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19.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

 

생산 수단의 독점 형태


한국 재벌, 경제력 집중, 소유 지배 구조, 재벌 규제, 독점 자본

 

1. 경제주의자들의 오류

 

키워드: 한국 경제 비판, 발전 국가론, 시장 실패, 정부 개입, 신자유주의 비판

 

- 생산 수단의 독점 형태

 

2. 낙후된 농업 지역.

 

키워드: 일제 강점기 농업, 농지 개혁, 새마을 운동, 농촌 공동화, 식량 자급률

 

3. 개척된 농경 사회.

 

키워드: 간척 사업, 농업 기술 혁신, 수리 조합, 농업 현대화

 

4. 대규모 수공업식 가내 공업의 발전

 

키워드: 전통 수공업, 가내 수공업, 경공업, 노동 운동, 산업 혁명

 

4-1. 산업 단지의 조성.


4-2. 반도체 및 화학 섬유 등의 가공품 발전

 

5. 수입 품목에 의존한 발전.

 

키워드: 수입 대체 산업, 외화 부족, 기술 도입, 산업 고도화

 

6. 자본주의 기술 분야의 파견 및 진출.

 

키워드: 기술 이전, 해외 건설, 플랜트 수출, 국가 경쟁력, 기술 자립

 

7.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축적과 확산.

 

키워드: 산업 단지, 수출 주도형, 지역 경제, 반도체 산업, 한국 섬유 산업, 기술 경쟁력

 

 

8. 높은 무역 의존도 비율

 

키워드: 무역 의존도, 수출 주도형 경제, 대외 무역 정책, 세계 공급망 자금줄 형성

 

8-1. 수입 품목

9. 자본 투자 유치 및 경제 지역 비중도

 

키워드: 외국인 직접 투자(FDI), 경제 자유 구역, 지역 균형 발전, 수도권 집중

 

10. 국내 금융 시장의 형성

 

키워드: 한국 금융사, 금융 시장 발전, 금융 규제, 외환 위기, 자본 시장의 형성

 

11. 시민 사회의 형성

 

키워드: 노동 운동, 시민 운동, 사회적 불평등, 민주화 운동

 

참고 자료


부르주아 시민 모델의 형성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역사와 위기>

<한국의 정치사회적 지배담론과 민주주의 동학>

김진업, <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형성과 해체>

<혁신과 통합의 한국경제모델을 찾아서>

이영환, <한국 시민사회의 변동과 사회문제>

<시민사회의 구성원리 전환과 사회정책의 대안적 프레임>

이영환, <통합과 배제의 사회정책과 담론>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발전>

<주주자본주의에 따른 기업지배 구조 및 노사관계의 변화>

<신자유주의와 국가의 재도전>

<한국자본주의와 노동운동>

<한국의 부패와 반부패 정책>

<산별노조 운동의 현황과 과제>

<대안적 경제전략과 한국경제>

<세계화와 자본축적 체제의 모순>

<세계화와 계급구조의 변화>

<자본의 세계화와 축적체제의 위기>

<세계화와 계급구조의 변화 : 국제 사례연구>

정진상, <교사의 사회의식 변화 : 2005~2014>

<세계화와 한국의 축적체제 변화>

정진상, <자본의 세계화와 한국사회의 계급구조 변화>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사회경제>

<대안사회경제를 향한 여정>

정성진, <대안사회경제모델의 구축>

김경태: 한국근대경제사연구

김동운: 한국재벌과 개인적 경영주의

김왕직: 건축경제사

김우택: 시장경제와 한국의 자본주의

박승호: 한국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박현채: 한국자본주의와 사회구조

백종국: 한국 자본주의의 선택

서정익: 전시일본경제사

안병직: 한국 경제 성장사

안재흥: 복지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형성과 재편

오세철: 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혁

윤홍식: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이병천: 한국 자본주의 발전궤적과 진로, 한국자본주의 모델

장하성: 한국 자본주의

장훈, 이승주: 한국형 발전국가의 정치경제사

조동성: 한국 자본주의의 개척가들

주종환: 한국자본주의

최장집: 한국자본주의와 국가

<한국형 발전국가의 정치경제사>

 

한국 근대 산업의 형성

 

오진석 - <한국 근현대 전력산업사, 1898~1961>

양정필 - <근대 개성상인과 인삼업>

배성준 - <한국 근대 공업사 1876~1945>

최병택 - <한국 근대 임업사>

염정섭 - <한국 근대 농업체제의 형성과 변동>

고동환 - <한국 근대 상업의 형성>

 

관련 키워드

 

"한국 경제 성장사"

"한국 자본주의 특징"

"한국 경제 모델"

"경제 발전 이론 한국 적용"

"한국 사회 경제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2025. 04. 16.


토지와 신탁 제도

 

국내에서 몇 가지 개설하고 싶은 문제로는 토지 문제를 들 수 있다.

 

본지로는 <토지와 사유 재산>에서도 비슷한 내용이라면 이미 다뤘다.

 

임대업, 대부업은 쌍방으로 발전해왔다. 부동산이 들어선 이후로는,

 

토지의 공동 분배에 대한 문제를 꺼내기란 쉽지 않았고, 역대 정권들에서도

 

토지 개혁이나, 아니면 산업체들의 생산 가동을 증가시키기 위한 명분으로부터,

 

재산에 따른 토지가 수익 분배의 차원으로도 확장됐다는 사실도 있다.

 

사실 토지 문제에 관해서라면 농민들도 부농, 중농, 소농에 따른 재산 소득에 따른 계층 분포도로도 파악할 수 있지만, 유독 농민들도 '보편적인' 시각 아래에서 토지 제도의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민중 운동과는 별개로, 혹은 경제주의로부터 상정한 일부 농민들의 토지 수혜를 상정하자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토지 신탁에 따른 조언이라면, 토지 제도로부터 공공 분배가 아닌, 사익성에만 몰두하고자 수 많은 소자본가들도 여러 방면에서, 그리고 국가들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자신들의 크나큰 입지와 기반을 마련하고자 토지 제도로부터 수익 창출이 가능해졌고, 종합부동산의 정책들에서도 알 수 있는 사례들과, 건설업과 시공사, 그리고 소유자 측의 관계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역대 정권 모두 토지 제도의 문제를 '절대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심지어는 '집값 폭등'을 단독 가구원들을 대상으로 현상 분포로만 파악하기도 했다.

 

토지 면적이 매우 좁은 국내로 보아도, 이와 같은 현상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국가가 토지 소유로부터 임의적으로 모의 가격의 변동으로도 막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주택 거래가 일상적인 해외에서도 '모가지 대출'이라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토지 신탁마저

 

불법적으로 거래되거나, 또는 토지가 소유 재산에 속한다는 바로 그 사실을 잊다.

 

법적으로도 세를 내는 노동 계급들이 자신의 일정한 거주지를 가지기란 쉽지도 않다.

 

바로 역사적인 착취의 모습이란 일제의 수탈로부터도, 그리고 그 내부자들로부터도 계속해서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계급 투쟁에서 적대적 모순이란 바로 경제적 시공간에서도 응축된 역사적인 형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2025. 04. 16.


대전제: 재벌가란 현대 부르주아지이며 자산가이다.

 

소전제: 부르주아지들은 축적 자본을 여러 문화로도 섭렵하고, 또한 집적한다.

 

요구하는 주요한 응답.

 

그렇다면 왜 생산 문화는 부르주아지들의 지배 사상으로도 수용되는가.

 


문제에 관한 세부 문의

 

- 제국주의 아래에서도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들은 어떻게 자본주의로부터 희석될까.

 

- 정도로 보자면 부르주아지 문화는 규모 면에서 어떠하며, 무방비하게 노출된 상태인가. 또 얼마나 자본주의 가동에도 암암리에 기여하는가.

 

- 생산되는 미학적 평론과 소비가 어째서 부르주아지들의 재산 축적 수단이자, 오랜 방식이 되어왔나. 심지어는 왜 사적 소유의 일부로 기능하는가. 자본의 회전에서 이와 같은 반복된 생산물들은

 

어째서 오랫동안 순환하여 반복된 항성을 가지는가.

 

- 초과 가치(잉여가치)와 지배·문화 축적 방식에 관한 상관 관계.


-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인민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문제 시 여기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2025. 04. 16.


한국도 어째서 제국주의 국가인가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를 내팽겨친 뒤로, 21세기 후로는 경제학자들의 응답은 길어졌다.

 

왜냐하면 모두들 입문서와 경영서를 쓰기에 바빠졌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논쟁이란 아주 형편 없는 자유 시민 논쟁으로 축소됐고, 더 이상 지면마저 아까운 그러한 비판적 논의를 철회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960-1980년대 사이라는 일종의 공백을, 그들은 국가독점자본주의가 부르주아 독재로 미화되고 있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은 우리 남한 사회가 더군다나 미국의 정책들에 대한 눈치와 우호적인 옹호를 펼쳤던 까닭이기도 했다. 그것은 또 다른 윤리적 독재자가 경제 발전에 대한 우상이 됐다는 식으로, 귀족 노조로 우롱하거나, 프롤레타리아트마저 폄훼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아주 가관일 정도다). 맑스를 배우려는 연구자들이 과연 얼마나 됐던가!

 

한국 자본주의는 가동을 멈춘 것이나 다름 없다. 은밀하게 이뤄진 부르주아 독재자의 기념관과 동상을 설립하기에 급급했고, 산업 발전이 다름 아닌 수입과 원조로 이뤄진 독자적인 건설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포장된 도로가 깔리고, 밀림을 모두 태웠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다 치우지도 못할 쑥대밭으로 바꿔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구의 말대로 인권의 복귀, 자연의 회귀 따위를 발언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은 문명의 원천이 차단되는 그 순간부터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경제 개발의 결과란, 바로 재벌 부르주아들의 사회로 편입됐다는 것을 뜻했으며,

 

수정주의자와 경제주의자들 간의 논쟁이 마르크스주의를 걸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세대들 모두는 본격적인 투쟁을 감행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무의미한 논쟁이 낳은 결과란, 다름 아닌 남한 사회의 지속이기 때문이다.

 

원치 않든,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가속화되고 있다고 묻는다면, 우리는 국독자, 식독자론에 대한 과거 논쟁이 주는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이었고, 또한 무익했는지를 따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논의는, 도대체 동네 서점가에서 유행할 법한 입문서와 같은 경제원론이나, 방법론적인 접근의 생산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데이터와 통계마저 부족한 실정이다. 한물간 출판은 길어야 3년이지만, 철 지난 혁명의 과업도 평생이므로 국내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은 레닌이 플레하노프와 카우츠키의 한계를 아주 적나라하고도,

 

분명하게 꼬집었던 존경과도 같다.

 


추천 도서.

 

<이른바 시장 문제에 관하여>

 

<인민의 벗들은 누구인가>

 

<먼 곳에서 보낸 편지들>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질문.

 

그렇다면 정치·경제 엘리트 독자들은 많으면서, 왜 맑스와 엥겔스의 독자들은 줄어든 것일까.

 

전혀 위협적인 요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시스트와 자유 진영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마는 것인가. 정작 공산권에 대한 우려가, 공산주의로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그만큼 맹목적이고 경도됐음을 반증하고는 만다.

 

둘째로는 매우 쉬우면서도 단순한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정작 공산권 국가에서는 왜 아직도 군대를 요구할까.

 

따라서 미치지 않는 이상으로는 투쟁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실제로도 제국주의 국가는 남는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군비철폐는 사회주의의 이상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전쟁이 없을 것이다. 그 결과로 군비철폐가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사회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없이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자는 그 누구든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독재는 직접적으로 폭력에 기초한 국가권력이다. 그리고 20세기에는 폭력 문명 시대 일반에서 그렇듯이 주먹도, 곤봉도 아닌, 군대를 의미한다. 군비철폐'를 강령에 넣는 것은 '우리는 무기 사용에 반대한다'고 전면 공표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여기에는 일말의 마르크스주의도 없다.

 

 

‥


 

무기 사용과 무기 획득을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는 피억압 계급은 노예처럼 취급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부르주아 평화주의나 기회주의자가 되어버린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계급투쟁과 지배계급 권력을 타도하는 것 말고는 어떤 탈출구도 없고 또한 있을 수도 없는 계급 사회에 살고 있음을 망각할 수 없다. 노예제나 농노제에 기초한 것이든 지금처럼 임금노동에 기초한 것이든 모든 계급 사회에서 억압 계급은 항상 무장을 하고 있다. 오늘날의 상비군뿐만 아니라 민병도 예를 들어 스위스의 민병 같은 가장 민주주의적인 부르주아 공화국의 민병조차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적으로 하여 무장할 것이다. 이것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을 만큼 초보적인 진실이다. 모든 자본주의 나라에서 예외 없이 파업 노동자들을 상대로 군대(공화제적·민주주의적 민병을 포함하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적으로 하여 무장하고 있다는 점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실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앞에 두고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가 '군비철폐' '요구'를 내걸라고 촉구받다니! 이것은 계급투쟁 관점을 완전히 방기하는 것, 모든 혁명 사상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부르주아지를 쳐부수고 수탈하고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무장, 이것이 우리의 슬로건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혁명적 계급이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전술이다. 자본주의적 군국주의의 객관적 발전 자체로부터 논리적으로 뒤따르는 전술이자, 그러한 발전이 지시하는 전술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를 무장해제시킨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세계사적 사명을 배반하지 않고 모든 무기(군비)를 고철더미 속에 버리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지만, 그것은 오직 그런 조건이 달성되었을 때뿐이며 그 전에는 결코 아니다.'

 

레닌, <'군비철폐' 슬로건에 대하여>, 1916. 1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2025. 04. 16.


보호 관세에 대한 고찰

 

이전에 힐퍼딩과 부하린은 관세 부과가 시사하는 바를 앞서 제시한 적이 있어서 공유한다.

 

금융자본은 자본의 통합을 의미한다. 산업자본·상업자본·은행자본의 이제까지 분리됐던 영역들이 이제는 대금융단의 공동지도로 놓이게 된다. 금융단에는 산업과 은행의 실세들이 긴밀한 인적 결합으로 통합됐다. 결합의 근거는 대규모 독점적 결합으로부터 개별자본가들 사이에서 자유 경쟁을 제거한 것에 있다. 더불어 국가권력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관계도 변화한다.

 

부르주아적 국가관은 중상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 투쟁, 그리고 중앙집권적이며 특혜제공적인

 

국가권력에 대한 반대 투쟁 속에서부터 생겼다. 국가관은 한편으로는 대규모 무역회사·식민지회사의 특권과 독점, 다른 한편으로는 폐쇄적인 동업조합의 특권과 독점에 대항해서, 초기의 자본주의적 메뉴팩처와 공장 제도의 이익을 대표한다. 그런데 국가의 간섭에 대한 반대 투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의 경제 입법이 불필요하고 유해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시 말해, 경제체제 그 자체를 규제하는 법칙이 국가 입법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했다.

 

이리하여 부르주아의 정책은 경제학에 근거를 두게 되고, 중상주의에 대한 투쟁은 경제적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되며, 이것은 다시 국가의 보호·감독에 반대해 개인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으로까지 확대됐다. 이러한 견해가 어떻게 자유주의라는 세계관으로 개화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세히 논의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큼은 지적해두고 싶다. 즉, 경제적 자유를 위한 투쟁이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생기기 이전에 승리한 곳인 영국에서는 자유주의는 이러한 세계관을 포괄하고 있지 않다. 프랑스의 자유주의가 촉발했던 모든 도덕관과 종교관의 혁명적 타파는 영국에서는 대중적 의식 속에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반대로 경제적 자유주의는 대륙보다 영국에서 강하게 관철됐다.

 

그렇지만 영국에서조차 자유방임의 승리는 완전하지 못했다. 은행제도는 자유방임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은행업 자유의 이론은 잉글랜드 은행 총재들의 현실적 요구 앞에 굴복했다. 맨체스터 학파의 자유무역 이론이 대외 정책의 실제에도 영향을 미친 것은 더욱 적으며, 대외 정책은 19세기에 와서도, 17세기나, 18세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영국 세계 무역의 집행력이었다. 대륙에서는 자유주의 운동은 영업과 직업의 자유를 성취하는 것에 한정되어 국내 정책의 원칙에만 머물렀으며, 대외무역정책은 매우 당연하게도 계속해서 보호주의적이었다. 영국의 자유무역 정책은 결국 자본주의의 선도적 발전과 여기에서 유래하는 영국 산업의 기술·경제적 우월성에 의거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도성은 결코 자연적인 원인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적인 것들도 중대한 역할을 했다. 예컨대 근대적 수송 체계가 발달하기까지는 수상 수송과 철광석·석탄의 장소적 인접성에 의한 운임 절약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은 자본축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국의 보다 급속한 자본축적은 주로 해상지배와 식민지지배를 둘러싸고 스페인·네덜란드·프랑스와의 세력 투쟁의 결과 때문이었으며, 또한 소규모 농민에 대한 대토지 소유자의 승리에 뒤따른 급속한 프롤레타리아화 때문이었다.

 

힐퍼딩 - <금융자본론>,

 

무역정책의 전환 P. 434-436.

 


집적이란 자본이 자신이 생산한 초과가치를 자본화해 자기 증식하는 것이며, 집중은 다양한 개별 자본이 하나의 자본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다양한 발전 단계를 거친다. 우리는 이 단계들을 살펴봐야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과정, 즉 집적과 집중이 언제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에 유의해야만 한다. 자본의 집적이 거대해지면 대기업의 소기업 흡수가 가속화된다. 반대로, 집중은 개별 자본의 축적을 강화하고, 따라서 집적 과정을 가속한다. 집적 과정의 초기 형태는 개별 기업의 자본집적이다. 이 형태는 19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 동안 지배적이었다. 이때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란 경쟁자로서 서로 대립하는 개별 기업 간의 자본축적으로 나타났다. 주식회사가 발전함에 따라 수 많은 개별 기업가의 자본을 이용할 수 있게 됐고, 기업의 개인 소유 원칙이 근본에서 무너졌다. 이것은 거대한 독점적 기업가 연합의 전체 조건을 만들어 냈다. 이때 자본의 집적은 또 다른 형태, 즉 트러스트의 집적이라는 형태를 취했다. 자본축적은 이제 개별 생산자의 자본이 아닌 기업가 연합의 자본을 증대시키는 수단이 됐다. 축적이 엄청난 속도로 이뤄졌다. 자본가 소집단의 필요를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규모의 초과가치가 자본으로 전화돼 운동의 새로운 순환으로 투하된다. 그러나 발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개별 생산 부문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돼, 대규모로 조직된 하나의 집단을 이룬 금융자본이 나라 전체를 강력하게 틀어쥔다. 국민경제는 금융 집단과 국가가 형성한 하나의 거대하게 결합된 트러스트로 전화된다. 우리는 이 조직을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라고 부른다. 물론,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를 정확한 의미의 트러스트 구조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후자는 훨씬 더 중앙집중적이고, 훨씬 더 무질서한 조직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는, 특히 자본주의의 이전 단계와 비교하면 이미 어느 정도 높은 수준에서 일종의 트러스트와 같은 조직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로 간주할 수 있는 상태로 이르렀다. 따라서 우리는 훨씬 더 큰 사회경제적 분야인 세계경제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의 자본집적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부하린, <세계경제와 제국주의>,

 

세계적 규모로 벌어지는 자본의 집적·집중 과정의 재생산, P. 158-159.

 

19세기 자료지만, 부하린의 <세계경제와 제국주의>, 세계 경제의 성장에서 참조했다.

 

힐퍼딩, <금융자본론>, 슈보너 박사, <통계로 본 이자율과 공황>(1907), 이자율.

 

레닌, <제국주의, 자본주의 최고 단계>, 열강 간의 세계 분할.

 

마르크스, <뉴욕 데일리, 1859. 9. 23.>, 제조품과 무역.

 

- 미국에서 이번 트럼프 행정부가 처음부터 내건 최대 관건이자, 실수가 있다면 아마 관세가 아닐까. 전 세계에게 부과하는 관세란 그가 종전 협상을 이끌어 전쟁을 끝내고 싶다는 의사가 아니라, 자신들의 보호 관세로부터 수출입에 대한 무역 조치에서 세금을 더 부과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을 설명하고자, 여러 학자들은 어려운 말을 더 쓰고 앉아 있다. 자그마치 미국에서 가스 자원을 모을 수 있는 덴마크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소유권을 내세우는 바도 같은 이유이다. 이를테면 트럼프 행정부는 타국적을 지닌 난민을 범죄자로 자주 여긴다. 오히려 트럼프는 미국에게 남은 빚을 전 세계에게 갚으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권을 가졌다는 국가에서 내세운 관세 조치가 트럼프 행보에서도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기업가에게도 손을 뻗은 그가 지지도를 올리고자, 포퓰리즘이라는 대중 전선에게 더욱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세 부과 조치가 과거에는 전례 없던 사례였을까.

 

생전에 마르크스는 <뉴욕 데일리>에서 원고료를 얻고자 기사를 쓰기도 했었다. <이코노미스트>의 견해에 대한 반박과 비판이 주를 이뤘다. 물론 1850년대에 쓰여진 오래된 기사이지만, 시사하는 바도 분명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란 무엇일까. 바로 대영제국과 남북 전쟁이 벌어진 미국 관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대영제국은 동인도 회사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중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에서도 여러 분쟁을 일으켰다. 마르크스는 주로 무역에서 벌어지거나, 국가 간에 일어날 수 있는 거래 문제를 심도 깊게 다뤘다. 한 예로 중국 상해에서는 대영제국 간 차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는데, 차 수요가 너무 많아서 상해에서는 조치를 취하고자 관세를 부과했는데 오히려 적자만 기록하고는 지불할 수 있는 수수료도 턱 없이 부족했었다.

 

그런 상품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는 한 상품에 대한 폭발적인 증가가 있을 때, 특히 수요를 줄이고자 내리는 경제 정책이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를 수출입에 대한 상품 수요에 따른 차선이 아니라, 오히려 무역 거래에 대한 기회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 방식이 미국에서도 먹힐지는 함부로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 현상으로 택한 관세 부과란 오히려 현재 사정으로 쉽지는 않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