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4
조라 닐 허스턴 지음, 이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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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분만 시간 내서 알아두면 후회하지 않을 작가"

조라 닐 허스턴(Zora Neale Hurston)
 

-오프라 윈프리로 하여금 영화제작에 뛰어들게 한 작가 


-1925년 명문 바너드 컬리지에서 인류학을 공부한 유일한 흑인 여성
 

-흑인을 위해 정치적인 글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흑인 남성 작가에게 비판받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작가 


-"천재를 내다 버린 것"이라며 흑인 사회를 비판받게 한 작가
 

-<타임>지 선정 '1923년 이후 출판된 100대 영문 소설'을 남긴 작가
 

- 가난과 병에 시달리고 묘비명도 없는 묘지에 묻혔다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은 작가


-본인 이름으로 매년 축제가 열리는 작가(미국 이튼빌에서)

 

 

 

*
어떤 곳을 알고 싶으면 그곳에 직접 가봐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른 어떤 사람도 그걸 알려주고 보여줄 수 없어.
다음 두 가지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해야 해.
하느님을 찾아가는 것과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찾아내는 것.

*
사랑이 어디서나 똑같은 것이고 만나는 모든 것에
똑같은 영향을 미치는 맷돌 같은 게 아니라고 말해줘.
사랑은 바다 같아.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지만 
가 닿는 해안에서 모양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어떤 해안에 닿느냐에 따라 모양이 다 달라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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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본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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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멈추지 않고 단숨에 끝까지 읽었습니다. 읽고 나선 그녀가 왜 흑인 남성 작가에게 비판을 받게 되었는지, 왜 흑인 사회가 '천재를 내다 버린 것'이란 비판을 받게 되었는지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1920년을 배경으로 하며, 남북전쟁 후 자유를 얻은 흑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흑인 여성 재니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흑인들이 자유란 스스로 무엇을 만들고 그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말할 때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

> 억압하는 백인이 없기에 흑인과 흑인이 서로 시기하는 모습,

> 눈치보지 않고 유희를 즐기고 싶어하는 마음,

> 먹고 사는 것이 편해지자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모습,

>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서 사회적 가면을 인식하는 모습 등

이제 막 노예의 신분을 벗어난 흑인들이 자유인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며 보이는 실수나 어설픔이 드러납니다. 이런 모습들이 당시 흑인 남성 작가에겐 흑인을 희화화한다고 보일 수 있었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인류학적 시선과 문학적 감성으로 인종 문제, 사회 문제, 인간 본연의 마음까지 절묘하게 그려내는 조라 닐 허스턴의 글은 정말 천재적이라고 할만 합니다.

또한 민속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흑인들의 민담, 속담까지 아주 자세하게 표현한 점도 매력적입니다. 

더불어 이 모든 것들이 어렵지 않고 자극적이며 아름답기까지한 시적 표현들로 이루어져 우리가 그 의미를 생각하기 전 머리속에 메시지가 먼저 전달되기도 하구요.
^^

조라 닐 허스턴, 그녀의 삶은 다음과 같습니다.  

 

 

*

 

 


조라 닐 허스턴(Zora Neale Hurston) 

 


허스턴은 1891년 앨라배마 주 노타설가에서 태어났고 세 살 때 침례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최초의 흑인 자치 도시인 플로리다의 이튼빌로 갔다. 허스턴은 이튼빌을 자신의 고향처럼 생각했고 이곳이 자신의 출생지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중에 이튼빌의 시장이 되었고 이튼빌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그녀의 작품들에 여러 가지 형태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재혼한 아버지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한 허스턴은 고학으로 하워드대학과 바너드 컬리지를 졸업했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그녀는 인류학자로서 마거릿 미드 같은 유명한 인류학자들과 함께 흑인 민속을 연구하기도 했다. 허스턴은 1927년에 재즈 음악가이자 나중에 의사가 된 허버트 쉰과 결혼하지만 1931년에 헤어졌고, 1939년에 25살 연하의 앨버트 프라이스와 결혼하지만 7개월 만에 헤어졌다.

1925년에 허스턴이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할렘 르네상스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허스턴은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와 월리스 서먼(Wallace Thurman) 같은 작가들과 함께 《파이어!!(Fire!!)》라는 문예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고 카리브해와 미국남부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문화적 관습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1934년에는 소설, 《요나의 박 넝쿨( Jonah ’s Gourd Vine)》을, 1935년에는 민담의 고전으로 간주되는 논픽션 《노새와 사람들(Mules and Men)》을 출간했다. 1937년에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가 출간되었고 1939년에는 《모세, 산의 사람(Man of the Mountain)》이 출간되었지만 이 작품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허스턴의 동시대 흑인 남성 작가들은 허스턴이 작품에 흑인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백인들의 취향에 부합해서 흑인 문화를 희화화했으며 허스턴의 작품에 정치적인 주제가 없다고 비판했다.

당시 랠프 앨리슨(Ralph Ellison) 같은 흑인 작가들은 흑인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노골적인 정치적 용어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룬 《그들의 눈을 신을 보고 있었다》 같은 작품은 이런 투쟁에 적합하지 않았다. 허스턴은 말년에 투병 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살다가 1960년 플로리다의 한 복지원에서 심장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여러 가지 정치적・사회적 이유로 몇십 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던 허스턴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어나게 된 것은 1970~198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여러 대학에 흑인 문화 강좌가 개설되면서 흑인 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학문적 분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메리 헬렌 워싱턴( Mary Helen Washington), 오드르 로드(Audre Lorde), 앨리스 워커 등이 이끄는 흑인 페미니즘이 점차 부상하면서 허스턴을 재발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났다. 앨리스 워커가 《미즈(Ms)》 매거진 1975년 3월호에 쓴 ‘조라 닐허스턴을 찾아서’라는 기사는 허스턴을 재조명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앨리스 워커는 1970년대 초 어느 백인 민속학자가 쓴 에세이를 읽다가 허스턴이 마이애미의 어느 이름 없는 묘지에 묻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곧바로 허스턴의 무덤을 찾아나섰고 이 과정을 글로 써서 발표했다. 이 글에서 워커는 흑인 사회가 허스턴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천재를 내다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1977년에는 로버트 헤멘웨이(Robert Hemenway)가 국가 보조금을 받아 허스턴의 전기를 썼고 1978년에는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가 재발행되었다. 1975년에는 현대언어협회에서 허스턴을 집중적으로 다룬 특별 세미나가 개최되었고 1981년에는 모건주립대학에 조라 닐 허스턴 학회가 설립되었다. 

여러 학문 분야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들과 내용을 담고 있는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는 차츰 미국 흑인 문학과 여성 문학에서 독보적인 작품으로 간주되었고 이제는 문학 의 고전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 작품은 2005년에 《타임》지가 ‘1923년 이후 출판된 100대 영어 소설’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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