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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를 연상케 하는 좌충우돌, 뒤죽박죽, 거두절미, 그러면서 친절한 부연까지 묘하게 어우러지는 7번 국도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젊은 날 우리 삶, 의식의 여정에 관한 기록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지도 위에 긴 선 하나가 바다를 스치듯이 지나가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에 열광하며 무작정 여행에 나서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청춘의 무모함, 대책 없음과 좌절 예견에서부터 시대의 고난과 인간의 품격에까지 가 닿고 있다. 이런 [7번 국도]를 읽으며 뇌리를 스쳤던 몇 가지 단상을 포착해 본다.
1. 내가 주로 소비하는 것
'카페 주인은 지구의 토산품과 외래품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다. 지구의 토산품. 증오, 분노, 비난, 울음, 파괴, 전쟁...... 지구의 외래품. 사랑, 웃음, 농담, 평화, 창조, 우정...... 외계인들이 우호의 선물로 가져온 것 중에는 희망이라는 것도 있었다.'(70쪽)
7번 국도 여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재현과 늘 만났던, 재현의 음반을 맡겨 두었던 "카페 7번 국도"사장님은 7번 국도에서 외계인을 만난 다음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UFO 희망연구회를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지구 토산품과 외래품 목록을 보고 머리가 띵했다 할까. 내가 주로 소비하는 것 리스트가 열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지구 토산품만 소비하는 애국자 쪽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구의 외래품을 기꺼이 자연스럽게 소비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수입 물품은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좀비, 그게 나임을 "카페 7번 국도" 사장님은 일러주고 있었다.
2. 내가 들어 마땅할 욕
재현은 욕설의 대가. 그가 크게 세 번 한 욕이 얼마나 사무쳤는지 주인공은 상황 및 부기까지 써 가며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두 번째 욕은 생각할수록 나를 향한 것이었다.
'제발 설교 좀 하지 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소리 하면 안 되는 거야. 걔가 지금 어떤 처지인지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리야? 세희보다 더 나쁜 건 바로 너야. 세희는 멍청할 뿐이지만, 너는 멍청한데다가 위선적인데다가 비열한데다가 사악하기까지 해. 그런 주제에 잔소리가 다 뭐야! 어른 흉내를 내는 거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며. 울고 있으면 울면 안 된다고, 웃고 있으면 또 웃으면 안 된다고, 누굴 사랑하면 사랑하지 말라고...'(89쪽)
욕이란 불쑥 튀어나오는 법, 그래서 거친 상소리이기 십상인데 이렇게 논리적으로 정곡을 콕콕 찌르는 욕을 할 수 있다니. 욕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나의 내면을 집어내고 있는 듯했다.
3. 작가의 상상력의 경계는 어디쯤?
[7번 국도]에서 7번 국도는 도로명만이 아니다. 작가는 비틀스의 108번째 싱글 "Route 7", 카페 "7번 국도", 포항에서 발생한 수인성 전염병명 "7번 국도균", 앉아서 열반에 든 고송 같이 말라버렸던 5천원짜리 나무 "뒈져버린 7번 국도", 카트에 아기 젖병을 잔뜩 담던 신도시 할인매장의 명물 "7번 국도씨" 및 의미 없는 일만 찾아 나서는 할아버지 우체부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7번 국도" 등 갖가지 인물, 사물과 현상에다 7번 국도를 네이밍하고 있다. 물론 그 하나 하나는 나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명목만이 아닌 실제로서의 7번 국도였다.
4. 미국의 송어낚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는 대중 없는 이야기이다. 앞뒤 맞지 않는 것 같은 얘기 속에 사랑과 삶과 문명에 대해 비판하고 옹호하며 다가오는 책이다. 이 책 [7번 국도]의 구성과 메시지와 어법이 일정 부분 브라우티건의 오마쥬로 읽힌다. 김연수 작가는 숨기지 않고 말미에 마요네즈를 패러디한 짜장면을 실어 브라우티건에게 헌정하고 있다.
하여 [7번 국도]는 짧지만 많은, 깊은 얘기를 담고 있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전언이었다 하겠다. 안타까운 건 미국의 송어낚시가 오염된 강물로 인해 전설이 되었듯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뀐 7번 국도도 이제 신화로 남게 된 일이다. 그 길을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수 있다면 김연수 작가의 [7번 국도]가 더욱 의미 있게 우리 삶으로 다가올 수 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