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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탈정치화의 시대에서 
미학적 감성의 부활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프랑코 비포(Franco Berardi)는 미래란 알려지지 않은 시간인 동시에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지금, 우리는 미래를 상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모든 공간을 ‘자본주의화’시키며 문화와 인격성의 영역까지 식민화를 진행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타자성의 상실과 함께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또 다른 미래 역시 사라졌다. 
한국 사회와 문학의 접점을 꾸준하게 연구해온 나병철 교수의 새 책, 《미래 이후의 미학 : 유혹사회에서의 보이지 않는 정치와 문학》은 미래를 상실한 지금, 다른 방식의 미래를 말할 시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똑같이 부유함과 일류의 삶을 꿈꾸는 이미 정해진 미래가 아닌, 타자와 교섭하며 정신의 식민화에서 벗어나려는 또 다른 길을 찾는 미래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배수아의 소설과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 공지영의 《의자놀이》와 5포 세대의 아픔을 그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지배 권력에 대항하는 미학 쪽의 감성의 정치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유혹의 권력과 죽음정치에 대한 미학적 대응

저자는 우리 시대의 특징을 ‘유혹의 권력’과 ‘죽음정치’라는 개념을 통해 바라본다. 유혹의 권력이란 푸코가 말한 삶권력의 유혹장치가 극에 달한 방식을 말한다. 푸코는 규율에 길들여지는 대가로 삶을 부양해주는 방식을 삶권력이라고 말했다. 노동력은 상품화되었지만 신체 자체는 아직 상품화되지 않은 시대에는 유순한 몸을 생산하는 규율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신체와 감정을 포함한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유혹의 환상 속에서 자발적으로 자본주의에 동화되어 성과의 경쟁에 나선다. 삶권력이 극단화된 유혹사회는 자기계발서나 힐링이 보편화된 사회다. 자기계발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거짓된 희망을 사람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자본주의의 어두운 절망을 감출 수 있었다.  

 

유혹사회가 우리의 모든 것을 좌우하면서, 쓸모없어져 물건처럼 폐기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음벰베(Archille Mbembe)는 신체와 생명을 권력의 처분 아래 놓으면서 유용성이 사라진 사람들을 죽음의 위협에 유기하는 권력을 죽음정치라고 불렀다. 자본주의 체제는 폐품처럼 쓸모없어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 세상이기 때문에 죽음정치가 더 기세를 부리고 있지만, 도리어 사람들의 눈에는 잘 포착되지 않는다. 유혹의 정치가 다양하게 발전해 죽음정치가 횡횡하는 사회를 은밀하게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 시대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유혹의 권력과 죽음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선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절망을 안다는 것은 빛의 유혹 앞에서 자신이 실직자이고 파산자이며 비정규직임을 아는 것을 말한다. 공허한 희망만을 보게 하는 유혹의 권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학과 예술은 새로운 감성의 영역에서 정치화를 시도해야 한다. 배수아의 소설 공간에 드리워진 ‘이상한 고요함’, 《두 개의 문》의 ‘망각의 문’, 《의자놀이》의 ‘의자놀이’ 장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성실한 나라’ 등은 모두 유혹의 권력 시대의 감성적 권력 장치들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지배권력에 의해 은밀하게 작동하는 유혹의 장치를 드러내어 직시하게 해준다. 우리는 이러한 작품들을 보거나 읽으며, 한국 사회의 어둠을 눈치채게 된다. 그렇기에 감성의 영역은 탈정치화된 시대에 정치가 가능한 마지막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혐오의 시대에 새로운 미학은 어떻게 맞설 것인가

지금 한국의 현실은 혐오발화가 난무하는 시대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부터 여성혐오 발언들, 이주노동자를 비롯해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의 언어는 우리 사회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부의 생산이나 국가, 민족 같은 상상력 동일성을 향한 환상이 커지면서, 이제 사람들이 고통받는 타자를 외면하고 비슷한 계층들을 공격하는 일까지 하게 된다. 유혹사회의 구성원들은 국가권력을 대신해 자진해서 타자들을 배제함으로써 상상적 동일화를 고착화시킨다.


이러한 혐오발화는 단순히 사회적인 분위기를 흐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혐오발화가 성행하면 아무리 사회 모순이 심화되어도 건강한 저항적 행동이 생성하지 않는다. 이제 고통받는 타자는 보이지 않거나 회피하고 싶은 존재로 보이게 된다. 혐오발화는 이런 방식으로 경계 부근의 타자에게 관심이 멀어지게 하면서 자조감 속에서 절망을 외면하게 만든다.


혐오발화에 맞서 미학적인 감성의 장치는 목적론적 정치와 달리 양가적 방식을 사용한다. 타자에 대한 혐오를 “홍어”, “어묵”, “벌레” 같은 저열한 유동성과 동물성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혐오발화와는 달리, 미학적 은유는 그런 비천한 존재(앱젝트)를 부산물과 유동성의 본체인 생명적 존재로 되돌리며 미결정적인 동요를 생성시킨다. 비천한 신체가 그 자체로서 생명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모순의 힘으로 상상적 동일성의 영역에 동요가 일어나는 것이다. 저자는 손창섭의 〈포말의 의지〉에서의 금지된 종소리, 황석영의 〈몰개월의 새〉에서의 오뚝이 선물, 김이설의 《환영》에서의 상품화될 수 없는 비천한 신체, 권여선의 《레가토》에서의 상실된 순수기억을 되찾는 이야기들, 이것들이 타자성의 회복을 통해 비천한 신체에게 살아야 할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주는 은유들이다.


다시, 미래 이후의 미학을 위해

오늘날은 탈정치화의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감성적 정치가 계속되는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잠시라도 미학적 발명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지금 난무하고 있는 혐오발화는 바로 이러한 미학적 직무유기에 대한 역사가 내리는 감성적 경고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미학적 은유는 정치의 귀환을 위해 텍스트를 넘어서 현실로 흘러넘쳐야 한다. 즉 타자에 대한 공감을 회복시키고 흩어진 사람들을 물밑에서 연대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저항에서도 미학적 은유의 형식이 필요하다.


유혹의 권력과 감성의 권력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잘 대응하지 못하며 정치가 실종되었다고 한탄한다. 정치의 실종은 타자의 소멸이자 미래의 상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타자와 은폐된 절망을 보는 것이며 그 일을 하는 활동이 미학적인 은유적 정치라고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 차례 

머리말


제1장 보이지 않는 정치의 귀환
1. 길 없는 길 — 미래 이후의 미래
2. ‘길 없는 길’의 행위자로서 특이성과 보이지 않는 타자 
3. 삶권력과 죽음정치 — 유혹의 권력의 두 얼굴 
4. 절망을 껴안고 권력과 동거하기 — 절망과 저항의 양가성 
5. 벌거벗은 생명과 벌거벗은 타자 
6. 저항을 위한 교섭의 위치로서의 벌거벗은 타자 
7. 죽음정치의 시대와 타자를 향한 ‘포말의 의지’ 
8. 죽음정치와 죽음정치적 노동  
9. 존재론적 정치와 에로스 효과로서의 민중봉기 
10. 아직 끝난 게 아니다 — 공감의 유전자와 원효의 존재의 비밀

 

제 2 장 유혹의 권력과 죽음정치에 대한 존재론적 대응
1. 유혹의 권력과 신자유주의 
2. 유혹의 권력 시대의 죽음정치 
3. 쇼크 독트린에 대응하는 트라우마의 기억 
4.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양가성의 진리 
5. 죽음정치와 낯선 두려움, 그리고 식민지의 유민 
6. 식민지적 죽음정치와 기민으로서의 이주노동자 
7. 국가서사의 허구성을 파열시키는 기민/난민의 트라우마의 기억 
8. 트라우마의 기억과 에로스의 기억, 그리고 순수기억
9. 죽음정치의 역사와 디세미네이션의 미학

 

제3장 식민지 시대의 유민의 발생과 은유로서의 디세미네이션
1. 1920년대의 유민의 발생과 디세미네이션 
2. 식민지 민족의 양가성과 디세미네이션의 미학 
3. 집단적 민중의 움직임과 산포된 존재의 네트워크 
4. 식민지 근대에 대항하는 디세미네이션의 미학

 

제4장 산업화 시대의 내부의 유민과 디세미네이션의 미학
1. 개발주의 시대의 유민과 내부의 디아스포라
2. 전태일의 존재론적 저항 — ‘낯선 두려움’에서 ‘마음의 고향’으로 
3. 은밀성의 영역의 난민과 유민화된 민중 
4. 죽음정치적 노동자들의 연대와 존재론적 대응
5. 집을 잃은 사람들의 낯선 두려움과 벌거벗은 타자
6. 초국가적 맥락에서의 죽음정치와 존재론적 대응으로서의 디세미네이션의 연대

 

제5장 삶권력과 자본주의의 존재론적 운동
1. 삶권력과 죽음정치의 관계와 무의식 
2. 자본의 자기갱신운동과 삶권력 
3. ‘은유로서의 화폐’의 무의식과 ‘은유로서의 네이션’의 무의식 
4. 〈운수 좋은 날〉과 두 개의 무의식 — 타자의 위치에서의 동요 
5. 《삼대》의 대화적 무의식과 주체의 동요 
6. 《환영》에 나타난 감정과 성의 상품화 — 후기자본주의의 《자본론》

 

제6장 삶권력과 죽음정치에 대항하는 순수기억의 창조적 존재론
1. 무의식에 작용하는 삶권력과 순수기억의 대응 
2. 습관기억의 억압과 순수기억의 혁명 —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3. 화폐의 무의식과 순수기억의 무의식 
4. 식민지의 죽음정치에 대한 순수기억의 대응 — 백석의 시 
5. 순수기억의 시간과 영화 — 김기덕의 《빈집》 
6. 잉여향락의 공간과 순수기억의 시간 — 김기덕의 《시간》 
7. 순수기억의 정치화 
8. 순수기억과 상처의 기억
9. 베르그송의 순수기억과 라캉의 대상 a 
10. 잃어버린 ‘순수기억’을 찾아서 — 권여선의 《레가토》

 

제7장 유혹의 권력과 미래 이후의 미학
1. 유혹의 권력과 낯선 두려움 
2. 규율사회에서 유혹사회로 
3. 자본의 가속도와 유혹의 권력 — 송경아의 〈엘리베이터〉 
4. 유혹사회의 공간적 폐쇄성 — 배수아의 우울의 미학 
5. 성장 없는 성장소설과 죽음정치에 대한 ‘슬픈 응수’ 
6. 배수아 소설에 암시된 유혹사회 속의 죽음정치
7. 유동체에 대한 열망과 은유 — 베르그송과 마르크스, 그리고 원효
8. 유동체의 회복 — 춤과 참선 
9. 선시와 리얼리즘의 결합 — 송경동의 시 
10. 부서진 디세미네이션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11. 구조화된 불평등성과 감성의 분할, 그리고 혐오발화
12. 혐오발화와 ‘계급적 인종’
13. 혐오의 은유와 미학의 은유 
14. 물밑에 있는 타자와 은유로서의 정치 
15. 길 없는 길과 미학적 은유 
16. 분노의 계보학 
17. 길 없는 길과 미래 이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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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엿보기

 

■ 절망을 시간의 차원에서 말하면 미래의 말소이다. 비판적 담론이 소멸된 1930년대 중반, 작가 이상은 “희망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인다”고 되뇌었다. 오늘날의 절망적인 정치의 해체는 결국 희망의 말소이자 미래의 상실이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래의 한 쪽이 붕괴된 상황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TV나 신문에서 미래는 주로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의 발전 쪽에서만 말해진다. 미래학자들이란 연성화된 경제전문가들이거나 과학자들이다. 그들은 누구도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비판과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의 개발은 딕셔너리 넘어가듯 계속되지만 그 페이지들에는 또 다른 미래라는 그림이 말소되어 있다. (24쪽)


■ 우리는 이 같은 타자의 상실이 미래의 붕괴의 증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타자에 대한 혐오는 병리화된 미래의 징후이다.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의 발전만을 미래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타자와 사건을 대면할 때의 존재방식 및 사회의 변화의 필연성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미래로 질주하는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가 쏟아낼 신세계의 잉여향락을 타자들이 훔쳐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의 둔화와 수출의 감소는 모두 그들 탓이다. 과거에 파시즘은 유대인들이 대중들의 향락을 훔쳐가고 있다고 그들을 혐오하게 만들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경제성장과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는 타자들을 혐오하게 만들고 있다. (34쪽)


■ 삶권력과 죽음정치의 구성적 결합은 1920년대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문화정치는 어둠 속의 ‘묘지’였던 1910년대 식민지 자본주의를 빛의 영역으로 이동시킨 삶권력의 전략이었다. 이광수는 《재생》 에서 “연애와 돈이 정신을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식민지 자본주의가 지식인과 소시민에게 삶권력적 유혹으로 침투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트랜스내셔널한 권력으로서 식민지 자본주의는 최대의 이윤을 짜내기 위해 농민과 노동자들을 과도한 착취로 죽음에 유기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지옥’을 경험하고 있었고 농민들은 소작권을 빼앗긴 채 유이민으로 떠돌아야 했다. 문화정치라는 삶권력은 자본주의적 개발을 전제로 한 것으로 지식인과 소시민에게는 유혹이었지만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죽음정치였던 것이다. (43쪽)


■ 손창섭의 우울의 미학은 훼손된 타자가 절망에 방치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타자성을 상실하고 비판담론이 무력화된 당시의 반공주의적 국가주의와 연관이 있다. 우울의 미학은 회복이 불가능한 상처 입은 타자에 대한 폭력의 고발이다. 우울의 미학에도 타자성의 갈망이 있지만 그것이 삶 속에서의 소망으로 표현되지는 못한다. 반면에 슬픔의 미학은 삶 속에서의 타자에 대한 갈망과 교섭의 표현이다. (76쪽)

 

■ 세월호 사건은 화려한 스펙터클에 가려져 있던 우리 시대의 절망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나 그런 상처와 트라우마를 외면하지 않는 한 우리의 내면에서는 그 고통에 대응하는 에너지로 인해 이미 존재론적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으며 여전히 비슷한 절망이 계속된다. 가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에 대한 담론이 많아졌다는 것은 존재론적 에너지가 폭증하며 127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 공감의 연대가 부활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그 물밑의 동요가 기적처럼 세상을 바꾸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107쪽)

 

■ 순수기억으로서의 고향은 식민지 자본주의 현실에서 억압된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식민지 자본주의는 도시에서 삶권력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했지만 농촌에서는 사람들을 유민으로 만드는 죽음정치로 작용했다. 백석이 시를 쓴 1930년대 후반은 일제의 파시즘으로 그 죽음정치적 억압이 더 강화된 상태에 있었다. 그 같은 억압된 고통과 아픔, 그것이 ‘나’의 병의 원인일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그 병인을 낯선 두려움(unhomely)으로 살핀 바 있다. 의원의 손길에 이끌린 고향의 귀환은 그런 현실의 억압에서 되돌아오는 순수기억의 약동과 반격을 시사한다. (322쪽)


 

 

■ 지은이 소개

 

나병철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원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소설이란 무엇인가》, 《문학의 이해》, 《전환기의 근대문학》, 《근대성과 근대문학》, 《한국문학의 근대성과 탈근대성》, 《소설의 이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서》, 《근대서사와 탈식민주의》, 《탈식민주의와 근대문학》, 《소설과 서사문화》, 《가족 로망스》, 《소설의 귀환과 도전적 서사》, 《은유로서의 네이션과 트랜스내셔널 연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문학교육론》 (제임스 그리블), 《냉전시대 한국의 문학과 영화》(테드 휴즈), 《문화의 위치》(호미 바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정치와 문화》(마이클 라이언), 《해체론과 변증법》(마이클 라이언), 《중국문화 중국정신》(C. A. S. 윌리엄스), 《서비스 이코노미》(이진경) 등이 있다.
주요논문으로는 <탈식민주의와 정전의 재구성>, <탈식민 소설과 트랜스내셔널의 전망>, <탈식민 소설과 트랜스내셔널의 전망>, <청소년 환상소설의 통과제의 형식과 문학교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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