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를 통해 현재를 비판하다
과학소설의 아버지 허버트 조지 웰즈의 소설들
미래를 예견하면서 현재를 비판한 대표적인 소설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아마 많은 분들이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말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지 오웰이나 올더스 헉슬리보다 먼저 미래를 예견하는 것으로 현재를 비판한 작가가 있습니다. 과학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려지기도 하며, ‘타임머신’이란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허버트 조지 웰즈이죠.

허버트 조지 웰즈
이 분의 작품은 소설로 읽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은 영화로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영화거나 ‘투명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대부분 웰즈의 《타임머신》과 《투명인간》을 참고하기 마련이니까요.
웰즈의 소설이 원작이거나 재해석 된 영화로는 아래와 같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왼쪽부터 <닥터 모로의 DNA>(1933), <투명인간>(1933), <타임머신>(2002), <우주전쟁>(2005)
다른 영화는 모르겠지만, 톰 크루즈 주연의 <우주 전쟁>은 제목만이라도 보신 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웰즈의 작품관
웰즈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가 되었지만, 웰즈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술이나 문학을 찬양한 작가도 아니구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그는 문명 비판가 혹은 미래를 예언하고자 했던 작가에 가깝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웰즈는 초기에 자연과학 지식을 상상력과 결합한 공상과학 소설을 저술했고, 제법 밝은 느낌의 풍자와 유머가 있는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차즘 문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진보적인 시각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판하기도 했고요.그러나 2차 세계 대전 이후, 한평생 동안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낙관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완전히 포기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웰즈의 성장
웰즈는 세계 대전 이전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많은 공상과학 소설들을 집필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그의 성장과정 남달랐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웰즈는 자수성가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렇듯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온갖 잡다한 일을 하며 힘겹게 학업을 마치고 성공한 인물입니다. 자신은 자신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이루었으니 세계가 아무리 불행해 보여도 인간의 노력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진 것은 아니었을까요.
웰즈는 넉넉하지 않은 집의 아들로 태어났고 부모의 이혼으로 13세부터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포목상 도제, 초등학교 교생, 약제사 조수, 백화점 견습 사원 등을 거쳐 1884년 사우스 켄싱턴의 과학사범학교 국비 장학생으로 입학하면서부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이때 당시 웰즈는 생물학과 동물학 이외는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웰즈에게 생물학 등을 가르친 스승은 T. H. 헉슬리였다고 합니다.
웰즈의 스승

T. H. 헉슬리
웰즈가 힘겹게 학교에 입학하여 어렵게 작가로서 성공한 것은 백과사전 등으로 쉽게 알 수 있지만 그의 스승인 T. H. 헉슬리(토머스 헨리 헉슬리)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가 없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뛰어난 제자는 뛰어난 스승이 있는 것 아닐까요.^^ 참고로 토머스 헨리 헉스리의 손자가 《멋진 신세계》를 저술한 올더스 헉슬리입니다. 토머스 헨리 헉슬리를 기점으로 웰즈와 올더스 헉스리가 이어지는 군요. ㅎㅎ
아무튼 웰즈가 ‘타임머신’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라면, 그의 스승 헉슬리는 ‘불가지론’(신과 같은 본질적은 것은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란 단어를 최초로 만든 사람입니다. 불가지론이란 어려운 이야기는 여기에선 일단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토머스 헨리 헉슬리는 인간의 윤리가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은 진화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인간은 다른 진화하는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생존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식물의 씨앗이 이전 세대 식물의 사체를 양분으로 삼아 상장하는 것처럼 경쟁하고 살아남는 것은 이전 세대를 양분으로 성장해 갑니다. 이게 우주의 법칙이지만 인간의 문명은 우주의 법칙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며 공존을 꿈꾸기도 합니다. 진화가 공존의 윤리를 만든 것이죠.
그리고 여기에서 웰즈의 소설 《타임머신》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지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타임머신》은 흉측한 멀록족과 지능이 낮은 엘로이족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과는 다른 세상을 그려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퇴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리고는 스승의 사상과도 다른 생각을 펼칩니다. 헉슬리는 인간이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며 악을 제거하며 문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지만, 웰즈는 그렇게 평화로운 세상이 되면 생존에 필요한 자극을 잃게 되어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진화에 따라오는 생존경쟁, 문명에 따라오는 평화, 어느 쪽이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할 수 있을까요. 웰즈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쪽도 분명하지 않다고 말할 뿐이죠.
마지막으로 웰즈의 소설을 소개합니다.
장편소설
타임머신
시간을 여행하는 시간 여행자는 자신이 본 미래의 지구를 말해주지만 아무도 시간 여행자의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미래의 인류는 문명을 잃어버렸고 지능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퇴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간 여행자가 본 미래는 정말 믿지 못할 이야기일까요?
책 속의 한 문장
"어떻게 인류가 이처럼 두 종족으로 분화된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 우선 우리 시대의 문제점들을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본다. 현재에는 그저 일시적이고 사회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차이가 점차 확대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전체적인 입장을 푸는 열쇠였다."
투명인간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어떻게 될까요. 주인공 그리핀은 투명인간이 된 후 몸을 되돌리려고 노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를 이용하려는 야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정치나 권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진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이야기겠죠. 타인에 대한 폭력도 자유이고, 처벌도 내릴 수 없으니까요.
책 속의 한 문장
"나는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투명성이 한 인간에게 미칠 엄청난 비전, 그 미스터리, 권력, 그리고 자유를 예견해보았어. 허점이라곤 보이지 않았어."
모로 박사의 섬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모로 박사는 인간의 노예로 쓸 수 있는 동물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자신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 동물의 생명을 무가치하게 다루는 인간에 대해 비판하는 이 작품은 반려동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오늘날에도 읽어볼만한 책이다.
책 속의 한 문장
"주위 남자와 여자 들은 진짜 남자와 여자 들이다. 변치 않는 남자와 여자 들이고 완벽하게 이성적인 존재들이며 인간의 욕망과 사소한 걱정거리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본능으로부터 자유롭고 황당무계하지 않은 법의 노예들이라 동물 인간들과는 전연 다르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피한다. 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그들의 질문과 그들의 도움을 피하고 그들에게서 벗어나 혼자 있고 싶어 한다."
우주전쟁
화성인들의 압도적인 화력을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 런던을 포함한 일대의 도시들이 무참하게 파괴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주인공인 화자가 자신이 목격한 바를 그대로 서술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철제 무기들을 녹이는 외계의 광선포, 긴 촉수로 인간을 휘어잡아 죽이는 외계 생명체 등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이 작품을 단번에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책 속의 한 문장
"촉수들은 고르곤 같았고, 낯선 대기권 속에서 힘겹게 작동하는 허파로 인해 숨소리가 요란했다. 둔하고 고통스런 움직임은 아마도 지구의 엄청난 중력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커다란 눈동자에서 나오는 특유의 강렬한 눈빛까지 합쳐져, 생생함, 강렬함, 냉혹함과 괴물 같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켰다. 미끈 거리는 밤색 피부에는 균사가 증식했고 천천히 꿈틀거리는 동작은 형언하기 힘든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나를 압도했다. "
단편소설
허버트 조지 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