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룬드베리는 사랑을 담아 쓰고, 기쁨을 담아 말하는 작가다. 그녀는 격려가 필요한 모든 사람을 위한 글을 썼다.”_《오베라는 남자》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



사랑을 담아 쓰고, 기쁨을 담아 말하는 작가 소피아 룬드베리의 장편소설 도리스의 빨간 수첩이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스웨덴 블로거들의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은 현재까지 28개국에서 번역·출간되었으며, 스칸디나비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빠르게 호평을 얻고 있다. 

《도리스의 빨간 수첩》은 하루하루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는 아흔여섯의 도리스가 평생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그들과 함께 살아갔던 도리스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스웨덴,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여러 나라를 가로지르며 굴곡진 삶을 살아낸 도리스는 자신의 지난날을 찬찬히 기록하며 유일한 가족인 제니에게 기억을 남긴다.

사랑과 열망, 나이 듦과 고독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도리스의 생애는, 독자들이 주변의 노인과 친척,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 움직임을 촉발시키며, 스칸디나비아를 넘어 세계 각국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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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간 속 기억을 모아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다

“너무도 많은 기억. 너무도 많은, 이제는 죽은 사람들. 그들은 어떤 비밀들을 무덤으로 가져갔을까?” (395쪽)

붉은색 가죽 수첩 속 이름들. 이름들 위에 그어진 줄과 사망이라는 글자. 쌓여 있는 틴 박스. 그 안에 담긴 빛바랜 사진과 수많은 편지들. 간병인이 떠나고 아무도 없는 적막한 집에서 도리스는 매일 노트북을 열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고 기억을 모아 글을 쓴다. 흰 장미가 진갈색 나무 벽을 타고 올라가던 어린 시절부터 스웨덴으로 돌아와 오랜 친구였던 예스타를 다시 만나는 순간까지. 움켜잡고 놓을 수 없는 기억들이 너무도 많지만, 도리스가 세상을 뜨는 순간 이 기억들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도리스의 기억은 그가 살아온 삶이다. 도리스는 자신의 삶도, 그리고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의 삶도 모두 사라지게 둘 수 없다. 그래서 도리스는 글을 쓴다. 

도리스가 살아가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외롭고 힘들고 슬픈 사람들이었다. 다양한 사람을 편견 없이 받아들였지만 정작 내면의 우울함은 이겨내지 못했던 세라핀 부인. 살아생전 자신의 예술도, 사랑도 인정받지 못했던 예스타. 사랑을 택함으로써 맞닥뜨려야 했던 가난을 견디지 못한 엘레오노라. 아들에게 지은 잘못을 결국 용서받지 못하고 세상을 뜬 일레인. 가족을 모두 잃은 아픔에 사람과 교류를 끊은 은둔자 폴.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방황하고 결국 마약에 중독되어버린 조카 엘리스까지. 도리스의 마음 한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성소수자, 이민자, 미망인, 약물 중독자 등 모두 소외와 상실, 아픔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도리스는 이들에게 위로를 받거나 위로해주며 그들과 시간을 보냈고 외로운 이들과 함께 공유했던 시간은 도리스의 일부가 되어 그의 삶을 오래도록 지탱하는 영감과 지혜가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나온 소설
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나
저자 소피아 룬드베리 인터뷰




과거의 나를 보듬어주고
오늘의 나를 격려하는 기억들

“도리스는 정상적인 삶을 보여줬다. 정상적인 삶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 친구들의 삶에서 그런 것을 얼핏 보았을 뿐인 아이에게, 정상적인 삶은 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었다.” (370쪽)

소설 한편에는 도리스의 종손녀 제니의 이야기가 있다. 제니는 남편 윌리를 만나면서 모든 일을 그만두고 결혼했고,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세 아이의 엄마이자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제니에게 도리스는, 약물 중독자였던 엄마 엘리스를 대신해 자신을 키워준 매우 소중한 존재다. 그런 도리스가 스웨덴의 한 병원에서 홀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제니는 도리스의 곁을 지키기로 결정하지만 남편 윌리는 도리스의 상태에 무심하고, 제니가 스웨덴으로 가는 것을 오히려 반대한다. 그러나 제니는 가족들의 불평을 뒤로한 채, 두 살 된 딸아이 타이라와 스웨덴으로 향하고 도리스의 아파트에서 낡은 수첩과 종이 더미를 발견한다. 

도리스의 기억을 따라가며, 제니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조우한다. 엄마의 자살 시도 앞에서 방치되었던 날들,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린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도 마주한다. 전업주부이고, 세 번의 출산으로 노화가 시작되었으며, 남편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현재 제니의 자존감은 땅에 떨어져 있다.

도리스의 기억을 담은 글은 제니의 모든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도리스의 글은 상처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위로하고, 제니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도리스는 제니를 조건 없이 사랑해줬고, 또 제니가 과거를 마주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도리스는 제니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노인의 죽음에 무감각한 사람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슬픔

“할머니가 울면 안 되는 건가요? 할머니는 죽어가고 있잖아요. 당연히 우시겠죠. 나라도 그러고 싶을 거예요.” (318쪽)

《도리스의 빨간 수첩》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도리스의 슬픔에 대해 주목한다. 아흔여섯의 도리스는 혼자 먹지도, 걷지도 못하는 상태다. 자신과 알고 지낸 모든 이가 죽고 더 이상 장례식에도 참석할 필요가 없을 때,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못할 때, 온몸에 소변이 묻어도 스스로 씻지 못할 때,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을 때, 죽음은 도리스의 눈앞에 있다. 

죽음을 앞둔 도리스에게, 신부는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어요”라고 나름의 위로를 건넨다. 병원의 복지담당 직원은 요양원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운이 좋은 것이라고 도리스를 설득한다. 간호사들도 도리스의 눈물이 죽음에 대한 슬픔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담당 의사는 도리스가 “오래 살지 못할 거고 더는 수술을 견뎌내지” 못할 거라며 죽음을 확정 짓는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은 너무나 많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그들의 죽음을 자주 접하면서 우리는 노인의 죽음에 대해 점점 더 무감각해진다. 우리는 노인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오래 살다가 죽은 노인에게는 ‘호상을 당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어떤 죽음이 호상일 수 있을까. 노인의 죽음이라고 해서 죽음이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누가 자신의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죽음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 속에서 도리스는 화도 내고, 고집도 부리고, 눈물도 흘린다. 그러나 슬픔은 온전히 도리스만의 감정일 뿐이다. 

노인의 경험과 이야기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다

“혼자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아무도 혼자 죽어서는 안 돼.” (268쪽)

《도리스의 빨간 수첩》은 작가 룬드베리의 고모할머니였던, 실존 인물 도리스에게서 영감을 얻어 쓴 글이다. 룬드베리는 자신을 어릴 적부터 돌봐주었던 도리스가 세상을 떠난 뒤, 그녀의 집을 청소하다가 실제로 선반에서 숨겨진 수첩 하나를 발견한다. 그 수첩에는 도리스가 평생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고, 모든 이름마다 줄이 그어진 채 ‘사망’이라는 글자가 써져 있었다. 룬드베리는 수첩을 발견하고 나서야 자신이 도리스의 삶을 잘 알지 못했다는 것과 도리스를 거의 찾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노년과 외로움에 관해, 노인들의 다양한 경험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잊고 사는지에 관해, 또 우리가 어떻게 노인들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추게 되는지를 오랫동안 생각한 후, 도리스에 관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룬드베리는 이 소설에 여러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담으려 했다. 따라서 어린 시절 모델로 활동했던 자신의 경험을 소설 속에 녹여냈고, 스웨덴의 유명 화가이자 작가의 외종증조부인 예스타 닐슨(Gosta Adrian-Nilsson)의 삶도 그려냈다. 도리스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느꼈던 죄책감을 바탕으로, 오직 노인을 위한 소설을 쓰려 했고 세대 차이에 관한 생각을 담으려 했다. 이로써 노인의 경험과 격려가 우리를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써냈다. 

《도리스의 빨간 수첩》이 출간된 이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은 자신이 가족들과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밝혀왔다. 세계의 독자들은 노인이 된 부모와 친척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모험에 동참하고 있다. 추운 겨울, 바깥세상과 연결되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의 기억만을 친구 삼아 홀로 지내는 노인을 알고 있다면, 오늘 한번 연락을 해보는 건 어떨까. 죽음을 앞둔 도리스의 한마디를 기억하며. “신이여, 이제 내 차례예요. 이제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을 차례예요.”  




책 속의 한 줄


■ 일생 동안 너무도 많은 이름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지. 제니,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니? 오고 가는 그 모든 이름에 대해 말이야. 어떤 이름은 우리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고 눈물을 흘리게 하지. 또 어떤 이름은 사랑하는 이가 되거나 혹은 적이 되고. 나는 이따금 내 수첩을 들춰본단다. 수첩은 내 삶의 지도 같은 것이 되었어. 그래서 나는 네게 그것에 대해 조금 얘기하고 싶어. 너, 날 기억해줄 유일한 사람일 네가 내 삶도 함께 기억해줄 수 있도록. 일종의 유언과 같은 거지. 네게 내 기억들을 줄게. 그 기억들은 내가 가진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다. (15쪽)

■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어. “네가 살아가는 동안 네 하루하루를 밝힐 만큼의 태양이 내리쬐기를, 그 태양에 감사할 만큼의 비가 내리길 바란단다. 그리고 네 영혼이 강해질 만큼의 기쁨이 있기를, 살면서 만나는 작은 행복의 순간들에 감사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 있기를 바란다. 때때로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만남이 있기를 바란다.” (53쪽)

■ 뭔가를 강렬하게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있어. 그들의 눈은 서서히 흐릿해지고, 그들은 일상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더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해. 내가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과거뿐이었어. 나는 더는 내가 그 일부가 될 수 없는 모든 것, 과거의 모든 것을 미화했지. (109쪽)

■ 수첩. 제니는 식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훑어본다. 오래되고 낡은 붉은색 가죽 수첩을 집어 들고 누런 페이지들을 쓰다듬는다. 도리스가 얘기하는 그것이 틀림없다. 제니는 읽기 시작한다. 이름들에 연이어 줄이 쳐져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이름 뒤에 도리스는 사망이라고 적어놓았다. 사망, 사망, 사망. 제니는 손에 불이라도 옮겨 붙은 듯 수첩을 떨어뜨린다. 도리스가 겪고 있을 지독한 외로움을 이런 식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몹시도 고통스럽다. 도리스가 조금 더 가까이 살았더라면. 제니는 도리스가 얼마나 많은 날을 혼자서 보냈을까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혼자서 보냈을까. 친구 하나 없이, 가족도 없이. 그저 한때 곁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만을 품고서. 그 아름다운 기억들. 그 고통스러운 기억들. 그 끔찍한 기억들. 그리고 이제 얼마 안 있어 도리스는 그들 중 하나가 될 것이었다. 죽은 이름들 중 하나. 사망. (289쪽)

■ 우리가 함께 보냈던 그런 순간들, 그것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어. 나는 엄마가 된다는 기쁨을 절대 경험하지 못했단다. 어쩌면 엄마가 되었어도 좋았겠지. 하지만 내겐 네가 있었어. 나는 네 삶의 일부가 되었어. 나는 네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었지. (360쪽)

■ “도리스,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에요.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만날 때 서로 끌리고 하나가 되는 거예요. 사랑은 성별을 따지지 않으며, 사람도 그래야 해요.” (393쪽)




지은이, 옮긴이 소개


지은이 : 소피아 룬드베리(Sofia Lundberg)
기자이자 소설가. 1974년 스웨덴 베스테로스에서 태어나 현재 스톡홀름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전에는 잡지 편집자이자 교육자로 일했다. 그의 첫 소설인 《도리스의 빨간 수첩(Den roda adressboken)》(2017)은 오랫동안 삶을 살아온 노인들에게 애정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 때 발견할 수 있는 놀라움에 주목한 책으로, 스웨덴 블로거들의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전 세계 28개국에서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최근 출간된 두 번째 소설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물음표(Ett fragetecken ar ett halvt hjarta)》(2018)도 23개국에서의 출간이 확정되며 스칸디나비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빠르게 호평을 얻고 있다. 
  
옮긴이 : 이순영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워런 13세와 속삭이는 숲》,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이기는 공식》, 《이반 일리치의 죽음》, 《워런 13세와 모든 것을 보는 눈》, 《나는 더 이상 너의 배신에 눈감지 않기로 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상실 그리고 치유》, 《키친하우스》, 《집으로 가는 먼 길》,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가》, 《고독의 위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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