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2주

  정부가 사악해지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공동체를 대표하는 정부 혹은 정부기관들이 영화 속에서 악당과 다르지 않은 불신 받는 존재로 나온다.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기관들이 공공기관들이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면서도 도리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시민들을 희생시키는 내용은 이제 영화에선 자주 볼 수 있는 테마다. 정부는 행태는 여느 불법집단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그 속에서 시민은 위태롭게만 보인다. 거대한 집단이라 할 정부 혹은 정부기관들과 싸우는 시민은 허약하고 나약해 보이기만 하고, 위험해 보인다.
  정부와 싸우는 시민들의 사투는 스릴러가 될 수도 있고, 범죄영화가 될 수도 있고, 소외된 자들의 고백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뭐가 되든 불행한 모습들이다. 다행히 영화가 긍정적인 시선으로 정부의 부당함을 폭로하며 생존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위험하고 슬프기조차 하다. 강한 자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슬프다. 이런 구성은 아마도 냉혹해진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고, 정부 역시 공복이 아닌 이기적인 집단일 뿐이란 현실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권이 만든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킬 것은 자신뿐이란 엄연한 사실을 관객들에게 일깨우고 있다. [Enemy of the State], [센츄리온], 그리고 [골든 슬럼버]가 그런 것들을 보여줄 것이다  

Enemy of the State 



  잘 나가는 시민이 정부의 적이 됐을 경우 벌어지는 상황을 실감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정의를 밝히고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을 향해 정부의 어느 특수기관이 어떤 만행을 할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인공위성을 통해, 그리고 신용카드와 핸드폰 등을 통해 어느 시민을 마치 사냥하듯 몰아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상징성을 드높인다. 이 영화는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문학과 영화 작품이지만 그 사실성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작게 만든다. 어쩌면 귀신이 나오는 공포물보다 더 무서운 영화일지 모르겠다. 진 해크만과 존 보이트의 출연이 무척 반갑고 윌 스미스의 흥미진진한 열연 역시 인상적이다.  

센츄리온 



  정부기관이 시민이나 자신의 국민들을 희생시키려는 행태는 현대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야만적 사회인 피트 족을 공격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국의 국민들을 희생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 로마의 관료들의 모습은 공동체의식을 통해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관료의 이익 때문에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시민 혹은 군인의 충성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자문하게도 된다. 그리고 야만과 문명의 차이 역시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얼마나 우아하게 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리라.  

골든 슬러버 



  정치적 이익을 위해 허약해만 보이는 시민 하나를 정부기관이 희생시키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멋모르고 사귀었던 친구가 사실은 음모를 꾸미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알면서 주인공은 충격에 빠지고, 택배회사 직원 하나를 희생시킴으로써 중요한 정치현안을 해결하려는 특수경찰들의 만행은 공포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주인공을 살리는 것은 그의 과거의 인연이며, 결국 곁에 있던 그들이라는 점에서 인간관계의 소중함도 엿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지막에 결코 정의는 승리한다는 공식은 결코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