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자국 혁명

 

비서구권(제3세계)에서도 독립에 대한 요구들은 늘 있어왔다. 그러나, 앞다투어 경제적인 면에서도 밀리거나, 식민지로 분할됐다. 그러나 종속적으로 억압되진 않았다. 비서구권, 특히나 아시아권에서도 제국주의에 대한 운동들은 규모 면에서도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들도 함께 해왔다. 그러니까, 아무리 서구권에 대한, 그리고 넓은 대륙이나, 인구 유입 면에서도, 인구율에서도 많은 국가들이나 지역들에서는 훨씬 비정상적으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대체로 선진국들이라는 배경에는

 

제국주의에도 찬성하고, 자본주의에도 동의했다. 아직도, 같은 비서구권 국가들에서는, 개발도상국이나, 경제적으로 이룩할 수 있는 선진국으로 향한 몸부림들을 부린다. 바로 국민들이라는 희생, 그리고, 노동계급들에 대한 죽음들을 토대로 말이다. 각국에 혁명가들에게는, 여러 글이나 시사들을 읽어보자. 과연, 노동계급들에 대한 죽음들은 얼마나 다루었으며,

 

혹시 그러한 논리나, 근거들은, 지배계급들을 위한 처우에만 개선됐거나, 심지어는 경제적으로는, 개량화에만 머문 통계들은 아닌가. 자국에서는, 민족투쟁도 늘 함께해왔지만, 정작 민족투쟁자들 가운데 일부는 도시민과 민중마저 배신(배반)했으며, 위선으로 똘똘 뭉쳐서 구축했다. 그러한 친절에는 과연 얼마나 감사할 수나 있을까. 자국 혁명이란 바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패배감에서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알기로는, 앞서 간 혁명 선배들은 제국주의 초기 전쟁 시기 동안에는, 각국에서도 내전과 혁명으로도 전환할 수 있도록 무산계급들, 심지어는 인민들까지도 지도했으며, 노동계급들을 설득하고자 매우 노력해왔다. 따라서 앞당겨진 종말론에 맞서, 계급적인 분노를 정당화하고자 한다.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동지들에게, 안부를 먼저 전한다. 우선 뒤늦게나마, 고맙다고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단지 자결권만 필요한 국가에도 맞서, 세계주의에 대해서만 국제화를 선전했던, 민족투쟁들과 자국 혁명에 대해서는 심화된 연구를 더 해보겠다. 또한 할 수 있다면, 선진화에 대한 특히 경제 부문들에 대해서도 검토 해보고자 한다.

 

이를테면, 비서구권(제3세계)에 대한 대가로, 우선 종속이론을 제외하고, 카다피는 <녹색서>를 집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한 한계는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명확했다. 그러나 주로 미국과도 연관됐다. 제3세계에 대한 당시의 상황들이나 정보들을 조사해보면, 현재를 보더라도, 추종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꼭 틀린 말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러나 국내 여론들도 카다피를 직접 만나서 묻기도 했었지만, 질문인들마저, 제국주의 우호적인 발언들도 있었다.

 

현실 사회주의 정권 의의

 


본지는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 전반에서 부르주아지 독재를 내세우기 위한 명분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제국주의와 자본 국가들과 치밀하고도 지독한 싸움 끝에 그래도 독자적인 정권을 세우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 사회주의에서도 얼마든지 독재 체제로부터 얼마나 부패하고, 또한 내부 모순을 간직한 채로 부르주아지와 군부 쿠데타라는 협조 끝에 제국주의 아래에서 식민지에 대한 민낯으로 자행될 수 있다는 점을 오히려 지적하고자 한다.

 

같은 투쟁 노력이란 바로 자본 국가들에 대한 위선과 비겁함을 폭로하고자 하기 위함이고,

 

또한 모든 부르주아 국가 권력에 대한 여전히 잔혹하고 건재함을 밝히고자 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남한에서는 아옌데, 게베라에 대한 최초 언급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칠레와 쿠바다. 두 국가는 인민대중정당과 공산당도 있고, 주로 사회당을 주축으로 현재에도 이루고 있다. 한 쪽에서는 포퓰리즘으로 비판을 받고, 한 쪽에서는 게릴라 전술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로는 오히려 유치할 뿐더러, 치사하다는 지적을 겸하고자 한다. 두 국가는 비록 공산당에 대한 헌신을 잘 보여주기도 했지만,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모습과 정책들을 잘 보여준 국가들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의료 정책에 대한 깊은 흥미 때문이기도 하고, 자본 국가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제도를 후원한다. 물론 아메리카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이나, 반공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난을 겸한 비판까지도 잊지 않고 인민 혁명에 대한 열정도 잘 보여준다.


자본 국가에서는 두 사람 모두를 소비하고, 판매한다는 건 이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본주의에 충실한 국가일수록 오히려 깎아내리고, 수사하는 데만 예산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노력에 대한 열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또한 뜻을 자주 되새기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앞서 여전히 현실 투쟁이자, 계급 투쟁에 대한 깊은 영감을 주고 있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자본 국가 부상에 따른 현실 사회주의 정권 붕괴라는 지적도 아니고, 현실 사회주의 정권에서 정책에 대한 의의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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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25. 


노동 일지

 

삭제된 기록

 

언젠가 너무나 분해서 낙서를 하던 일기장을 모두 찢어 버린 적이 있다. 몇 권의 공책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기록은 모두 지우면 그만이었다. 이번 연말에는 처음 출근을 벗삼던 노동 현장이 생각난다. 지방 대학에서 여유 자금을 위한 임금 노동을 헤매다가 찾은 어느 물류 센터였다. 그날은 지금처럼 쌀쌀한 9월이었다. 긴장을 안으며 간단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곧바로 짐을 나르러 다녔다. 곧바로 배달원 전용 수송 차량에 싣는 작업이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차곡히 짐을 테트리스처럼 쌓았을 때, 어느 관리자는 도대체 서툰 몸으로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보면서 물 하나 건내는 법이 없었다. 당시에는 8시간 이상의 밤샘도 거뜬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이 새벽 노동은 80년대 공장 제조 사례와 무관하지 않았다. 노동의 집중은 곧 정신 단결과 같았다. 그 일로 인해 등이 살짝 굽었다. 일주일 중에 5일 연속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기간제가 아닌 시간제로 노동한 적이 더 많았다. 임금의 산정 방식도 일한 만큼 수령했기에, 노동의 강도 대비 보상은 소비에 비하면 늘 부족하기 마련이었다.

 

마음을 다치는 일은 현장에서는 부차적인 일이 된다. 밀려오는 화물이 산만하게 쌓여있던 시절에는 그 짐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몇 번 잠을 설친 적이 있어, 방학 기간 중에는 시간제로 5일 동안 밤낮으로 2개의 일을 병행하던 동료의 비슷한 사연을 듣곤 했다. 단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임금의 산정 방식 또한 차분하게 고려할 시간마저 없었고, 주어진 조건에 해당하면 무조건 생계가 먼저였다. 지방 대학의 등록금을 감당하기 이전에 겨우 학점을 맞추어 장학금을 탈 수 있었다. 그렇게 짐 싣는 작업을 그만두고, 다음은 동료의 이륜차를 몰 기회가 생겨 잠시 배달일을 하였다. 때가 되었을 무렵에는 군대에 입대해야 했다. 총구 요대 사용과 행군 훈련 중 무거운 배낭으로 인해 왼쪽 어깨가 기울어졌다. 보직 특성상 장시간 서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최소한 그곳에 남아 있던 부조리만큼은 제거하고자 했다. 온갖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감추는 일은 사회 현장에서 처음 배우게 되었다.

 

비밀리에, 노동 현장에 근무하면서 가족조차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일한 적을 따로 밝힌 적은 없었다. 몇 번은 경미한 손목 부상이나 장기간 다리 근육 풀림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마른 체형이었을 때는 지금 체형보다 더 큰 짐을 옮겨야 했기에 마땅히 도움을 구할 수 없어 큰 위협이 되었다. 영상 속의 현장 시청만으로는 큰 도움 역시 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오랜만에 그곳을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모든 사업을 처분했기에 그곳의 부름을 받은 듯이 자원했다. 겨우 1일 체험에 불과한 현장 방문으로 다른 보직을 심사 받았다. 면접 이후의 심사 여부는 통과였지만, 그동안 무리했음을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가족이라면 그러한 일에 대해서는 말로만 들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를 일제히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퇴근 모습이 여전히 보상에 대한 다음 준비와 어두운 모습으로만 읽혔다. 그래서 더는 할 수 없다고 드디어 판단을 내렸다. 그제서야 다른 일을 알아보고 싶어졌다.

 

비정규직이나 기간제의 수습 기간에 대한 정당성을 논하기 이전에, 현장에서 배운 점이라면 오히려 무질서함과 때때로 안면조차 없는 사람들의 반복된 육체 낭비였다. 덕분에, 노조 활동을 관두게 되었고, 가입 여부를 묻거나 다시 신청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당 활동은 더 이상 노동자를 대변할 수 없다는 일념 아래로 모아졌다. 노동과 관련된 법적 · 형식적 노동 법률을 권하기 이전에, 그 현장의 ‘개선’이 결국 ‘수용’되어 초과 근무를 유도하기에, 노동에 대한 욕심 역시 더욱 생기기 마련이다. 두 번째는 공사 현장이었다. 건축 기사에게 연장을 구분하지 못해 들은 아주 쓰디쓴 고함과 초보 노동자의 기본적인 시멘트 벽돌 운반 및 삽일은 든든한 아파트의 견고물이 되었다. 부실한 철판 위로 올라갔을 때, 흔들거리는 운반 지게를 등에 멜 때면, 이것이 감내해야 할 의무라 여겼다. 당연하게도 더욱 무게를 늘렸을 때는 연신 감사만 짤막하게 전달했다. 일찍부터 쌀쌀한 새벽 대기로 인해 긴장된 몸을 풀 시간마저 제한되어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야만 했던, 그 고정된 형식이 임금보다 중요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다만 남은 사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목만이 그 노동을 정당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생애의 봄은 아니, 스물은 그렇게 지나갔다. 서툰 사람에게는 내용조차 빈 종이에 불과하다면, 지금도 현장의 노동이 과연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일이 똑같이 일어났다면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가까운 노동자이자 동료가 내 옆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해 익명으로 장례식을 방문하여 부조를 했을 때조차, 그것이 주체와 운동이라는 사상보다 더 중요한 태도의 문제로 다가왔다.

 

현장의 노동 앞에서는 누구나 경직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위안을 보내더라도, 그 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뭉뚱그려진 태도가 철학으로 보이더라도, 어떤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그 다짐마저, 때로는 계속해서 노동을 ‘재생산’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되어 보람으로 그치고 만다. 그래서 쉬고 싶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았다. 그동안 남들처럼 먹고, 구경하고, 만난 모두가 소멸되거나 소실된 채 부족한 일로만 받아들였다. 몸이 쓰러지면 각오가 온 몸을 지배했지만, 우스꽝스러운 신세보다 못한 부족한 경력과 실력은 말 그대로, 어디 명함도 못 내미는 일이 되어 지금의 내부 작업을 구성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묻는다면, 이곳에 태어난 것을 두고 평생 저주하면서 사느니, 내일을 준비하며 그나마 생존할 수 있다는 도달의 순간이나 안도 밖에는 남는 것이 없어진다. 적어도, 가난한 마음의 일부를 이루었다면, 그것이 찢어진 노동 일지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그리고 과거를 묻어버렸다. 

   

위탁 업체와 말단 사원

 

그녀를 알게 된 건, 정규직 사원 때의 일이었다. 사회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여러 부서를 정처없이 이동하고 다녔다. 사업의 소유주라는 사실 역시 밝힌 적은 없었다. 예전에는 초년생이었기에 몇 번의 연상 분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잦았다. 연상 분들은 특유의 성숙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불안정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의존하며 기대게 되었다. 잠깐의 연락들이 모여서 사회적 관계의 진전은 그렇게 썩 괜찮은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모든 일들이 전부 내 탓이라고만 여겼다. 의견을 먼저 숨겨야만 했던 이유를 적절히 말해야 하는 순간에, 때를 놓치게 되거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의미 부여를 많이 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의심은 깊어졌다.

 

사실은 몇 번 연락한 분들은 대체로 호의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늘 비정규직과 계약직을 전전했기 때문에 정규직 사원이라는 존재에 대한 시기 역시 없지는 않았다. 물론 여유 자금이 있어야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어울릴 수 있지만, 지출되는 비용과 경제적 관념 역시 부족했으므로, 의식적인 높은 학구열이 때로는 과도한 열정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규직 사원이 되면 지루하거나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의미가 예고 없이 문을 두드린다. 정규직 사원을 처음 지원했을 때는 늘 예정에 없던 현장을 먼저 방문했다. 그때 합격 통보를 받았고, 고정적이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처음 고용된 정규직 사원이란 위탁 업무였고, 업무 분담의 일정한 숙달된 능력을 요구했기에 그 한계로 인해 당시에도 쉽게 응해주지 않았다. 정규직 사원들은 대체로 친절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퇴사에 대한 결정 역시 숨기게 된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의 자리를 위한 무한 경쟁처럼 온갖 사원들 간의 마찰 역시 빚어지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대표를 중심으로 둘러싼 사회적 지위 경쟁이 일어났지만, 대표 사업주가 고용한 정직원 말단 사원이 실은 젊은 소사업주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 동료들은 같은 초년생이라기에는 가족을 잃었거나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적어도 모두 미숙했기에, 초기 사업은 사원이라 볼 수 없는 형태의 직장을 다녔다. 관광지라는 이점을 지닌 곳이더라도, 주위의 경관을 위해 또 다른 자연 경관에는 해악을 끼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그제야 그곳은 오래 다닐 수 없는 직장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위탁 업체에 고용된 이들은 많이 일하고, 기간제처럼 짧은 기간에 퇴사를 했다. 그러나 사회적 초년생이 안정적인 직장을 바랬던 일이 욕심이었을까. 지난 날에 비하면 1년을 넘기지 못한 그 하루가 더욱 예민한 신경을 긁고 말았다. 짙은 가난의 냄새가 배이고, 육체의 피로도가 증가했다. 

 

퇴사를 결정하기 몇 달 전에 일이었다. 가끔 주위를 배회하던 온화한 동료가 종종 보였다. 오래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퇴사를 결정한 날에 마지막 퇴근 준비를 했을 때, 그녀가 먼저 말을 건냈다. 자신의 출퇴근 자가용을 태워줄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순간 멍해졌다. 곡예 운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질주의 본능을 은근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딘가로 바래다준다는 일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정이 생겨서 곧바로 그렇다고 수긍할 수도 없었다. 우연히 같은 정류장에서 마주치는 일이 잦았고, 같은 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비슷한 무렵이었다. 그것은 계기였다. 사내에서 피어난 관계가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다.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지만, 대중 교통이 끊긴 상태에서도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하거나 사업장의 거리가 멀어 이동 간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 잦았다. 어떤 식으로든 사정상 퇴사를 결정하고, 사업까지 마무리해야 했지만, 상경을 하고 싶어도 가족이 묶여 있는 한 그럴 수 없었다. 한 겨울에는 높은 산 중턱에 거주지가 있었기 때문에 올라가는 도중에 만나는 일도 있었다. 목소리를 높여 반갑게 맞이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가용에 태우면서 동네 영화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몇 개의 단편극을 시청했고, 그분은 처음 방문한 집에서 읽고 있던 책에 대한 흥미를 보였다. 서서히 알아가면서 그녀의 존재가 보였다. 그 당시 금발 색상의 단발을 하고, 차분한 여우처럼 예리한 눈매가 돋보였다. 가까이에서는 솜사탕 냄새처럼 달콤한 냄새였다. 비슷한 연하와 사회적 관계를 맺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출판사를 위한 번역 작업을 했을 때도 응원을 해주거나, 사업장에 직접 방문해 활력 음료를 들고 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곳을 일찍 정리하고, 상경하기를 내심 바라는 눈치였다.  

 

사회성을 미리 갖추었기 때문이었을까. 그전에는 직접 고른 일기장을 선물했지만, 점점 경제적 여유가 잃어감에 따라 선을 그어야만 했던 시기였기에, 더 깊어졌다면 아마 나조차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사회적 관계를 맺기에는 너무나 미숙했다. 시간이 지나면 결정을 해야 했다. 결국, 통보는 문자 연락이었고, 그것은 최악이었다. 그 최악의 일을 나중에서야 부재로 이해하게 되었다. 밤낮으로 걸으면서 수행했을 때조차 그 최악을 붙잡으면서 버텼다. 나중에서야 자연스럽게 떠나게 됐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가 깊어지는 일은 당시에도 어려운 일이었다. 드디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는 기대가 점점 시들해지고, 충족될 수 없는 갈증으로 남았을 때, 비로소 자유를 되찾았다.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처럼, 초년생의 묵은 때를 씻어내고 있었다. 

   

집안 내력


역시 학문의 전당이란 그 명예에 비하면 초라한 것이다. 높은 지위에 올라선 권위가 오랫동안 변치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이니 말이다. 그러나 학문의 전당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법이다. 사실 유전이라든가 태생과는 별개의 문제일 뿐이다. 정치적 성향 역시 고정되어 있다는 오래된 사고 역시 편향된 관념의 시각을 기르면서 학자들 간의 조정된 일부 견해임을 보여줄 수 있지만, 결국 핵심은 얼마나 오랫동안 문제를 연구하면서 이를 인내할 수 있는 자질을 기르는지이다. 따라서 기존의 고찰된 문제는 언제나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만다.  

 

우수한 성적을 유지한다면 자신에게 좋은 일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누구나 성공한 인생을 갖출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노력과 성실만으로는 상당한 지위에 오르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처럼, 성공과 실패란 단지 삶의 전반으로 볼 때는 비좁은 시각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자고 있는 사이에도 사회 전체의 과정은 어떤 식으로든 진행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운동을 역행하려는 자들은 오히려 그 사실조차 거역하고 만다. 때로는 신중하지 못하거나 조금은 덜 떨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너무나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노골적인 반항으로 표현한다. 이를 두고 반동의 역사라 부를 수 있다면 사회적 운동의 관점에서는 진행의 반작용이란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일 수 있다.

 

거창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투쟁의 시기 역시 시기상조가 있기 마련이다. 단순히 세월이 묻었다고 해서 성숙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긋한 세월일수록 침묵하며 듣는 쪽이 경건한 태도를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수용만 하는 얇은 귀가 포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세심한 비판이 때로는 무의미한 가치보다 유익하다. 

 

이 점에서 독일 공산당의 역사는 매우 유명하다. 대부분의 사상가들의 생애가 그리스 다음으로 이곳에서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저명한 인사들이 등장했다.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는 가장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칼 리프크네히트의 아버지였던 빌헬름 리프크네히트 역시 엥겔스와의 몇 안 되는 서신 교환 인물이다. 이를 두고 단순히 집안 내력이나 가문의 자격이라 부른다면 큰 오산일 수 있다. 오히려 영향의 작용으로 보는 쪽이 더 알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칼 리프크네히트는 이와 관련하여『군국주의와 반군국주의』에서 유명한 말을 한 적은 있다.

 

‘자신이 사회민주주의자라면, 그의 자녀 역시 사회민주주의자로 자랄 수 있다.’

 

어쩌면 이 말보다, 가장 정치적인 말은 앞으로 두고 봐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꼭 사회민주주의자로 자라지 않았을지라도, 단순히 가족과 무관하게 탄생했을 수도 있고, 비슷한 영향 아래에서 자랄 기회라도 있었다면 세상에 대한 시각 역시나 매우 다르게 보면서 그러한 시각을 견지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강제된 교육보다는 문제시되는 한 독서가 그 대상의 비판을 기르도록 하기 마련이다. 열린 의문을 갖추고, 『자본』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읽는다면 어느 순간, 그 말의 의미 역시 가깝게 다가온다. 물론 꼭 『자본』일 필요는 없다. 이처럼, 유전과 매체에 익숙해지며 유명한 타인의 관점에서만 발언되어 소외되거나 한정되는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 위협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은 노후화된 국가 속에서 더욱 자라날 수 있는 청년의 무의미한 자살이나 중년의 후회만큼 닮아 있다.  모든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너무나 가족의 불필요함만을 겪어야만 했던 집안 내력이란 사회 전반에 걸친 범죄의 소굴 속에서 자란 자본주의자들의 기만과 사기의 배후에 직면하여 충돌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이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는 어쩌면 필연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균열이 언제까지 없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최소한 지금의 행동 역시 먼 훗날의 후회가 되지 않도록 다만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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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21. 


여성 노동 보고서

 

일자리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고용률이 60%지만, 정작 무직율은 30%를 넘어간다고 한다.

 

'일자리 없음' 만큼이나 불안한 쉴 수 없음으로부터, 청년 백수들은 자신들이 프롤레타리아트임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 학위를 딴 박사들은 룸펜 생활을 청산하지도 못하고, 아직도 경제적 낭만을 품는다.

 

우리는 「수정주의 비판」에 관해서 다뤘던, 여러 수정주의 흐름에 대한 견해를 먼저 보고했다. 앞선 기회주의가 가진 오류를 안고, 신자유주의로 편승된 부르주아 담론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존재를 무마시키고, 오히려 성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자주 지적했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보고가, 이와 같은 임금 생산으로부터 복무해야만 하는 직업군들로 살펴 볼 때도, 치명적일 수 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고 우기는 꼴이 된 현대 소부르주아지들의 논리적 단면을 매우 잘 보여준다는 점도 들 수 있다. 더불어 소부르주아지들의 중립적 태도에 대한 수 많은 비판에도 가세했다.

 

부르주아지들은 일부 여성 노동자들과도 무관한 ‘성별 갈등’을 꺼내어 시민 사회론의 일부로만 국한시켰다. 탁상공론식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도 다루고자, 허기를 고심하던 시민 사회 운동이 보여준 결과를 장담할 수 있는가. 계급 투쟁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존재를 무시한 권리 장전의 부가물일 뿐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여전히 자신의 사적 소유가 시장 경제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다는 안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며, 자본가들의 또 다른 밑거름이 되어, 여전히 소유 재산을 옹호한 결과만 빛내주고 만다.

 

여성 노동에서 임금 착취를 판가름하기 이전에도, 성별과 세대 갈등을 더욱 부추기거나, 부르주아지들이 심어놓은 끄나풀들은 이전부터 투쟁을 헷갈리게 만들거나, 어렵게 조장해왔다. 특히나 사회주의 운동을 한답시고, 그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 어떠한 자본주의적 장치도 없다는 극단적인 의제를 내세운다는 점에서도, 우리에게 노동 현장이란 시민 사회, 연대 운동에만 기댄 호소로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제2인터내셔널 시기의 콜론타이, 체트킨의 영향력 아래에서 아직까지도 부르주아지들도 내거는 경제 성장이라는 동기가 성정치가 되어 그대로 답습할 정도니까.

 

서로에게 맞장구나 치는 '아리따운' 사람들이여, 소부르주아지들이 펼치는 양비론에 숨어, 똑같은 양시론만큼, 우리의 팔랑귀들이 펼치는 논리적 어리석음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적들에게 평화를 외치는’ 타협주의자들이 어떻게 사회배외주의를 지지해서, 부르주아지들의 반동론을 더욱 지지하는지를 우리는 늙어가는 개들로부터 목도하고 있다. 좌익 수정주의가 우리를 얼마나 감시하려 들고, 더욱 설득시키고자 하는지를. 여러분의 친애하는 동지가 때로는 적이 될 수 있기에, 이 또한 얼마나 모함을 자초하는가!

 

"계급 없는 사회에서 성별 없는 사회를 꿈꾸는 자들이여, 성별 없는 사회를 빌미로,

계급 투쟁을 삭제하는 자들에게는 또 얼마나 관대하던가.


성산업과 여성의 권리: 자본주의와 여성 무산자


90년대 일본 페미니즘의 쇠퇴와 성 산업의 결합

 

이 글은 1990년대 일본 사회에서 여성 인권 증진 운동과 그 결과로 나타난 성 산업의 발달에 대한 역설적 관계를 탐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폐된 여성 노동과 성별 고정 관념의 문제를 고찰한다. 

한국 사회는 여성의 인권 측면에서 과거보다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열악한 노동 환경이라는 자본주의적 한계 속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이는 높은 자살률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여성의 교육은 종종 학창 시절부터 활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형태 (주로 앉아서 하는 학습)을 취하게 되는데, 이는 과거 여성이 가정을 중심으로 집안일을 담당했던 역할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교육적 경험이 후에 노동 시장에서 강력한 정신적 발달 조건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단순히 여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보다는, 노동 조건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일본은 이러한 견해가 확장된 국가로 볼 수 있다. 여성의 권리 증진이 절실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세계 최대 성 산업 발달지 중 하나라는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통계적으로, 한국보다 일본의 성 산업 종사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상은, 단순히 인구 감소에 따른 보수적 기조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90년대에, 일본에서는 성적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여성 인권 장려 인식이 풍부하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려가 실제로는 성적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기괴한 역설은, 페미니즘적 이념이 현실 자본주의 체제와 결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보수적 기조의 위험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본래 페미니즘은 여성의 참정권과 인권을 장려하기 위해 발생했지만, 여성 노동의 문제에 있어 단순히 남성과의 대립만을 전제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성별 고정관념의 기능을 오히려 강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시각은 일부 매력적인 여성들에게 성 산업 종사의 기회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일본의 경우, 성 산업은 빠르게 탄력적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수단으로 기능하며, 일부 여성 노동자, 곧 여성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갈 여지가 있다. 이는 일본의 수공업적 경제 관념과 결합하여, 성 산업이 '합법적인 매춘'이라는 암묵적 비밀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성 산업은 겉보기에는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듯 보일 수 있으나, 선진국 문화라는 이유로, 비판 없이 수용될 수는 없다. 이는 오히려 성 산업 자체의 폐쇄성이나 도덕적 문제를 감추지 못하며, 적어도 한국에서는 엄연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성의 이념적 해방에 대한 논의와 보급은 오히려 그러한 이념이 취약하거나 왜곡될 위험이 있는 국가와 계급에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시민 의식과 여성관


유산 계급 여성관의 추상적 관념성

 

기존의 여성관이 점차 일반적인 경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분야에 소속된 노동자의 진행으로 볼 때는 아니다. 특히 부르주아 사회일수록, 한 문제를 추상적 · 관념적 현상으로 접근하여 해석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특히 여러 정치적 사안 중에서도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현대의 여성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개선된 것을 두고 지금껏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나 권리 증진에 대한 투쟁의 결과 때문이라는 일부 시각이 존재한다. 이 시각에 대비한 비판적 지적들을 비교했을 때는, 이와 연관된 정치적 투쟁의 형태는 관념적 정치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시민 사회의 일부로 여성의 존재를 한정하고 일면적인 결론을 내린다. 

 

전체 사회를 놓고 보았을 때는, 실제로는 사회적 자본의 노동이 변화했기 때문에 시민 의식이 뒤따른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인 즉슨, 고도화된 자본주의는 또 다른 사회적 통제를 부른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실무적인 현장에서 직장 내 불거진 상사로 인한 개인적 폭로나 노동법 위반 사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는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치안 집단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개인적인 변화에 대비해 그 사회 역시 변화했다고 체감할 수는 있으나, 전체 사회로는 정반대일 수 있다. 그 근거로는, 직장 내 여성 노동의 작업 비중과 피로도는 늘어났으며, 가사 노동과 육아 양육에 따른 휴직의 비중이 증가했다는 분석과 통계가 있다. 이것이 여성만을 위한 한정된 시각에 머물면서 해석된다면 앞서 고찰한 대로, 주관적 성격인 추상적 · 관념적 현상의 부분적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날 뿐이다. 다시 말해, 여성관에 대한 여러 지적에 비해 실질적인 자본의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할 수 있다. 비록 그 과정은 다르더라도, 부르주아의 몫에 대한 비중만 넓힌 결과로 해석되며, 잉여 가치의 창출을 위한 존재의 비중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로는, 미취학 아동 노동도 허용된다. 따라서 노동자일수록 자본주의의 경제·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상당히 중요해진다. 

 

또 다른 예로는, 여성의 사회적 노동의 비중이 증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실질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종사하는 자본 영역의 범위가 확대될수록, 여성의 사회적 진출 요구 역시 상승하므로, 역효과로 인해 착취의 요소인 매춘과 유흥 접대와 연관되거나 또는 그 이외의 육체적 차이로 발생하는 종사하기 어려운 분야의 한계를 딛더라도, 계급적 평등의 시각으로 일소될 뿐이다. 이 원인의 추측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을 놓치고, 일부 경제적 불평등이나 사회적 한계에 대한 소모적인 진단만을 사실로 간주한 결과일 수 있다. 이 추측이 사실일 경우, 여성의 사회적 논의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정치경제학 논의로 편입된 경제적 관념만큼 지금의 비판적 논의와 무관하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논의에 대한 일부 한계와 파생되는 시민적 수용(민주적)의 부르주아적 특성에 대한 논의 역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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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22. 


가난이란 무엇인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난이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배고프고, 굶주리고, 또 가난하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현실에서도 그러한 부당한 경험들을 겪고 있다면 또 물을 수 밖에는 없다. 생존 위기를 심화하고. 같은 지경까지 모는 무고한 죽음을 두고 희생으로만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세상에서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냐고.

 

권리는 경제 앞에 또 무너지고는 말았다. 권리는 배 부른 사람들을 위한 특권만 됐다. 사람들은 가난을 알아도.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 대해 말하고 또 듣고자 하는 사람들도 드물어졌다. 가난을 느끼고 참으로 겪는 사람들로는 말할 수 없이 괴롭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말해 자본주의에서 불황기로부터 생겨나는 기아와 빈궁에 대한 현실 문제와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지 정작 자본주의를 지적하지도 말하지도 않는. 가진 사람들이 입버릇으로 말하는 경제적 불평등으로만 치부하기 때문에서도 아니다. 그들은 경제 문제를 호황기로만 말해왔으므로, 거짓말만 또 해댄다. 자본주의 체제들로부터 추락하는 계속되는 불황기 앞에서는 더욱 솟아날 방도가 없다는 점을 받아들일 줄 안다면.

 

그러한 문제들이 닥치고 또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또 지겹도록 똑같은 자본주의를 더욱 깊게 연구하고 또 지적할 수밖에는 없다. 또한 가난에 대해 나눌 수 없는 사회는 넉넉한 세상도, 그저 꿈만 꾸는 환상 세계도 아니고, 바로 처절하게 느끼고, 괴로운 삶이라고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이론과 연구들은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계와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같은 문제들이 여전하고 또 엄연하게 있어왔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하고, 또 여러 모순을 해결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필요한 이유다.

 

 

우리로는 넉넉한 삶에 대해 묻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또 당연하게도 그래서 가난에 대해 다시 또 묻는다. 단지 지겹도록, 굶주리고 싶어서도 아니고 모두는 고루 가난할 수 있는 삶으로 반드시 나눠줘야만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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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해고된 사람들.

 

나도 즐겁고, 보람 있는 일.

 

힘겨운 입시 제도를 끝내고, 졸업을 앞둔 사람들로는 늘 축하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는 싶다. 청소년이라는 울타리를 끝마쳤다. 그리고 사회로 힘겹게 들어온 셈이다. 보람을 잘 느끼지 못했다면, 억지로 좋아하는 일만 해왔을 수도 있다. 어른도 때로는 아이보다 더 어릴 때도 있기 때문에, 이른바 철든 어른을 만나기란 하늘에 별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둔다는 건, 그리고 자신에게도 성장하는 데 더욱 도움을 준 사람을 만난다는 건 뜻 밖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사람들이 없다는 건 매우 독립을 준비하는 사람들로는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체로는 자신에게 즐거운 일이라는 동기보다는 의무감, 책임감이라는 반복되고, 따분한 동기를 자발적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가정 형편이나 생계라는 문제마저 관련된다면, 자신은 무엇을 잘 할 수 있거나, 또는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고민해볼 시간마저 부족해진다. 일에서 늦은 건 없음에도, 사회는 세월을 생각하다가, 사람들을 쉽게 해고하고는 만다. 그리고 해고된 사람들 가운데로는, 정작 해고하지 말았어야만 하는 사람들도 섞여있었다. 부당 해고라고 불리는 직장 생활에서는 그러한 경험을 겪어봤다면, 앞날에 대한 불안이나 막막함은 묻어 나온다. 그리고 정작 해고를 한 당사자는 자신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거나, 인식하지는 못한다. 직장에서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착각이나, 각종 질투, 오만이라는 감정들에 빠져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적된 습관, 도덕적인 의무마저 우리를 얼마나 옥죄던가.


사회 생활에 대해서 우리 공산당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늘 여러분들, 모두 체제 속에서도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저마다 삶을 만들어가고자 애쓴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단지 돈 때문이라는 이유이거나, 그저 좋아하기 때문도 아니고. 일이란 참으로 많기도 하고, 누구나 그리고 저마다 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한 가지라도 있다.

 

골고루 가난한 삶.

 

마르크스도 청년 시절, <직업 선택>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졌다. 스스로 삶을 만들고자, 그리고 더욱 매진했다. <자본론>만큼이나, 직장을 잃거나 맞는 취업 및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하고, 해고된 사람들을 보노라면, 겉으로도 보인 직장이라고 해서 꼭 안정적이지도 않고, 가정을 이룬다고 해서 꼭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는 듯 하다. 우리는 각자 선택을 존중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일과 함께 보람을 찾고, 쟁취하는 사람들이다. 사익을 내세우고는 엄격한 조건만 따지던 다른 정당들과는 달리 우리 공산당은 늘 이와 같은 사람들을 지지해왔고, 가난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더욱 아낌없이 지원해주고는 싶다. 그러나 힘도 뭣도 없는 우리들로는 참 힘든 일이다. 심지어 꾸준한 동지들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부디 개인적인 자유로부터 혼자만의 생각에만 꿍하게 갇혀 있던 오래된 지난 날에서, 해방된 자유로부터 고된 부담과 시름을 덜어내고자 노력하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도 지난 해부터 되돌아보자. 검찰 수사로부터 매진한 나머지.

 

정작 실행하고 옮긴 정책들이 얼마나 있던가. 미안하지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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