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자>의 저자 실비아 플라스만큼 “신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존재가 또 있을까요.

아름다운 금발의 유망한 미국 여성 시인이 당대 최고의 천재 영국 시인과 결혼하면서 시작된 현대 영미문학계 최고의 황금빛 로맨스의 시작과 비극적인 결말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벨자>의 저자 실비아 플라스는 남편인 테드 휴즈의 외도 이후 별거에 들어가고 100년 만에 찾아온 런던의 혹한 속에서 우울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하게 됩니다. 옆방에 노는 두 아이가 배고프지 않도록 우유와 빵을 놓아두고 가스가 아이 방으로 새어 들어가지 않게 꼼꼼하게 문틈에 테이프를 바른 후 가스 오븐에 서른 살의 젊디젊은 머리를 넣는 끔찍한 자살을 시도한 것이죠.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가장 아름다운 로맨스와 함께 사회 진출을 시작했으나,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좌절을 해야만 했던 실비아 플라스. 그녀가 살아갔던 이야기와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자가 살아가기 위해 흘려야 하는 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잔인한 신화로 만들어집니다. 

1953년 여름, 대표작 <벨자>를 집필하는 실비아


▶ 여성해방운동을 통해 순교자의 반열로…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은 남성중심의 사회에 대한 상징적인 도전과 같은 것이기에 한없이 재생산되고 소비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1960년대 태동한 페미니즘 운동에 힘입어 신화적인 인물로 만들어지지요. 강력한 시대적 흐름을 타고 실비아 플라스의 삶과 작품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남성 세계에 희생된 여성 시인의 전형, 페미니즘의 기치를 든 피 흘리는 여신으로 만들어집니다.

여성의 야망과 성적인 생명력을 허용하지 않는 남성의 세계에 희생된 신화적인 순교자로 추앙된 것이죠.

남편이었던 테드 휴즈는 엘리자베스 2세의 계관시인까지 지냈던 20세기의 대문호(大文豪)였지만, ‘실비아 플라스’ 살인자라는 오명만큼은 평생 낙인처럼 달고 다녀야 했고, 강연이나 시낭독회마다 시위대를 팬클럽처럼 몰고 다녀야 했습니다. 실비아 플라스의 무덤 묘비명에 새겨진 남편의 성(姓)인 ‘휴즈(Hughes)’라는 글자들은 새로 새기고 또 새겨도 분노한 실비아의 추종자들에 의해 지워지고 또 지워졌습니다.

실비아 플라스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폭풍처럼 흥성한 페미니즘의 순교자라는 아이콘이 되어 버린 것이죠.
 

1954년 여름. 해변에서


▶신화 속에 외면당한 그녀의 삶은 같은 고통을 경험한 친구의 이야기

그러나 실비아 플라스를 뒤덮은 이 신화들은 실비아의 삶을 왜곡시키고 폭력을 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 명의 어머니였고 아내였고 또 투쟁하는 생활인이었던 인간 실비아 플라스의 목소리는 주목받지 못한 것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아주 특별한 기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어떤 일기보다 그녀의 일기는 읽기 어려운만큼 고통스러운 육성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죠.

​그녀는 냉혹할 정도로 자신에게 정직했습니다. 그녀의 일기를 읽는 분은 그 솔직함과 신랄함 그리고 문학인이나 지식인들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범속한 욕망에 대한 표현 때문에 당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962년 3월 데본에서 프리다와 니콜라스와 함께. 실비아는 남편과의 불화에도 자녀에겐 다정한 엄마였다.


이 일기를 읽다 보면 실비아 플라스라는 인간이 얼마나 모순 덩어리인가를 느끼게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끔찍할 정도로 이기주의자이고 끔찍할 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사랑했지만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일에는 재주가 없었다는 점에서 말이죠. 한편으로는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문화가 실비아를 이렇게 독단적인 성격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롭게 더 외롭게 자신만의 인생을 혼자 완성​해 가고자 했던 실비아의 자기혐오와 타자에 대한 공격성은 한때 가장 아름답고 뛰어났던 한 여성 작가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욕망과 모순과 정직하게 싸우며 때로 누군가에게 절실하게 도움의 손길을 구해보지 않은 분들에겐 그녀의 삶이 삶을 포기한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 테드 휴즈와 함께, 1956년 요오크셔.

​오늘날은 모든 것을 욕망하게 되는 사회입니다. 욕망이 없으면 욕망을 하라고 강요하기도 하지요. 욕망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욕구, 즐기고 싶은 욕구, 성취하고 싶은 욕구, 만들어진 욕구까지. 만약 여러분이 살기 위해 필요한 욕구와 성취하고 싶은 욕구가 타인과 세상에 의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녀의 일기는 같은 고통을 경험한 친구의 이야기로 읽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장영희(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선생님의 추천사를 남겨 봅니다.

"실비아 플라스는 1963년에 서른 살 나이로 자살한 미국의 천재 여성 시인이다. 많은 사람은 궁금해한다. 왜 가스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을 해야만 했을까?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그녀가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일기 안에서 그녀의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과 재능을,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열정과 야망을 가지고 성공하고자 했던 한 비범한 천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비아는 자신이 겪은 사랑과 슬픔, 광기에서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면, 어떤 새로운 경험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실비아의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가 2004년 종이책으로 출간된 이후 11년이 지나 전자책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종이책 서점 가기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전자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