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보호 관세에 대한 고찰
이전에 힐퍼딩과 부하린은 관세 부과가 시사하는 바를 앞서 제시한 적이 있어서 공유한다.
금융자본은 자본의 통합을 의미한다. 산업자본·상업자본·은행자본의 이제까지 분리됐던 영역들이 이제는 대금융단의 공동지도로 놓이게 된다. 금융단에는 산업과 은행의 실세들이 긴밀한 인적 결합으로 통합됐다. 결합의 근거는 대규모 독점적 결합으로부터 개별자본가들 사이에서 자유 경쟁을 제거한 것에 있다. 더불어 국가권력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관계도 변화한다.
부르주아적 국가관은 중상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 투쟁, 그리고 중앙집권적이며 특혜제공적인
국가권력에 대한 반대 투쟁 속에서부터 생겼다. 국가관은 한편으로는 대규모 무역회사·식민지회사의 특권과 독점, 다른 한편으로는 폐쇄적인 동업조합의 특권과 독점에 대항해서, 초기의 자본주의적 메뉴팩처와 공장 제도의 이익을 대표한다. 그런데 국가의 간섭에 대한 반대 투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의 경제 입법이 불필요하고 유해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시 말해, 경제체제 그 자체를 규제하는 법칙이 국가 입법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했다.
이리하여 부르주아의 정책은 경제학에 근거를 두게 되고, 중상주의에 대한 투쟁은 경제적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되며, 이것은 다시 국가의 보호·감독에 반대해 개인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으로까지 확대됐다. 이러한 견해가 어떻게 자유주의라는 세계관으로 개화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세히 논의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큼은 지적해두고 싶다. 즉, 경제적 자유를 위한 투쟁이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생기기 이전에 승리한 곳인 영국에서는 자유주의는 이러한 세계관을 포괄하고 있지 않다. 프랑스의 자유주의가 촉발했던 모든 도덕관과 종교관의 혁명적 타파는 영국에서는 대중적 의식 속에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반대로 경제적 자유주의는 대륙보다 영국에서 강하게 관철됐다.
그렇지만 영국에서조차 자유방임의 승리는 완전하지 못했다. 은행제도는 자유방임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은행업 자유의 이론은 잉글랜드 은행 총재들의 현실적 요구 앞에 굴복했다. 맨체스터 학파의 자유무역 이론이 대외 정책의 실제에도 영향을 미친 것은 더욱 적으며, 대외 정책은 19세기에 와서도, 17세기나, 18세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영국 세계 무역의 집행력이었다. 대륙에서는 자유주의 운동은 영업과 직업의 자유를 성취하는 것에 한정되어 국내 정책의 원칙에만 머물렀으며, 대외무역정책은 매우 당연하게도 계속해서 보호주의적이었다. 영국의 자유무역 정책은 결국 자본주의의 선도적 발전과 여기에서 유래하는 영국 산업의 기술·경제적 우월성에 의거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도성은 결코 자연적인 원인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적인 것들도 중대한 역할을 했다. 예컨대 근대적 수송 체계가 발달하기까지는 수상 수송과 철광석·석탄의 장소적 인접성에 의한 운임 절약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은 자본축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국의 보다 급속한 자본축적은 주로 해상지배와 식민지지배를 둘러싸고 스페인·네덜란드·프랑스와의 세력 투쟁의 결과 때문이었으며, 또한 소규모 농민에 대한 대토지 소유자의 승리에 뒤따른 급속한 프롤레타리아화 때문이었다.
힐퍼딩 - <금융자본론>,
무역정책의 전환 P. 434-436.
집적이란 자본이 자신이 생산한 초과가치를 자본화해 자기 증식하는 것이며, 집중은 다양한 개별 자본이 하나의 자본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다양한 발전 단계를 거친다. 우리는 이 단계들을 살펴봐야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과정, 즉 집적과 집중이 언제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에 유의해야만 한다. 자본의 집적이 거대해지면 대기업의 소기업 흡수가 가속화된다. 반대로, 집중은 개별 자본의 축적을 강화하고, 따라서 집적 과정을 가속한다. 집적 과정의 초기 형태는 개별 기업의 자본집적이다. 이 형태는 19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 동안 지배적이었다. 이때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란 경쟁자로서 서로 대립하는 개별 기업 간의 자본축적으로 나타났다. 주식회사가 발전함에 따라 수 많은 개별 기업가의 자본을 이용할 수 있게 됐고, 기업의 개인 소유 원칙이 근본에서 무너졌다. 이것은 거대한 독점적 기업가 연합의 전체 조건을 만들어 냈다. 이때 자본의 집적은 또 다른 형태, 즉 트러스트의 집적이라는 형태를 취했다. 자본축적은 이제 개별 생산자의 자본이 아닌 기업가 연합의 자본을 증대시키는 수단이 됐다. 축적이 엄청난 속도로 이뤄졌다. 자본가 소집단의 필요를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규모의 초과가치가 자본으로 전화돼 운동의 새로운 순환으로 투하된다. 그러나 발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개별 생산 부문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돼, 대규모로 조직된 하나의 집단을 이룬 금융자본이 나라 전체를 강력하게 틀어쥔다. 국민경제는 금융 집단과 국가가 형성한 하나의 거대하게 결합된 트러스트로 전화된다. 우리는 이 조직을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라고 부른다. 물론,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를 정확한 의미의 트러스트 구조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후자는 훨씬 더 중앙집중적이고, 훨씬 더 무질서한 조직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는, 특히 자본주의의 이전 단계와 비교하면 이미 어느 정도 높은 수준에서 일종의 트러스트와 같은 조직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로 간주할 수 있는 상태로 이르렀다. 따라서 우리는 훨씬 더 큰 사회경제적 분야인 세계경제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의 자본집적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부하린, <세계경제와 제국주의>,
세계적 규모로 벌어지는 자본의 집적·집중 과정의 재생산, P. 158-159.
19세기 자료지만, 부하린의 <세계경제와 제국주의>, 세계 경제의 성장에서 참조했다.
힐퍼딩, <금융자본론>, 슈보너 박사, <통계로 본 이자율과 공황>(1907), 이자율.
레닌, <제국주의, 자본주의 최고 단계>, 열강 간의 세계 분할.
마르크스, <뉴욕 데일리, 1859. 9. 23.>, 제조품과 무역.
- 미국에서 이번 트럼프 행정부가 처음부터 내건 최대 관건이자, 실수가 있다면 아마 관세가 아닐까. 전 세계에게 부과하는 관세란 그가 종전 협상을 이끌어 전쟁을 끝내고 싶다는 의사가 아니라, 자신들의 보호 관세로부터 수출입에 대한 무역 조치에서 세금을 더 부과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을 설명하고자, 여러 학자들은 어려운 말을 더 쓰고 앉아 있다. 자그마치 미국에서 가스 자원을 모을 수 있는 덴마크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소유권을 내세우는 바도 같은 이유이다. 이를테면 트럼프 행정부는 타국적을 지닌 난민을 범죄자로 자주 여긴다. 오히려 트럼프는 미국에게 남은 빚을 전 세계에게 갚으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권을 가졌다는 국가에서 내세운 관세 조치가 트럼프 행보에서도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기업가에게도 손을 뻗은 그가 지지도를 올리고자, 포퓰리즘이라는 대중 전선에게 더욱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세 부과 조치가 과거에는 전례 없던 사례였을까.
생전에 마르크스는 <뉴욕 데일리>에서 원고료를 얻고자 기사를 쓰기도 했었다. <이코노미스트>의 견해에 대한 반박과 비판이 주를 이뤘다. 물론 1850년대에 쓰여진 오래된 기사이지만, 시사하는 바도 분명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란 무엇일까. 바로 대영제국과 남북 전쟁이 벌어진 미국 관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대영제국은 동인도 회사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중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에서도 여러 분쟁을 일으켰다. 마르크스는 주로 무역에서 벌어지거나, 국가 간에 일어날 수 있는 거래 문제를 심도 깊게 다뤘다. 한 예로 중국 상해에서는 대영제국 간 차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는데, 차 수요가 너무 많아서 상해에서는 조치를 취하고자 관세를 부과했는데 오히려 적자만 기록하고는 지불할 수 있는 수수료도 턱 없이 부족했었다.
그런 상품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는 한 상품에 대한 폭발적인 증가가 있을 때, 특히 수요를 줄이고자 내리는 경제 정책이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를 수출입에 대한 상품 수요에 따른 차선이 아니라, 오히려 무역 거래에 대한 기회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 방식이 미국에서도 먹힐지는 함부로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 현상으로 택한 관세 부과란 오히려 현재 사정으로 쉽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