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 님이 일으킨 파문이 마음결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어쩌면 뼛속까지 저릿하게 울리는 듯 합니다. 그런데 골수에 와 닿는 그 떨림에 왠지 익숙한 냄새가 배어있는 것 같아 처음엔 의아하였는데 곰곰 따져보니 이는 늘 내가 풍기던, 나에게서 퍼져나가던 고약한 악취와 같은 종류의 것임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다음부터는 더욱 헤어날 수 없는 강력한 흡인력의 자장 안으로 빨려들어 속수무책, 그의 빗방울이 이끄는 세계로 흠뻑 젖어들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의 아픔과 그것을 낳은 버거운 세상이 혼자서만 감당해온 눈물이 아니었음을 가슴이 먼저 받아들이고 있음에 아연해졌습니다. 의식보다 먼저 온 몸이 그 자극에 기꺼워하며 함께 젖어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새 꼭 닫아걸고 있었던 나의 <빈집>이 사람의 향기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공지영 님이 던지는 간곡한 위로를 수용하게 되면서 공연히 마음결 추스르기에 급급하였던 지난날의 모습이 억지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세상은 마음 다잡고 결연하게 나아가야만 하는 무자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새삼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그리하여 공지영 님의 빗방울은 외따로이 흘러내려 아무 의미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눈물로 촉촉하게 적시며 다가와 나의 그것과도 한 움큼 큰 물방울로 합쳐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늘 스스로 지어낸 관념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나날이었습니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서문에서 공지영 님이 들려준 고백과 같이 "세상은 따뜻한데 나만 늘 추운 듯 하였고, 유리창에 온 몸을 기대었으나 끝내 안쪽 불빛 있는 곳으로 들어서지 못한 채 어두운 바깥에서 떨고 있는 빗방울" 신세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분노의 언덕과 고독한 계곡을 지나며 부딪치고 멍들어 바다를 푸른빛으로 물들였던" 회한 가득한 생이라고 지레 못박아버렸습니다. 사실이건 관념에 기초한 것이건 간에 이러한 의식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머리로는 부정했지만 안다는 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힘에 휘둘린 듯 눈 못 뜨고 치달렸던 삶과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나를 <빈집>에 유폐시키고 스스로 세상을 향한 창을 닫아버리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지며 지난날을 곱씹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혼자인 나에게 빗방울이 슬몃 다가온 것입니다. 그것도 우아한 자태로 근엄하게 훈계하듯 군림하는 모습이 아닌 때묻고 일그러진, 생채기를 그대로 지닌 나약하고 아픈 인간의 형상으로 넌지시 말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동일시 대상을 찾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우산을 던져 버리고 비를 맞고 있는 나와 같이 젖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손짓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흠뻑 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 상처에 더불어 울먹이다보니 오랜 마법에서 깨어난 듯 내가 디딘 오늘의 땅이 비로소 또렷하게 보이고 아낌없이 보듬어야겠다는 마음이 어느새 일어났습니다. 패배로 여겨 안타깝게 부여잡고 있던 삶이 결코 끝은 아니었음을 밝히 알게도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님을 다시 온몸으로 전율하며 받아들입니다. 함께 상처받으며, 쑥물 들며 흘러가는 생이니 나만 그리 아파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환하게 차 올랐습니다. 하여 공지영 님, 그의 치유의 능력에 기대어 갈피 못 잡고 흩날리던 마음결을 다시 추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의 아픔을 드러내놓고 또 다른 상처를 향하여 먼저 손짓하며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마음까지 생겨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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