들어한 그가 어린 소녀를 위해 위험한 모험을 감수하는 모습은, 어쩌면 뻔한 이야기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소화했다. 그리고 영화 ‘여행자’에서 소외 받은 어린 소녀 역에서 믿을 수 없는 느낌을 보여주며, 어린 소녀의 슬픔을 극대화한 김새론은 이번에도 그녀의 특이한 매력을 발산했다. 저 소녀라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구할 것만 같았다. 누구라도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좋은 스토리와 볼거리, 그리고 훌륭한 연기자들만이 즐비한 것만큼 우아하지도, 그리고 행복하지도 않은 공간이다. 영화는 여느 액션무비완 다르게 서글픈 오늘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가난한 자들이 즐비하게 살고 있는 공간은 아름다운 영상으로 꾸며졌어도 슬펐다. 어린 소녀가 훔쳤다는 죄로 타박을 박고 나서 걸어간 모습의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저녁놀을 배경으로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의 소녀의 귀환은 어느 할머니가 쏟아낸 모습을 통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그곳은 보이는 것처럼 아름다운 세계가 아닌, 가난으로 인한 고통과, 그로 인해 나약해져 버린 인간들의 위험도가 매우 높은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의 범죄와 폭력, 그리고 힘없는 자들이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사회적 질곡이 숨어 있는 곳이다. 그 속에 아저씨가 있다. 

   아저씨, 그리 특이한 존재는 아니다. 그냥 옆집에 있는 평범한 존재감만이 존재하는 그런 존재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평범한 존재감을, 사회적으로 소외된 소녀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재탄생 시킨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심각한 위기로 내몰린 우리들의 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심심풀이 폭력물이 아닌, 사회의 한 거울이자, 그 속에 담긴 소외된 자들의 갈망을 영화화했다. 영화 속에서 우릴 구원해달라는 메아리는 영화 곳곳에서 들려왔다.
  영화 속 풍광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았다. 과묵하기만 한 존재였던 아저씨에게 세상의 어느 불쌍한 소녀의 소원은 단순했지만 어려운 문제였다. 사회적 폭력 한가운데로 끌려간 그녀에게 평범한 존재감 정도로만 느껴지는 옆집 아저씨에까지 구원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은 아무리 좋게 봐도 결국은 슬펐다. 영화의 비극은 바로 이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서부터 유연화 등, 각자 알아서 살라고만 하는 냉혹한 현실과 강자들의 이야기는 어린 소녀의 비극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하면서, 소외된 자들이 다시 한 번 가혹한 현실 앞에 내쳐질 뿐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마약거래에서부터 장기 밀거래까지 세상에 알려진 폭력과 폭력배들이 다 관여했다.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 천연덕스럽게 ‘말을 잘 들어야 엄마 만날 수가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무서운 할머니는 다름 아닌, 어린 소녀를 더욱 가혹하게 밀쳐내는 세상을 형상화한 보조관념일 뿐이다.
  누구도 구원해 줄 수 없기에 기이한 운명으로 태어난 ‘아저씨’라는 영웅은 세상에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이가 더 이상 없기에 탄생된 것이다. 어쩌면 현실감이 있어 보이지만, 그러나 결국은 현실감이 없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사는 곳의 아저씨는 사실 타인의 고달픈 삶에 무관심하게 살 확률이 더욱 높은 그런 존재일 뿐이다. 영화는 이런 역발상을 통해 갈 곳 없어 힘들어하는 자에겐 자비를 베풀었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환타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위로는 보는 내내, 슬픈 우리들의 환경을 되돌아보게 할 뿐이었고, 영화 속의 경찰의 무능함 속에서 보이는 세상의 냉혹함은 역시나 어두운 우리들의 현실을 극대화한 소재였다.  

   영화 속의 어린 소녀는 구원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마지막에 들었던, 혼자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환상에서 환타지로, 그리고 다시 현실로 귀환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가 위기를 벗어난 그 때는 잠시라는 꼬리표를 다시 달게 된다. 그녀는 아저씨라는 든든한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다시 한 번 버려질 수도 있는 위험한 세상으로 귀환한 것이다.
  영화는 갈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갈망을 중심으로 만든 예술작품이 그렇듯 갈망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준 갈망은 어쩌면 소박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혹독한 세상으로 변모만 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소박함이 얼마나 인정되고 보호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저씨’가 더욱 간절해진다. 환타지지만 그래도 염원하고 싶다. 현실과 환타지 사이를 자유롭게 오고 간 ‘아저씨’란 영화는 좋은 영화를 뛰어넘어 한 사회의 갈망을 드러냈다. 이를 통해 현재의 힘든 우리를 위로하고 잠시나마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이라도 느끼고 싶다. 또 다른 ‘아저씨’ 속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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