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자본주의의 기생성과 부패

 

이제 제국주의의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측면을 살펴볼 터데, 이것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논의들에서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마르크스주의자 힐퍼딩의 결점 가운데 하나가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홉슨보다 한 걸음 뒤쳐졌다는 것이다. 그 측면은 바로 제국주의의 특성인 기생성이다.

 

우리가 앞에서 본 것처럼 제국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경제적 토대는 독점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인즉, 다시 말해 자본주의로부터 자라나와 자본주의의 일반적 환경인 상품생산과 경쟁 속에 존재하며, 이 일반적인 환경과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모순관계에 있는 독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다른 모든 독점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정체되고 부패하는 경향을 낳는다. 가령 잠시 동안이라도 독점가격이 설정되면 기술의 진보를 비롯해 모든 진보, 발전 운동을 자극하는 동기들은 어느 정도 사라지며, 더 나아가서는 기술의 진보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킬 수도 있는 경제적 가능성까지 나타난다. 그런 예로, 미국에서 오웬스(Owens)¹⁹²라는 사람이 병 제조 기계를 발명했던 사건을 들 수 있다. 그 기계는 병 생산에 혁명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으나, 독일의 병 제조업체 카르텔은 오웬스의 특허를 사서 묵히며, 그 기계가 상용화되는 것을 막았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독점이 경쟁을 세계 시장에서 완전히, 아주 오랫동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덧붙여 말하자면 초제국주의 이론이 엉터리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개선의 도입을 통해 생산비를 낮추고 이윤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변화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독점의 고유한 특성인 정체되고 부패하는 경향은 계속 작용하며, 개별 산업분야나 개별 국가들에서 일정 시기 동안 우위를 점한다.

 

특히 광대하고 풍요롭거나, 입지가 좋은 식민지들에 대한 독점적인 보유도 이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제국주의란 몇몇 나라들에 화폐자본이 대량으로 축적되는 것이고, 그 금액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유가증권으로 천억~1,500억에 달한다. 그 결과 금리생활자, 즉, '이자놀이'로 생활하는 사람들, 어떠한 기업에도 전혀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 빈둥대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계급,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계층이 이례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제국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경제적 기초 중 하나인 자본수출은 금리생활자층의 생산으로부터의 이 완전한 단절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몇몇 해외 나라들과 식민지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의해서 생활하는 나라 전체에 기생성이라는 각인을 새긴다.

 

홉슨은 이렇게 썼다. "1893년에 영국이 해외에 투자한 자본은 영국 본토의 전체 부의 약 15퍼센트에 해당한다."¹⁹³ 1915년에 이르러 이 자본이 약 두 배 반으로 증대했다는 것을 상기하라. 홉슨은 다시 말하고 있다. "납세자에게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하는 반면, 제조업자와 무역업자에게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가치를 주는 침략적 제국주의는 …… 자기 자본을 투자할 곳을 찾는 자본가들(영어로 이 개념은 인베스터, 즉 투자가, 금리생활자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다)에게는 커다란 이익의 원천이 된다. …… 영국이 외국 및 식민지 전체와의 교역 곧 수출입 무역으로부터 얻는 연간 수수료 소득은 기펜(Giffen) 경¹⁹⁴에 의하면 1899년의 경우에 총 무역 거래액 8억 파운드의 2.5퍼센트인 1,800만 파운드(약 1억 7천만 루블)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금액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국의 침략적 제국주의를 설명해줄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9천만에서 1억 파운드의 소득, '투자된'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 금리소득자의 소득이다.

 

세계 최고의 '상업' 국가에서 금리생활자의 소득이 외국무역에서 얻는 소득의 다섯 배에 이른다! 여기에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적 기생성의 본질이 있다.

 

그래서 금리생활자국가(Rentnerstaat) 또는 고리대국가라는 개념이 제국주의에 대한 경제학 문헌들에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세계는 한 줌밖에 안 되는 고리대국가들과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채무자 국가들로 나뉘었다. 슐체-게베르니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해외투자에서 우선순위는 정치적으로 종속되어 있거나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들에 주어진다. 영국은 이집트, 일본, 중국, 남아메리카에 돈을 빌려준다. 그 나라 함대는 여기서 비상 시 집달리 역할을 한다. 정치적 힘은 채무자의 반란에서 영국을 보호한다."¹⁹⁵ 자르토리우스 폰 발터스하우젠(Sartorius von Waltershausen)¹⁹⁶은 『해외투자의 국민경제 체계 Das Volkswirtschaftliche System』라는 저작에서 네덜란드를 "금리생활 국가"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지금은 영국과 프랑스도 그렇게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¹⁹⁷ 실더는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위스 등 다섯 개 공업 국가들은 "명확한 채권국"이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를 여기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단지 이 나라가 "공업적으로 덜 발전"¹⁹⁸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메리카대륙에 대해서만 채권국이다.

 

슐체-게베르니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영국은 점차 공업국에서 채권국으로 바뀌고 있다. 공업 생산 및 공산품 수출의 절대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 전체에서 이자, 배당금, 증권발행, 중개수수료, 투기에서 나오는 소득이 차지하는 상대적인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제국주의적 호황의 경제적 토대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유착관계는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¹⁹⁹

 

독일에 대해서는 베를린의 잡지 《디 방크》의 발행인인 A. 란스부르크가 1911년 『금리생활국가 독일Germany-a Rentier State』란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독일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에게 나타나는 금리생활자화 경향을 곧잘 비웃지만, 이때 잊고 있는 것은 중간계급에 관한 한 독일의 상황도 프랑스와 같 수록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²⁰⁰

 

금리생활자 국가는 부패하고 있는 기생적인 자본주의 국가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일반적으로 그 나라의 전체 사회·정치 정세에, 또 특히 노동운동 내의 두 가지 기본 경향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가능한 한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서 증인으로 누구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홉슨에게 말하도록 해 보자. 이는 홉슨이 '마르크스주의 정통'을 선호한다는 혐의를 누구에게도 받지 않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영국인이라 식민지와 금융자본, 제국주의에 대한 경험이 가장 풍부한 이 나라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홉슨은 보어 전쟁의 생생한 인상을 기초로 하여 제국주의와 '금융업자'의 이해의 유착, 청부와 납입 등으로부터의 그들의 이윤의 증대를 서술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처럼 명백한 기생적 정책을 지휘하고 있는 자들은 자본가들이지만, 한편에서는 그와 똑같은 동기가 특수한 노동자 층에서도 작용되고 있다. 여러 도시들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산업은 정부의 고용이나 하청에 의존하고 있다. 금속공업이나 조선공업의 중심지에서 제국주의가 추진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사실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저서의 견해에 따르면, 다음의 두 가지 상황이 오래된 제국의 힘을 약화시켰다. (1) "경제적인 기생성"과 (2) 종속민족들로 이루어진 군대 편성이다. "첫째로 경제적 기생의 습관이 있는데, 지배 국가는 이것에 의해 자국의 지배계급을 부유하게 만드는 한편, 하층계급을 매수하여 순종시키기 위해서 그 영토, 식민지 및 속령을 이용해왔다." 내가 여기에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그런 매수가 경제적으로 가능하려면 높은 독점이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상황에 대해서 홉슨은 이렇게 쓰고 있다. "제국주의의 맹목성을 나타내는 가장 이상한 징후 중의 하나는 영국, 프랑스, 그리고 기타 제국주의 국가들이 거리낌 없는 무관심 속에서 이 같은 위험한 의존 정책에 착수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영국이 가장 앞서가고 있다. 우리가 인도제국을 얻기 위해 써왔던 대부분의 전투는 원주민들에 의해 치러진 것이다. 인도의 경우 대규모의 상비군은 호남의 이집트에서처럼 영국인 지휘관들의 지휘 아래 있었다. 우리가 아프리카 영토와 관련하여 벌였던 전투는 그 남부 지방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우리를 위해 원주민들이 치러낸 것이다."

 

중국 분할의 전망은 홉슨에게 다음과 같은 경제적 평가를 내리게 한다. "그때²⁰¹에는 서유럽의 보다 많은 부분이, 남부잉글랜드의 시골 지역, 리비에라,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관광 지역이나 저택 지역이 이미 보인 바 있는 외양이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즉 극동으로부터 배당금이나 연금을 빼내오는 부유한 귀족의 소집단과, 이보다는 약간 큰 집단으로서 그에 따르는 전문직의 종자와 상인, 그리고 운송업 및 보다 소모되기 쉬운 상품생산의 최종 단계에 종사하는 개인적인 하인과 노동자의 대집단이 그것이다. 주요한 기간산업은 모조리 사라지고 주요 식량과 공업제품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부터 공물로 유입될 것이다." "우리는, 서구 여러 국가들의 보다 큰 동맹, 세계 문명의 대의를 촉진하기는커녕 서양의 기생주의라는 거대한 위험을 불러들일 수도 있는 유럽열강의 연방화, 그 상층계급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부터 막대한 공물을 끌어들여 그것을 가지고 길들여진 가신들의 대군—이 가신들은 더 이상 농업이나 제조업 같은 주요 산업에 종사하지 않고 새로운 금융귀족 정치의 지배 아래서 계속 개인적인 직무나 사소한 산업상의 직무를 수행한다—을 부양하는 일군의 선진공업국까지가 생겨날 가능성을 이제까지 예견해보았다. 고려의 가치도 없는 이론"(전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을 탐색하려 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날 이미 이 상태에 떨어져 있는 남부잉글랜드 여러 지역의 경제적·사회적 상태를 검토하게 하자. 또 그들로 하여금 금융업자·투자가 및 정계와 실업계 중진으로 이루어지는 비슷한 집단의 경제적 지배에 중국을 종속시킴으로써 그런 제도의 거창한 확장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데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하자. 그 집단은 유럽에서 소비하기 위해, 세계사상 최대인 잠재적 이윤의 저수지에서 이윤을 빨아내려고 하고 있다.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고 세계 세력의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이런 해석이나 다른 어떤 단 하나의 해석도 그다지 개연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오늘날 서유럽의 제국주의를 지배하는 세력은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거기에 대처하거나 그것을 전환시키지 않는 한 그것은 대략 이러한 결말을 향해 나갈 것이다."²⁰²

 

저자는 전적으로 옳다. 만일 제국주의 세력들이 저항에 부딪히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그러한 상황으로 이끌려갈 것이다. 현재의 제국주의적인 정세에서 '유럽합중국'²⁰³의 의미가 여기서 올바르게 평가되고 있다. 다만 노동운동 내에서도 대다수의 나라들에서 지금 일시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이 바로 이 방향으로 체계적이고 부단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덧붙여두어야 할 것이다. 제국주의란 세계 분할과 단지 중국에 대해서만은 아닌 착취를 의미하고, 한 줌밖에 안되는 가장 부유한 나라들을 위한 높은 독점이윤을 의미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상층부를 매수할 수 있는 경제적 가능성을 창출하여, 그로부터 기회주의자를 키우고 형성시키고 강화시킨다. 단지 제국주의 일반에, 특히 기회주의에 대항하고 있는 세력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인데, 사회자유주의자 홉슨의 눈에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과거에는 제국주의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당에서 제명됐지만, 지금이라면 독일의 이른바 '사회민주'당의 수뇌가 될 수도 있을 법한 독일의 기회주의자 게르하르트 힐데브란트(Gerhard Hildebrand)²⁰⁴는 홉슨을 훌륭하게 보완하여,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항하기 위한, '대이슬람 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강력한 육해군'을 유지하기 위한, '중국과 일본의 연합'에 대항하기 위한…… '공동' 행동을 목적으로 하는 (러시아를 제외한) 서유럽합중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²⁰⁵

 

슐체-게베르니츠의 책에 나오는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서술도 우리에게 그와 같은 기생성의 특징을 보여준다. 영국의 국민소득은 1865년과 98년 사이에 거의 두 배가 됐는데, 같은 시기에 '해외로부터' 얻는 소득은 아홉 배로 뛰었다. 제국주의의 "업적"이 "니그로에게 근면의 습관을 가르친 것"(강제성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이라면, 제국주의의 "위험"은 "유럽이 고된 육체노동을 -처음에는 농업노동과 광산노동을, 다음에는 보다 거친 공업노동을 -피부가 검은 인종의 어깨에 떠넘기고 자신은 금리생활자의 역할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로 인해 아마도 피부가 붉은 인종과 검은 인종이 경제적 해방과 그에 이은 정치적 해방을 준비하게 되리라는 것"²⁰⁶이다.

 

영국에서는 경작에 이용되지 않고 부자들의 스포츠와 오락에 사용되는 토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냥 및 여타 유흥을 위한 가장 귀족적인 장소인 스코틀랜드는 "그곳의 과거와 카네기 씨(미국의 억만장자)가 그곳을 먹여 살린다"고 회자되고 있다. 영국은 매년 경마와 여우사냥에 1,400만 파운드(약 1억 3천만 루블)를 소비한다. 영국의 금리생활자는 거의 100만 명에 이른다. 반대로 생산에 고용된 인구의 비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1851년 17.9 4.1 23%

1901년 32.5 4.9 15%

단위 : 100만 명

 

한편 '20세기 초 영국 제국주의'를 연구한 이 부르주아 학자는 영국의 노동자계급에 대해 이야기할 때 노동자의 '상층'과 '진짜 프롤레타리아 하층'을 체계적으로 구분해야 했다. 이 노동자 상층은 대부분 협동조합과 노동조합, 스포츠단체와 수많은 종교단체의 구성원들이다. 선거권이 허용되는 것은 이 층까지이며, 영국에서 선거권은 '여전히 진짜 프롤레타리아 하층'을 배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제한돼 있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미화하기 위해 사람들은 보통 프롤레타리아트의 소수를 이루고 있을 뿐인 이 상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실업 문제는 주로 런던의 문제이거나 정치인들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²⁰⁷ 프롤레타리아트 하층의 문제일 뿐이다……."²⁰⁸ 여기에서 이 저자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부르주아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의 기회주의자들도 이 층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금 서술하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과 관련한 제국주의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떠나는 이민은 줄어들고, 임금이 낮고 뒤처진 나라들로부터 그 나라들로 들어가는 이주민(노동자의 유입과 일반 주민의 이주)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떠나는 이민은 홉슨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1884년 이래 감소하고 있다. 1884년에 24만 2천 명이었던 외국으로의 이민자는 1900년에는 16만 9천 명이었다. 독일을 떠나는 이민자들은 1881~90년의 10년간 가장 많은 145만 3천 명에 달했지만, 그후 20년 동안은 각 10년간 54만 4천 명과 34만 1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러시아 등에서 독일로 들어간 노동자의 수가 증가했다. 1907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독일에는 134만 2,294명의 외국인이 있었는데, 그 중 공업노동자는 44만 800명, 농업노동자는 25만 7,329명 있었다.²⁰⁹ 프랑스에서는 광업노동자들이 '대부분'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스페인인²¹⁰ 등의 외국인이었다. 미국에서는 동유럽과 남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이 가장 임금이 낮은 직업을 갖고 있었고, 감독으로 승진한 사람과 가장 보수가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²¹¹ 제국주의는 노동자의 사이에도 특권을 가진 부류를 분리해서 그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광범위한 대중으로부터 갈라놓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그들 가운데 기회주의를 강화시키며, 노동운동을 일시적으로 부패시킨다는 제국주의의 경향은 영국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무렵보다 훨씬 전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특별히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 것은 제국주의의 두 가지 큰 특징이 영국에서는 19세기 중반 경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특징이란 광대한 식민지 영토와 세계 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운동에서 기회주의와 영국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특징이 가진 이러한 관련성을 수십 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예를 들면 엥겔스는 1858년 10월 7일 마르크스에게 이렇게 썼다.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사실상 갈수록 부르주아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모든 국민들 가운데 가장 부르주아적인 이 국민은 결국에는 부르주아와 함께 부르주아적인 귀족과 부르주아적인 프롤레타리아트를 가지는 데까지 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네. 전세계를 착취하고 있는 국민에게 있어서 이는 분명히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일일세." 그로부터 거의 4반세기가 지난 후인 1881년 8월 11일자의 편지에서 엥겔스는 "부르주아에게 몸을 팔거나, 적어도 그들에게서 돈을 받고 있는 패거리들의 지도를 받아들이고 있는 최악인 영국노동조합"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 카우츠키에게 보낸 1882년 9월 12일자 편지에서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당신이 내게 질문한 것은 이렇습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식민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 그것은 그들이 정책 일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똑같습니다. 여기에는 정말이지 노동자 당이라는 것은 없고 보수당과 자유급진당만 있으며, 노동자들은 영국의 세계 시장 독점과 식민지 독점으로 함께 속편하게 먹고살고 있습니다."²¹²(엥겔스는 1892년에 출간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의 2판 서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적었다.)

 

여기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원인은 (1) 이 나라에 의한 전세계의 착취, (2) 세계 시장에서 이 나라의 독점적 지위, (3) 그것의 식민지 독점이다. 결과는 (1) 영국 프롤레타리아트 일부의 부르주아화, (2)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부가 부르주아에게 몸을 팔거나 적어도 그들에게서 돈을 받고 있는 자들의 지도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의 제국주의는 한 줌밖에 안 되는 나라들에 의한 세계의 분할을 완성했으며, 이제 이 나라들은 각기 1858년의 영국에 버금가는 '전세계'의 조각들을 (초과이윤을 뽑아내고 있다는 의미에서) 착취하고 있다. 각국은 트러스트, 카르텔, 금융자본,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관계 덕택으로 세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본 것처럼, 전세계 식민지 영토 7,500만 평방킬로미터 가운데 6,500만 평방킬로미터, 즉 86퍼센트는 여섯 강대국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고, 그 중 6,100만 평방킬로미터, 즉 81퍼센트는 강대국 세 나라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다.)

 

현 정세의 특징은 노동운동의 일반적·근본적인 이익과 기회주의 사이의 적대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경제적·정치적 조건들에 있다. 제국주의는 작은 싹에서 지배적인 체제로 성장했다. 자본주의 독점조직들이 국민경제와 정치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세계의 분할은 완성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영국의 전일적인 독점 대신, 우리는 그 독점에 참가하려는 소수 제국주의 열강들의 투쟁을 목격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20세기 초엽 전체를 특징짓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기회주의는 19세기 후반기 동안 영국에서 승리한 것과 같이 수십 년 동안이나 한 나라의 노동운동에서 완전한 승자로 나타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 나라들에서 완전히 성숙하고, 무르익고, 썩어버린 나머지, 사회배외주의라는 부르주아 정치와 완전히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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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자본주의의 특수한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이쯤에서 제국주의에 대해 앞에서 말한 것들을 모아 총괄해보도록 하자.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일반이 가진 기본 특성들이 발전한 것이자, 그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 발전 단계의 아주 높은 특정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만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자본주의의 몇몇 기본 특성들이 각각 자신의 대립물로 전화하기 시작하며, 자본주의로부터 더 높은 사회·경제체제로 넘어가는 이행기의 특징들이 모든 면에서 형성되고 드러나게 된다. 경제면에서 보면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이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자유경쟁은 자본주의 및 상품생산 일반의 기본 특성이며, 독점은 자유경쟁의 직접적인 대립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눈으로 자유경쟁이 독점으로 전화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자유경쟁은 대규모 생산을 창출하여 소규모 생산을 몰아내고, 대규모 생산을 더더욱 거대한 규모의 생산으로 대체했으며, 생산과 자본의 집중을 초래하여 그로부터 독점이, 다른 말로는 카르텔·신디케이트·트러스트 및 그것들과 융합하여 수십억을 움직이는 십여 개 은행들의 자본이 자라나와 계속 성장할 수 있게 했다. 이러는 동시에 자유경쟁에서 자라나온 독점은 자유경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위에 그것과 나란히 존재하면서, 일련의 특별히 침예하고 격렬한 모순·마찰·갈등들을 만들어낸다. 독점은 자본주의에서 더욱 높은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인 것이다.

 

만약 제국주의를 최대한 간단하게 정의해야 한다면, 제국주의는 독점 단계의 자본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정의는 가장 중요한 것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금융자본이란 산업가 독점연합의 자본과 융합한 소수의 거대 독점 은행들의 은행자본이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 세계 분할이란 아직 어떤 자본주의 강대국도 점령하지 않은 지역으로 아무 방해 없이 확장할 수 있었던 식민정책에서 이미 완전히 분할된 세계 영토를 독점적으로 보유하려는 식민정책으로의 이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간단한 정의는, 요점을 간추리고 있어서 편리하긴 하지만, 정의해야 하는 현상의 매우 중요한 특징들을 그것들로부터 연역해내야 하므로 역시나 불충분하다. 따라서 모든 정의는 제한적이고 상대적이며, 그것의 발전으로부터 연쇄되어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다 포괄할 수는 없음을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기본 양태¹⁷⁷를 포함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이다.

 

(1) 독점을 창출하여 그것이 경제생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정도로 높은 발전 단계에 도달한 생산과 자본의 집중 (2)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 그리고 이 '금융자본'을 기초로 한 금융과두제의 탄생 (3) 상품수출과 구별되는 자본 수출이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획득 (4) 세계를 분할하는 자본가들의 국제적인 독점연합들 형성 (5) 거대 자본주의 열강들에 의해 지구의 영토적 분할 완료. 요약하자면 제국주의란 독점과 금융자본의 지배가 형성되고, 자본수출이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며, 국제 트러스트들에 의한 세계 분할이 시작되고, 가장 큰 자본주의 나라들에 의해 지구의 모든 영토 분할이 완료된 발전 단계에 도달한 자본주의다.

 

만약 기본적이고 순수한 경제적 의미(앞에서 내린 정의는 그것에 한정되어 있다)뿐 아니라, 이 단계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일반에 대해 갖는 역사적 위치라든가 노동운동 내부의 두 개의 주요한 경향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제국주의를 어떻게 다르게 정의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정의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보게 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앞에서처럼 해석된 제국주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본주의 발전의 특수한 단계라는 것을 유념하면 된다. 제국주의에 대해 가능한 한 좀 더 근거가 있는 개념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나는, 최근의 자본주의 경제에서 반박의 여지 없이 확증된 사실들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논설을 되도록 많이 인용하려고 했다. 은행자본 등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는지, 양에서 질로의 전화, 즉 발전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로의 이행이 과연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볼 수 있도록 자세한 통계수치들을 인용한 것도 같은 목적을 위한 것이다. 자연과 사회의 모든 경계가 제한적이고 유동적이라는 것, 따라서 예컨대 제국주의가 '최종' 확립된 것이 어느 해 또는 몇 십 년대인가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국주의의 정의에 관해서, 무엇보다 먼저 이른바 제2인터내셔널 시대, 즉 1889년부터 1914년까지 25년 동안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던 K. 카우츠키와 논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제시한 제국주의의 정의에 표현된 기본 사상을 카우츠키는 1915년에, 아니 이미 1914년 11월에 매우 단호하게 반대하며 다음과 같은 점들을 언급했다. 제국주의는 경제의 '국면'이나 단계가 아니라 정책, 즉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특정 정책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제국주의를 '현대 자본주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만약 제국주의를 카르텔, 보호정책, 금융업자의 지배, 식민정책 같은 '현대 자본주의의 모든 현상'으로 이해한다면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에 필연적인가라는 문제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동어반복'이 돼버릴 텐데 그렇게 되면 '제국주의는 당연히 자본주의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 등. 카우츠키의 이러한 생각은 앞에서 내가 서술한 사상의 핵심 내용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왜냐하면 오랫동안 유사한 사상을 펼쳐온 독일 마르크스주의자 진영에서의 반론은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주의 내 특정 조류의 반론으로서 일찍부터 알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¹⁷⁸). 그런 그의 사상은 그가 제국주의에 대해 내린 정의를 인용할 때 보다 정확히 드러날 것이다.

 

카우츠키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고도로 발전한 산업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것은 거기에 어떤 민족이 살고 있는가와 관계 없이, 더 넓은 농업 지역(강조는 카우츠키)을 정복하고 합병하려는 모든 산업자본주의 민족의 열망에 존재한다."¹⁷⁹/¹⁸⁰

 

이런 정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왜냐하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이 정의는 제멋대로 민족 문제만을(그 자체로도, 제국주의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분리해서, 다른 민족을 합병하려는 나라들의 산업자본에만 제멋대로 연관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이 제멋대로 농업 지역의 합병만을 부각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합병을 원한다. —카우츠키가 내린 정의의 정치적 부분이 귀결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옳지만 대단히 불완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제국주의는 정치적으로 압제와 반동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카우츠키 본인이 자신의 정의에 포함시킨 문제의 경제적 측면이다. 카우츠키의 정의가 지닌 오류는 한눈에 번쩍 들어온다. 제국주의의 특징은 산업자본이 아니라 바로 금융자본이다. 프랑스에서 1880년대부터 합병(식민)정책이 극단적으로 강화된 것이 산업자본이 약화되고 금융자본이 굉장히 급속하게 발전한 것과 관련이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농업 지역뿐 아니라 가장 공업화된 지역도 합병하려고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벨기에에 대한 독일의 욕망, 로렌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욕망), 이는 첫째로 이미 세계 분할이 완결된 탓에 재분할할 때는 모든 종류의 땅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여러 강대국들의 경쟁이야말로 제국주의의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경쟁국을 약화시키고 경쟁국의 헤게모니를 파괴하기 위해서 영토를 장악하려고 한다(독일에게는 벨기에가 영국에 대한 거점으로, 영국에게는 바그다드가 독일에 대한 거점으로 특별히 중요하다).

 

카우츠키는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영국을 예로 들고 있는데, 아마도 카우츠키 자신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제국주의라는 단어의 순수한 정치적 의미를 영국인들이 규정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국인 홉슨을 데려와서 1902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제국주의론』을 읽어보기로 하자.

 

"새로운 제국주의가 종래의 제국주의와 다른 점은 첫째는 성장하는 단일 제국의 야망 대신 각각 정치적 확장과 상업적 이득에 대한 똑같은 탐욕 때문에 경쟁하는 여러 제국들의 이론과 실천이 나타난다는 것이고, 둘째는 상업상의 이익보다 금융 또는 투자상의 이익이 우위에 선다는 것이다."¹⁸¹

 

우리는 카우츠키가 영국을 일반적인 예로 든 것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보았다(그는 고작 영국의 속류 제국주의자나 제국주의의 공공연한 옹호자를 인용할 수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카우츠키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사회자유주의자 홉슨에 비해서도 뒤처져 있음을 확인한다. 홉슨은 현대 제국주의의 두 가지 '역사적으로 구체적인'(카우츠키는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역사적 구체성을 우롱하고 있다!) 특성들, 즉 (1) 몇몇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 (2) 상인에 대한 금융가들의 우위를 더 올바르게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공업국이 농업국을 합병하는 것이 주로 문제라면, 그 경우에는 상인의 역할이 가장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카우츠키의 정의는 부정확할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모든 면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 및 마르크스주의 실천과 단절한 견해들의 총체에 하나의 토대로 기능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룰 것이다. 카우츠키가 제기한 용어상의 논쟁, 자본주의의 이 가장 새로운 단계를 제국주의라고 부를 것인가, 금융자본 단계라고 부를 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마음대로 불러라.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의 본질은 카우츠키가 합병을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정책으로 설명하고, 합병 정책에다가 금융자본이라는 똑같은 토대 위에서 언뜻 보기에 가능할 것 같은 다른 부르주아 정책을 대립시키는 데 있다. 그 결과 경제에서 독점과 정치에서 독점적이지 않고 강압적이지 않고 침략적이지 않은 행동 방식이 양립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바로 이 금융자본 시대에 완성된, 가장 큰 자본주의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보이는 독특한 현 모습의 토대가 되는 지구의 영토 분할이 제국주의적이지 않은 정책들과 양립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하여 가장 새로운 자본주의 단계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들의 심각성을 폭로하는 대신 그것을 흐리고 무디게 만들고 마르크스주의 대신 부르주아 개량주의로 귀결되는 것이다.

 

카우츠키는 독일에서 합병과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인 쿠노(Cunow)¹⁸²와 논쟁한다. 쿠노는 조잡하고도 뻔뻔하게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필연적이며 진보적이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진보적이며, 그러므로 그 앞에 납작 엎드려 찬양해야 한다! 이런 논리는 1894~5년에 나로드니키¹⁸³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난하던 조롱,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를 필연적이고 진보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선술집이나 개업해서 자본주의를 보급하는 데 애써야 할 것이라던 조롱과 비슷하다.¹⁸⁴ 카우츠키는 쿠노를 반박한다. 맞다. 제국주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취할 수 있는 여러 정책들 가운데 한 형태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정책과 투쟁할 수 있고 투쟁해야 한다. 즉 제국주의나 합병 등과 투쟁할 수 있고 투쟁해야 한다.

 

이 반론은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제국주의와의 화해를 이야기하는 더욱 교묘하고 더욱 은밀한(따라서 더욱 위험한) 설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트러스트 및 은행의 경제적 토대를 건드리지 않는 트러스트 및 은행의 정책과의 '투쟁'은 부르주아 개량주의와 평화주의로, 선량하고 순진한 희망들의 표현으로 귀결될 뿐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모순들을 철저하게 폭로하는 대신 회피하고, 그 모순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공통점이 없는 카우츠키의 이론이다. 그리고 이런 '이론'이 쿠노 부류들과 뭉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카우츠키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가 또 하나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카르텔 정책이 대외정책으로 확장되는 초제국주의 단계로 말이다"¹⁸⁵라고 쓰고 있다. 이는 곧 제국주의를 초월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단합하는 단계, 자본주의 아래에서 전쟁이 중식되는 단계, "국제적으로 연합한 금융자본이 세계를 공동으로 착취"¹⁸⁶하는 단계다.

 

이 '초제국주의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와 얼마나 결정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을 나중에 천천히 다뤄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 책의 전체 계획에 따라 이 문제에 관련된 정확한 경제수치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초제국주의"는 가능한 것일까, 초허튼 소리에 불과한 것일까?

 

만일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순수"한 추상으로 이해한다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런 명제밖에 없을 것이다. 독점으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따라서 전세계적 독점, 단일한 전세계적 트러스트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이 명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식량을 실험실 내에서 생산하는 방향으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아무 내용이 없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초제국주의 '이론'은 '초농업 이론'만큼이나 엉터리다.

 

만일 20세기 초에 들어맞는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시대로서 금융자본의 시대의 "순수하게 경제적인" 사정에 대해서 말한다면, "초제국주의"라는 죽은 추상(현존하는 모순들의 심각성으로부터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는 지극히 반동적인 목적에 기여하는 것)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은 현대 세계 경제의 구체적인 경제 현실을 그것에 대치시키는 것이다. 초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잡담은, 특히 금융자본의 지배는 실제로는 세계 경제 내부의 불균등성과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인데도 그것들을 약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근본으로부터 잘못된, 그리고 제국주의의 옹호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상을 고취하고 있다.¹⁸⁷

 

R. 칼버(Calwer)¹⁸⁸는 소책자『세계경제입문Einführung in die Weltwirtschaft』¹⁸⁹에서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 무렵에서 세계 경제 내부의 상호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관념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경제수치를 총괄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전세계를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주요 경제권'으로 나누고 있다.

 

(1) 중앙유럽권(러시아와 영국을 제외한 전유럽), (2) 영국권, (3) 러시아권, (4) 동아시아권, (5) 아메리카권. 식민지는 그것이 속한 국가의 '권역'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어느 권역에도 속하지 않는 소수의 나라, 예를 들면 아시아의 페르시아·아프가니스탄·아라비아, 아프리카의 모로코·아비시니아 등은 '제외되어 있다.'

 

이들 지역에 대해 그가 제시한 경제수치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세계 주요 경제권 면적 (100만 평방킬로미터) 인구 (100만 명) 철도 (천 킬로미터) 상선 (100만 톤) 수출입 합계 (억 마르크) 석탄 채굴량 (100만 톤) 선철 생산량 (100만 톤) 면방적업의 방추 수 (100만 개)

(1) 중앙유럽권 27.6 *(23.6) 388 (146) 204 8 410 251 15 26

(2) 영국권 28.9 *(28.6) 398 (355) 140 11 250 249 9 51

(3) 러시아권 22 131 63 1 30 16 3 7

(4) 동아시아권 12 389 8 1 20 8 0.02 2

(5) 아메리카권 30 148 379 6 140 245 14 19

*괄호 안 숫자는 식민지의 면적과 인구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교통·무역·공업이 매우 발달한) 세 권역, 즉 중앙유럽권, 영국권, 아메리카권을 보자. 이 권역들에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 나라, 독일, 영국, 미국이 있다. 이 나라들 사이의 제국주의적인 경쟁과 투쟁은 독일이 가진 권역이 보장되었고 식민지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중앙유럽'이 완성되는 것은 미래의 일이며, 그것은 필사적인 투쟁 속에서 탄생할 것이다. 당분간 전유럽의 특징은 정치적 분열 상태다. 그에 비해 영국권과 아메리카권에서는 정치적 집중이 매우 많이 진전되었지만, 광대한 식민지를 갖고 있는 영국과 별로 일 없는 식민지밖에 갖고 있지 못한 미국 사이에 커다란 불균형이 있다. 그런가 하면 식민지들에게서의 자본주의 발전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아메리카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다른 두 개의 권력은 자본주의 발전이 미약한 지역으로 러시아권과 동아시아권이다. 러시아권의 인구밀도는 매우 낮고, 동아시아권은 매우 높다. 앞의 지역은 정치적 집중도가 높지만, 뒤의 지역은 낮다. 중국의 분할은 이제 겨우 시작됐을 뿐이며, 중국을 둘러싼 일본, 미국 등의 투쟁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곧 경제적·정치적 조건들이 이처럼 굉장히 다양하고, 가지각색의 국가들이 성장 속도 등에서 극히 불균형하며,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평화로운' 초제국주의라는 카우츠키의 어리석은 이야기와 대비해보라. 이는 겉면은 소시민이 무서운 현실에서 몸을 숨기려는 반동적인 시도가 아닐까? 카우츠키에게는 '초제국주의'의 맹아로 생각되는(실험실에서 제조된 알약을 초농업의 맹아라고 선언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 카르텔은 세계의 분할하고 재분할하는 실제 사례, 즉 평화로운 분할에서 평화롭지 않은 분할로 이행하거나 그 반대로 이행하는 실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국제 철도 신디케이트와 국제 해운 트러스트에 독일이 참여할 경우, 세계를 평화롭게 분할하고 있었던 아메리카 등지의 금융자본은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세력관계에 근거해서 전혀 평화롭지 않은 방법으로 당장 세계를 재분할하지 않겠는가?

 

금융자본과 트러스트는 세계 경제의 다양한 부분들 사이에 나타나는 성장 속도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넓히고 있다. 그런데 세력관계가 변화하는 경우, 자본주의 시대에 힘이 아니면 무엇으로 모순의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세계 경제 전체에서 자본주의와 금융자본의 성장 속도의 차이에 관한 매우 정확한 수치를 철도 통계에서 찾아낼 수 있다.¹⁹⁰ 제국주의가 발전한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철도의 길이는 아래와 같이 변화했다.

 

철도 단위 : 천 킬로미터

1890년 1913년 증가량

유럽 224 346 +122

미국 268 411 +143

모든 식민지 82 210 +128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독립국과 반독립국 43 137 +94

합계 617 1,104

 

따라서 철도의 발전은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식민지와 독립국(및 반독립국)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네다섯 개의 가장 큰 자본주의 국가들의 금융자본이 이 지역에서 전면적으로 군림하고 지배하고 있다. 식민지와 아시아, 아메리카 등지의 나라들에서 20만 킬로미터의 새로운 철도, 그것은 400억 마르크 이상의 새로운 자본의 투입이 특별히 유리한 조건으로 이루어지고, 수익이 특별히 보장되고, 제강공장에 이익이 많은 주문이 들어가는 등의 일을 의미한다.

 

자본주의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곳은 식민지들과 대양 너머의 여러 나라들이다. 그 나라들 중에서 새로운 제국주의 열강들(예를 들면 일본)이 등장하고 있다. 세계 제국주의의 투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금융자본이 식민지들과 대양 너머의 특히 수익성이 높은 기업들로부터 획득하는 공물은 늘어나고 있다. 이 '노획물'의 분배에서 극히 큰 부분이 생산력 발전 속도에서 항상 선두에 있지는 못한 나라들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가장 큰 강대국들의 철도 길이는 식민지까지 포함했을 때 다음과 같다.

 

1890년 1913년 증가

미국 268 413 145

대영제국 107 208 101

러시아 32 78 46

독일 43 68 25

프랑스 41 63 22

5대 강국 합계 491 830 339

 

이처럼 전체 철도 길이의 약 80퍼센트가 최대 열강 다섯 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 철도들에서 소유의 집중, 금융자본의 집중은 훨씬 더 엄청나게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영국과 프랑스의 이른바 백만장자들이 아메리카, 러시아 및 다른 나라 철도들의 주식과 회사채들을 굉장히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식민지 덕분에 '그것의' 철도망을 십만 킬로미터나 늘릴 수 있었는데, 이는 독일의 증가량의 네 배에 이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시기에 독일의 생산력은, 특히 석탄산업과 철강산업에 있어서 프랑스와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영국에 대해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다. 1892년 영국의 선철 생산량이 680만 톤인 데 비해 독일은 490만 톤에 불과했지만, 1912년에는 이미 영국의 900만 톤에 대해 1,760만 톤을 생산하여 영국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¹⁹¹ 분명, 자본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한쪽의 생산력 발전 및 자본 축적과, 다른 쪽의 금융자본을 위한 식민지 및 '세력권'의 분할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없애는 데 있어서 전쟁 외의 다른 어떤 수단이 있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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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열강들 사이의 세계 분할

 

지리학자 A. 주판(Supan)¹⁵⁵은 '유럽 식민지의 영토 확장'에 대한 책에서 19세기 말에 이루어진 이 확장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한다.¹⁵⁶

 

1876년 1900년 증가율

 

아프리카 10.8% 90.4% +79.6%

폴리네시아 56.8% 98.9% +42.1%

아시아 51.5% 56.6% +5.1%

오스트레일리아 100.0% 100.0% —

아메리카 27.5% 27.2% -0.3%

 

그는 "따라서 이 시기의 특징은 아프리카와 폴리네시아의 분할이다"라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아시아나 아메리카에도, 그 어느 나라에 속하지 않은 무주공산의 땅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주판의 결론을 확대하여 이 시기의 특징은 지구의 최종적인 분할이라고 말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 최종적이란 것은 재분할이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그렇기는 커녕 재분할은 가능한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자본주의 나라들의 식민 정책이 지구상의 미점령지에 대한 장악을 완성했다는 의미다. 세계는 처음으로 완전히 분할되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오직 재분할만 가능할 뿐이다. 다시 말해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주인'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소유자'에게서 다른 '소유자'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세계 식민화 정책의 시대라는 독특한 시대를 겪고 있는 것인데, 이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근 단계', 즉 금융자본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와 그 이전 시대의 차이, 그리고 현 시기의 상황을 되도록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실제 수치자료들을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무엇보다 사실에 관련해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즉 식민화 정책의 강화, 식민지를 얻기 위한 투쟁의 격화가 과연 꼭 금융자본의 시대에 나타난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이 측면에서 정확히 어떻게 세계가 분할돼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저술가 모리스(Morris)는 식민화의 역사에 관한 책에서 19세기의 여러 시기에 있어 영국·프랑스·독일의 식민지 보유 규모에 관한 통계 수치를 개괄해보려고 시도했다.¹⁵⁷ 그가 얻은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식민지 점유 영국 프랑스 독일

연도 면적 (100만 평방마일) 인구 (100만 명) 면적 (100만 평방마일) 인구 (100만 명) 면적 (100만 평방마일) 인구 (100만 명)

1815~30년 ? 126.4 0.02 0.5 — —

1860년 2.5 145.1 0.2 3.4 — —

1880년 7.7 267.9 0.7 7.5 — —

1899년 9.3 309.0 3.7 56.4 1.0 14.7

 

영국에서 식민지 정복이 가장 활발하게 확대된 시기는 1860~80년대였으며, 19세기 마지막 20년에도 몹시 왕성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식민지 확대의 시기가 그 마지막 20년이었다. 우리가 앞서 보았던 대로 독점 이전의 자본주의, 자유경쟁이 지배하고 있던 자본주의의 발전이 절정에 달렸던 시기는 1860년대와 70년대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시기 직후에 식민지 정복의 엄청난 '고양'이 시작되고, 세계 영토를 분할하기 위한 투쟁이 극도로 격화된 것을 보고 있다. 따라서 독점자본주의의 단계로의, 금융자본으로의 자본주의의 이행이 세계의 분할을 위한 투쟁의 격화와 연관돼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홉슨은 자본주의에 대해 쓴 저서에서 1884~1900년의 시기를 주요한 유럽 국가들의 맹렬한 '팽창'(영토 확장)의 시대로 특별히 구분하고 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영국은 이 시기에 5,700만 인구를 가진 370만 평방마일을, 프랑스는 3,650만 인구를 가진 360만 평방마일을, 독일은 1,470만 인구를 가진 100만 평방마일을, 벨기에는 3,000만 인구를 가진 90만 평방마일을, 포르투갈은 900만 인구를 가진 80만 평방마일을 획득했다. 19세기 말, 특히 1880년대 이후에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차지하기에 여념이 없었음은 외교사와 대외정책사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영국에서 자유경쟁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인 1840~60년대에는 그 나라의 지도적인 부르주아 정치가들이 식민정책을 반대했다. 그들은 식민지를 해방시키고, 영국에서 식민지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필연적이며 자신들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M. 비어(Beer)¹⁵⁹는 1898년에 발표한 '현대 영국 제국주의Modern British Imperialism'¹⁶⁰에서 일반적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지향을 갖고 있는 디즈레일리(Disraeli)¹⁶¹ 같은 영국 정치가조차 "식민지는 우리의 목에 매달린 '맷돌'"이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19세기 말에는 공공연하게 제국주의를 천명하며 가장 뻔뻔스럽게 제국주의적 정책을 실행한 세실 로즈(Cecil Rhodes)¹⁶²와 조지프 체임벌린(Joseph Chamberlain)¹⁶³이 영국의 시대적 영웅이었다!

 

이미 그 당시에 영국 부르주아의 지도적 정치가들이 현대 제국주의의, 이른바 순수한 경제적 뿌리와 사회적·정치적 뿌리의 연관성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체임벌린은 제국주의가 "진실하고 현명하며 경제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하면서, 영국이 지금 세계 시장에서 독일, 미국, 벨기에의 도전을 받고 있음을 지적했다. 구원은 독점에 있다. 자본가들은 그렇게 말하며 카르텔과 신디케이트와 트러스트를 만들었다. 구원은 독점에 있다. 부르주아지 정치 우두머리들도 앵무새처럼 그 말을 따라 하며 지구상의 아직 분할되지 않은 부분을 강점하기 위해 서둘렀다. 세실 로즈는 친구인 언론인 스테드(Stead)¹⁶⁴가 말한 바에 따르면 1895년에 자신의 제국주의 사상에 대해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제 런던의 이스트엔드(노동자 구역)에 가서 실업자들의 집회에 가보았다. 거기서 '빵을! 빵을!'이라고 외치는 난폭한 연설을 듣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광경을 곱곱이 생각해보면서 나는 지금까지보다 더 제국주의의 중요성을 확신하게 되었네. …… 가슴에 품은 나의 이상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네. 그러니까 영국의 4천만 국민을 피비린내 나는 내란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식민정치가는 과잉인구를 이주시키고, 공장과 광산에서 생산되는 상품의 새로운 시장을 획득하기 위해 새로운 영토를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일세. 내가 늘 말하는 것처럼 제국이란 빵과 버터의¹⁶⁵ 문제라네. 내란이 일어나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여러분은 제국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야."¹⁶⁶

 

이것이 백만장자이자 금융왕, 그리고 보어 전쟁의 장본인인 세실 로즈가 1895년에 한 말이다. 그런데 그의 제국주의 옹호는 사실 조잡하고 파렴치한 것에 불과하지만, 본질에 있어서 마술로프(Maslov), 쥐데쿰(Albert Südekum), 포트레소프(Potresov), 다비트(David),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 등의 '이론'과 다를 바 없다. 세실 로즈는 조금 더 정직한 사회배외주의자였던 것이다……

 

세계의 영토 분할과 그와 관련한 최근 수십 년의 변화를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책에서 주판이 세계 모든 열강의 식민지 영유 문제에 대해 제시한 총괄적인 자료를 이용하겠다. 주판은 1876년과 1900년을 택하고 있지만, 내가 선택한 해는 1876년과 1914년이다. 1876년은 매우 적절하게 선택된 시점이다. 왜냐하면, 대체로 확실히 이 무렵 독점 이전의 단계에 서유럽 자본주의 발전이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14년에 대해서는 주판의 수치 대신 휘브너(Hübner)의 지리통계표에서 새로운 수치들을 인용하겠다.¹⁶⁸

 

주판은 식민지만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세계 분할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비식민지 국가들과 반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수치를 간단하게 덧붙이는 것이 유의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반식민지 범주에 넣은 것은 페르시아, 중국, 터키로, 이 중 맨 앞의 나라는 이미 거의 완전히 식민지가 되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나라는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해서 다음과 같은 표가 나온다.

 

1876년 1914년 1914년 1914년

식민지 식민지 본국 총계

면적 인구 면적 인구 면적 인구 면적 인구

영국 22.5 251.9 33.5 393.5 0.3 46.5 33.8 440.0

러시아 17.0 15.9 17.4 33.2 5.4 136.2 22.8 169.4

프랑스 0.9 6.0 10.6 55.5 0.5 39.6 11.1 95.1

독일 — — 2.9 12.3 0.5 64.9 3.4 77.2

미국 — — 0.3 9.7 9.4 97.0 9.7 106.7

일본 — — 0.3 19.2 0.4 53.0 0.7 72.2

6대 열강합계 40.4 273.8 65.0 523.4 16.5 437.2 81.5 960.6

 

나머지 강국들(벨기에, 네덜란드 등)의 식민지 9.9 45.3

반식민지(페르시아, 중국, 터키) 14.5

361.2

나머지 나라들 28.0 289.9

세계 전체 133.9 1,657.0

 

우리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어떻게 세계 분할이 '완성'되었는지를 여기서 명확히 보고 있다. 식민지 영토는 1876년 이후 거대한 규모로 확장되었다. 즉 6대 열강의 경우에는 4천만 평방킬로미터에서 6,500만 평방킬로미터로 1.5배 이상 확장되었다. 증가 면적은 2,500만 평방킬로미터로 이는 본국 면적(1,650만 평방킬로미터)의 1.5배다. 열강들 셋은 1876년에는 식민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고, 프랑스 또한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1904년경 이 네 나라 열강들은 합쳐서 1,400만 평방킬로미터 면적의 식민지를 갖고 있었다. 이는 유럽 면적의 약 1.5배였고, 그 영토에 거주하는 인구는 거의 1억 명에 달했다. 식민지가 확장될 때 그것은 대단히 불균등하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독일, 일본을 비교하면, 이들은 면적과 인구에서 별 차이가 없는데도, 프랑스가 나머지 두 나라를 합친 것보다 (그 면적에서) 거의 세 배나 되는 식민지를 획득한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자본의 규모에서도, 프랑스는 지금 우리가 살피고 있는 시기의 초기에는 독일과 일본의 금융자본을 합한 것보다 아마 몇 배 많은 금융자본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식민지 영토의 규모에는 전적으로 경제적인 조건 외에, 그것을 기초로 한 지리적 조건 등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대규모 산업과 교역과 금융자본의 압박 아래 각 나라의 경제조건과 생활조건이 평준화되는 세계의 평준화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적지 않은 차이들이 남아 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6개국 안에서도 한편으로는 비상하게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젊은 자본주의 국가들(미국, 독일, 일본)이 보이는가 하면, 최근에는 앞에 말한 나라들보다 훨씬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자본주의 발전이 오래된 나라들(프랑스, 영국)도 있고, 경제적으로 제일 뒤처져 있어 최근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전(前)자본주의적 관계의 조밀한 그물망과 얽혀 있는 나라(러시아)도 있다.

 

앞의 표에는 열강의 식민지 점유와 함께, 차후 일어날 식민지 '재분할'의 가장 확실한 대상인 작은 나라들의 작은 식민지들도 나와 있다. 이 작은 나라들이 대부분 자신의 식민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예를 들어 강대국들 사이에 노획물의 분배에 관한 협정을 방해하는 이해의 대립과 알력 등이 존재하는 덕분이다. '반식민지' 국가에 대해 말하자면 이 나라들은 자연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과도적 형태의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금융자본은 온갖 경제관계와 온갖 국제관계에 있어서 지극히 큰, 결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기 때문에,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누리고 있는 국가들까지 종속시키는 능력이 있고, 실제로도 종속시키고 있다. 우리는 곧 뒤에서 그 실례를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종속된 나라들에게서 민족의 정치적 독립까지 뺏는 종속 형태가 금융자본에게 가장 큰 '편리함'과 가장 큰 이득을 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반식민지는 이런 측면에서 '중간 단계'의 전형적인 형태다. 나머지 세계가 이미 분할돼버린 금융자본의 시대에 이들 반(半)종속 국가들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이 특히 격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식민정책과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최근 단계 전에도 존재했고, 자본주의 전에도 존재했다. 노예제에 기초를 둔 로마는 식민정책을 수행하고 제국주의를 실현했다. 그러나 여러 경제적 사회구성체들의 근본적 차이를 잊거나 뒤로 밀어놓고 제국주의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논의는 필연적으로 "대로마제국과 대영제국"을 비교한다거나 하는 공허한 잡담과 허풍이 될 수밖에 없다.¹⁶⁹ 자본주의의 예전 단계들의 자본주의적 식민정책도 금융자본의 식민정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최근 자본주의의 기본적 특징은 거대기업가들의 독점연합에 의한 지배라는 것이다. 이러한 독점조직들은 모든 원료산지를 한 손에 장악하고 있을 때 가장 견고하다. 그리고 국제적인 자본가 연합이 경쟁자들에게서 모든 경쟁의 가능성을 빼앗기 위해서, 예를 들어 철광산과 유전 등을 매점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는 이미 우리가 본 그대로다. 식민지를 보유하는 것만이 경쟁 상대와의 투쟁에서 나타나는 온갖 우연—경쟁자가 국가전매법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할지 모른다는 우연까지 포함해서—에 대해 독점의 성공을 완벽하게 보장한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원료의 부족이 심하게 느껴질수록, 또 전세계적으로 경쟁과 원료산지에 대한 추구가 격화될수록 식민지 획득을 위한 투쟁은 그만큼 필사적이 된다.

 

쉴더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어쩌면 역설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도시공업 인구의 증가는 어느 정도 가까운 장래에 식료품 부족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공업원료의 부족 때문에 억제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목재의 부족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목재가격은 더욱더 올라가고 있다. 피혁공업과 섬유공업의 원료도 마찬가지다. "공업가 단체들은 세계 경제 전체의 범위에서 농업과 공업의 균형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 예로서 1904년 이래 존재하고 있는, 몇몇 가장 중요한 공업국에서 면방적업 단체들의 국제적 연합과 1910년에 이것을 본따 설립된 유럽의 아마방적업 단체들의 연합을 들 수 있다."¹⁷⁰

 

물론 부르주아적 개량주의자들은, 특히 그 중에서 오늘날 카우츠키주의자들은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인식을 약화시키려고 시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즉 원료는 '비싸고 위험한' 식민정책 없이도 자유시장에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원료의 제공은 농업의 전반적 상황에 대한 '단순한' 개선을 통해 두드러지게 증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들은 제국주의에 대한 옹호와 미화로 바뀐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최근 자본주의의 주요한 특징, 즉 독점에 대한 망각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은 더욱더 과거의 것이 되고 있으며, 독점적인 신디케이트들과 트러스트들은 나날이 자유시장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그리고 농업 상황의 '단순한 개선은 결국 대중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임금을 올리고, 이윤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식민지를 정복하는 대신 대중의 형편을 배려할 수 있는 트러스트들이란 달콤한 개량주의자들의 환상 속 말고 대체 그 어디에 존재하는가?

 

금융자본에게는 이미 개발된 원료산지만이 아니라 잠재적인 산지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최근에는 기술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오늘은 쓸모가 없는 땅이라도 새로운 방법이 발견된다면(이를 위해 대은행은 기술자와 농업학자 등으로 구성된 특별 탐험대를 조직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된다면 내일은 쓸모 있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광물자원의 탐사, 이런저런 원료의 새로운 가공법과 이용법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금융자본은 필연적으로 경제성 있는 영토, 나아가 영토 일반을 확장하려는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 트러스트들이 (현재가 아닌) 미래의 '잠재적인' 이윤과 독점이 가져올 미래의 성과를 고려하여 그들의 자산을 두세 배로 평가해서 자본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자본도 일반적으로 잠재적인 원료산지를 고려하여 어떤 땅이든, 어디 있는 땅이든, 어떻게 해서든 되도록 많은 땅을 정복하려고 하면서, 아직 분할되지 않은 세계의 마지막 땅 한 조각을 위한, 또는 이미 분할된 땅의 재분할을 위한 광기 어린 투쟁에서 뒤쳐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영국의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식민지인 이집트에서 면화 생산을 발전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1904년에 이미 이집트의 경작 가능 면적 230만 헥타르 중에서 60만 헥타르, 즉 4분의 1 이상이 면화 재배지였다. 러시아의 자본가들 또한 자신들의 식민지 투르키스탄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더 쉽게 해외의 경쟁 상대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고, 더 쉽게 원료산지를 독점할 수 있으며, '결합된' 생산을 가지고 면화의 생산과 가공의 모든 단계를 한 손에 집중시킨 보다 경제적이고 이윤이 높은 섬유 트러스트를 더 쉽게 설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수출의 이익 역시 식민지 정복을 부채질한다. 왜냐하면 식민지 시장에서는 독점적 방법에 의해 경쟁 상대를 배제하고 공급을 확보하며 '유착관계'를 단단히 다지는 등의 일이 더 쉽기(아니, 때로는 거기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자본의 기초 위에 성장하는 경제 외적인 상부구조, 즉 금융자본의 정책과 이념은 식민지 정복의 열망을 강화한다. "금융자본은 자유가 아니라 지배를 원한다"고 힐퍼딩은 올바르게 서술하고 있다. 또 프랑스의 부르주아 저술가는 앞에서 인용한 세실 로즈의 이상¹⁷¹을, 말하자면 발전적으로 보완해서, 현대의 식민정책의 경제적 원인에 사회적 원인들을 덧붙여야 한다고 쓰고 있다. "생활이 복잡해지고, 생활난이 증대하고, 그것이 노동대중뿐 아니라 중간계급도 짓누르게 되기 때문에 모든 오래된 문명국가들에서 '불안, 분노, 증오'가 축적되고, 그것이 사회의 평온을 위협하고 있다. 어떤 일정한 계급적 궤도에서 뽑아져나오는 에너지는 탈출구를 찾아야만 한다. 국내에서 폭발하지 않도록, 그 에너지가 해외로 발산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¹⁷²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정책을 논함에 있어, 금융자본과 그에 조응하는 국제정책—이것이 바로 세계의 경제·정치적 분할을 위한 열강들의 투쟁으로 이어진다—이 국가적 종속의 일련의 과도적 형태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식민지 보유국과 식민지라는 이 두 개의 기본적인 국가집단들뿐 아니라, 정치적·형식적으로는 독립국으로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금융상·외교상으로 종속의 그룹에 엮매어 있는 각양각색의 종속국들도 이 시대에 전형적인 것이다. 이 형태들 중 하나인 반식민지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지적했다. 또 다른 형태의 예로 아르헨티나를 들 수 있다.

 

슐체-게베르니츠는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 쓴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아메리카, 특히 아르헨티나는 거의 영국의 상업 식민지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런던에 금융적으로 종속되어 있다."¹⁷³ 실더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오스트리아-헝가리 영사의 1909년도 보고서들을 근거로 하여 영국이 아르헨티나에 투자하고 있는 자본이 87억 5천만 프랑이라고 산정했다. 이를 통해 영국의 금융자본(과 그것의 충실한 '친구'인 외교)이 아르헨티나의 부르주아, 그 나라의 모든 경제생활과 정치생활의 지도층과 얼마나 굳건한 유착관계를 맺었을지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면서 금융적·외교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조금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예는 포르투갈이다. 포르투갈은 독립된 주권국가지만 사실은 스페인의 왕위계승 전쟁(1701~14년) 이후 200년 넘게 계속 영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 영국은 경쟁자인 스페인이나 프랑스와의 투쟁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포르투갈 및 그 식민지 영토를 방어해주었다. 영국은 그 대가로 통상에서 특혜를 받았다. 포르투갈이나 포르투갈의 식민지에 상품을 수출할 때, 그리고 자본을 수출할 때는 특히 더 유리한 조건으로 포르투갈의 항구, 섬, 해저 전선 등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¹⁷⁴ 이런 종류의 관계는 예전에도 개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시대에 와서 그것은 보편적인 체제가 되어 '세계 분할'의 관계들의 총체에 일부가 되고 세계 금융자본의 활동들의 사슬고리로 전환되고 있다.

 

세계 분할이라는 문제를 끝내기 위해서는 역시 다음의 내용에 유의해야 한다.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의 미국 문헌과 보어 전쟁 이후의 영국 문헌만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에 걸쳐 이 문제를 완전히 공공연하게, 그리고 명백하게 제시했던 것은 아니고, 또 누구보다도 '시기에 맞서' '영국 제국주의'를 뒤쫓고 있던 독일의 문헌들만이 이 사실을 체계적으로 평가한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부르주아 문헌들에서도 이 문제는 부르주아적 견지에서 생각될 수 있는 한 충분히 명확하고 광범위하게 제시되고 있다. 역사가 드리오(Driault)¹⁷⁵를 인용해 보자. 그는 『19세기 말의 정치 문제와 사회 문제Les Problèmes politiques et sociaux à la fin du XIXe siècle』라는 저서의 "열강과 세계의 분할"이라는 장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열강들은 중국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자유로운 지역들을 정복했다. 이미 몇 차례 분쟁들과 세력 변화들이 일어났지만, 임박한 미래에 더욱 무서운 폭발이 예상되고 있다. 왜냐하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것도 확보하지 못한 국민은 결코 자신의 몫을 받을 수 없을 것이며, 다음 세기(20세기)의 본질적인 현상들 가운데 하나가 될 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착취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유럽 전체와 아메리카가 최근 식민지 확장의 열병에, 19세기 말의 가장 현저한 특징인 '제국주의'라는 열병에 휩싸인 이유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러한 세계 분할에 있어, 지구의 보물과 거대한 시장을 얻기 위해 열렬한 경쟁을 하는 데 있어, 19세기에 형성된 제국들의 세력관계가 그들 제국을 건설한 민족들이 유럽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유럽에서 우위에 있는 강대국들, 유럽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나라들이라고 해서 전세계적으로도 지배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식민지의 규모, 즉 아직 평가되지 않은 부의 가능성이 유럽 국가들의 세력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식민지 문제 또는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제국주의'는 유럽 자체의 정치적 조건들을 이미 변화시켰으며, 앞으로 더욱더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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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자본가 연합들 사이의 세계 분할

 

 

카르텔, 신디케이트, 트러스트 같은 독점 자본가의 연합은 먼저 국내 시장을 자기들끼리 분할하며 자국 생산을 거의 완전하게 장악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에서 국내 시장은 피할 수 없이 해외 시장과 이어진다. 자본주의는 이미 오래전에 세계 시장을 창출했다. 그러나 자본 수출이 증가하고, 가장 큰 독점 연합이 외국 및 식민지와의 유착 관계와 그들의 ‘세력권’이 백방으로 확장됨에 따라, 사태는 ‘자연스럽게’ 이들 사이의 세계적 협정으로, 국제 카르텔의 형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자본과 생산의 세계적 집중의 새로운 단계, 이전 단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단계다. 이러한 거대 독점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살펴보자.

 

전기 산업은 최근의 기술 발전과 19세기 말·20세기 초 자본주의에 가장 전형적인 산업이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가장 선진적인 두 나라, 즉 미국과 독일에서 가장 발전했다. 독일에서는 1900년의 공황이 이 분야에서 집중의 증가에 특히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 이미 산업과 충분히 유착해 있던 은행들은 이 공황기 동안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이 도산하고 큰 기업이 그것을 흡수하는 과정을 극도로 촉진하고 심화했다. 아이델스는 이렇게 서술했다. “은행은 가장 절박하게 자금이 필요한 기업으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거짓말 같은 호경기를 조성했던 은행은 다음 순간, 자신들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은 회사를 절망적인 파멸로 몰아갔다.”

 

그 결과 집중은 1900년 이후 막대하게 진전했다. 1900년 이전 전기 산업에는 7~8개의 ‘기업군’이 있었다. 이 기업군들은 각기 몇 개의 회사(모두 합쳐 28개였다)로 이루어져 있었고, 각자 2~11개 은행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1908~1912년에 이들 모두는 두 개 또는 하나로 합쳐졌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 전기산업 분야의 그룹들 |

 

1900년 이전

 

펠텐 운트 기욤 라마이어 A.E.G. 연합 지멘스 운트 할스케 슈케르트 베르크만 쿠머

펠텐 운트 라마이어 A.E.G. (G.E.C.) 지멘스 운트 할스케 베르크만 1900년 파산

1908년경 A.E.G.(G.E.C.) 지멘스 운트 할스케-슈케르트

(1908년 이래로 긴밀한 '협조')

 

이러한 식으로 성장한 유명한 A.E.G.(G.E.C.)는 ‘지주 제도’로 175~200개 회사를 지배하며, 총액 약 15억 마르크의 자본을 자유롭게 운용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직영 해외 대리점만 10개 이상의 나라에 34개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 12개는 주식회사다. 이미 1904년에 독일 전기 산업이 해외에 투자한 자본은 2억 3,300만 마르크이고, 그 중 6,200만 마르크는 러시아에 투자되어 있다고 추산되었다. A.E.G.가 거대한 ‘결합’ 기업이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속한 제조업체만 16개를 헤아리며, 전선과 절연 기구에서 자동차와 항공기에 이르는 갖가지 생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 벌어지는 집중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집중 과정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사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G.E.C.(제너럴일렉트릭컴퍼니)

 

미국

 

톰슨 휴스턴사가 유럽에 회사를 설립

 

에디슨사가 유럽에 프랑스 에디슨사를 설립. 이 회사가 독일 회사에 특허권을 양도

 

독일

 

유니온 전기회사(Union Elektrizitäts-Gesellschaft)

 

G.E.C.(A.E.G.)

 

이렇게 해서 두 개의 전기 ‘열강’이 등장했다. 하이니히(Heinig)는 『전기 트러스트의 진로(Der Weg des Elektrotrusts)』라는 논문에서 “이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있는 다른 전기 회사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 두 ‘트러스트’ 기업의 거래액 및 규모에 대해서는 아래 숫자가 완전하게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연도 거래액 (백만 마르크) 종업원 수 순이익 (백만 마르크)

미국 G.E.C. 1907년 252 28,000 35.4

1910년 298 32,000 45.6

독일 G.E.C. 1907년 216 30,700 14.5

1911년 362 60,800 21.7

 

그리고 1907년에는 미국과 독일의 트러스트 사이에 세계의 분할에 관한 협정이 맺어졌다. 경쟁은 종식되었다. 미국의 G.E.C.(제너럴일렉트릭컴퍼니)는 미국과 캐나다를 ‘분배받았고’, 독일의 G.E.C.(A.E.G.)는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터키, 발칸을 ‘할당받았다.’ 새로운 산업 부문과 형식적으로 아직 분할되지 않은 ‘새로운’ 나라에 침투하는 ‘자회사’에 관해서는 특별 협정(물론 비밀 협정)이 맺어졌다. 발명과 실험의 상호 교류도 규정되었다.

 

수십억 규모의 자본을 운용하며 세계 곳곳에 자신의 ‘지점’, 대표부, 대리점, 연락 사무소 등을 가진, 이러한 사실상 단일한 세계적 트러스트와 경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자명하다. 그러나 두 개의 강대한 트러스트가 주도하는 세계의 분할도 세력 관계가(불균등한 발전, 전쟁, 파산 등의 결과로) 변한다면 당연히 재분할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재분할 시도와 투쟁의 매우 교훈적인 실례는 석유 산업이 보여주고 있다.

 

아이델스는 1905년에 이렇게 밝혔다. “세계 석유 시장은 지금까지 두 개의 큰 금융 집단이 분할해 왔다. 즉 미국 록펠러의 ‘석유 트러스트(스탠더드 석유 회사)’와 러시아 바쿠의 석유를 지배하는 로스차일드와 노벨이다. 이 두 집단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다섯 개의 적이 이들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즉 그 다섯 가지는 (1) 미국 유전의 고갈, (2) 바쿠의 만타셰프사와의 경쟁, (3) 오스트리아의 유전, (4) 루마니아의 유전, (5) 해외, 특히 네덜란드 식민지의 유전(대단히 부유하며 또 영국 자본과 관련된 회사가 새뮤얼사와 셀사)이다. 마지막 세 기업군은 거대한 도이체방크를 필두로 한 독일의 대은행과 유착되어 있다. 이 은행은 ‘자신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예를 들면 루마니아에서 석유 산업을 독자적이고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루마니아의 석유 산업에는 1907년에 외국 자본이 1억 8,500만 프랑 있었고, 그 중 독일 자본은 7,400만 프랑으로 추정되었다.

 

경제 문헌이 ‘세계 분할’을 위한 투쟁이라고 정확하게 부른 투쟁이 시작됐다. 한편으로는 록펠러의 ‘석유 트러스트’는 모든 것을 손에 넣기를 바라며 바로 네덜란드 내에 ‘자회사’를 설립해서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유전을 사들이고, 이렇게 해서 그 주요 적인 영국-네덜란드의 셸 트러스트에 압박을 가하려고 생각했다. 다른 편에서 도이체방크를 비롯한 베를린의 은행은 루마니아를 ‘자신들 편으로’ ‘유지하고’ 록펠러에 맞서 러시아와 연합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록펠러는 훨씬 더 큰 자본과 더불어 석유를 수송해서 소비자에게 보내주는 훌륭한 조직도 갖고 있었다. 이 투쟁은 도이체방크의 완전한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1907년에 그렇게 끝났다. 도이체방크에게는 수백만의 손실을 입고 ‘석유 사업’에서 손을 뗄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 양자택일의 길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후자를 선택했고, 도이체방크에게 극히 불리한 협정이 ‘석유 트러스트’와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 따라 도이체방크는 ‘미국 측의 이익에 해를 입히는 것은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석유에 대한 국가 전매법이 제정되는 경우 이 협정은 효력을 잃는다고 규정되었다.

 

이로부터 ‘석유 희극’이 시작되었다. 독일의 금융 재벌 가운데 한 명으로 도이체방크의 이사인 폰 그빈너(Von Gwinner)는 자신의 개인 비서 슈타우스를 내세워 석유 전매를 위한 선동을 시작했다. 베를린 최대 은행의 거대한 기구 전체와 모든 광범위한 ‘관련자’가 동원되고, 신문은 미국 트러스트의 ‘속박’에 반대하는 ‘애국적인’ 주장을 외쳤다. 제국 의회는 1911년 3월 15일 거의 만장일치로 석유 전매 법안을 작성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정부는 이 ‘인기 있는’ 발상을 덥석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여 미국 측 협정 당사자를 기만하고, 국가 전매로 자신의 사업을 재건하려는 도이체방크의 도박은 성사될 것처럼 보였다. 독일의 석유 재벌은 러시아의 제당업자의 이윤에도 뒤떨어지지 않을 엄청난 이윤에 미리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첫째, 독일의 대은행이 전리품의 분배를 놓고 자기들끼리 다투기 시작하여, 베를린할인은행은 도이체방크의 탐욕스러운 관심을 폭로했다. 둘째, 정부가 록펠러와의 싸움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는 록펠러를 도외시하고 독일이 석유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가 몹시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루마니아의 생산량은 크지 않았다). 세 번째, 마침 그때 독일의 전쟁 준비를 위해 수십억에 이르는 1913년도 예산이 가결되었다. 이렇게 해서 전매 법안은 연기되었다. 록펠러의 ‘석유 트러스트’는 당분간 투쟁의 승리자가 되었다.

 

베를린의 《디 방크》는 이에 대해 독일은 전력 전매를 실시하고, 수력을 이용해서 값싼 전기를 만들어 내지 않고서는 석유 트러스트와 싸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잡지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전력 전매는 전력 생산자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때에야 실시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기 산업에 대붕괴가 다시 임박해 올 때, 그리고 오늘날 전기 산업의 민간 ‘콘체른’이 곳곳에 건설하고 있는 거대하고 값비싼 발전소들이(그것을 위해 이 ‘콘체른’은 지금까지 도시와 국가 등으로부터 얼마간 부분적인 독점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지만) 어느새 유리하게 영업할 수 없을 때 실행될 것이다. 그때는 수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영으로는 수력에서 값싼 전력을 얻을 수 없으며, 수력은 다시 ‘국가가 통제하는 민간 독점’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간 산업은 이미 많은 거래 계약을 체결하고 있어서, 거액의 보상금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질산 산업 전매도 그랬고, 석유 전매도 그랬으며, 전력 전매도 그러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고상한 원리에 눈이 떠 있는 우리의 국가사회주의자도 마침내 다음의 것을 이해해야 할 때일 것이다. 즉 독일에서 전매는 소비자에게 이익을 갖다 준다든가, 또는 국가에 기업자 이득의 일부라도 전해 주든가 하는 목적을 가진 것도,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도 결코 아니었고, 그것은, 파산에 처한 사적 기업을 국가의 부담으로 구제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었다.”

 

독일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는 이와 같은 귀중한 시인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금융 자본의 시대에 민간 독점과 국가 독점이 하나로 얽혀 있다는 것, 양측이 실제로는 세계 분할을 위해 가장 큰 독점가끼리 벌이는 제국주의적 투쟁의 하나의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게 된다.

 

해운업에서도 집중의 거대한 성장은 세계 분할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두 개의 거대 회사, 함부르크-아메리카와 노르트도이치로이트가 두드러진다. 두 회사도 각기 2억 마르크의 자본(주식과 사채)과 가격이 1억 8,500만~1억 8,900만 마르크인 기선을 가지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1903년 1월 1일, 이른바 모건 트러스트로 알려진 국제 상선 회사가, 미국과 영국의 해운 회사 9개가 합병하여 1억 2천만 달러(4억 8,000만 마르크)의 자본을 가지고 설립되었다. 이미 1903년에 독일의 거대 회사와 이 미국과 영국의 트러스트는 이윤 분배와 관련하여 세계 분할에 대한 협정을 맺었다. 독일 회사는 영국과 미국 사이의 운송 업무에서 경쟁을 포기했다. 어떠한 항구가 어떠한 회사에 ‘할당되는가’가 엄밀히 규정되고, 공동 통제 위원회 등이 설치되었다. 이 협정은 20년 기한으로 체결되었지만, 전시에는 무효가 된다는 용의주도한 조건이 붙어 있었다.

 

국제 철도 카르텔의 형성사 또한 매우 교훈적이다. 영국, 벨기에, 독일의 철도 제조업자가 이 산업의 매우 심각한 침체기였던 1884년에 이미 처음으로 이러한 카르텔의 설립을 시도했다. 이들은 협정에 참가한 나라의 국내 시장에서는 경쟁하지 않을 것과, 영국 66%, 독일 27%, 벨기에 7%의 비율로 해외 시장을 분할하기로 합의했다. 인도는 전부 영국의 것으로 돌아갔다. 협정에 참가하지 않은 영국의 한 회사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항하고, 그 비용은 총 매출액의 일정 비율로 충당했다. 그러나 1886년 두 영국 회사가 이 연합에서 탈퇴하면서 트러스트는 붕괴되었다. 주목할 점은 그 뒤에 이어진 산업의 호황기 동안에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1904년 초에 독일에서 철강 신디케이트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04년 11월에는 영국 53.5%, 독일 28.83%, 벨기에 17.67%의 비율로 국제 철도 카르텔이 부활했다. 뒤이어 프랑스가 참가하면서 첫째 해 104.8%, 둘째 해 105.8%, 셋째 해 106.4% 등의 비율이 되었다. 1905년 미국의 US 스틸 코퍼레이션이, 그 다음에는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이 이 협정에 참가했다. 포겔슈타인은 1910년에 이렇게 밝혔다. “현 시점에서 지구의 분할은 완료되었고, 거대 수요자, 특히 국영 철도는 그들의 이익을 보장받지 못하고 세계가 분할됐기 때문에 이제 하늘 위에서 시인처럼 살 수 있는 것이다.” 또 국제 아연 신디케이트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이것은 1909년에 설립되어 독일,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5개국의 공장 집단 사이에 생산량을 세밀하게 할당했다. 그리고 국제 화학 트러스트는, 리프만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의 모든 폭약 제조업자 사이에 아주 현대적인 긴밀한 동맹이 있어, 이 제조업자는 나중에 자신들을 본따 조직된 프랑스와 미국의 폭약 제조업자와 함께, 말하자면 자기들끼리 전 세계를 분할했다.”

 

리프만은 독일이 참여하는 국제 카르텔의 수가 1897년에는 모두 40개 정도였으나 1910년경에 이미 100개에 이르렀다고 추산했다. 몇몇 부르주아 저술가(예를 들어 1909년만 해도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하던 K. 카우츠키도 이제는 마르크스주의를 완전히 배신하고 이 무리에 가담했다.)는 국제 카르텔이야말로 자본의 국제화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이며 자본주의 아래에서 국민들 사이의 평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이 견해는 이론적으로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이며, 실천적으로는 최악의 기회주의를 옹호하는 궤변이며, 회피적인 방식이다.

 

국제 카르텔은 지금 자본주의 독점체가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는지를, 그리고 어떠한 목적을 위해 자본가 조합들이 서로 투쟁하는지를 보여준다. 후자의 상황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만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역사적·경제적 의미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규명해 주는데, 투쟁의 형태는 갖가지, 비교적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원인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지만, 투쟁의 본질, 즉 그것의 계급적 내용은 계급이 존재하는 한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제적인 투쟁의 본질(세계 분할)을 모호하게 남겨 두고, 이 투쟁의 여러 형태를 강조하는 것은, 예를 들면 카우츠키가 자신의 이론적 논의에서 본질적으로 그쪽 편으로 넘어가 버린 독일 부르주아의 이익이 되는 일이다. (카우츠키에 대해서는 뒤에서 언급하겠다.) 카우츠키가 저지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오류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독일 부르주아가 아니라 전 세계의 부르주아다. 자본가들이 세계를 분할하는 것은 특별히 나쁜 뜻을 품었기 때문이 아니라, 집중이 도달한 단계가 이윤 획득을 위해 그들을 선택의 여지 없이 그 길에 세우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들은 세계를 ‘자본에 비례해서’, ‘힘에 따라서’ 나눠 갖는데, 상품 생산과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다른 분할 방식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힘은 경제적·정치적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문제가 힘의 변화에 따라 해결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순전히’ 경제적인 변화인가, 아니면 경제 외적인 (예를 들면 군사적인) 변화인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최근의 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기본적인 견해를 조금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자본가 연합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협약의 본질 문제를, 투쟁과 협약의 형태 문제(오늘은 평화, 내일은 전쟁, 모레는 다시 평화 식으로)로 슬쩍 뒤바꾸는 것은 궤변가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최근 단계는 세계의 경제적 분할을 기초로 자본가 연합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고, 이와 함께 세계의 영토적 분할, 식민지를 얻기 위한 투쟁, 즉 ‘경제적 영토를 얻기 위한 투쟁’을 기초로 정치적 동맹, 국가들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맺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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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자본 수출

 

 

자유 경쟁이 완전히 지배적이었던 옛 자본주의에서는 상품 수출이 전형적인 것이었다. 이제 독점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최근 단계에서는 자본 수출이 전형적인 현상이다.

 

자본주의란 노동력 자체가 상품이 되는, 상품 생산의 가장 높은 발전 단계다. 국내에서의 교환은 물론이고 국제적 교환이 증대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고유하고 두드러진 특징이다. 개별 기업, 개별 산업 부문, 개별 국가의 발전에서 드러나는 불균등성과 불규칙성은 자본주의에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가장 먼저 자본주의 국가가 된 영국은 19세기 중반에 자유 무역을 도입하여 자신이 ‘세계의 공장’, 즉 모든 나라에 공산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나라는 공산품을 공급받기 위해 영국에 원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나라가 ‘보호’ 관세로 자기를 방어하면서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함에 따라, 19세기 마지막 4반세기 무렵 영국의 이러한 독점은 무너졌다. 20세기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독점이 형성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첫째, 자본주의가 발달한 모든 나라에서 자본가의 독점적인 동맹이 형성되었다. 둘째, 막대한 규모로 자본이 축적된 소수의 가장 부유한 나라가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선진 국가에 막대한 ‘과잉 자본’이 발생했다.

 

자본주의가 현재 어디에서든 공업에 비해 형편없이 뒤쳐져 있는 농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또한 어느 정도의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졌음에도, 여전히 도처에서 반봉건 상태로 비참하게 사는 주민 대중의 생활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면, 자본의 과잉에 대해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소부르주아적인 비판자가 끊임없이 들고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게 될 것이다. 발전의 불균등성이나 기아에 허덕이는 대중의 생활 수준이나 모두 이 생산 양식의 근본적인, 피할 길 없는 조건이자 전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로 남아 있는 한, 과잉 자본은 그 나라 대중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자본가의 이윤이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자본을 해외, 즉 후진국에 수출하여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이 후진국에서는 이윤이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자본은 부족하고 토지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은데다 임금이 낮고 원료가 싸기 때문이다. 자본 수출의 여지는 많은 후진국이 이미 세계 자본주의의 순환 속에 끌려 들어와 있으며, 그곳의 주요 철도 노선이 개통되거나 부설되기 시작했고, 공업 발전의 기본 조건을 확보하고 있다는 등의 사실을 바탕으로 창출되었다. 자본 수출의 필연성은 몇몇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지나치게 성숙’해서 자본에게 (낙후된 농업과 대중의 빈곤이라는 조건 때문에) ‘수익성 좋은’ 투자 대상이 있는 분야가 부족하다는 사실로 인해 창출되었다.

 

다음은 주요 3개국이 해외로 투자한 자본의 규모에 관한 대략적인 수치다.

 

연도 영국 프랑스 독일

1862년 36 — —

1872년 150 100(1869년) —

1882년 220 150(1880년) ?

1893년 420 200(1890년) ?

1902년 620 270~370 125

1914년 750~1,000 600 440

 

이 표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자본 수출이 커다란 발전을 이룬 것은 역시 20세기 초의 일이다. 전쟁 전 이 세 주요 국가의 해외 투자액은 1,750~2,000억 프랑에 이르렀다. 이 금액에서 나오는 수익은 적게 잡아 연 이자 5%로 해도 1년에 80~100억 프랑에 이를 것이 틀림없다. 이야말로 세계 대다수의 민족과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적 압박과 착취의 견고한 토대이자, 한 줌의 부유한 국가가 지니는 자본주의적 기생성의 견고한 토대인 것이다!

 

해외에 투자되는 이러한 자본이 여러 나라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고, 또 어디에 투자되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답은 하지 못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현대 제국주의의 전반적인 상호 관계를 밝힐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합계

유럽 40 230 180 450

아메리카 370 40 100 510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290 80 70 440

합계 700 350 350 1,400

 

영국이 수위를 차지한 것은 식민지 영토 때문으로, 영국의 식민지는 아시아 등지는 물론 아메리카(예를 들어 캐나다)에도 매우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영국의 자본 수출은 무엇보다 광대한 식민지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데, 제국주의에 있어 식민지가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서술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이 나라의 해외 자본 투자는 주로 유럽에, 그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에 (최소한 100억 프랑 이상)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그 대부분은 산업 기업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대부 자본, 즉 국가 차관이다. 영국의 식민지 제국주의와 구별해서 프랑스는 고리대 제국주의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독일의 경우는 제3의 형태다. 식민지는 크지 않고, 독일이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 자본은 유럽과 아메리카에 아주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

 

자본 수출은 자본이 유입되는 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그 발전을 눈에 띄게 촉진한다. 그러므로 자본 수출이 자본 수출국의 발전을 다소 정체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신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더욱 확대하고 심화한다.

 

자본 수출은 어떠한 ‘이익’을 얻을 기회를 거의 언제나 확보하는데, 그 이익의 성격은 금융 자본 및 독점의 시대가 지닌 특성을 드러내 조명해 준다. 예를 들면 베를린에서 발행되는 잡지 《디 방크》는 1913년 10월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국제 자본 시장에서는 얼마 전부터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희곡에서 나왔을 법한 희극이 상연되고 있다. 스페인에서 발칸까지, 러시아부터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에 이르는 수많은 나라가 차관을 요구하며, 때로는 정말 끈질기게,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대규모 화폐 시장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폐 시장의 현재 상황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닌데다 정치적 전망도 밝지 않다. 그럼에도, 어떠한 화폐 시장도 이웃 나라가 자기 나라를 제치고 차관을 얻어서, 그러면서 어떠한 반대급부를 확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감히 차관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운 처지다. 이러한 종류의 국제 거래에서는 거의 항상 통상 조약에 있어 양보든, 석탄 보급소든, 항만 건설이든, 유리한 이권이든, 대포의 주문이든 무엇인가가 채권자에게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금융 자본은 독점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독점은 가는 곳마다 독점의 원리를 전파한다. 유리한 거래를 위해 공개된 시장에서의 경쟁 대신 ‘연고’를 이용한다. 차관의 일부를 채권국의 생산물, 특히 군수품, 선박 등을 구입하는 데 지출하는 것을 차관 조건으로 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관행이다. 프랑스는 최근 20년간(1890~1910년) 아주 빈번하게 이 수단에 호소했다. 이처럼 자본 수출은 상품 수출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때, 특히 큰 기업 사이의 거래는 실더가 ‘완곡하게’ 표현한 것처럼 ‘매수와 매도가 종이 한 장 차이’뿐이다. 독일의 크루프, 프랑스의 슈네데르, 영국의 암스트롱 등은 거대 은행 및 정부와 밀접하게 유착돼 있어, 차관 계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대표적인 회사다.

 

1905년 9월 16일 러시아와의 통상 조약에서 프랑스는 차관을 제공할 때 러시아를 ‘압박’해서 1917년을 기한으로 하는 몇 가지 양보를 얻어냈다. 1911년 8월 19일 일본과의 통상 조약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관세 전쟁은 1906년부터 1911년까지 오직 7개월의 중단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되었는데, 그것은 부분적으로 세르비아에 군수품을 공급하는 일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경쟁하면서 벌어졌던 것이었다. 폴 데샤넬(Paul Deschanel)은 1912년 1월 하원에서, 프랑스 회사가 1908년부터 1911년까지 세르비아에 4,500만 프랑의 군수품을 납품했다고 밝혔다.

 

상파울로(브라질) 주재 오스트리아-헝가리 영사의 보고 중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다. “브라질 철도 건설은 대부분 프랑스, 벨기에, 영국, 독일의 자본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철도 건설과 관련된 금융 거래를 이용해 건설 자재 공급권이 자기 나라에 주어지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 자본은 말 그대로 세계의 모든 나라에 자신의 그물망을 펼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식민지에 설립된 은행과 그 지점이다. 독일 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점에서 특히 ‘잘’ 하고 있는 ‘오래된’ 식민지 보유국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영국은 1904년에 지점 2,279개를 거느린 식민지 은행 50개(1910년에는 5,449개 지점을 거느린 72개 은행)를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는 지점 136개를 거느린 은행 20개를, 네덜란드는 지점 68개를 거느린 은행을 16개를 가지고 있었지만, 독일은 “(다 합쳐봤자)” 지점 70개를 거느린 은행 13개밖에 없었다. 미국의 자본가는 그들 나름대로 영국과 독일의 자본가를 부러워하고 있다. 미국 자본가는 1915년에 이렇게 푸념했다. “남아메리카에서는 독일 은행 다섯 개가 지점 40개를 두고 있다. …… 영국과 독일은 최근 25년 사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에 약 40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 결과 영국과 독일은 그 세 나라 총 무역액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자본 수출국은 관념적인 의미에서 자기들끼리 세계를 분할했다. 하지만 금융 자본은 세계의 실질적인 분할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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