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생활의 새로운 경제적 양상

 

 

V. Y. 포스트니코프의 『남부 러시아의 농민 농업』에 대하여

 

 

Ⅰ. (포스트니코프 저작의 의의와 연구 범위 및 방법론)


 

V. Y. 포스트니코프가 2년 전에 출간한 저서 『남부 러시아의 농민 농업』(모스크바, 1891년, XXXII+391쪽)은 타우리다, 헤르손, 예카테리노슬라프 주(州), 그 중에서도 특히 타우리다 주의 북부 군(郡)들의 농민 농업 실태를 매우 구체적이고 철저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일차적이면서도 주되게는 해당 세 개 주의 젬스트보 통계 조사를 토대로 하며, 여기에 저자가 공무 수행 과정 및 1887년부터 1890년 사이에 농민 농업을 연구할 목적으로 진행한 개인적인 관찰 내용이 추가로 포함되어 있다.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젬스트보의 통계 연구를 포괄적으로 묶어 그 결과를 체계적인 형태로 제시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롭다. 젬스트보 통계가 농민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고유 자료를 방대하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권이 대체로 개별 군(郡)을 다루는 형태인 젬스트보 통계 초록들을 낱낱의 표로 해체한 뒤, 이를 단지 명확하고 포괄적인 표제 아래 단순 요약하는 방식은 작업 자체의 번잡함에 그치지 않고 해당 조사 결과를 대중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만드는 한계를 지닌다.

 

물론 젬스트보 통계 자료를 요약하고 분석해야 할 필요성은 오랫동안 제기되어왔다. 최근 『젬스트보 통계 연구의 결과』(이하 『결과』)가 출판된 것도 바로 그러한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애초 출판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농민 농업과 관련된 특정 의제를 설정하여 특별 조사를 실시한 뒤 관련 자료를 취합하고, 이를 러시아 남부 흑토 지대와 북부 비흑토 지대, 또는 전업 농업 지역과 수공업 병행 지역 등으로 분류하여 종합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두 권의 『결과』가 바로 “농민 공동체”에 집중한 V. V.의 저서와 “미분여지의 농민 임차”에 주목한 N. 카리셰프(Karyshev)의 저서이다.

 

이러한 요약 방식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우선 경제적 조건이 상이한 개별 경제 지역의 자료를 단일한 표제 아래 배치하는 것이 올바르다 (젬스트보 조사의 불충분함과 상당수 군(郡)의 누락으로 인해 각 지역의 성격을 독자적으로 규정하기는 극히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난점은 이미 『결과』 2권에서 명백히 드러났으며, 젬스트보 통계 자료를 지역별로 명확히 분류하여 배치하려던 카리셰프의 시도가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것이 이를 증명한다).

 

나아가 농민 농업의 여타 요소를 배제한 채 단일한 측면만을 분리하여 고찰하는 것은 사실상 한계가 있으며, 특정 쟁점을 인위적으로 부각하려는 시도는 도리어 분석의 전체적인 일관성을 저해한다. 일례로 미분여지의 농민 임차는 분여지 임차와 분리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농민의 경제적 계급별 분류 및 작물 재배 면적에 관한 포괄적인 통계 자료와와도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비록 미분여지 임차는 형식적으로 농민 농업의 일부로 간주되나, 실질적으로는 지주 체제 아래서 개인 지주 농업의 특수한 운영 방식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특정 지역의 동질적인 경제적 상황을 체현하는 젬스트보 자료를 선별하여 요약하는 방식이 보다 타당한 접근으로 판단된다. 나아가 젬스트보 통계 조사를 요약하는 올바른 방법적 견해를 규명하기 위해, 『결과』의 문헌들을 포스트니코프의 저작과 비교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포스트니코프에게는 실상 자료를 요약하려는 목적 자체가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 수밖에 없다. 그는 관련 수치들을 배경으로 제쳐둔 채, 오직 완벽하고 명확한 서술에만 온통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구 과정에서 경제적·행정적·법률적 측면 (토지 보유권의 형태)와 기술적 측면(경계선 배치, 농업 체계, 수확)에 고루 주목하였으나, 본질적으로는 경제적 사안들을 전면에 내세우고자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포스트니코프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처음에 구상했던 것보다 농민 농업의 기술적 측면에는 관심을 덜 기울였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농민 농업에 있어서는 경제적 조건들이 기술적 요인보다 훨씬 더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판단하였기에 이러한 방식을 취하였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경제적 측면이 대체로 간과되고 있으며, 농지와 경계선 문제가 농민 농업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근본적인 경제적 사안들을 조사하는 데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 책이 주안점을 두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이러한 문제들, 특히 농지 문제를 명확히 해명하는 작업에 있다.” (서문, IX쪽)

 

경제적 문제와 기술적 문제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전적으로 수용하며, 이 글에서는 포스트니코프의 연구 가운데 정치경제적 분석 대상으로서의 농민 농업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연구의 주안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최근 농민 농업에서 뚜렷해진 기계 사용의 상당한 확대와 부유한 농민층의 농장 규모가 현저히 증가하는 현상은 우리 농업 생활에 새로운 국면을 조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양상이 올해의 심각한 경제 상황으로부터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농민 노동의 생산성과 농가의 작업 능력은 농장 규모의 확대 및 기계 사용의 증가와 더불어 상당 부분 향상될 것임에도, 개별 농가의 경작 가용 면적을 계산할 때 여태껏 이러한 요인들은 간과되어왔다.”

 

“농민 농업에서 기계의 사용은 농민 생활에 상당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이는 농업 노동력 수요를 감소시킴에 따라, 현재도 상존하는 농업 인구의 과잉 문제를 훨씬 더 시급한 과제로 만든다. 토지를 전혀 소유하지 못한 채 농촌의 잉여 인력으로 전락하여 어쩔 수 없이 외부로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농가 수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농민 농업에 거대 기계가 도입되면서 농민의 생활 수준은 이제껏 예견하지 못했던 수준으로까지 향상되고 있다. 농민 생활에 나타난 새로운 경제적 양상들의 동력이 보장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부 러시아의 농민들 사이에서 발현된 이러한 경제적 양상들에 대한 주목하고 그에 대해 해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서문, X쪽)

 

저자의 관점에서 이러한 새로운 경제적 양상들이 지니는 의미를 규명하기에 앞서, 두 가지 유보 조항을 전제하고자 한다.

 

첫째, 포스트니코프가 헤르손, 예카테리노슬라프, 타우리다 주에 통계 자료를 다루고 있음은 이미 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저자는 타우리다 주에 대해서만 매우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할 뿐 나머지 지역은 상세히 다루지 않으며, 경제 상황이 다소 상이한 크림 반도 역시 분석 대상에서 제외한 채 타우리다 주 북부 본토에 위치한 베르단스크, 메리토폴, 드네프르 3개 군으로 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의 논의 역시 이들 3개 군의 자료로 국한하고자 한다.

 

 

둘째, 타우리다 주에는 러시아인 외에도 독일인과 불가리아인이 거주하고 있으나, 그 수는 러시아인 인구에 비해 매우 적다. 드네프르 군의 경우 전체 19,586가구 중 독일 이민자는 113가구로 0.6%에 불과하며, 메리토폴 군 역시 전체 34,978가구 중 독일인과 불가리아인 가구는 2,159가구 (독일인 1,874, 불가리아인 285가구)로 6.1%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베르단스크 군 또한 전체 28,794가구 중 이민자 가구는 25%인 7,224가구에 머무른다. 이들 3개 군을 합산하면 이민자 가구는 전체 83,358가구의 약 9분의 1에 해당하는 9,496가구다. 따라서 이민자 비중은 전반적으로 매우 낮으며, 특히 드네프르 군에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민자들의 농업을 러시아인들의 농업과 분리하여 언제나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본 연구는 이 부분을 전면 생략함에 따라 논의의 범위를 러시아 농민들의 농업으로만 국한하고자 한다. 통계에 제시된 수치들이 실제로는 러시아인과 독일인을 합산한 결과라는 점은 사실이나, 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하여 이들의 포함 여부가 전체적인 분석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다. 따라서 제시된 자료를 근거로 러시아 농민 농업의 실태를 규명하는 데는 통계적 지장이 없다.

 

지난 30년 사이 타우리다 주에 정착한 이민자들은 자산 규모가 매우 부유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러시아의 타 지역 농민들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이들 지역 내 공동체의 토지 보유권 역시 저자의 표현대로 “전형적이고 안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요컨대, 분석 대상에서 이민자들을 제외하더라도 타우리다 주의 농민 농업은 러시아 농민 농업의 일반적인 유형과 일관된 성격을 보이므로 본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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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농민 생활의 새로운 경제적 양상』은 1893년 봄 사마라에서 집필되었으며, 당시 러시아 내 젊은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널리 회람되었다. 레닌은 모스크바에서 자유주의 잡지 〈러시아 사상〉에 이 원고를 기고하였으나 편집진으로부터 게재를 거부당했다. 당시 해당 잡지는 자유주의자 V. V. 보론초프의 글에서 포스트니코프의 연구를 대대적으로 비판했다. 레닌은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의 모호한 논구에 대응하고자 본고를 집필하였다. 이후 레닌은 1896년부터 1899년까지 집필하여 1899년 3월에 출판한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 Ⅱ장에서, 이 글에서 다루었던 핵심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였다.

 

Ⅰ. 포스트니코프 저작의 의의와 연구 범위 및 방법론

 

레닌, 『농민 생활의 새로운 경제적 양상』에서 연구의 의의와 대상은 포스트니코프의 저작을 중심으로 다뤄진다. 이는 당시 타우리다 주를 중심으로 한 남부 러시아 농민 농업의 실태를 젬스트보 통계와 저자의 직접적인 조사로 구체적으로 규명한다. 특히 기술적 측면보다 농지 문제와 같은 경제적 사안들을 분석의 핵심으로 설정하였다. 레닌의 연구에서 방법론적 고찰로는, 레닌은 젬스트보 통계를 단순히 요약하는 방식은 분석의 일관성을 저해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며, 개별 경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고 정치경제적 분석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요약 중심 연구들과 차별화된 접근이다.

 

레닌은 분석 범위를 본 연구에서 포스트니코프의 저작 중 논의를 베르단스크, 메리토폴, 드네프르 3개 군으로 한정했다. 또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이민자들을 제외하였으며, 러시아 농민 농업의 일반적인 유형을 규명하는 데 주력한다. 이는 새로운 경제적 국면에서 기계 사용의 확대와 농장 규모의 증가가 가져온 농민 생활의 변화는 남부 러시아 농업의 ‘새로운 경제적 양상’이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농민의 생활 수준 향상과 농업 인구 과잉 문제를 동시에 야기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해명을 연구의 목적으로 삼는다.

 

Ⅱ. 농민층의 경제적 분화

 

포스트니코프, 『남부 러시아의 농민 농업』에 나타난 농민층의 경제적 분화와 그 구조적 의미를 정리하면 ‘농민 농업의 평균적인 수치는 농민의 경제 생활을 결정하는 일반적 조건을 일부 보여줄 뿐, 실제 존재하는 다층적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 포스트니코프는 농민층을 동질적인 실체로 간주하는 통념을 비판하며, 마을 공동체 내에서 경제적 번영 수준에 따른 인구 분화가 심화되어 왔음’을 강조한다.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은 가구의 경제적 위상을 규명하기 위해 경작 면적 (데샤티나)을 핵심 지표로 재분류했다. 이는 타우리다 (스텝) 지대의 농업이 곡물 경작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가구의 실질적 부유함을 드러내는 기준이다. 조사 대상 세 개 군의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상층 농민이 전체 경작지의 50%를 점유하고 있었다. 상층 농민은 보유 분여지에 더해 대규모 토지를 추가로 매입하거나 임차하여 농장 경영을 확장하는 반면, 빈농층은 생산 수단인 가축과 농기구의 결핍으로 인해 자신의 분여지조차 경작하지 못하고 임대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는 불균등한 토지 보유와 활용이다.

 

임차 토지의 규모와 임차료는 임차인의 경제적 부유함에 비례한다. 상층 농민의 토지 임차는 이윤 극대화를 위한 상업적 사업인 반면, 하층 농민의 임차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궁여지책이다. 이는 시장 경제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 자본이 집중된 곳에 토지가 결부되는 구조를 실증한다. 농용 가축과 농기구 보유량에서도 집단 간 심각한 격차가 나타난다. 최상위 집단은 농업 경영을 위해 고용 노동을 동원할 만큼 생산 수단을 과잉 보유하고 있으나, 하위 집단은 기초적인 농기구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수치적 불균등은 농민층 내부의 경제적 분화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Ⅲ. 농업 생산 체계의 구조적 변화와 경제적 분화

 

농가 자산 및 규모에 따라 상이한 영농 방식을 취하며, 대규모 농장은 기계 도입과 경작 면적 확대로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반면, 영세한 소규모 농장은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고비용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임대 및 외부 노동 의존도가 높다.

 

타우리다 지역 통계는 상위 집단으로 갈수록 고용 노동의 의존도가 급증함을 보여준다. 가족 구성원만으로는 농장 운영이 불능한 대규모 농장은 고용 노동을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반면, 최하위 집단은 생계를 위해 가족 노동력을 시장에 판매해야 하는 구조적 격차를 보인다. 생산 비용 중 인건비와 가축 유지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경작 면적이 확대될수록 단위 면적당 이러한 유지 비용은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된다. 그러나 10데샤티나 미만의 영세 농가는 생산 수단을 자가 보유하지 못하고 임차에 의존함에 따라 비용 절감이 불능한 열약한 경영 조건에 놓인다.

 

농가 수입의 경우 상업적 곡물 생산이 영위되는 상업 구역의 규모와 직결된다. 시장 경제 체제 하에서 규모의 확장은 실질 현금 수입의 증대로 이어지며, 이는 농가 간의 경제적 분화를 심화시키는 동인이 된다. 포스트니코프는 농장 규모 확대에 따른 단위 면적당 생산 수단 (노동력, 가축, 농기구) 투입량의 감소를 러시아 전역에서 확인되는 보편적 법칙으로 정립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농민층의 계급 분화 현상을 실증함을 레닌은 지적한다.

 

본 장에서는 포스트니코프의 통계에서 대규모 농업 경영이 지닌 생산 경쟁력과 그에 따른 소농의 노동력 판매 강제라는 경제적 기제를 규명하였다. 이러한 분석은 농민 경제가 단순한 자연 경제가 아닌 상품 경제 체제 하에서 어떻게 계급적으로 재편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Ⅳ. 포스트니코프 분석의 구조적 한계

 

포스트니코프는 농가별 경제 상태의 ‘엄청난 다양성’을 입증하며, 이는 단순히 재산 상태와 경작 면적의 차이가 아니라 농업 경영의 성격 전반에 걸친 분화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다양성’이나 ‘차이’라는 범주로 정의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가축 보유량과 같은 단순한 양적 격차는 경제적 ‘차이’라는 범주에 머물지만, 생계 유지만이 아니라 이윤 극대화를 위해 수십 데샤티나의 토지를 임차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는 타인의 토지 접근 기회를 박탈하는 구조적 배제이며,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갈등’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로 규정되는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가축 보유량으로 확인되는 경영 규모의 격차는 생산 목적이 생계에서 이윤 추구로 전환될 때 본질을 달리한다.

 

자급적 임차에서 대규모 임차로의 변화는 타인의 경작 기회를 박탈하는 구조적 배제를 초래한다. 따라서 레닌은 포스트니코프가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이면에 내재된 착취적 함의를 온전히 포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농민층 내 심화된 경제적 대립은 단순한 재산 보유량에 따른 계급 분화를 상회한다. 현실의 경제적 격차는 생산 관계의 본질적 변화를 내포한다. 농민층 내 격차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도식적 분류를 탈피해야 한다. 일부 농민층이 상업적 이윤으로 막대한 수입을 확보하는 반면, 다른 일각에서는 농업만으로 생계 유지가 난망한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 상위 계급이 하위 계급의 몰락을 토대로 경영을 고도화하고, 부유한 농민이 노동력을 고용하는 과정에서 빈농이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하는 상황은 명백한 질적 차이를 드러낸다. 따라서 농민층 분류의 핵심은 단순한 기술적 변수가 아닌, 경제 질서에서 파생된 생산 관계의 본질적 특성을 규명하는 것에 둔다.

 

포스트니코프는 농민층 내 실질적인 경제적 격차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가 ‘주민을 집단별로 범주화하여 구분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시도한 바 있으나, 이러한 분류 작업은 농민층의 질적 편차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해 논리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포스트니코프는 ‘농민층을 경제 집단별로 범주화하고자, 비록 지역마다 일관된 경제적 함의를 지니지는 않으나 농민의 자의식 및 젬스트보 통계학자의 조사 결과와 부합하는 기준을 채택한다. 그는 농민이 소유한 농사용 가축의 규모에 따라 결정되는 농장 운영 자립도를 농민층 구분의 핵심 지표로 상정한다.’

 

‘현재 남부 러시아의 농민층은 경제 자립도와 영농 방식을 기준으로 크게 세 집단으로 범주화할 수 있다. 완전한 영농 체계를 갖춘 농가로, 쟁기를 비롯한 농기구 구동에 필요한 가축을 충분히 보유하여 타 농민과 협업하거나 고용하지 않고 자가 자산만으로 경작이 독립적인 집단이다. 성인 노동자 두세 명과 시간제 노동자 한 명을 기본 인력으로 운용한다. 자체 보유 가축만으로는 독자적인 경작이 어려워 인접 농가와의 협업이 필수적인 요커 (yoker) 계급이다. 한두 쌍의 가축을 확보하여 한 두명의 성인 노동력을 운용할 수 있으나, 세 쌍 이상의 가축 동력이 요구되는 견고한 토양 경작 시 상호 협조 체계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적 특성을 지닌다. 가축을 전혀 보유하지 못하거나 단 한 마리만을 소유한 영세 농가, 이른바 ‘뚜벅이’ 계급이다. 이들은 독립적인 영농이 제한되어 타 농가로부터 가축을 임차해 경작하거나, 소유지를 임대하고 수확물 일부를 분배받는 형태의 종속적 생산 구조에 의존한다. 농사용 가축 보유 규모와 그 운용 방식은 농민의 경제적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이며, 이는 농민 스스로가 자신의 위상을 파악하는 기초적인 준거로 활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에 따른 계급 구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각 집단 내부 및 집단 간의 접점에서 다양한 변주와 변형된 형태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레닌의 지적대로 이러한 포스트니코프의 분류 방식은 각 집단 내부의 뚜렷한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또한, 그의 분류 체계는 젬스트보 통계가 가축 보유 수가 아닌 경작 면적을 기준으로 주민을 분류한다는 점으로 인해 통계적 한계를 드러낸다. 포스트니코프는 주민들을 경작 면적에 따라 세 집단으로 구분한다.

 

1). 가난한 집단: 10데샤티나 미만의 소규모 경작자나 무토지 농가

 

2). 중간층 집단: 10-25데샤티나

 

3). 잘사는 집단: 25데샤티나 이상

 

빈농 계급의 농업적 몰락 정도는 농장 운영 실태에 관한 저자의 분석 부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10데샤티나 미만을 경작하는 영세 농장의 경우, ‘농장 조건의 불확실성이 극심하여 기존의 표준적 체계로는 설명이 곤란한다’고 단언한다. 최하위 농민 집단의 농업적 특징은 그 규모의 방대함에도 여전히 불완전하게 분석되고 있따. 이들의 잠재적 역량은 배재된 채, 농장의 쇠퇴와 경작지의 부족이라는 구조적 취약성만이 일방적으로 부각된다.

 

바크무트 군의 통계는 ‘종자 파종의 정형성 결여를 근거로 이들을 영세 소농으로 규정하며, 독립적인 경작자로서의 경제적 주체성을 부정한다’. 이들 생존의 핵심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데 있다. 포스트니코프 또한 ‘경작 면적 5데샤티나 미만의 집단은 상업적 영농이 무력하므로, 오직 농장 노동을 포함한 외부 수입에 의존해야만 생존이 영위되는 구조임을 지적한다.’

 

따라서 포스트니코프가 제시한 예산 자료의 불충분함은 분석의 한계를 드러내는 핵심 요인이다. 그가 인용한 자료는 특정 소수 농민에 국한되며 일반적인 농민층을 대변하기 어렵다.

 

중간 집단의 경제적 실태와 관련해서는 포스트니코프의 기준에 근거할 때 이들 집단의 자가 생산량은 단순 생계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모에 불과하다. 실제 농업 운영 체계를 면밀히 분석하면 상당한 수준의 불안정성이 내재된다.

 

상위 집단인 부유 농민층은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며, 가구당 25데샤티나 이상의 경작지를 보유하고 있다. 포스트니코프는 대규모 경작자의 번영을 제시했으나, 그 번영이 다른 집단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되는지에 대한 분석은 결여되어 있다. 실제 이 소수 부유층이 전체 농산물 생산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다. 상위 집단은 생산 활동의 과실을 독점하고 있으며, 임금 노동력에 상당한 수준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화폐 수입의 상당 부분은 정치 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 소득으로 귀속된다.

 

이러한 남부 러시아 농민 농업에 관한 포스트니코프의 저서 자료를 체계화하여 세 주민 지단이 경제적 상황에서 보이는 정치경제학적 격차를 살펴보았다. 농민을 집단별로 구분하지 않는 연구는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포스트니코프 스스로가 농민을 명확한 집단으로 체계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의 한계가 존재하나, 레닌의 지적대로 농가 간 양적·질적 격차를 고려할 때 농업의 사회적·경제적 성격에 따른 집단 분류는 필수적이다.

 

Ⅴ. 농민층 분화의 구조적 원인과 경제적 이해관계

 

포스트니코프는 농민층 내 경제적 대립이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급격히 심화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그는 농민 집단 간 생활 수준의 격차가 최근 20~30년 사이 현저히 증대되었음을 지적하며, 1891년의 경제적 여건이 이러한 분화와 이해관계의 충돌을 가속화했다고 분석한다.

 

포스트니코프는 타우리다 주의 사례에서 토지가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분배가 공평함에도, 인구의 15%가 가축을 보유하지 못학고 약 3분의 1이 필수 농기구를 갖추지 못한 실태를 제시한다. 그는 이러한 광범위한 격차와 영농 불능 농가의 높은 비율이 단순한 개인적 요인인 ‘게으름’, ‘알코올 의존’, ‘사별’ 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이러한 농민층 분화의 근본 원인은 분여지의 해체, 가용 토지의 제한, 그리고 농장 규모의 평균적 감소에 있다. 농민이 보유한 토지와 농장 운영 규모가 지나치게 작아 가족 내 노동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빈곤을 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17-18데샤티나의 자립 규모에 미치지 못하는 절대다수의 농민은 자원을 비생산적으로 운용하며 토지를 생산적으로 경작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에 직면해 있다.

 

인구 과잉이라는 현상만으로는 농민층의 이질적 분화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토지 소유를 둘러싼 투쟁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토지 부족 상황에서 특정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제적 이해관계의 필연적 충돌이다. 결국 산업 기반의 결여와 영세한 농장 규모는 경제적 취약층을 농업으로부터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농장 운영에는 이윤 창출과 지속을 위한 명확한 최저 한계선이 존재한다. 농장 규모가 식량 및 시장 구역의 소득을 보장하는 최저 기준 이하로 하락할 때, 농민은 농업을 포기하고 노동자로 전환하는 것이 생계 유지에 경제적으로 타당한 결정이 된다. 시장이 사회적 생산의 운영 기관으로 작동하는 체계 내에서, 곡물 수요 이상의 경작으로 이윤 창출과 생존을 위한 노동력 판매라는 상반된 현상이 농민층 분화를 규정한다.

 

포스트니코프는 농지 문제 해결 방안의 윤곽을 제시하지만, 이는 그의 연구 중 논리적 완결성이 가장 취약한 지점이다. 경제 과정에 대한 모순적이거나 불완전한 주장이 존재하는 이상, 근본적인 해명 없이는 실질적인 해결책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요약


자유주의 경제 통계의 실증적 한계

 

농민층 경제 분화 현상에서 '자유주의자'가 제시하는 경제 통계는 그 근거에 비해 논고의 실증적 조사가 불분명하다는 한계를 지닌다. 수치적 근거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조사 바탕이 명확하지 않아, 이들이 제기하는 주장의 신뢰성과 논리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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刀明殺生: 칼의 목숨에는 생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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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진 (國運盡): 국가의 명이 다하다.

 

천문의 운행은 지금도 회전한다. 대지에 선 인간은 기계의 부품처럼 만사가 아무런 미동이 없다 여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전부 누리려 한다. 아무리 ‘백성이 주인이라’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그 말조차 자신이 가진 지배력을 위함이 될 수 있음은 세상살이가 불합리한 일의 연속이고,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시련과도 같다. 여기에 엎친 데 덮쳐 가치관의 충돌로 인한 인간 간 마찰도 피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국가가 탄생한 이후로 인간은 자신들의 공고한 지배 체제가 없으면 천문의 운행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여겨온 것도, 지난날의 과오로 인해 국가는 이제 낡은 체제의 산물이 되는 요즘이다.

 

글만으로는 사람의 속내를 도저히 알 수 없다. 모두가 ‘세상의 주인’이라 말할 때 뒤에서는 업신 여기는 심보가 서로를 기만하게 만들었다. 노동자의 본래 모습도 처음에는 민중이었다. 이들은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탄생한 존재들이 아니다. 본래 모습 그대로 자신으로 살고자 전쟁과 병마를 치르고 생사를 오가며 치열하게 사투를 벌인 이들이다. ‘붉은 별이 없었다면 조선의 명운은 벌써 다했을 것’이라는 중요한 말처럼, 정작 민심의 일부라 자처하는 이들조차 나중에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고 거역하고 만다. 자신이 주인이라 말하면서도 어느 청년의 굶주림을 외면하는 이들과는 달리, 십시일반의 나눔 덕분에 이 청년은 자신의 굶주림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누군가를 섬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전근대의 역사는 국가를 지탱하기 위해 존재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금도 국가가 천문의 운행이라 자부하는 자들도, 가슴에 손을 얹고 참말로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단순히 재물이 많고 지배력을 소유한 자인가. 또는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끊임없이 과시하며 겸비한 이들인가. 아니면 세상에 태어나 평생을 하대된 자신과 같이 소외된 비천한 자들에게 끝까지 헌신하는 이들인가. 힘찬 북소리처럼 노예의 쇠사슬에 얽힌 전 세계의 국민들은 이 질문에 항변하여 일어나 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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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 23일 - 1920년 8월 6일 제2차 코민테른 대회


'모스크바 파견' 박진순, 박애, 이한영 등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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