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얻은 것은 오직 폭력으로 지켜진다.
그러나 진리로 얻은 것은 오직 진리로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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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위대한 영혼,
간디가 실천한 비폭력 저항운동의 과정과 의의를 담고 있는 책!
한국의 촛불집회와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고(故) 신효순, 심미선 양 사건 이후 촛불집회는 한국 시위 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대중 집회로서 촛불집회는 비폭력 시위를 표방했고 이는 평소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다양한 사람들을 집회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촛불집회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 사상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받아들인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학생부터 평범한 직장인은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당함에 저항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진실을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이고, 이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고,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 우리가 비폭력 저항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간디의 삶과 사상에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또 하나의 간디 자서전
《간디, 비폭력 저항운동 : 남아프리카에서의 사티아그라하》는 기존에 국내 소개되어 있는 간디 자서전(《간디 자서전 : 나의 진실 추구 이야기》)보다 먼저 서술된 첫 번째 공식 자서전이다. 간디는 자신이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의 권리를 위해 펼친 사티아그라하 운동(진실관철운동)의 경험이 인도의 독립 운동에 새로운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이 책을 서술했다. 그 결과 이 책은 간디의 출생부터 인도 독립운동까지, 생애를 담고 있는 기존 간디 자서전과는 달리 남아프리카의 사티아그라하 운동 과정만 오롯이 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던 기존 자서전에서는 남아프리카의 사티아그라하 운동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빠져 있어, 간디의 대표적인 저항 방식인 비폭력 저항운동의 형성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 《간디, 비폭력 저항운동》을 꼭 읽어야 한다. 한국에서 뒤늦게나마 이 책이 소개되면서 간디의 사상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변호사에서 인도인의 대표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다
간디라는 이름이 갖는 세계적 명성이 너무나 대단하기에 우리는 간디가 처음부터 완벽한 인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간디 역시 우리와 같이 대중 앞에 나서기를 어려워하고, 민족 문제보다는 자신의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책은 1906년까지 “대영제국이 세계의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간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차별받고 고통받는 인도인의 처지를 깨닫게 되는지, 그리고 그들을 변호하기 위해 어떻게 자신을 단련하고 비폭력 저항운동의 사상과 방법을 정립하는지 그 과정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남아프리카 나탈에 사는 동향 상인을 변호하기 위해 1893년 나탈로 건너간 간디는 그곳에서 지내는 20여 년간 직접 차별을 경험하게 되면서, 남아프리카의 인도인을 차별 철폐 운동의 일원으로 조직하고 영국 식민지 정부와의 투쟁에 앞장섰다. 당시 남아프리카에는 백인이 소유한 농장과 광산 일꾼으로 인도인 노동자 수만 명이 이주해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주도권이 보어 공화국에서 영국으로 넘어간 이후, 1906년 식민지 정부는 8세 이상 인도인 남녀노소에게 지문 날인과 관청 등록을 요구하는 아시아인 등록법을 시행한다. 간디는 지문 날인을 범죄자에게나 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인도인들을 결집해 아시아인 등록법 철폐 운동을 전개한다.
아시아인 등록법 철폐 운동에 대해 논의하면서 간디와 인도인들은 자신들의 운동에 진실(satya)이라는 단어와 확고함(agraha)이라는 단어를 조합해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라고 이름을 붙인다. 이 운동은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즉 증오의 힘이 아닌 진실과 사랑에서 힘을 얻는 운동이다. 간디의 뜻을 이해한 인도인들은 백인들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비폭력 운동을 펼쳐 나갔다. 결국 식민지 정부가 인도인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는 1914년까지, 10여 년 동안 간디와 인도인들은 백인들에게 비폭력이 갖는 위대한 힘을 보여주게 된다.
영국인까지 감화시킨 비폭력 저항운동의 힘!
간디는 남아프리카의 인도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09년 영국으로 갔다. 비록 영국에서의 활동이 구체적인 효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간디의 비폭력 운동에 대한 사상과 실천은 많은 자유주의 영국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영국에서 남아프리카 인도인 문제를 알리기 위해 활동하던 당시, 많은 열성적인 영국인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이러한 백인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지원은 이후 남아프리카와 인도에서의 독립운동에도 이어졌다. 이는 간디가 이끈 사티아그라하가 스스로를 강자라고 믿고, 적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닌 자신이 고난을 겪으며 상대방을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디는 사티아그라하 운동이 장기화되자 사티아그라히(사티아그라하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이 소규모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할 수 있도록 톨스토이 농장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간디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기독교도가 함께 서로의 교리를 배우며 상대의 종교를 이해하고 관용을 베풀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사려 깊고 종교적인 실험이었으며 이후 간디의 교육 철학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도시의 편한 생활과 달리 톨스토이 농장에서는 육식을 금하고 직접 생산한 것을 먹고, 자연치료를 실천하며 소박한 생활을 실천해나갔다. 이러한 경험은 1930년 인도에서 간디가 인도 총독부의 소금세 징수에 반대하며 소금 행진을 이끄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남아프리카의 식민지 정부의 차별 정책은 1913년 간디가 이끈 5000여 명의 비폭력 시위대의 행진으로 인해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된다. 인도인의 행진을 이끌던 간디는 식민지 정부가 아프리카 철도의 백인 노동자들이 주도한 파업으로 곤란을 겪자 즉시 행진을 보류했다. 사티아그라하 운동이 적의 약점이나 우연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간디의 진실한 태도는 식민지 정부의 수반이었던 스뫼츠 장군까지 감화시키게 만들었다. 1914년, 결국 간디는 10여 년을 끌어온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승리로 이끌고 인도로 영구 귀국하게 된다.
친절하고 상세한 옮긴이 주와 꼼꼼한 번역으로 간디와 그 시대를 살려내다
이 책을 번역한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이미 《간디 자서전 : 나의 진실 추구 이야기》(문예출판사)로 간디의 삶과 사상을 국내에 소개한 적이 있다. 또한 많은 사상가들의 삶과 저서를 국내 소개하는 데 앞장서 온 저자이자 번역가로 유명하다. 이번 《간디, 비폭력 저항운동》 번역에서도 박홍규 교수 특유의 꼼꼼함과 성실함이 돋보인다. 영문 번역판과 인도판(구자라트어판)을 비교하며 번역했으며,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과 역사적 배경, 생소한 개념들에 대해 상세한 옮긴이 주를 추가해 독자들이 당시 시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간디의 삶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노력했다. 또한 박홍규 교수는 〈해설 : 간디와 사티아그라하〉를 통해 이 책을 번역하는 이유와 지금 한국에서 간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독자가 간디 사상의 현재성을 고민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 차례
머리말
1. 지리
2. 역사
3. 인도인, 남아프리카에 오다
4. 고난의 회고-나탈
5. 고난의 회고-트란스발과 여타 식민지
6. 초기 투쟁의 개관
7. 초기 투쟁의 개관(계속)
8. 초기 투쟁의 개관(계속)-영국에서 활동
9. 보어전쟁
10. 전쟁 이후
11. 예의에 대한 보상-암흑법
12. 사티아그라하의 탄생
13. 사티아그라하 대 수동적 저항
14. 영국에 보낸 대표단
15. 사악한 정책
16. 아마드 무함마드 카찰리아
17. 최초의 분열
18. 최초의 사티아그라하 죄수
19. 《인디언 오피니언》
20. 이어지는 체포
21. 최초의 협정
22. 반대와 공격
23. 백인의 지지
24. 내부 분열의 심화
25. 스뫼츠 장군의 배신(?)
26. 투쟁 재개
27. 증명서 태우기
28. 새 문제 제기에 대한 비난
29. 소라브지 샤푸르지 아다자니아
30. 세드 다우드 마호메트 등의 투쟁 개시
31. 국외 추방
32. 제2의 대표단
33. 톨스토이 농장 1
34. 톨스토이 농장 2
35. 톨스토이 농장 3
36. 고칼레의 방문
37. 고칼레의 방문(계속)
38. 약속 위반
39. 결혼이 결혼이 아니게 될 때
40. 감옥의 여성
41. 노동자의 물결
42. 회의와 그 후
43. 국경을 넘어
44. 거대한 행진
45. 모두 감옥으로
46. 시금석
47. 종결의 시작
48. 잠정 협정
49. 편지 교환
50. 투쟁의 끝
맺음말
해설 : 간디와 사티아그라하
연표
■ 본문 엿보기
■ 나는 이 책을 단순히 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남아프리카 역사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도 않는다. 지금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그것을 위해 살아왔고, 살고자 했으며, 언제라도 죽을 각오가 되었다고 믿은 사티아그라하가 어떻게 생겨났고, 그 집단적 시도가 어떻게 행해졌는지 모든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사티아그라하를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 힘이 닿는 한 실행에 옮기도록 하는 것이다. (115쪽)
■ 반대로 우리가 사티아그라히가 된다면 강자라고 믿고, 그 힘을 계속 사용해서 두 가지 확실한 결과를 얻는다. 힘이라는 생각을 키우면서 날마다 더욱 강해진다. 우리의 힘이 커지면 사티아그라하도 더욱 효율적으로 되고, 그 힘을 버릴 기회를 급히 찾을 필요가 없다. 나아가 수동적 저항에는 사랑의 여지가 없지만, 사티아그라하에는 증오의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증오는 그 지배 원칙의 중대한 위반이 된다. (137쪽)
■ 위에서 설명한 논의는 사티아그라하 운동과 같은 투쟁에 적용된다. 거기에는 증오가 없고, 자립심이 유일한 수단이며, 기대하고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고, 지도자나 추종자도 없으며, 모두 지도자고 추종자며, 아무리 뛰어난 투쟁가가 죽어도 투쟁이 오히려 강화된다. (211쪽)
■ 인도인에게 그 수칙을 지키도록 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순례자와 동료들이 도와주었다. 나는 봉사자들이 진정으로 봉사하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지 않으면 많은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았다. 봉사자가 노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노동을 한다. 이번에도 그런 경험을 했다. 동료들과 나는 미루지 않고 청소하고, 분뇨를 치웠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일했다. 솔선수범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모두 지도자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명령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지도자가 스스로 하인이 되면 아무도 지도자라고 주장할 수 없다. (320쪽)
■ 정부는 내가 체포되어도 순례자들이 실망하거나 놀라지 않고, 평화가 파괴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들이 소동을 일으켰다면 정부는 총기를 사용할 명분이 생겼을 것이다. 스뫼츠 장군에게는 우리의 강인함과 평화로움이야말로 골칫거리여서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한 모양이다. “평화로운 사람들을 얼마나 오래 괴롭힐까? 자발적으로 죽는 사람을 어떻게 죽일 수 있나?” (331쪽)
■ 지은이 소개
M. K. 간디(Mohandas K. Gandhi, 1869~1948)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인도 건국의 아버지로, 인도 민족운동의 지도자이자 사상가다. 1869년 10월 인도 구자라트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났다. 1887년 열여덟 살의 나이로 런던에 유학하여 법률을 배우고, 1891년에 귀국해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1893년 소송 사건을 의뢰받고 남아프리카로 간 간디는 백인에게 박해받는 인도인들을 보고, 1915년 귀국할 때까지 인도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투쟁했다.
이후 아힘사(불상생), 무소유, 무집착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적 바탕 위에 사티아그라하(진실관철투쟁), 아슈람 공동체 운동 등을 전개했고, 영국에 대한 비협력운동의 일환으로 납세 거부, 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했으며, 불가촉천민을 아슈람에 받아들이고 그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1947년 7월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후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분쟁을 종식시키려 애쓰던 간디는 1948년 1월 30일 저녁, 델리 비르라에서 극렬 힌두교도의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평생 금욕을 실천하고, 투옥과 석방을 거듭하며, 단식이라는 비폭력적 방법으로 저항과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간디는 인도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가슴속에서 잊히지 않는 금세기 마지막 성자로 추앙받으며, 인류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 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간디 자서전 : 나의 진실 추구 이야기》, 《인도의 자치》, 《간디, 나의 교육철학》 등이 있다.
■ 옮긴이 소개
박홍규
영남대학교 법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사카대학, 고베대학, 리츠메이칸대학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윌리엄 모리스 평전》, 《내 친구 빈센트》, 《자유인 루쉰》,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플라톤 다시 보기》,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 《세상을 바꾼 자본》, 《리더의 철학》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간디 자서전》, 《자유론》, 《인간의 전환》 등이 있다.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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