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꿈을 향한 정열, 명석한 두뇌, 억만 장자, 꽃 같은 외모, 지고지순한 사랑과 순수한 마음까지. 아... 뭐하나 빠져보이지 않는 위대한 개츠비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고달픈 서민의 마음입니다. 서민의 삶은 언제나 단조롭고 지루합니다.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고,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공부와 휴식을 반복합니다. 일상은 언제나 반복의 연속입니다. 그 반복 속에서 작은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서민의 마음이고 삶이 아닐까요? 하지만 개츠비는 다릅니다. 항상 앞으로만 나가야 합니다. 돈을 벌고, 지적이게 보이기 위해 옥스퍼드 대학을 다니고,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사랑하는 여자를 잡아야 합니다. 개츠비에게는 그리워할 과거도 휴식도 없습니다. 전진 또 전진 뿐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쓰고보니 기업가들의 흔한 성공 신화와 개츠비의 삶이 매우 유사해 보이네요. 앞만 보고 사는 개츠비의 뒤에는 슬그머니 고독이 찾아와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개츠비의 영혼에 술을 붓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고독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말이죠. 개츠비의 전진 뿐인 삶을 동경하신 적이 있나요? 만약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살고자 하셨다면 고독이 마음을 망치기 전에 잠시 멈춰서 개츠비의 고독과 개츠비가 알고 있어야 했던 작은 일상의 소중함을 알아보세요.

지난 미리보기는 아래 링크를 이번 화는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주세요.

 

 

1화 나만의 인생 이야기를 쓰고 싶을 때 알아야 할 지식 - 신화(이야기)는 왜 힘을 가지는가
- 링크 : http://goo.gl/1zQExc


2화 악마 이야기와 위대한 창의력의 관계
- 링크 : http://goo.gl/UST0AD

3화 가족과 이야기의 중요함을 알린 센트럴파크 살인 사건
- 링크 : 
http://goo.gl/YSXqxy

부록. "삶을 치유하는 이야기(신화)의 힘을 말하다" - 마케터 리뷰

- 링크 : http://goo.gl/R0xA3j

그럼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랍니다.

*

이 책에 나오는 '신화'라는 단어는 '교훈이 되는 이야기'라는 단어로 바꿔서 읽어도 내용 이해에 무리는 없으며, 미리보기로 보여드리는 내용은 도서의 내용을 요약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본문 안 "재즈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던 시대로 미국식 이상 사회를 뜻합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정치적인 규제도 거의 없는 세상을 의미하지만, 물질만능주의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많은 외국인과 서민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지만 특별히 세상이 더 좋아지진 않았다고 하네요. 이런 이유로 나오는 재즈 시대는 물질만능주의 시대로 읽으시면 됩니다. ​^^

 

_문예남 올림

 


 

 

 

위대한 개츠비의 고독

 

피츠제럴드는 재즈 시대에 사람들이 고독한 것은 진정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인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 자신이 기분대로 한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길 독립성과 자유를 빼앗겼다고 느낀다. 개츠비의 꿈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라는 바위에 부딪혀서 침몰했다. 피츠제럴드는 특히 경솔한 톰(데이지의 남편)과 데이지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준다.

 

"톰과 데이지는 경솔했다. 모든 물건과 살아 있는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든 다음, 돈이나 어마어마한 경솔함 혹은 그것들을 한데 묶어주는 것 뒤에 숨고, 뒤처리는 모두 남에게 맡겼다."

 

피츠제럴드는 거의 모든 페이지에 '무관심한'이란 단어를 썼다. 이야기 끝 무렵 개츠비가 살해된 뒤에, 닉은 우리에게 그가 반복해서 꾼 몽환적인 꿈을 이야기한다.

 

그곳은 엘 그레코(왜곡되고 늘어진 형상, 매끄러운 표면, 인체를 길게 늘인 표현 등이 특징인 화가)가 그린 밤 풍경처럼 보인다. 음산한 하늘과 침침한 달, 평범하면서도 괴기스러운 집 100여 채, 예복을 입은 근엄한 남자 넷이 흰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술에 취한 여자를 들것에 싣고 인도를 따라 걸어간다. 들것 밖으로 드러난 여자의 손은 장신구로 차갑게 번쩍인다. 남자들은 엄숙하게 한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엉뚱한 집이었다. 모두 그 여자의 이름도 모르고, 무관심했다.

 

개츠비가 되풀이해서 꾼 꿈은 강박적이고, 불안하며, 술에 취해 소란을 떨던 피츠제럴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개츠비는 자기 집이 없었다. 그 꿈은 개츠비가 영원히 집 없이 외롭게 살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개츠비를 데리고 간다는 점이다. 우리도 속으로는 개츠비에게 무관심할 것이다. 이 책에서 죄와 타락의 관념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심'이란 단어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관심'은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능력이며, 더 깊은 차원에서 의사소통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관심'은 프로이트의 에로스 신화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톰과 데이지는 관심을 표현하고 인간의 잔인함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자비를 몰랐다.

하이더게는 관심이 존재의 기초라고 생각했다.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움츠러들고, 자기 자신도, 의지를 행사할 능력도 상실한다. 때때로 피츠제럴드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끼지도, 소통하지도 못하는 원죄라고 암시한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의 가장 깊은 감정과 욕구에 폭력을 행하는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피츠제럴드는 '말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전달할 수 없는'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그는 말하기 어려운 것을 말하려고 몸부림친다. 또 소용돌이치는 작은 지구에 사는 인간은 서로 사랑하기를 갈망하지만,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하려고 애쓴다. 개츠비는 자기 집 수영장에서 총에 맞기 한 시간 전, 마지막 날 이상한 아침 식사 자리에서 전날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과 결혼할 때 잠깐 톰을 사랑했고, 그 후에는 자신을 더 사랑했다"고 믿으려고 애썼다. 실제로 개츠비는 한쪽 귀를 전화기에 댄 채, 데이지가 전화를 하거나 애정의 징표를 보내지 않을까 기다렸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닉이 개츠비의 집을 떠났다. 하지만 돌아서서 잔디밭을 가로질러 개츠비에게 외쳤다. "다 썩었어... 그 망할 인간들을 다 합친 것보다 당신이 나아." 닉은 항상 말했다. "그렇게 말한 것이 기쁘다. 그것이 내가 개츠비에게 한 유일한 칭찬이니까." 닉은 말했다. "개츠비는 내가 대놓고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한다." 하지만 닉은 개츠비를 칭찬했다.

라오콘(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론 신전의 사제.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 군이 남긴 목마가 간계라는 것을 알아내는 바람에 신의 노여움을 사서 두 아들과 함께 죽었다.)은 피츠제럴드의 양면이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자신의 양면을 나란히 보여준다. 정직하고 감수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피츠제럴드는 재즈 시대 사회 풍조와 싸웠다. 피츠제럴드는 1920년대를 지배한 죄와 지옥이란 주제를 명확하게 보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미워하던 것들에 유혹되었다. 《위대한 개츠비》가 통렬한 것은 이 때문이다.

피츠제럴드 소설의 주제는 고독이다. 개츠비의 파트에서 사치스럽고 방탕한 음악과 춤과 술이 넘쳐나는 동안, 사람들은 전혀 소통하지 못했다. 그 파티들은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열광적인 모임"일 뿐이었다. 개츠비가 현관에서 떠나는 손님들에게 "한 손을 들고 의례적으로 작별 인사할" 때, "돌연히 알 수 없는 공허감이 창문과 커다란 문에서 흘러나와 집주인인 개츠비가 너무나 고독해 보였다."

​닉은 뉴욕을 배회하면서 그 외로운 분위기를 민감하게 느꼈다. "마법에 걸린 대도시의 황혼에서 나는 때때로 엄습하는 고독을 느꼈다. 그 고독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느껴졌다. 가엾은 젊은 사무원들은 쇼윈도 앞에서 빈둥거리다가 식당에서 고독한 저녁 시간을 맞이한다. 그러면서 밤과 삶의 가장 짜릿한 순간을 흘려보낸다." 플라자 호텔에서 결전이 벌어진 뒤, 닉은 갑자기 그날이 자신의 생일이었음을 기억한다."서른 살 - 그것은 독신 남자로서 알아야 할 일의 목록이 얇야지며, 열광이 든 가방의 부피가 줄어들고, 머리숱이 적어질 고독한 10년의 미래를 약속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은 좋아하지도 않는 환상적인 파티를 연 제이 개츠비다. 처음 보았을 때, 개츠비는 해 질무렵 자기 집 잔디밭에 홀로 서서 롱아일랜드 해협 건너편 데이지의 선착장에 반짝이는 초록 불빛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자신의 장례식 때까지 개츠비는 고독의 표본이다. 개츠비는 자신이 고독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실이 그가 고독했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말해준다. 개츠비에게 고독은 성격이요, 존재의 상태였다. 왔다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개츠비만큼 정력적인 사람은 없었다. 개츠비는 제 힘으로 성공한 사람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든 사람과 깊은 관계를 끊었다. 개츠비의 저택에 들어왔다 나간 사람들도 파티와 전혀 상관없는 목적을 이룬 셈이다. 파티는 데이지를 개츠비의 집에 데려오기 위해서 연 것이다.

개츠비의 저택에서 사람들이 개츠비의 시신을 관에 눕히자, 닉의 귀에는 애원하는 듯한 개츠비의 음성이 들렸다. "어이, 자네, 사람 좀 데려와... 나 혼자선 여길 못 지나가겠어." 닉은 죽은 개치비를 안심시켰다. "알았네, 내가 자네를 위해 사람을 데려올 테니 걱정 말게. 내가 사람을 데려올게."

​닉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장의차 세 대가 30분을 더 기다렸지만, 장례식에서 개츠비가 느꼈을 마지막 외로움은 한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데이지는 조전(관에 넣는 가짜 돈), 꽃 한 송이 보내지 않았다. 이슬비까지 내려 무덤 주위는 더 쓸쓸하게 보였다. 단지 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미국의 꿈이 땅에 묻힌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신화(아메리칸 드림, 물질만능주의)가 무덤에 묻히는 순간이었다.

개츠비의 무덤 근처에 모인 작은 무리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개츠비의 파티에서 취한 남자 가운데 한 명이 장례식에 나타난 것이다. 그 남자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이건 말도 안 돼! 파티에는 몇 백 명씩 모이더니만!" 지금 모든 독자가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불쌍한 놈!" 개츠비의 장례식은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윌리 로먼의 장례식과 비슷했다. 실제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논의할 몇몇 사람조차 없었다는 점을 배면.

피츠제럴드 자신이 이 깊은 고독을 느꼈다. 개츠비가 전전긍긍하며 뛰어다니고, 강박적으로 술에 취한 것도 그 고독을 극복하려는 자기 파괴적 노력이었다. 사실 재즈 시대 전체에 걸쳐 그 뿌리 없음이 존재한다. 미국인은 1930년대 대공황을 경험하고야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서로 소외되고 삶의 근원에서 고립된 채 사는 우리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물었다.

*​

"인생의 단조로움" 개츠비가 알았어야 할 시시포스 신화

이 절망의 순간에 새롭지만 영원한 고전 신화가 필요하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이 상황에 들어맞는 유일한 신화다. 시시포스 신화는 미국의 꿈을 대놓고 반대한다. 또 진보를 부정하고, 제자리에 머물며,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날마다 모든 행동이 똑같고, 단조롭고 지루하며 힘들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시시포스 신화의 중요한 의미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시시포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 신화에서 시시포스는 자신과 제우스, 자신과 운명 사이의 모든 순간을 의식한다. 시시포스는 신들을 속인 죄로 제우스에게 처벌받는다. 호메로스는 그런 시시포스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수없이 지친 발걸음을 디디고, 수없이 신음하면서,

시시포스는 거대하고 둥근 바위를 산 위에 올렸다.

그 거대하고 둥근 바위는 요란하게 덜컹거리며

굴러 내려왔다.

그런 다음 호메로스는 "불쌍한 시시포스"가 "자신의 귀를 기쁘게 하는 즐거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시시포스 시화를 매일 정점까지 떠올랐다가 지는 태양 이야기로 해석했다. 인간의 삶에 돌고 도는 태양의 운행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개츠비를 생각하면 모든 인간이 단조로움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에 서글퍼진다. 재즈 시대 사람들은 이 우울한 생각을 부정하려고 술 취하고 춤추고 파티를 열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몸부림쳤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이 단조롭다고 느낀다. 살아 있는 모든 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이것이 가장 단조로운 일이다. 하지만 불교 신자들과 요가 수행자들은 이렇게 숨을 쉬는 데서 종교적 명상과 무아지경에 이르는 길을 마련했다.

시시포스는 죽음을 지우려고 한 창조적인 사람이다. 시시포스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항상 더 나은 삶을 창조하는 데 헌신했다. 시시포스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전진한 영웅의 본보기다. 인간에게 절망에 맞서는 능력이 없었다면, 베토벤이나 렘브란트, 미켈란젤로, 단테, 괴테 그리고 문화를 발전시킨 다른 위인들은 없었을 것이다.

​시시포스의 의식은 사람됨의 특징이다. 시시포스는 생각하는 갈대다. 목표를 세울 수 있고, 환희와 고통을 알며, 절망과 단조로움을 분간하고, 처벌받으면서도 바위를 굴리는 단조로운 일로 저항할 수 있다. 시시포스가 무엇을 상상하고 생각하며 바위를 굴렸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각각의 행위가 조화를 원하는 신들에게 반항한 것이었음을 한다. 그게 아니라면 참회의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은 우리가 만들어낸 상상이자 의도며, 인간적인 믿음이다. 시시포스는 저 위대한 신을 위해 부적절한 신들에게 반항한 영웅 가운데 하나다. 프로메테우스와 아담, 미국인의 신화와 신들이 모두 그런 영웅이다. 시시포스가 그랬듯이 자기 임무를 깨닫는 영원한 능력에서 바위와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날 용기가 나온다.

게다가 시시포스는 바위를 굴리면서 여명을 알리는 분홍색 조각구름을 보았거나, 바위를 굴리고 언덕을 내려오면서 가슴을 스치는 바람에 즐거웠을 것이다. 아니면 묵상할 시구를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시시포스는 신화를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 신화가 없었다면 시시포스는 무의미한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시시포스에게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시시포스가 개츠비였다면 과거는 지울 수 없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뒤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까지 깨달았을 것이다. 이런 상상력을 보면 인간이 받는 역설적인 유죄파녈이 정당하다는 것과 우리가 인간임을 깨닫는다.

시시포스 신화가 균형을 잡고 미국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논리적 대화를 제공하려면, 초록 불빛(개츠비는 데이지의 선착장에서 나오는 초록 불빛을 동경했다.)과 나란히 놓고 봐야 한다. - 동경하는 것과 현실을 나란히 봐야 한다는 뜻 - 시시포스 신화는 사람이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장치이며, 허레이쇼 앨저 신화가 사람을 타락시킬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시시포스 신화는 약속의 땅을 그만 착취하고, 그들의 목적을 곰곰히 생각하고 목표를 분명하게 한다.

확실히 개츠​비에게는 시시포스 신화가 없었다. 시시포스 신화를 보면 개츠비의 꿈이 무너진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도 미국인의 절망을 상쇄하고, 그 절망을 건설적으로 사용할 뉴에이지 사상을 받아들이며, 황홀경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삶 자체가 개츠비의 꿈이나 미국의 꿈(아메리칸 드림)보다 훨씬 심오하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피로와 죽음의 과거 속으로 얼마나 물러났든지 우리는 무아경의 사상에 빠져서 이상하게 생각했고, 슬픔과 신랄함을 경험했다. 잠깐 죄책감 대신 슬픔을, 불안 대신 환희를 느낄 것이다. 신화에서 보듯이 영원이 시간 속으로 뚫고 들어올 때, 우리는 인간 의식의 의미를 깨닫는다.(삶의 진실이 우리 현실로 들어올 때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의미)

이렇게 시시포스 신화는 무의미했을 우리의 수고를 의미 있게 한다. 또 우리의 일상적인 노동에 빛을 비추고, 단조로운 삶에 활기를 제공한다. 우리가 앞을 막는 파도를 향해 노를 저어 가거나, 공장에서 로봇처럼 일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표현하기 위해 날마다 분투하거나 시시포스 신화는 빛과 활기를 제공한다.

시시포스 신화는 미국의 꿈(아메리칸 드림, 물질만능 주의)에 대한 최고의 도전이다. 사람은 의식이 진보하건 그렇지 않건, 초록 불빛이 있건 없건, 데이지가 있건 없건, 세계가 분열하건 그렇지 않건 그것을 인식해야 한다. 아니 그렇게 할 운명이다. 우리의 작은 규칙이 쓸모없을 때, 의식은 우리가 파괴되지 않게 지켜준다.

이 때문에 알베르 카뮈는 시시포스에 대한 수필을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우리는 반드시 시시포스를 기쁘게 생각해야 한다."


 

 

미국에서 나는 가장 행복한 환경에서 가장 자유로운 최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항상 우울한 표정이었고, 기쁜 일이 있어도 심각하고 슬퍼 보였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 알렉시 드 토크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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