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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일견 이별과 죽음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듯 보인다. 카밀라가 자신의 친모, 열아홉에 생을 마감한 정지은을 찾아가는 여정 곳곳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이별의 회한에 몸서리치는 이들의 안타까운 눈물이 겹쳐진다. 그러나 행간을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판이하게 다른 얘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별과 죽음, 절망과 회한보다는 오히려 심연의 나락에 떨어져버린 연약한 이들을 구원한 희망의 날개, 곧 사람을 살리는 말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이 희재임을 알게 된 카밀라와 희재를 입양 보낸 후 죽음을 택한 정지은에게 다가왔던 이들이 이어준 희망의 날개는 다름 아닌 당신은 내게 소중한 존재라는, 나도 당신과 같으니 슬픔을 함께 나누자는 말, 결국은 사람을 살리는 말이었다.
1. 유이치의 말 : 카밀라를 일으켜 희재로 거듭나게 하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자의식을 갖게 된 후 카밀라는 늘 왼손잡이였다. 그런 카밀라를 일으킨 것은 레드우드나무 아래에서 만났던 유이치. 그동안 집안의 블랙십(black sheep)이었던 카밀라는 유이치를 통해 그 막막함과 무의미함에서 벗어나게 된다. 유이치가 건넨 말, 사람을 살리는 말 때문이었다. 황인종의 가면을 쓰고 있는 백인 같지 않은 백인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던 카밀라에게 너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달콤한 말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유이치의 말에 카밀라는 그만 촛농처럼 녹아버렸다. 21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과 절망. 고독과 분노가 말끔히 치유되는 느낌을 경험했다. 더구나 유이치는 카밀라에게 생의 의미까지 부여한다. 글쓰기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카밀라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유이치가 꼽아나갔을 때 카밀라의 표정은 어땠을까? 그게 진정 거듭나는 순간 아니었을까.
“첫 번째,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 고독을 즐기지. 그러니까 레드우드의 에너지에 끌려서 거기까지 걸어온 거야. 내면적이고 달이 영향권 안에 있어. 두 번째, 그래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강한 사람들과도 투쟁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아. 세 번째 무엇보다도 네게는 쓸 이야기가 너무나 많아.”(29쪽)
오로지 막막할 뿐이라면 그 막막함에 대해 쓰라고 유이치는 말했다. ... 충고를 듣고 나서도 글쓰기는 어려웠는데, 어느 날 아침 마치 말문이 트인 아이처럼 내 손이 노트 위를 내달렸다. 어느 순간 무의식적인 검열의 문이 활짝 열렸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어떤 감정이나 평가 없이 내 생각들을 글로 쓸 수 있게 됐다.(56쪽)
카밀라가 글을 쓰게 되면서 그동안 무의미하게 여겼던 어머니라는 단어가 의미 있는 말로 실감나게 다가왔다.
“나는 어머니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아이들이 평화라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걸 똑같이 느껴. 전쟁터에는 평화가 없잖아. 그러니까 평화라는 단어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걸 가리키는 단어야. 그 아이들에게는 무의미한 단어지. 내게는 어머니라는 단어가 꼭 그렇거든. 내게는 무의미한 단어일 뿐이야.”(90쪽)
유이치의 말과 권유에 고무되어 삶의 활기를 되찾은 카밀라는 자신의 존재의 근원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진실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서 진남으로 향한다. 치유의 순례길에 오른 것이다.
빈 공간을 채우는 논픽션을 제안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건 운명이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빈 잔은 채워지기를. 노래는 불려지기를. 편지는 전해지기를 갈망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돌아가고자 한다. 진짜 집으로. 진짜 엄마에게로.(34쪽)
엄마를 찾으러 진남에 들른 카밀라는 드디어 진실의 흐릿한 얼개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 진실은 거짓과 가식으로 여러 겹 위장되어 좀처럼 실마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카밀라는 하나하나 엉킨 실타래를 풀며 진실의 고갱이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정지은의 딸, 정희재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유이치에게 알린다. 자신을 일으킨, 사람을 살리는 말을 건넨 유이치에게 말이다.
나는 더 이상 카밀라가 아니야, 유이치. 내 이름은 희재야. 정희재. 문집에서 정지은이 작성한 앙케트에 나오는 이름이야. 그게 아들이든 딸이든 앞으로 태어날 자식에게 붙이고 싶다던 이름이야. 희재. 나는 희재야. 더 이상 카밀라가 아니야.(128쪽)
2. 엄마의 말 : 24년을 가슴에 담아두고 별렀던 고백, 바다 속에서 딸에게 들려주다.
유이치의 갑작스런 고백에 얼이 나간 카밀라, 아니 희재는 유람선이 떠 있는 곳이 엄마가 몸을 던졌던, 그 이전에 엄마가 엄마의 아빠, 오빠와 함께 배를 타고 진남을 바라보던 그 장소임을 깨닫고 엄마의 자장에 이끌리듯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 바다 속에는 24년을 한결같이 희재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있다. 엄마는 가슴에 담아두었던, 꼭 내뱉고 싶던 그 말을 희재에게 들려준다. 희재는 엄마임을 느낌으로 알아챘다. 간곡하게 들려준 그 말도 얼핏 들은 모양이다. 구조대에 의해 끌어올려진 후 의식을 되찾은 희재가 다시 그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려 했으니.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너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지. 그럼에도 네가 영원히 내 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네가 나왔다니. (228쪽)
엄마 지은과 딸 희재는 이제 교감하게 된다. 엄마는 늘 희재를 지켜보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제2부 ‘지은’ 편은 온통 그런 얘기 일색이다. 엄마의 시점에서 희재를 애틋하게 살피고 희재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끊임없이 건네고 있으니.
“이건 우리 엄마 얘기니까요.” 네가 말한다. 이건 우리 엄마 이야기니까요, 라고. 그 말을 내가 듣는다. 맞다. 그건 내 이야기다. 그러니 내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렴. 얘야. 나 보다 일곱 살이나 더 많은 나의 딸아. (170쪽)
늘 자신을 돌보며 따뜻한 말로 일으켜주는 것을 느낀 희재는 더욱 힘을 내어 어머니를 복권시키는 일에 나선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살리려 따뜻한 말을 건넸던 이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3. 이희재의 말 : 엄마를 구원한 희재, 최선을 다해 살아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들다.
카밀라, 아니 희재는 자신의 이름이 미리부터 정해져있었음을 알게 된다. 엄마는 앙케트에서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그게 딸이든 아들이든 이름은 희재로 짓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희재란 이름이 어떻게 엄마의 뇌리에 아로새겨졌을까? 바로 이희재와의 만남, 그에게서 들은 사람을 살리는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빠가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간 것을 알게 된 지은은 아빠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조선소 사장이 기거하는 양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무응답, 그러는 사이 아빠는 결국 죄책감에 몸을 던지고 말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기어이 아빠를 살려내고야 말겠다는 지은의 노력이 울림 없이 사그라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안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아니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는 걸.(287쪽)
그렇게 낙담한 엄마, 정지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가 있다. 바로 사장의 아들 이희재. 그러나 실은 그도 이미 피폐하여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머니의 자살에 이은 아버지 회사의 부도에다 자신과 얼마 차이나지 않는 새엄마의 등장, 그리고 세상의 온갖 부조리한 모습이란 모습은 다 보여주는 듯한 아버지의 행태에 분노하여 그를 쏴죽이고 싶다고 고해성사까지 했던 그였으니. 그런 희재가 지은을 보고 오히려 힘을 낸다. 생의 의욕을 다시금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것은 측은함을 넘은 동질감 때문이었다.
내 심장은 왜 이토록 격렬하게 뛰고 있는가? 나는 자문자답했다. 이 아이의 손이 지금 내 심장에 닿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죽음의 집으로. 이 기쁨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마침내 아버지가 몰락했기 때문에? 그럼 동시에 이 슬픔은 또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역시 아버지가 몰락했기 때문에? 아니, 누군가의 손이 처음으로 내 심장을 잡고 놔주지 않기 때문에 나는 기쁘고도 또 슬픈 것이다. (314쪽)
희재는 지은이 자신과 비슷한 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처한 입장이나 마음결의 울렁거림이 빤히 읽혔던 것이다. 그래서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안심하게 된다. 지은에게서 위안을 얻은 희재는 그런 마음을 고백한다. 먼저 마음을 연 것이다. 원수의 아들이라 냉담하게 대하던 지은도 희재의 그런 진정성을 읽게 되었고.
어때? 고통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너는 잘 알겠지? 우린 그런 점에서 서로 꽤 닮았으니까.(317쪽)
나는 너 만큼이나, 아니, 너보다도 더 아버지를 저주해. 그 점도 우린 닮았어. 그래서 너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거야. 드디어 몰락해버린 이 집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318쪽)
나도 너와 같다는 말, 그러니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자는 말에 엄마의 가슴이 요동친다. 마음속으로 어느새 희재가 들어와 버렸던 것이다. 그 순간 희재란 이름은 구원과 같은 말이 되었다. 그래서 카밀라에게 희재란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이다. 무참한 나락에 빠져 있던 엄마, 심연 깊은 곳에 침잠해 있던 엄마에게 희망의 날개, 구원의 열쇠를 쥐어 준 이가 희재였으니 말이다. 이희재가 그랬듯이 정희재, 카밀라도 정지은에게는 날개였다.
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니? 너 한테는 날개가 있니?... 그런 제게 지은이가 나한테는 날개가 있어. 바로 이 아이야, 라고 말하며 자기 배를 만졌어요. (278쪽)
4. 신혜숙의 말 : 희망의 날개를 꺾는 말, 엄마를 죽음으로 내몰다.
신산한 생의 고비마다 희망의 날개, 사람을 살리는 말에 의지하여 심연을 건너오던 정지은은 결국 말에 의해 침몰한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말이 때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것이다. 오빠의 아이를 밴, 대책 없는 아이로 정지은을 매도한 신혜숙은 지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희재를 강제로 입양 보내버린다. 일말의 희망이었던 아이, 그 여린 날개마저 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지은에게 사람을 살리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 누구도 지은의 심경을 헤아리고 나도 같은 마음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한 소녀가 고독 속에서 죽어갔다. 그건 누구도 그 소녀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며, 이 우주에 최소한 한 명은 너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쪽)
그때 유진이라도 지은에게 다가갔더라면 지은이 다시 힘을 내어 심연을 헤쳐 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유진은 신혜숙 선생님만이 아니라 모두가 공범자라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신혜숙 선생님이 지은이를 죽였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사실은 불편하다는 편견 때문에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지은이를 죽인 거지요. 하지만 진실은 불편하지 않아요. 진실은 아름다워요. (279쪽)
5. 엄마들의 말 : 그 따스한 보살핌에 어린 소녀 앨리스도 마음을 삭이다.
이희재의 엄마는 진남조선소 사장인 아빠의 지배욕, 소유욕의 대상일 뿐이었다. 한 번도 진실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양관에서 고독하게 삶을 이어왔다. 그런 엄마가 몇 번이나 떠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집을 떠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여 이희재는 어느 날 물어보았다. 엄마는 희재의 손을 이끌고 앨리스의 묘비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앨리스에게 따스한 말을, 보살핌의 손길을 베풀기 위해 엄마는 그 감옥과도 같은 집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희재의 말에 위로받았던 정희재의 엄마, 지은도 앨리스가 안쓰럽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안개 낀 날 남몰래 앨리스를 돌봐주며 희망의 날개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 따스한 보살핌에 이국의 차가운 땅에 홀로 남은 어린 소녀 앨리스도 마음을 삭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안개 속에서 앨리스에게 다가가는 엄마의 모습에서 정지은의 얼굴을 읽은 희재는 안심한다. 앨리스도 외롭지 않으리라고. 그리고 자신도 엄마와 정지은의 가호 속에 다시금 심연에서 날개를 달고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이희재는 <바람의 말 아카이브>를 찾아온 정희재에게서 그녀의 엄마 정지은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자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고 정지은도 그냥 의미 없이 사라진 게 아니었구나 하고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결국 사람을 살리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6. 사람을 살리는 말
죽음의 심연에 처한 가운데서도, 희망의 노래는 불리어진다. 그런데 희망의 날개를 전해준, 사람을 살리는 말을 간곡하게 건넨 이들은 결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순전히 인간적인 측은함 혹은 동질감으로 같은 심연에 처한 이들에게 함께 가자 손을 내미는 것이다.
I've heard it in the chilliest land.
And on the strangest sea;
Yet, never, in extremity,
It asked a crumb of me.
가장 차가운 땅에서도,
그리고 가장 낯선 바다에서도 나는 들었네.
그러나 최악의 처지일 때도, 단 한번도,
그 새는 내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지 않았네.
-에밀리 디킨슨의 시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의 일부-
그 새, 희망의 날개. 가장 차가운 땅에서 희재를, 또 지은을 일으킨 것은 너는 소중하다는 말, 나와 닮았다는 말, 너를 생각하며 기다렸다는 그런 말, 결국 사람을 살리는 말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이렇게 죽음과 이별 대신 희망의 날개를 얘기하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말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