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주년과 문예출판사 창립 50년 기념출판물인 《현대한국출판사》 출간을 기념하며,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출판 산업을 개척한 대표 출판인을 소개합니다.

1945년부터 6·25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5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등장한 출판사들을 현대 출판을 개척한 창업 1세대라고 말합니다. 당시의 출판인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우리말로 된 도서와 잡지를 출판,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지식과 문화와 경제 등에 큰 이바지를 하였습니다. 그 분들의 노고를 기억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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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의 개척자, 광복기(1945~1959)의 출판인들

 

1화

신생 대한민국의 출판 지도자 정음사 대표 최영해





정음사는 '정음正音'이란 회사명칭이 강하게 내비치고 있는 것처럼 일제가 우리의 글과 말을 말살하려고 할 때,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최현배(1894~1970, 호는 외솔)가 강의를 위해 《우리말본과 《소리갈》을 등사본으로 찍은 것이 계기가 되어 1928년 7월 7일에 창설한 출판사이다. 창립 당시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행촌동 최현배의 집이었다. 국문학과 관련한 우리 서적을 출판해오던 정음사는 일제의 탄압으로 간판을 내린 지 3년 만에 광복과 더불어 새 출발을 했다.




《우리말본의 초판본



외솔(최현배)이 군정에 참여하게 되자 그의 아들 최영해(1912~1981, 호는 행촌)가 정음사를 이어받아 서울 북창동에 사무실을 열고 출판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최영해는 연희전문(지금의 연세대) 문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경성일보》 기자를 하면서 출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정음사는 해방 직후인 9월 중순경에 권덕규의 《조선사를 제일 먼저 복간했는데, 이 책을 해방 후에 나온 최초의 책으로 꼽는 이도 있다. 이후 광복기에 정음사에서 낸 책들을 보면 퍽 다채롭고 화려하다.

 

《우리말본》을 비롯한 국어학 서적 30여 종, 《조선고대소설사》 등 국문학 서적 30여종,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외 시집 20여 종, 《흔들리는 지축》 외 창작집 20여 종, 《어린이역사》 외 20여 종, 《정음문고》 35종, 사회과학 서적 10여 종, 기술과학 서적 20여 종, 학교 교과서 40여 종, 기타 단형본 30여 종을 6·25전쟁 이전에 간행했다. 또한 편집인 홍이섭을 중심으로 한 역사·언어·민족 연구지인 월간 《향토》를 1946년에 창간해 통권 12권까지 발행했다. 특히 《이조실록》 영인출판도 착수해 6·25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16권을 발행한 것은 큰 업적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왼쪽부터 월간 《향토》, 《조선고대소설사》, 정음문고의 《금강경



이처럼 폭넒은 분야에 걸쳐 격조 높은 책들을 출판해 을유문화사와 용호상박의 세를 형성하면서 신생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출판사로서 출판문화계를 이끌었다. 정음사가 광복 직후 혼란기의 우리나라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최영해는 뒷날 광복기의 출판에 대한 소회와 바람을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모두가 서투른 솜씨로 첫걸음을 나선 8·15! 출판계의 말단에서 있는 힘 없는 힘을 다하고 나서 돌아보니 이렇다 할 성과 없는 고무풍선 같은 오늘이 되고 말았다. 누구를 탓할 것 없는 우리들의 소치다. 오로지 만천하 독서자(책 읽는 사람) 제위(여러분)께 엎드려 빌어 마지않을 뿐이다. 제 자식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 인정이라기, 정음사도 아래에대 변변찮은 목록을 나열해 선을 보이는 바다. 행(다행)히 여러분의 귀염을 받고 사랑을 받는다면 이 이상 무엇을 더 바라리오. 게다가 우리 문화를 한 걸음이나마 향상시키려는 미충이 어쩌다가 여러분의 눈에 띄기만 하면 우리들의 바람은 여기서 끝나고 말 것이 아닐까 한다. 봄이 오면 꽃이 피리니, 4월의 훈풍이 우리 출판계에도 틀림없이 불어주어 참된 독서자를 위한 출판인이 되도록 마련해주었으면, 출판인으로서 우리들의 기쁨도 여기에 그칠 것이다."

- 최영해, 《출판대감》(출판문화 제7호 특집), 서울 조선출판문화협회, 1949, p.104

 

휴전 후 1993년 문을 닫기까지 《세계문학전집》(전 100권)과 《중국고전문학》(전 18권)을 비롯해 《전작대표작가선시집》 6종, 《현대음악총서》 7종, 《국문학대계》 8종, 대학교재 28종, 기타 단행본 40종 외에 《박사학위논문집》, 《한국고전문학비평집》, 《정통문학》 등 2,000여 종의 우수도서를 펴냈다.

 

1990년 중반부터 사세가 기울면서 출판사의 경영권과 사옥이 비출판인에게 넘어갔다. 행촌(최영해)은 건강문제로 60년대 초반에 최철해(1927~1993)에게 정음사를 맡기고 경영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최철해의 경영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그는 81년 11월에 이르러 행촌(최영해)의 아들 최동식(1943~)에게 경영권을 넘긴다. 3대에 걸쳐 65년간이나 대물림한 정음사는, 1946년 이래 수많은 우량도서의 산실이요. 우리 출판문화의 자존심의 상징 같은 구실을 해온 최현동 사옥을 버리고 1973년 서울 중구 충무로 5가로 옮겨 사업을 계속해오다가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해 1993년 8월 막을 내린다.

 

성장을 거듭하던 정음사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은 선친의 뜻을 잇기 위해 4대 사장으로 취임한 최동식이 1980년에 개발한 2벌식 외솔 타자기가 컴퓨터에 밀렸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향촌(최영해)이 작고한 뒤 최철해와 동식 사이에 벌어진 숙질 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회사가 반분되는 내분을 겪으면서 사세는 더욱 빠르게 기울어져갔다. 무계획하고 방만한 출판경영도 도산의 이유로 작용했다.

 

정음사가 우리 출판발전에 끼친 업적과 영향력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출판인으로서 향촌 최영해는 정음사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출판발전을 위한 공적인 일에도 항상 헌신적으로 발 벗고 나서는 통 큰 지도자적 기질과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1974년, 조선출판문화협회(현 출협) 설립을 주도했다. 창립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된 이래 무려 7대(1947~1954)까지 연임하면서 김창집 회장과 초창기 출판업계의 기틀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출협 창립 직후에는 그의 사옥 2층을 사무실로 선뜻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60여 년 동안 출판문화 향상에 큰 업적을 남긴 정음사는 대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수성(지킴)에 성공하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업계 발전을 위해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출판계 지도자로서 행촌의 면모는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연재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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