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사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17
로버트 C. 앨런 지음, 이강국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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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17년 교유서가에서 출간된 로버트 C. 앨런의『세계경제사』는 교유서가의 첫단추 시리즈 서적 중 하나이다. 교유서가의 첫 단추 시리즈는 옥스퍼드의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의 국내 번역명이다.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는 특정 분야나 인물에 대한 입문서, 개론서다. 해당 시리즈는 현재 해당 인물이나 분야에 관한 연구 성과나 논쟁이 되는 점을 제시하면서 현재 어떤 점에서 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해당 분야를 알기 위해 더 참고할만한 서적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맡는다. 분량은 대충 100페이지 정도이다. 이점에서 영어권 독자들에게는 개론서, 입문서라 지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국내에서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와 비슷한 총서를 찾자면 살림지식총서를 비슷한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이야기이니 "Very Short Introduction"에 대한 소개는 이정도로 하자.


저자 소개에 따르면 로버트 C. 앨런은 경제사 전공자이다. 앞 날개에 나오는 저자 설명에 따르면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 경제사 교수로 재직중이라 한다. 


본서는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되나,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어째서 지금의 서구 선진국들은 일찍이 잘 살게 되었는가?

-어째서 산업 혁명은 영국에서 먼저 일어났는가?

-어떻게 나머지 서유럽 국가들과 북아메리카는 영국을 따라잡고 추월할 수 있었는가?

-어째서 러시아, 오스만투르크, 무굴 제국, 중국 같은 기존의 거대 제국들은 산업 혁명을 앞세운 서유럽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말았는가?

-어째서 북아메리카는 서구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반면 라틴 아메리카는 그러지 못했는가?

-어째서 아프리카는 현재까지도 빈곤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어떻게 일본은 예외적으로 서구를 따라잡을 수 있었는가?

-어떻게 소련, 일본, 한국, 대만, 중국은 서구와의 격차를 성공적으로 좁힐 수 있었는가?


말하자면 본서는 저자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영국에서 시작해 유라시아, 아메리카와 아프리카까지 전지구적인 경제사를 간략히 소개한다.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몇 가지 사안들이 있다. 첫째는 저자가 지리, 기술, 제도 같은 요인으로만 경제 성장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경제 정책의 중요성도 강조한다는 점. 둘째는 노동자의 최저 생계 및 교육을 강조한다는 점, 셋째는 서유럽 국가 및 미국이 선두주자인 영국을 추월하게 만들어준 이른바 표준 모델로서 4개 정책(대중 교육 실시, 시장확대를 위한 교통 개선, 통화 안정과 신용 공급을 보장하는 국립은행, 산업 보호를 위한 관세 제도)과 해당 표준 모델이 서구권 이외의 지역들(러시아, 일본,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 넷째는 20세기에 이르러 표준 모델 정책을 정부 주도하에 동시에 실행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유 무역을 강조하는 미국에 상품을 수출하여 미국의 제조업을 희생시킨 대가로 급성장을 이룬 일본, 한국, 대만, 중국의 이른바 '빅푸시' 산업화 등이다.


이 책은 '경제적 측면에서 서구가 어떻게 앞서나갔는가?', '어째서 산업혁명은 서구에서 일어났는가?' 같은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다 보면 필연적으로 떠오르는 책들이 있다. 예컨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나, 이메뉴얼 월러스틴의 『근대 세계 체제』,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와 같은 저작들이 그 사례가 될 것이다. 물론 입문서이자 개론서에 가까운 이 책을 앞서 언급한 다른 책들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 역시 나름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면 교육과 통합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북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사회에서 배제된 인구가 7분의 1에 불과했다. 저자는 읽고 쓸 줄 알며, 상업적 이유로 인해 계산 능력을 지닌 일반인의 숫자가 많을 수록 새로운 과학 지식에 접근하기 쉬우며 이것이 서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새로운 기술과 기계가 발명되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고 지적한다. 반면 라틴 아메리카, 특히 멕시코는 인구의 3분의 2를 이루는 흑인과 원주민이 교육에서 배제되어 있었고 이는 소수의 인구만이 과학 지식에 접근하게 만들어, 여러 사람들이 기술 개발에 뛰어든 영국, 서유럽, 미국처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사이의 주요한 차이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인구의 비중이었다. 미국에서는 흑인이 전체 인구의 7분의 1을 차지했던 반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토착민과 흑인의 비중이 전체의 3분의 2였다. 미국이 전체 인구의 70퍼센트를 흑인에게 하듯 다루었다면 그 결과는 단지 더 큰 규모의 불공평만이 아니라 국가적 실패였을 것이다. 그렇게 교육이 제한적으로 제공되었다면 미국은 결코 경제 강대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143


아프리카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렇다. 기존의 이론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빈곤은 아프리카 인종 특유의 인종적 문제로 볼 수 있는 요인들로 설명되거나, 아프리카에 외국인의 지도 아래 민주적 정부가 들어선다면 퇴치될 수 있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아프리카의 빈곤 원인을 유럽의 아메리카 발견과 그로 인한 세계시장의 등장, 그 속에서 아프리카의 수출 상품이 외적 요인들에 의해 노예, 코코아, 야자기름으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세계시장과의 경쟁에서 찾는다. 


한편으로는 경제사, 그것도 '세계'를 다루는 경제사이기 때문에 그 범위가 너무나도 넓어 특정 지역을 보다 더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감질맛 나게 만드는 점은 단점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서구에 대한 설명은 산업화 이후로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운 지점이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에 관해서는 일본의 성장에 관한 장에서 잠깐 언급될 뿐이다. 또한 '경제사'라는 영역답게 표와 그래프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그에 익숙하지 못한 다른 분야 역사 전공자들에게는 번거로운 책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2017년에 출간되었으나 원서는 2011년에 출간되었다. 이는 본서가 2011년까지의 경제사만을 다룸을 의미한다. 바꿔 말해 2023년 현재 시점까지의 경제사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2020년대 들어 새롭게 제기된 문제들, 가령 중국의 성장으로 인한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경쟁 격화, 끊임없이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서구 및 동아시아 지역의 출산율(특히 중국의 인구 감소가 시작되었다는 점).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 변화 문제 등, 앞으로의 경제사에 새롭게 변수로 여겨질 사안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이 책의 한계다. 그렇긴 하나, 그러한 전망은 개론서라고 할 이 책보다는 앞서 언급된 『총, 균, 쇠』, 『근대 세계 체제』, 『리오리엔트』같은 책들, 혹은 앞으로 출간될 그와 비슷한 유형의 책들에서 답을 찾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2011년까지의 세계경제의 역사적 흐름에 관한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주는 개론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 

경제사는 사회과학의 여왕이다. 경제사의 주제는 애덤 스미스의 위대한 저작의 제목인 ‘국부의 본질과 요인(국부론)‘이다. 국부의 요인을 경제학자들은 시간을 초월하는 경제 발전 이론들에서 찾지만, 경제사가들은 역사적 변화의 동적인 과정에서 찾는다. 경제사가 던지는 근본적 질문—왜 어떤 나라는 부자이고 다른 나라는 가난한가?—이 다루는 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된 이래 경제사는 특히 흥미로워졌다. 50년 전 그 질문은 ‘산업혁명은 왜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는가?‘였다. 그러나 중국, 인도, 중동에 관한 연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이 문명들의 내재적인 동학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경제 성장이 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아니라 왜 유럽에서 (p. 9) 시작되었는지 물어보아야만 한다. - P8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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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사이의 주요한 차이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인구의 비중이었다. 미국에서는 흑인이 전체 인구의 7분의 1을 차지했던 반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토착민과 흑인의 비중이 전체의 3분의 2였다. 미국이 전체 인구의 70퍼센트를 흑인에게 하듯 다루었다면 그 결과는 단지 더 큰 규모의 불공평만이 아니라 국가적 실패였을 것이다. 그렇게 교육이 제한적으로 제공되었다면 미국은 결코 경제 강대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143

오늘날 아프리카가 왜 가난한지 이해하려면 1500년에 아프리카가 왜 가난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에 대한 대답은 지리, 인구 그리고 농업의 기원이다. 1500년의 사회경제구조가 세계화와 제국주의에 아프리카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정했고, 그러한 대응이 아프리카를 계속 가난하게 만들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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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부터 1870년 사이에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대륙으로 매우 성공적으로 확산되었다. 서유럽 국가들은 선도국을 따라잡았을 뿐 아니라 이후로는 세계의 첨단기술을 진보시키는 혁신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물론 북아메리카도 19세기에 산업화되었고, 곧 이 혁신 클럽에 가입했다. - P66

서구 선진국들은 더 높은 임금이 노동절약적인 기술의 개발로 이어지고 이 기술을 사용하면 노동생산성과 임금이 상승하는 발전의 궤적을경험해왔다. 이러한 사이클은 반복된다. 오늘날 가난한 국가들은 엘리베이터를 놓쳐버렸다. 이들 국가에서는 임금이 낮고 자본비용이 높아서, 낡은 기술로 생산을 해야 하고, 따라서 소득이 낮다. - P82

그리고 석탄과 상업 때문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는 캘리포니아 학파의 주장은 올바른 것이다. 아시아의 역사에서 주목할 점은 그러한 촉발 요인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 P88

지금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농업의 고용이 압도적이고 이는 다른 가난한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곧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19세기에 가난했던 몇몇 국가들은 표준전략을 따르고 또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을 통해 빅푸시를 실현하여, 20세기에는 훨씬 더 잘살게 되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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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역사인가 - 린 헌트, 역사 읽기의 기술
린 헌트 지음, 박홍경 옮김 / 프롬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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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내판 제목을 보면 한 눈에 E. H. 카의 저작,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원제는 "History: Why It Matters"이다. 대충 "역사: 왜 중요한가" 정도?


먼저 책의 저자부터 소개해보자. 저자 린 헌트는 다양한 저작을 쓴 역사가이며 책 앞날개가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문화사, 젠더사, 역사 기록학에 정통한 역사학자이다.. 국내에 소개된 린 헌트의 저작으로는 『인권의 발명』, 『역사가 사라져 갈 때』와 같은 저작들이 있다. 특히 『인권의 발명』은 최근에 교유서가에서 재출간되었다. 그외에도 저작은 많으나 대개 품절이나 절판이다. 도서관의 힘을 빌려야 할 듯 하다.


이 책에서는 여러 질문거리를 던지고 그 질문에 답변할 방법을 살펴볼 것이다. 역사란 정의상 발견해나가는 과정이지 확립된 도그마가 아니기에 이 책이 모든 골칫거리를 말끔히 해결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역사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를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 P10

 

이 책은 현재 (미국) 역사학계의 현 실태와 주요 이슈들을 짚어내는 책이다. 책의 구성은 크게 '1장 역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이유', '2장 역사적 진실을 찾아서', '3장 역사의 정치', '4장 역사의 미래'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지금 시대가 거짓말이 쉽게 신빙성을 얻는 시대라 언급한다. 역사적 논란의 대상 중에는 대개 기념물이 있다.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는 대단히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역사 교과서를 놓고서도 어느 지점을 수록하고 강조할지를 두고 전쟁이 벌어진다.


2장 역사적 진실을 찾아서에서는 역사적 진실이 사실과 해석의 맞물려 이루어지는데, 이 두 축이 항상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 진실은 잠정적이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저자는 역사를 '진실한 이야기'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문학예술로 본다. '이야기'에는 사실에 관련된 일련의 해석에 의지하는 문학적 재구성을 요구한다. 그런데 해석을 둘러싸고 의견차가 있다면, 과거의 진실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해석의 변동성은 역사적 진실에 의구심을 초래한다. 역사가는 자신의 관점에서 기술하므로 객관적 서술은 불가능하다. 일관성있는 서술을 통해 논리적이며 밀접한 관련 증거를 인용하고, 증거에서 비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서양의 근대 역사학은 민족주의, 유럽우월주의에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유럽중심주의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정신은 유럽만의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중국과 아랍의 역사 서술 전통에서도 확인되는 점이다.


3장 역사의 정치에서는 역사학이 엘리트의 역사학에서 점차 변화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1870년대 역사는 정치사 위주에 과거 엘리트의 역사 였으나 여성, 소수인종, 원주민, 서민 계층 백인이 역사학계에 진출하게 됨에 따라 역사 과목의 민주화가 일어나고 역사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져 정치사 위주에서 사회사, 경제사, 1980-90년대에는 문화사, 2000년대에는 다양한 접근법이 모색되게 되었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학계는  라틴아메리카, 아시아계 인구가 급증한 덕분에 세계사와 국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다만 국사의 대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역사는 여전히 국민 단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역사는 독재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고 기억을 통제하려 할 때 역사학 교육을 받은 학자들이 돌파구를 마련해준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4장 역사의 미래에서 저자는 역사의 역할이 변화했다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와 관련해 정체성을 지니며, 동시에 세계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역사에는 미래를 향한 의제가 있고, 오늘날의 문제를 바라볼 관점을 제공한다. 그 점에서 저자는 역사에 자체적으로 윤리가 있다고 본다. 이어서 저자는 세계사의 시간에 접근하는 관점을 두고 앞선 전형의 사례를 찾는 접근 방식, 이어서 시간의 흐름에 진보를 투영하는 방식, 지구의 역사를 모든 차원에서 살피는 전지구적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마지막은 저자가 창안한 용어이다) 저자는 지구의 역사에 관심을 두면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 서사에서 배제된 집단에 관심을 기울이면 익숙한 이야기가 해체되고 새로운 서사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저자는 최근 역사학계의 세태에 관해 경고하는 점이 있다. 이처럼 넓은 시간을 바라보아야 함에도, 많은 역사학도들이 현재와 가까운 비교적 짧은 시간만에 관심을 기울이는 "현재주의"가 득세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주의는 필요하긴 하나, 과거를 현재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는 우리 기준을 과거에 적용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새로운 전망이 끊임없이 제기되며, 역사학자들의 관심도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각과 디지털 역사 등 새로운 분야가 출현하면서 역사는 미래를 예견하지 못하고 그 미래가 불러일으키는 변화의 혜택을 입는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며, 미래가 현실화되기 전까지는 어떤 예측이 옳은지 알 수 없다. 반면 과거는 불완전하게라도 파악할 수 있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호기심과 앞서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배우려는 의지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2,000년 전 활동한 로마의 정치인 키케로Cicero는 이렇게 설명했다.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에 무지하다면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의 삶이 역사의 기록을 통해 선조들의 삶과 엮이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 P166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추구하는 바는 명백하다. 현재 역사학계는 갈등과 논란 속에 갇혀있고 저자는 이 점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역사를 두고 전쟁에 가까운 진영간의 갈등이 벌어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역사 그 자체의 특성, 역사적 진실은 정해진 도그마가 아니라 늘 잠정적이며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미국의) 역사학계에서 일어난 변화가 가져온 접근 방식과 기존 역사 서사의 해체, 그리고 앞으로 역사가 나아갈 미래를 그려낸다. 이 책은 2010년대 후반 역사학이 어떤 상황에 직면했는지, 201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간략하게 알려주는 '역사학의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저자인 린 헌트가 미국의 역사가인 만큼 미국 역사학이라 지칭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상당히 어려운 주제를 다룸에도 간략히 설명하는 점에서 대가로서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점도 있다.


지금 시대를 보고 있으면 저자의 말대로 역사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임을 알 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런 역사학의 최전선에 서야할 전문 역사학계는 미국에서 조차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한국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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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는 사회과학의 여왕이다. 경제사의 주제는 애덤 스미스의 위대한 저작의 제목인 ‘국부의 본질과 요인(국부론)‘이다. 국부의 요인을 경제학자들은 시간을 초월하는 경제 발전 이론들에서 찾지만, 경제사가들은 역사적 변화의 동적인 과정에서 찾는다. 경제사가 던지는 근본적 질문—왜 어떤 나라는 부자이고 다른 나라는 가난한가?—이 다루는 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된 이래 경제사는 특히 흥미로워졌다. 50년 전 그 질문은 ‘산업혁명은 왜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는가?‘였다. 그러나 중국, 인도, 중동에 관한 연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이 문명들의 내재적인 동학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경제 성장이 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아니라 왜 유럽에서 (p. 9) 시작되었는지 물어보아야만 한다. - P8

오랜 과거의 소득에 관한 데이터는 정확하지 않지만, 1500년경까지 국가 간 번영의 차이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차이는 주로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항해하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래 나타났다. - P9

높은 임금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유지하고 교육을 확대하여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역설적으로, 최저생계 수준은 한 국가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경제적 동기를 제거한다. 하루의 노동으로부터 더 많은 산출을 얻어내야 하겠지만, 이 경우 노동이 너무 값싸서 기업들이 굳이 생산성을 높일 기계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최저생계 수준은 빈곤의 덫이다. 산업혁명은 바로 높은 임금의 결과였다. 산업혁명은 높은 임금의 원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 P24

세계는 왜 점점 더 불평등하게 되었을까? 지리, 제도, 문화 같은 ‘근본적 요인‘과 ‘역사의 우연‘ 모두가 역할을 했다. - P26

제도, 문화, 지리는 언제나 경제성장의 배경에 숨은 요인이었던 반면, 기술 변화, 세계화, 경제정책은 불균등 발전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 P29

산업혁명(대략 1760년부터 1850년까지)은 세계사의 전환점이었다. 경제 성장이 지속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급격한 단절이 아니라 앞장에서 논의한 초기 근대 경제의 전환의 결과였다. - P44

기술 변화가 산업혁명의 동력이었다. 증기기관, 면방적기와 면방직기 그리고 나무 연료 대신 석탄을 사용하여 철강을 제련하는 새로운 과정 같은 유명한 발명들이 나타났다. 또 모자, 핀, 못 등 그다지 첨단은 아닌 산업에서도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킨 갖가지 단순한 기계가 등장했다. - P45

제국주의는 고임금 경제의 기초였고, 고임금은 다시 노동을 절약하는기술 변화를 촉진하여 경제 성장을 가져왔기 때문에 노동자들도 제국주의로부터 이득을 얻었다. - P47

가장 강력한 변화는 도시화와 상업의 발전이었다. 이로써 읽고 쓰는 능력과 계산력이 더욱 중요해져 대중의 지식이 발전했다. 18세기에는 장인, 기능공, 상점주인, 농부의 아들 대부분과 노동자의 아들 일부가 몇 년 동안의 기초교육을 받았다. 그 결과 전례가 없을 만큼 대중들이 신문을 읽고 정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 P49

결국 노동이 비싸고 자본이 싼 곳에서 기계를 사용하면 이익이었는데, 영국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기계가 이익이 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이다. - P54

산업혁명의 최대 업적은 18세기의 발명들이 이전 세기의 발명들처럼 일시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18세기의 발명들은 계속되는 혁신의 물결을 촉발했다. - P59

증기력은 다양한 용도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을 일컫는 범용 기술의 사례였다. 다른 범용 기술은 전기와 컴퓨터 등이다. 범용 기술의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 기술은 발명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야 경제 성장에 기여를 할 수 있다. 증기력도 마찬가지였다. 뉴커먼의 발명 이후 100년 가까이 지난 1800년이 되어서야 증기력은 영국 경제에 아주 작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이 되면서 교통과 산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결국 그 잠재력이 실현되었다. 19세기 중반 영국 노동생산성 상승의 절반은 증기기관 덕이었다. 이러한 장기적인 이득이 경제 성장이 100년동안 지속된 중요한 원인이었다. 또다른 원인은 여러 산업 분야에 과학이 더 많이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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