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3 세트 - 전3권 - 제2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페르낭 브로델 지음 / 까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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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의 교황이라는 페르낭 브로델의 명성을 잘 알려주는 책입니다. 두께에 비해 상대적으로 책이 가벼워서 의외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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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엘살바도르 산타아나 이사벨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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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의 부드러운 산미라는 문구에 어울리는 맛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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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 01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 1
나가노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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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카와와 친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른들의 세계를 헤쳐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같죠. 바로 거기에 읽는 사람이 "힐링"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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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신, 만들어진 위험』의 리뷰를 작성하다가 너무 곁가지로 뻗어나가는 듯한 내용은 따로 정리해서 쓰기로 했다.




스티븐 그린블랫의 저작 『1417년, 근대의 탄생』은 르네상스 시대 초입 당시, 포초 브라촐리니라는 휴머니스트이자 책사냥꾼이 우연히 한 수도원에서 고대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을 발견하고 그 후 일어난 일을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루크레티우스의 사상 이면에 존재한, 헬레니즘 철학 사조 중 하나인 에피쿠로스 학파의 유물론이, 중세 동안 잊혀졌다가 포초의 손을 통해 부활하여 마침내 우리가 아는 근대가 탄생하는 길을 열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린블랫이 묘사하는 이 과정은 웬만한 소설 이상의 흡입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흥미롭기까지 하다.


이 책에서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라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의 글이 인용된다. 그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유피테르의 명에 따라서 오늘 정오에 프란치노 신부의 멜론 밭에서 멜론 2개가 완벽하게 익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도 따지 않아서 결국 땄을 때는 이미 먹기 좋은 상태가 지났을 것이다. 동시에 유피테르는 몬테 치칼라 산기슭에 있는 조반니 브루노의 집의 대추나무에서 30개의 잘 익은 대추를 따게 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몇몇은 채익지도 않은 푸른 상태로 땅에 떨어지게 하고 그중에 15개는 벌레가 먹게 하라고 하셨다. 한편, 알벤치오 사볼리노의 아내 바스타는 관자놀이 부분의 머리카락을 고불고불하게 말려다가 사용하던 철판이 너무 달궈져서 47가닥의 머리카락을 태우게 될 것이다. 그래도 두피를 데지는 않을 것이고 탄내를 맡고도 욕설을 내뱉지 않고 가만히 참을 것이다. 또한 바스타가 키우는 황소가 눈 똥에서 252마리의 쇠똥구리가 태어날 것인데, 그중에서 14마리는 알벤치오의 발에 밟혀서 죽게 될 것이고, 26마리는 뒤집혀서 죽게 될 것이다. 또 8마리는 뒷마당 근처를 순례자처럼 뱅뱅 돌 것이며, 22마리는 한쪽 구멍에, 42마리는 문 옆 돌 밑에 자리를 잡고 모여살게 될 것이다. 16마리는 쇠똥뭉치를 내키는 대로 끌고 다닐 것이고 나머지는 아무 데나 종종걸음으로 배회할 것이다. 


라우렌차가 머리를 빗을 때 13가닥의 머리카락이 끊어지고 17가닥은 빠질 것이다. 빠진 자리 중에서 10개는 사흘 안에 다시 머리카락이 나겠지만 7개는 더는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안토니오 사볼리노의 암캐는 5마리의 강아지를 밸 것인데 그중에 셋은 평균 수명만큼 살 것이나 둘은 태어나자마자 죽을 것이다. 살아남은 셋 중에서 첫째는 어미를 닮을 것이고, 둘째는 잡종일 것이며, 셋째는 그 아비를 부분적으로 닮되 폴리도로의 개도 약간 닮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뻐꾸기가 라스타르차로부터 12번 울 것이니 그보다 더 많이도 더 적게도 울지 않으리라. 12번 울고 나면, 그곳을 떠나 치칼라 성의 폐허를 향해 11분간 날아갔다가 또 스카르바이타로 날아갈 것이다. 그 후에 생길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자꾸나.


마스트로 다나세가 천을 판에 대고 자를 것인데 제대로 재단이 되지 않아 옷단이 비뚤어질 것이다. 코스탄티노의 침대에서는 12마리의 빈대가 침대 널을 떠나서 베개를 향해 행진할 것인데 그중 7마리는 몸집이 크고 4마리는 작을 것이며 1마리는 중간 크기이다. 그리고 오늘밤 촛불이 켜질 때까지 살아남은 한 놈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살펴볼 것이다. 그로부터 15분 후에 피우룰로 댁 노부인이 혀를 입천장에 네 번 스치는 동안 아래 턱에 있는 오른쪽 세 번째 어금니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벌써 17개월 전부터 흔들리던 이빨인지라 피도 나지 않고 빠질 것이며 통증도 없을 것이다. 암브로조는 112번째 시도 끝에 마침내 아내와의 잠자리에 성공했으나 그녀를 임신시키지는 않는다. 그래도 방금 먹은 포도주 소스로 조리한 수수와 파는 정자로 변했을 것이고, 그 정자를 사용하긴 했다. 마르티넬로의 아들은 가슴팍에 털이 나고 목소리도 갈라지기 시작할 것이며, 파울리노는 부러진 바늘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다가 속옷을 졸라매는 빨간 끈이 툭 끊어지게 될 것이다…….


조르다노 브루노, 『승리한 괴물의 축출』


위에서 길게 인용한 글은 유피테르(제우스)가 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다. 읽으면 알겠지만, 유피테르는 세상 만물이 어떻게 될지에 관해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그 명령을 따라야할 대상들은 위대한 영웅이나 뭔가 웅장하고 장엄한 대자연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 쇠똥구리, 빈대다. 그래서 시답잖다 못해 하찮다(물론 최근 역사나 과학에서는 유피테르가 구구절절 나열하는 이런 '하찮은' 행위들과 행위의 주체들이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유피테르 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믿던 사람 입장에서, 브루노의 이 발칙한 상상은 대단히 불쾌하게 다가올 것이다. 유피테르(제우스)는 신들의 왕 아닌가? 그런 신이 이런 시시콜콜한 일이나 한다고? 그런데 그렇게 반응할 사람은 브루노가 살던 16세기로부터 천 년도 더 이전인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테오도시오스 황제 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사라졌다. 따라서 브루노 당시 이 글을 읽고 “유피테르 신을 모독했다”고 분노할 사람이 당시 유럽에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신을 믿는 신자들, 당시 유럽의 기독교인들 입장에서 여기 나온 “유피테르”가 어떻게 다가올까?


이 글을 쓴 조르다노 브루노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신비주의자다. 로마 가톨릭의 도미니크회 수사였던 그는 가톨릭 교리에 의심을 품었으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였고, 나아가 우주는 무한하며 지구 밖에도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당연히 영국, 프랑스 등지를 전전하다가 베네치아에서 들렀을 때 붙잡혀 로마에서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 당했다.

 


국내에 번역된 브루노의 저작은 한 권 뿐이며 아쉽게도 품절이다.


21세기 기준 지구인에게 브루노의 이런 주장은 별다른 감흥 없이 다가올 것이다. 지금은 지옥에서 사탄이 세상을 벌하러 뛰쳐 나온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벤저스처럼 외계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이야기, 아니면 듄이나 아바타처럼 인류가 우주를 정복하거나 정복한 후의 이야기가 더 인기를 끄는 시대다. 


브루노가 활동하던 16세기 후반기는 지금과 달랐다. 알프스 이북의 유럽 국가들은 종교개혁 과정을 거쳐 로마 교황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던 시기였고, 반대로 프랑스, 스페인 등 가톨릭권에서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탄압(예컨대 성 바톨로뮤 축일의 학살이나 스페인의 그 유명한 이단 재판)이 행해지던 시기였다. 


과학사의 측면에서 브루노가 활동하던 시기는 코페르니쿠스 이후의 시기이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같은 시대이다. 이 시대하면 흔히 교황청이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재판하고 갈릴레오는 재판 받은 후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발언을 했다고 잘 알려진 시대다(그가 이런 발언을 정말 했는지는 차차하고). 그런 시대에 브루노는 우주는 무한하며 지구 같은 곳이 더 있을 것이고 그곳에는 생명체도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내뱉은 것이다. 


16세기 유럽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에서, 지구 외의 다른 장소에 신이 또 다른 생명체를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단순히 허무맹랑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 그렇다면 그 사실을 수록하지 않은 성경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해야 할 것이고, 신이 창조했다는 인간과 역시 신이 창조했다는 그 외계 생명체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인간의 상상력은 가끔 아주 발칙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상상력도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16세기에 거대한 모래벌래가 사막을 헤집고다니는, 행성 전체가 사막인 아라키스나 인간보다 한참 큰 푸른 외계인들이 머무는 판도라 같은 위성을 상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물론 이는 상상력이 뻗어나가는 방향의 차이이지, 상상력의 질적 수준이 다르다는 의미는 아니다). 



브루노 당시 브루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례로는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에서 다루는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메노키오는 태초에 우주는 구더기들이 기어다니는 치즈였다고 주장했다. 메노키오도 당연히 브루노처럼 재판 끝에 화형당했다. 진즈부르그는 메노키오가 어떤 텍스트를 접했기에 기독교 교회의 우주론과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독창적인 우주론을 도출하였는지를 추적한다. 덧붙여 『치즈와 구더기』는 역사학의 한 분야인 미시사를 대표하는 연구서이기도 하다.



이보다 앞선 중세 유럽에서 펼쳐진 인간의 상상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고 싶으면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 소설 『바우돌리노』를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중세 유럽인들이 상상한 별의별 기괴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아울러 에코의 소설치고는 읽기 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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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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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진화생물학자이자, 『만들어진 신』과 같은 저작을 통해 무신론자로서 그간 종교를 강경하게 비판해온 리처드 도킨스의 『신, 만들어진 위험』은 그가 여러 저서들에서 개진한 관점과 논의를 한데 모아 알기 쉽게 요약한 책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Outgrowing God”이다. 역자가 역자후기에서 밝히듯이 ”Outgrow”는 “성장하고 성숙해지면서 어떤 생각이나 습관을 버린다”는 뜻이다. 원제를 생각하면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이제는 그만 신으로부터 벗어납시다." 


이 책은 원제 Outgrowing God에 걸맞는 내용을 담으려 시도한다. 바꿔 말해, 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없다고 공언하고 그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 “신이여, 안녕히”에서 저자 도킨스는 일신교, 그 중에서도 유대-기독교적 사고의 바탕이 되는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모순되는 내용들을 지적하고 나아가 기독교에 기반한 도덕의 허점을 낱낱히 공략한다. 2부 “진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에서 도킨스는 생물학자로서 본인의 전공을 살려, 생물학적 설명을 바탕으로 "신"의 이름을 들먹일만한 여러 자연 현상들이 어떻게 자연의 순수한 창조물인지 입증하면서 "신"이 존재할 가능성을 지운다.


1부의 주된 내용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성경의 내용은 현대인의 상식이나 관점에서 보기에 정녕 성경이라는 명칭이 부합하는 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언급되는 욥의 이야기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된다. 고난을 견디는 욥은 그 어떤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는 신앙심을 보여주는 찬미할만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뜬금없이 죽어야 했던 욥의 가족들 입장은?


1부에서 도킨스는 성경의 “역사적” 기원을 보여주면서 성경이 누구의 창조물인지 추적하고, 신약 4대 복음서를 지은 이들의 심리도 일부 엿본다. 도킨스에 따르면 당장 인터넷과 같은 도구를 통해 팩트체크가 가능한 현대인들 사이에서도 온갖 거짓과 가짜뉴스가 전파되는데, 복음서 저자들의 시대로 거슬러가면 지금처럼 여러 문서나 과학적 자료로 교차검증따윈 꿈도 꿀 수 없는 시대였으니 현대보다 더했을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복음서 저자들이 실제 역사적 사실의 전달보다는 예언의 연결성을 강조하여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말하는 게 더 중요했을테니, 성경이 비록 실제 역사적 사실 일부를 담고야 있겠지만, 그에 뒤섞인 허구가 한참 더 클 것이라 말한다.


아울러 도킨스는 성경의 모순되는 지점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성경이 과연 도덕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예를 들어 십계명에서 “살인 하지 말라”고 하지만, 유대민족은 다른 민족을 학살하고 다닌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는 정당하다. 도킨스는 구약의 신이 ”질투의 신,” “질투하는 신”이라 스스로 말하는 내용들을 가져오면서 성경이 도덕적 근거로서 과연 유효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1부가 성경의 모순을 들춰내는 장이었다면 2부는 “신”을 통해 설명되는 여러 자연 현상들이 “신”없이도 설명 가능 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할애한다. 예를 들어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의 복잡 다단한 신체구조, 혹은 개체가 아닌 하나의 군집으로서 여러 동물들이 보여주는 고도의 행위들(흰거미의 둥지 건설, 군무를 연상케하는 찌르레기 떼의 비행)을 두고 어떤 설계자가 설계한 결과라는 식의 해석을 두고, 도킨스는 “신”과 같은 누군가의 설계가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 일이며 동물들이 보여주는 고도의 행위 역시 우연임을 보여준다. 예컨대 책에서 제시되는 흰개미 둥지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건설중이라는 가우디의 성당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다. 흰개미들은 어떤 의도로 자기들의 둥지를 성당처럼 지은 게 아니라 짓다보니 그리된 것이다. 반면 가우디의 성당은 가우디가 설계한 것이다. 둘의 차이점은 설계->건축으로 이어지는 하향식 건축과 설계없이 건축을 계속해나가다보니 결과물이 성당과 닮은 상향식 건축일 뿐이다.


이외에도 2부에서는 DNA나 우주의 탄생, 자연적인 진화의 결과물로서 이타적인 행위가 등장한 배경과 같은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책의 내용을 모두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2부의 이러한 논의들에서 저자 도킨스가 자연과 우주라는 공간에서 “신”이 앉아 있을 의자를 다 빼버리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는 점은 알 수 있다. 2부에서 도킨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우리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고 누군가 개입했다고 생각하지, 자연 스스로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 단정지으면서 "설마 그럴리가!"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은 우리의 직관, 혹은 우리의 믿음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된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역자가 밝히듯이 다른 도킨스의 책들에 비해 분량도 적고, 읽기도 쉽다. 도킨스가 어려운 생물학적 개념을 아주 쉽게 풀어주고 거기에 이해를 도우려고 여러 비유까지 끼얹어 가며 떠먹여준다. 역자는 이런 서술전략이 독자층을 넓히는 것, 특히 판단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유아나 청소년에게도 이 책이 널리 읽히게 만들어 특정 종교적 가치관에 매몰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으로 이해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는 신의 존재를 반박하는 지점보다는 그러한 반박을 시도하는 행위 그 자체에 더 중점을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연하다 생각한 지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 근거없이 믿어온 사실이나 상식, 진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돌이켜보고, 우리의 인지력과 직관이 얼마나 한계가 많은지 깨닫게 된다. 


이 지점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오만함을 깨우치게 해주는 지점이다. 책에 나오는 사례는 아니지만,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두고 외계인이나 초고대문명이 지었다는 설이 종종 나온다. 이 주장은 달리 보면 '고대 이집트인이 이런 건축물을 지었을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피라미드를 지을 수 없는 고대 이집트인 대신 피라미드를 지은 가상의 존재가 있을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한 관점은 고대 이집트인에게는 피라미드를 지을 능력이 없다는 오만과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자연의 놀라운 사례들, "설마 그럴리가!"라고 말하게 만드는 사례들도 똑같다. 가우디의 성당과 유사한 둥지를 지은 흰개미, 드론쇼 뺨치는 질서정연한 비행을 보여주는 찌르레기 무리를 보고 "흰개미/찌르레기가 어떻게 저럴 수 있어?"라면서 '흰개미/찌르레기가 그러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지을 수 없다. 이는 필경 다른 존재가 개입한 것이다'라고 결론내리면서 고대 이집트인들을 깔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고대 이집트인이나 현대인이나 똑같은 인간이듯이, 인간이나, 흰개미나, 찌르레기나, 지구상의 생태계에 속한 동등한 생물체이며 각자의 시간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프로이트가 했던 말의 반복이다. 프로이트는 코페르니쿠스, 다윈, 그리고 프로이트 자신이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서 끌어내렸노라고 말했다. 과거 무식해서 용감했던 인간이 이 드넓은 우주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깨닫고 겸손해지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할까.


여담으로, 책의 목차에 '신화'가 언급되기에 저자가 다른 신화학자나 비교종교학자의 연구를 언급하고 인용하는 지점이 있지 않을지, 기독교 신화 이외 다른 신화들도 심도깊게 다루지는 않을지, 그러한 학자들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어떠한 지 내심 궁금해했는데 아쉽게도 그런 지점은 없었다. 분석심리학자로서 신화를 연구한 칼 융이 잠시 언급되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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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3-15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창조론자들은 이 책을 금서로 분류할 수도 있을 듯

Heath 2024-03-15 08:25   좋아요 0 | URL
도킨스라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을까 싶네요.

호시우행 2024-03-15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럴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