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르주 바타유가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란
화두를 가지고 저술한 책이다.
바타유는 인간이라도 사물 또는 도구(수단)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삽과 연필 등 도구는 사용되지 않을 땐 아무런 가치가 없고,
어떤 목표와 관계를 맺을 때만 가치를 가진다.
도구적인 인간의 삶도 그렇다.
바타유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살기 위해 일 하는 사람을
인간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된다.
예로 농부는 작물을 재배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삶을 산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작물을 소비하는 사람에게 농부는
작물을 소비하기 위한 도구(생산자)에 불과하다.
살아가기 위한 자신의 일이 누군가의 도구가 되어버리는 시대.
인간은 도구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벗어나고자 하고,
바타유는 인간이 도구적 삶을 벗어나기 위해 행하는
전쟁, 종교, 제사, 축제의 진실한 의미를 그려낸다.
■ 출판사 소개글
조르주 바타유의 《종교이론》 개정판 출간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조르주 바타유의 《종교이론》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수단으로서의 인간과 그로부터의 초탈을 위한 인간의 행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다. 제2부는 이윤의 원칙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폭력을 현실적 목적에 종속시키는 근대 산업사회 이후의 군사적 질서에 대한 비판이다.
사상을 벽돌담의 벽돌에 비유하는 바타유는 하나의 철학이 철학일 수 있으려면 인류의 사상사에서 그 다음에 있을 철학적 논의들에 대한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벽돌이 쌓이고 쌓여 돌담을 이루듯이 철학도 쌓이고 쌓여 사상의 담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무한조립은 불가능하며, 어떤 철학자는 새 집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 또는 철학적 답변은 개인적 입장을 무시할 수도 있고 이전에 있었던 또는 이후에 올 어떤 사상적 흐름에도 가슴을 활짝 열고 거역할 수 있다. 사상적 불만, 미완성은 답변과 관계있으며. 더 나아가 답변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종교이론》을 쓰는 바타유의 화두는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나는가?’이다. 바타유는 인간도 동물성, 사물 또는 도구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도구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목표와 관계할 때만 가치를 갖는다. 우리는 여기서 언어의 가장 두드러진, 가장 심각한 탈선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도구를 사용해서 어떤 것을 생산하지만, 그 생산물은 다시 다른 어떤 것에 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리는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삽으로 땅을 파고 거기에 식물을 재배한다. 거기서 생산된 작물은 누군가가 먹는다. 그러나 다시 그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은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농산물과 가축은 사물들이며, 사육과 경작의 순간만큼은 경작자, 사육자도 사물들이다. 그 세계에 속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수단이다. 경작자는 인간이 아니다. 경작자는 빵을 먹는 사람의 수단인 셈이다. 바타유는 수단을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을 전쟁, 종교, 제사, 축제에서 찾는다. 살상이 자행되는 전쟁은 얼핏 축제가 갖는 의미와 유사한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쟁과 축제는 큰 차이가 있다. 축제는 적을 사물 취급하지 않지만 전쟁은 적을 사물 취급한다. 전쟁은 개인의 생명과 그 가치를 위험에 빠뜨리는 반면, 살아남은 개인을 그 위험한 놀이의 수혜자로 만든다. 다시 말해 전쟁은 살아남은 병사를 초라한 사물로서의 개체가 아닌 영광스런 개체로 승화시켜준다. 그러나 바타유는 실아 남은 병사의 영광을 허위의 영광으로 규정한다. 병사는 폭력을 통해 인류를 전적인 사물의 질서로 환원시키려 들기 때문이다.
물론 무의식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병사의 그러한 태도는 주로 현실적 질서의 우세를 돕는다. 병사가 차지하는 신성의 권위는 세계를 유용성으로 끌어내린 뒤 얻은 거짓 권위이다. 바타유는 병사의 품위를 창녀의 웃음에 비유한다. 군사적 정복의 정신은 희생의 정신과는 반대이다. 군사적 질서의 왕은 내부의 폭력을 막기 위해 원칙적으로 폭력을 철저히 바깥으로 돌린다. 군사적 질서는 그렇게 함으로써 폭력을 현실적 목적에 종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군사적 질서는 축제와는 달리 힘의 최대 소비를 목표하지 않는다. 힘의 소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군사적 질서의 원칙에 의한 힘의 소비는 기껏해야 이윤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의 힘의 소비로서, 단지 더 큰 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바타유는 종교도 이러한 군사적 질서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며, 그 예로 이슬람을 든다. 바타유에 의하면 이슬람은 군사적 힘과 정복을 최종 목적으로 삼지 않는 행동을 볼 수 없는 엄격한 군사적 질서의 종교이다.
그러나 축제 또는 제사는 다르다. 제사는 미래를 염려하는 생산의 반대 명제이며, 오직 순간에만 관심을 갖는 소모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제사는 버리고, 주는 것이다. 석탄이 타는 화로는 대체적으로 부인할 여지가 없는 유용성을 갖는다. 반면 제사에서 제물은 그런 모든 유용성을 벗어난다.
제사의 정확한 의미를 찾자면 바로 이와 같다. 우리는 사치품을 제사 지내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것을 제사 지낸다. 또한 제물이 이미 손상된 것일 때는 제사란 있을 수 없다. 사치품이란 제작을 위한 노동의 유용성을 애초에 제거시켜버린 물건이다. 제작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사치품은 유용성을 잃는다. 사치품을 제사 지낸다면 그것은 같은 대상을 두 번 희생시키는 것이 된다.
그런가 하면 축제는 사람들을 모아, 그들에게 전염성이 강한 제물의 소모(영성체)를 통해 제한적 의미의 지혜와는 정반대의 불길을 향해 문을 열게 하는 것이다. 축제는 파괴적 열망을 분출시킨다. 춤, 시, 음악 그리고 다양한 예술들이 축제를 웅장한 폭발의 시간과 장소로 만든다. 폭발의 순간, 수단에 종속되었던 인간은 비로소 수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 목차
출발에 앞서
서문
1부 기본 여건들
1. 동물성
1) 먹는 동물과 먹히는 동물의 내재성
2) 동물의 의존성과 독립성
3) 동물성과 시詩적 허위
4) 물이 물에 있듯이 동물은 세상에 있다
2. 속세의 성립과 인류
1) 사물의 지위 : 도구
2) 내재적 요소들의 사물 차원의 지위
3) 주체로서의 사물들의 지위
4) 절대적 존재
5) 신성
6) 정신적 존재들과 신들
7) 사물들 세계의 지위와 사물로서의 육체의 지위
8) 먹힌 동물, 시체 그리고 사물
9) 노동자와 도구
3. 제사, 축제 그리고 신성세계의 원칙들
1) 제사의 필요성과 원칙
2) 신적인 세계의 비현실성
3) 죽음과 제사의 일상적 결합
4) 제사의 성취
5) 개인, 고뇌 그리고 제사
6) 축제
7) 축제의 한계, 유용성에 근거한 해석 그리고 집단의 입장
8) 전쟁 : 바깥을 향한 폭력과 폭발의 환상
9) 전쟁의 폭발을 인간 상품으로 엮어내기
10) 인간 제물
2부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군사적 차원에서 산업 증대로)
1. 군사적 질서
1) 자원과 소비의 균형에서 발전을 위한 힘이 비축으로
2) 일반적 사물로서의 제국의 입장
3) 법과 윤리
2. 이원론과 도덕
1) 신성과 속세의 이원론적 입장, 그 경계의 자리바꿈
2) 신적 내재성의 부정과 이성의 초월성에 대한 신의 입장
3) 감각 세계의 합리적 배제와 폭력의 초월성
3. 매개
1) 도덕적 신성의 보편적 약점과 악의 힘
2) 악의 개입과 무능한 복수의 신
3) 신성의 제사
4) 작동을 시작한 신성
4. 산업의 비약적 발전
1) 신적 내밀성과 현실적 질서 간 관계의 완전한 부재
2) 생산과 비생산적 파괴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 조망
3) 완성된 환원의 세계 또는 사물의 지배
4) 사물에 대한 명료한 의식 또는 과학
5) 자아의식
6) 사물의 전반적 파괴
누구에겐가…
부록 알람표와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조르주 바타유 연보
■ 본문에서
■ 철학은 일관성 있는 개요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철학은 적어도 인류 전체, 아니면 적어도 개인을 설명해줄 수는 있어야 한다. 어떤 철학이 철학일 수 있으려면 인류의 사상사에서 그 다음에 있을 철학적 논의들에 대한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 (19쪽)
■ 사물의 지위는 동물성 안에서가 아니라 도구의 인간적 사용 안에서 찾아진다. 도구란 수단이며, 목표와 결과를 위해 또는 도구를 사용해서 더 완전한 도구를 만들어내는 데 쓰이는 물건이다. 우리는 도구를 사물로 또는 구분이 불분명한 연속성의 차단으로 포착하며, 도구는 바로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도구는 바야흐로 나 — 아닌 것에 대해 눈을 뜨게 한다. (35쪽)
■ 사물의 질서가 생명을 이어주는 지속이라면 신성은 그 연결을 풀어헤치는 놀라운 폭발, 즉 폭력이다. 축제는 끊임없이 둑을 무너뜨리려고 위협하며, 축제가 성취되면 이제 순수광채의 전염적 충동이 생산 활동을 가로막는다. 신성은 정확히 말해서 나무를 태워서 소진시키는 불길과도 같다. 축제는 사물의 대립항으로서의 불길이며, 그래서 축제는 열과 빛을 분산시키면서 번지고, 불을 붙이며, 축제의 불길에 휩싸인 사물은 다시 불길이 되어 다른 것에 불을 붙이고, 앞뒤 없이 타오른다. 저녁이 되면 엄청난 광채의 태양도 서녘에 지듯이 제사도 시들지만, 그러나 결코 단절을 모르는 제사는 개체들의 총체적 부정을 초대한다. (63~64쪽)
■ 살상이 행해지는 전쟁, 약탈, 침략적 전투 행위는 적을 사물로 취급하지 않는 점만 빼면 축제와 매우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전쟁은 폭발력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또는 한계가 있다 해도 전쟁은 잃어버린 내밀성 회복의 완만한 행위로서의 제사와는 다르다. 전쟁은 병사로 하여금 내재성을 잃게 만드는 바깥으로부터의 느닷없는 침입이다. 그리고 전쟁은 개인의 생명과 가치를 위험에 빠뜨림으로써 개인을 와해시키려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또한 그와는 반대로 살아남은 개인을 그 위험한 놀이의 수혜자로 만듦으로써 생명의 가치를 강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69쪽)
■ 제국은 우선 현실적 질서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제국은 자신을 하나의 사물로 간주하며 스스로 정한 목적에 복종한다. 제국은 말하자면 이성의 경영이다. 그러나 제국은 그 경계선에 위치한 다른 제국의 동등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제국 주변의 모든 다른 제국들은 단지 정복 대상으로서의 제국들일 뿐이다. 제국은 그런 점에서 좁은 의미의 공동체가 갖는 단순한 개별체의 성격을 상실한다. 일반적으로 사물들이란 사물들을 포괄하는 질서에 편입되지만, 제국은 그런 의미의 사물이 아니다. 제국은 사물들의 질서 자체이고, 또 보편적 사물 자체이다. (78쪽)
■ 지은이
조르주 바타유(Georgs Bataille)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사상가. 문학사가들에 의해 ‘저주의 작가’로 불리는 바타유는 사실 당대의 지성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가였다. 젊은 시절 성직에 뜻을 두었던 적도 있었으나, 누구보다도 신성모독적인 저술을 많이 남긴 이단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일생을 무신론의 입장에서 인간의 절대성을 탐구하는 사색을 지속했다. 일찍부터 사회학, 인류학에 관심을 가져 마르크스, 헤겔, 니체 등을 탐독하며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한때 초현실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바타유의 저작은 철학, 사회학, 경제학, 예술론, 소설, 시, 문예비평 등 광범위한데, 그의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죽음, 에로티즘, 금지, 침범, 과잉, 소비, 증여, 성스러운 것 등의 주제는 모두 절대성이라는 중심 테마에 수렴된다.
저서로는 무신론 대전 3부작 《내적 체험》, 《죄인》, 《니체에 관하여》, 처절한 죽음과 에로티즘을 다룬 소설 《눈 이야기》,《마담 에두아르다》, 문학이론서 《문학과 악》, 《에로스의 눈물》, 미술에 심취한 시기에 쓰여진 《선사시대 그림: 라스코 또는 예술의 탄생》, 《마네》 등이 있다.
■ 옮긴이
조한경
서울대에서 문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암재단의 지원으로 프랑스 리옹3대학교에서, 학술재단의 지원으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교환교수 연구 기간을 가졌다. 번역서로는 《미덕이란 무엇인가》(앙드레 콩트 스퐁빌), 《에로티즘》 (조르주 바타유), 《저주의 몫》 (조르주 바타유), 《에로티즘의 역사》 (조르주 바타유),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 (질 들뢰즈), 《초현실주의》 (이본 뒤플레시스) 등이 있다.
저서로는 《사실주의》, 《변혁의 시대와 문학》(공저), 《서양 문예사조》(공저), 《라모의 조카》, 《프랑스 현대문학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