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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다. 이 신조어에 시대가 휘둘리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한동안 잘 먹고 잘 살기, 즉 물질적 풍요를 통한 유족한 삶의 향유를 뜻하는 말로 이 용어가 쓰여지더니 요즘은 일상의 번잡한 굴레에서 벗어나 느림과 하강, 생태적 삶 실현 등 정신적 가치를 지향하는 생활 양식으로까지 의미 범주가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 변화는 구체적 실천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관념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단계의 실상이라 할 수 있다. 생태적 삶이 얼마나 물질적 결핍과 현실적 불편과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나 스타일로서 그것을 선망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의 이런 경향은 정신적 사치이자 지적 허영이요 몽상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시대의 트랜드를 쫓기에 급급하여 홀로 눈 못 뜨고 부화뇌동하고 있는 이들에게 고요히 권고하고픈 말이 있다. 소로를 따라 월든 호수로 내려가 보라는 것이다. 한줄기 서늘한 바람결에 우리의 몽롱한 의식이 또렷해지듯이 시대의 미망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지혜를 거기서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생태적 삶이, 느림과 하강이 어떤 것인지, 또 그것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것인지, 그렇지만 진정으로 추구하고픈 라이프 스타일인지를 월든 호숫가에서 유유자적하며 소박한 삶을 즐겼던 헨리 데이빗 소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삶은 의식의 외현(外現)이다. 생태적 삶을 실천하려면 우선 마인드가 자연 친화적이 되어야 한다. 월든 호숫가 통나무집에 살았던 소로에게 있어서 생태나 자연은 어떤 대상이었을까?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비(雨) 속에, 또 내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 너무나도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의 감정이었다." 자연과 인간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은혜로운 보살핌과 우정을 교환하는 동료요 일원인 것이다. 인간의 편의에 의해 지배하고 개조하며 착취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런 자연과 친화하고 공존하려는 의식이 없이 생태적 삶을 실천하려면 불편과 고통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내가 더욱 젊었을 때의 여름날 아침, 나는 호수 한가운데로 보트를 저어 가서는 그 안에 길게 누워 공상에 잠기곤 했다. 그리고는 산들바람이 부는 대로 배가 떠가도록 맡겨놓으면 몇 시간이고 후에 배가 기슭에 닿는 바람에 몽상에서 깨어나곤 했는데, 그제서야 나는 일어서서 운명의 여신들이 나를 어떤 물가로 밀어 보냈는지를 알아보았다." 생태적 삶은 인위적인 의지나 목적 지향적인 것이 아니다. 자연에 의탁하여 유유자적 즐길 수 있는 너그럽고 푸근한 심성이 요구될 뿐이다.
또 생태적 삶은 세속적인 욕구, 이를테면 권력이나 금력이나 학력 등으로부터 초연해야 가능하다. 동물적인 권력욕을 지닌 이들에게 소로는 말한다. "우리들을 늘 건강하고 명랑하고 만족스럽게 해줄 묘약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나 당신의 증조부가 빚은 환약이 아니고 바로 우리 모두의 증조모인 자연의 여신이 빚은 우주적이고 식물적이고 또 식물학적인 약인 것이다."
이처럼 자연 친화적이고 유유자적하며 식물성 의식을 지녀야 비로소 생태적 삶의 실천에 기꺼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거칠고 불편하며 번거롭고 위험한 일들이 지극히 다정하고 우정어린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필요한 일임을 깨닫고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연은 냉혹하고 엄정한 것만은 아니다. 자연의 일원으로 더불어 살며 겪게되는 결핍과 빈약과 힘겨움이 느림과 하강,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정신적 열락(悅樂)의 경지로 인도해주는 나침반인 것이다.
그리하여 웰빙은 완전히 실현된다. 의식과 행동이 통합된, 인간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되어 의탁하고 순응하며 부드럽게 어울리는, 정신적 충만과 고요한 행복의 영역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동물적 권력욕과 물신숭배에 빠져 있다가 심리적 완충 내지는 자기 만족을 위해 일시적인 관념으로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실천적 삶이 진정한 웰빙인 것이다. 그러한 삶의 선구적 개척자, 의식과 실천으로 오롯이 그 전범을 보여준 소로와 함께 월든 호숫가에서의 생활을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19세기에 이미 21세기의 삶을 지향했던 소로, 그의 의식과 실천은 웰빙이라는 겉멋이 들어 지적 허영과 몽환에 빠져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렷한 표준을 제시하였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