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공부 가이드 - 브리태니커 편집장이 완성한 평생학습 지도
모티머 J. 애들러 지음, 이재만 옮김 / 유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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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출간된 이 책은 미국의 철학자이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5판의 편집장인 모티머 애들러(Mortimer J. Adler)의 1986년 저작, A Guidebook to Learning: For a Lifelong Pursuit of Wisdom을 번역한 것이다. 책의 구성은 크게 본문을 다루기에 앞서 독자들에게 책의 취지를 설명하는 서문, '독자들에게'와 '가이드는 누구를 위해 필요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어서 1부 우리가 직면한혼란: 알파벳주의, 2부 20세기 이전 지식의 조직, 3부 백과사전의 결함을 치유하기 위한 현대의 노력, 4부 철학적 성찰로 본문은 마무리되며 이어서 역자 후기와 부록 3가지까지 나오면서 책은 끝난다.


서문에서는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가 언급된다. 그에 따르자면 교육 과정을 끝마치고 성인이 된 사람들이 전문화가 아닌 종합적 지식으로서 인문학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며, 이를 위해 이 시대 학식의 지도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를 질문해볼 수 있다. 왜 인문학을 추구해야할까? 학식의 지도란 무엇일까? 국내 번역명인 평생공부 가이드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이러한 질문의 해답은 각 장의 내용을 읽어가면서 찾게 된다.


1부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장이다. 저자는 백과사전의 항목이나 대학의 학부 구성이 특별한 지적 연관성을 지닌 지식 체계에 따라 구성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편의를 위해 알파벳 순으로 나열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를 두고 저자는 알파벳 순 배열을 '알파벳주의'라 명명한다. 이러한 알파벳 순 배열은 정보를 간편하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각 항목 간의 지적 연관은 알기 어렵고, 어느 지식이 중요하고 어느 지식이 덜 중요한지 지식의 가치판단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백과사전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백과사전이 지녀야할 역할이 무엇인가를 말한다.


백과사전은 "그저 사실을 저장하는 창고 이상", 즉 사전과 마찬가지로 항목을 알파벳순으로 배열해 이용자가 무언가를 찾도록 돕는 참고 도서 이상이어야 한다그러려면 백과사전은 알파벳이 아닌 방법으로 내용에 접근할 길을 이용자에게 내놓아야 한다지식을 체계적으로 혹은 주제별로 개관하는 방법다시 말해 학식의 전 영역에서 서로 연관된 모든 부분을 탐험하는 데 길잡이가 되는 지도를 어떻게든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 P45

말하자면 백과사전, 나아가 대학은 지식을 아우르는 지도의 역할을 맡아야한다. 그러나 이 책이 쓰인 시점에서 백과사전과 대학을 지배하는 '알파벳주의'는 그런 지도 역할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저자의 문제 의식이다. 알파벳주의 대신 듀이의 10진법을 사용하는 도서관의 도서분류법 역시 어느 범주가 더 가치있고 중요한가, 하위 범주나 상위 범주의 구분과 명칭이 적절한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2부에서 여러 철학자들의 지식 분류법을 탐구한다. 


2부에서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근대 19세기까지 여러 철학자들이 지식을 어떻게 범주화하고 가치를 매겼는가 요약해 설명한다. 고대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학파, 아우구스티누스가, 중세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로저 베이컨이, 각각 17, 18, 19세기로 구분되는 근대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 토마스 홉스, 존 로크(17세기), 드니 디드로와 장 달랑베르, 그리고 칸트(18세기),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앙드레마리 앙페르, 오귀스트 콩트, 빌헬름 딜타이, 허버트 스펜서 (19세기)가 언급된다. 저자는 이들의 지식 분류법을 두고 어떤 측면에서 허점이 있는지, 어떤 점에서는 장점을 지니는지, 중세와 근대의 철학자들이 제시한 분류법이 고대의 철학자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에서 낫고 어떤 점에서 결점이 있는지를 제시한다.


3부에서 저자는 알파벳주의로부터 벗어나고자 20세기에 시도된 노력을 개관한다. 크게 '지식의 골자'라고 할 프로피디아와, 서양의 위대한 명저를 분류한 '신토피콘'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프로피디아는 알파벳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찬에 참가한 저자의 노력의 일환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5판은 알파벳순 배열을 보완하기 위해 마이크로피디와 매크로피디아라는 범주로 나누고 이를 보완하는 '지식의 골자'로서 프로피디아를 발간하였다. 그러나 프로피디아에는 한 가지 난점이 있었다. 이는 저자를 비롯해 여러 학자들이 참가한 신토피콘도 공통적으로 지니는 문제였다. 즉, 20세기 후반은 문화적 다원주의와 지적 이설의 시대인데 지식의 위계를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 것이다. 저자는 그 답으로 "학식의 모든 부분은 원 위의 점들처럼 서로 대등한 관계로 다루어져야 한다"(p. 140)고 보았다. 3부를 마무리 지으면서 저자는 철학에 바탕을 둔 지식의 분류를 강조한다.


지식을 조직하거나 지식의 갈래를 배열하고 연관 짓는 것은 본질적으로 철학의 과제다. 그것은 역사가나 과학자가 할 일이 아니다. 역사가나 과학자가 자신의 탐구 영역을 정의하고 그 영역을 다른 학문과 구분하려고 시도할 때, 그는 역사가나 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 P156

이어서 4부에서 저자는 20세기에 필요한 통찰과 분별을 서술하며, 그 핵심을 파이데이아(종합적 학식)과 에피스테메(전문적 학식)의 구분 및 앞서 2부에서 살핀 과거 철학자들의 구분법으로부터 찾아낸 통찰을 수용하는 것에 둔다. 저자는 신체와 마찬가지로 정신에도 자산이 존재하며, 정신의 자산은 크게 정보, 지식, 이해, 지혜가 있으며 그 중요도는 정보<지식<이해<지혜 순이다. 이어서 '알다'의 의미를 통찰하는데, 알다는 크게 '그것', '무엇', '어떻게', '이유', '원인'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철학은 이해와 지혜('이유', '원인')에 대한 앎을 제공한다. 이에 따라 '앎'의 형식도 달라지는데, 인공물을 생산하는 기예는 '어떻게'의 앎으로써 생산기술이나 실행기술을 지칭한다. 학문은 '그것', '무엇'에 대한 모든 형식의 앎을 지칭한다. 


한편 저자는 학식을 위해 시와 철학 간의 불화를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시는 지적 상상을, 철학은 이성적 지성을 이용하는데 둘 모두 지성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 분야의 관계도 짚고 넘어간다. 예컨대 역사와 철학은 과학과 비교했을 때 초월적 형식이라는 것이다. 물리학에 관한 역사나 물리학에 관한 철학은 성립할 수 있으나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역사와 철학은 일종의 초월적 형식으로서 학식의 모든 형식에 두루 적용 가능하다. 반면 과학은 초월적 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4부는 본서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지점으로, 상당한 인문학적 소양, 특히 철학적 지식이 필요한 지점이다. 독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저자는 15장 '독자들을 위한 비망록'에서 4부의 전체적인 내용을 12가지 항목으로 다시 한번 요약하고 있다. 이러한 요약 이후 저자는 4부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뒤이어 결론에서 살펴보겠지만, 특정한 분과나 주제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이들은 수학이나 경험 과학의 어떤 분야, 역사적 연구나 철학적 학문의 어떤 갈래에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종합적 교양인이 되고 싶은 이들은 모든 분과와 주제에 대한 인문학적·종합적 접근을 중시해야 하며, 그러한 분과와 주제는 학식의 초월적 형식인 역사와 철학, 시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 P200


마지막으로 결론,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을 위한 파이데이아'에서, 저자는 파이데이아의 의미를 조금 바꾸어 쓴다. "청년기에 학교 교육을 끝마친 이후 성년기에 스스로 공부해서 교양을 두루 함양한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 이들의 종합적 공부를 위한 길잡이"(p. 201) 아울러 저자는 모든 사람이 종합적 교양인이자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본 학교 교육(유치원에서 고등학교) 단계와 성년기에는 종합인이, 대학 시절에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오늘날 학교와 대학이 "전문가인 동시에 종합적 교양인"(p. 205)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각자 공부 기술을 보완하고 종합적 교양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평생공부를 지속하는 데 특히 필요한 것은 시와 상상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종류의 이해다."(p. 205) 이어서 저자는 학교 교육을 마친 후 혼자 공부하는 이들에게 간단하면서도 실질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읽고 토론하라!"(p. 207)


이 책은 부록을 제외한다면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그리 많은 분량을 지닌 책은 아니다. 1, 2, 3부의 내용은 쉽지만 4부의 내용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학식의 범주와 각각의 학식 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이해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저자가 4부 마지막 15장에서 4부의 전체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두었고, 역자 후기를 먼저 읽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4부는 다른 1, 2, 3부에 비해 얻어갈 수 있는 게 많은 장이기도 하다. 4부는 시, 역사, 철학을 강조하긴 하되,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문사철이 중요하다'식으로 공허하게만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시, 역사, 철학이 다른 분과학문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특징을 지니며 어떤 점에서 실제로 중요한 가를 보여준다. 아울러 대학원 과정, 그 중에서도 박사학위를 바탕으로 마련된 이른바 대학의 '전문가' 양성 구조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책의 결론에서 저자가 아주 간단한 답, '읽고 토론하라!'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0세기 후반의 알파벳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해, 고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19세기의 콩트와 스펜서, 나아가 20세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구성, 이어서는 '앎'에 관해 어떤 '앎'을 추구해야하는지까지의 여정 끝에 도달한 결론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면밀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가이드북이라기 보다는 '학식'의 지성사를 추적하는 책에 더 가까워보이긴 한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가 종합인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해 학식의 지도를 알려줄 가이드북을 집필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결국 납득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간단하고 실질적인 조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지금 시대에 던져주는 의미를 살펴보자. 이 책의 원서가 출간된 시점은 1986년이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났다. 지금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국립대는 그래도 각종 어문학과, 사학과, 철학과를 비롯한 인문학 학과가 남아있지만 그외에는 인문학 관련 학과를 통폐합하는 추세였고, 이 흐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역자 후기에서 말하듯이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선도 '돈 안되는 학문'이 되어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인문학에 관심을 돌리기 위한 방편과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학 그 자체에 대한 고민도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분과학문 체제가 과연 지금 시대에 적절한지, 그동안 국내 인문학이 추구한 바가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종합적인 접근 방식으로서 인문학을 추구한 것인지 말이다. 지금의 인문학은 분과학문으로 학과를 나누고, 박사학위로 이루어지는 전문화과정에 너무 매몰되어 있지는 않았나?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평생공부를 위한 가이드를 제공하기도 하고, 동시에 다양한 학식의 가치와 체계를 고찰한다. 이 책은 시, 역사, 철학(=문사철)의 가치를 재고하고, 전문화의 물결 속에서 해당 학식들이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 다른 분과학문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따져볼 계기를 마련하게 해주는 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약 40년 전의 책이긴 하나 지금 우리 현실에 유효한 메시지,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1부에 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왜 인문학을 추구해야할까? 학식의 지도란 무엇일까? 국내 번역 명 평생공부 가이드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학식의 지도는 책에서 배움을 위한 지도로 언급된다. 인문학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인문학이 단순히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제외한 나머지 잉여 과목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다른 학식에 종합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빛의 물리학, 열의 물리학 같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역사와 철학은 뇌과학의 역사, 경제학의 역사, 물리학의 역사, 역사학의 역사, 역사학의 철학, 과학의 철학과 같이 특정 전문 분야에 종합적으로 접근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맡는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명은 왜 '평생공부 가이드'가 되었을까? 우선은 원서의 부제까지도 아우르는 점이 있겠지만, 또 다르게 보면 학교 교육을 끝마친 이후 전문가가 아닌 종합인으로서 얼마나 걸릴지 모를, 어쩌면 평생에 걸쳐야 할지도 모를 기나긴 공부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학식의 지도를 제공하는 가이드북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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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1-11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신 분을 만나다니 반갑네요^^ 저도 잘 읽었던 사람으로 이 책의 메시지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의 인문학은 점점 돈 안 되는 학문으로 비선택 종목이 되어가고 있지요. 삶을 위한 공부는 분명 인문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현실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으니 참...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Heath 2023-01-12 05:54   좋아요 0 | URL
감사히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