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생계보장법 발휘 요구

 


재판소는 탄핵을 심의한다. 그러나 심의하는 동안에도 자국에서는 무산 계급들도 날마다 국가에 대한 존립을 두고 고민한다. 바로 오래된 생계 노동에 대한 임금과 급여를 두고 노동계급들은 아직까지도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계 노동에 대한 근로준수법을 준수하자던 과거 노동 운동가들은 필사적인 희생 뒤로는 필수 법안 발휘에 대한 지연되거나 뒤늦은 처리를 보고만다. 장담하지도 못할 결과를 두고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생계에 대한 불안으로 스며든 자본주의는 체제로부터 국가 권력이란 곧 국가 폭력이었고, 또한 단지 억압적인 국가 기구가 아니라, 부르주아 일당 독재를 위한 기구였음을 만천하에도 알린 계기였다.

 

이제는 대놓고 노골적인 쿠데타를 모의하고, 노동 운동에 대한 주기를 끝내버리고자 하는 부르주아 독재를 보노라면, 근로준수법, 차별금지법마저 자본가들을 위한 법안이자, 정작 시급한 일자리를 잃은 노동 계급들에게는 취업이라는 더욱 오래된 관문 앞에서 좌절되고는 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본 경제 성장은 정부에 따라 크게 바뀌지도 않는다. 판에 박힌 정당 정치는 또 누군가에 대한 정당한 희생을 은밀하게 강요했고, 내분을 도왔고, 프롤레타리아트 간 전쟁으로 심화하도록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르주아 양 진영 간 중립으로만 머무리지 않는다. 부르주아 시민 사회 운동에서도 좌익 수정주의, 우파 기회주의에서도 보이는 좌우익 진영에서 무마된 자유 투쟁이란 때로는 매우 반동적이지는 않았는지 자문해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마르크스로부터 철학 비판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실감한다. 생계보장법으로부터 내용을 채울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무산 계급들 뿐이다. 더욱이나 무엇도 소유해서 가진 적 없는 사람들이라면 열악한 생계에 대해 보장할 이유는 충분하게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누가 보장하는가.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만 하는 프롤레타리아트 정부를 내세운다. 단순 체제 전환 따위가 아니라, 앞서 요구한대로 대표 발언으로 그치고 마는 정치 행위 따위도 아니고, 무산 혁명으로 사고하고, 직접 참가할 수 있는 집중된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그리고 지독하게 악독하고, 자신들만의 권리를 내세웠던 자유로운 자본가들에 대한 수익 분배와 사사로운 재산에 대한 몰수, 그리고 무산 계급들도 생계 노동이 아니라 보다 안전한 곳에서 여가를 가지고 깨끗하게 일할 수 있도록 우리는 앞으로도 더욱 요구한다. 그들 눈에는 매우 다른 요구로 보일 수밖에는 없다. 생계보장이라는 노동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든 무산 계급들에게는 매우 골 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2025. 04. 16.


국정 운영에 대한 방침과 보고


 

여기서 시국이란, 단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국 선언에 대한 비상 사태, 긴급 결정과는 매우 다르다. 그리고 현 시국이란 바로 말로만 듣던 혁명 프롤레타리아트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한국 정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도, 수행하지도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탄핵에 대한 부결이 부쳐졌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들은 모두 퇴장했다고 한다. 야외 야당을 포함한 주 야당들에서도 모두 한 자리에서 비난에 대한 목소리를 가했고, 대체로는 민주주의가 무너졌다고, 국민과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이번 탄핵 의결에 대한 국회 의원에 대한 이탈표도 있었다. 그러나 자정을 지나도, 군부 쿠데타나, 친위 쿠데타로 중립적인 군대마저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훼손한 사람들은 바로 여당 의원들이었다. 그들도 일제히 좌우파로 공격을 가했고, 쿠데타에 대한 모의 반란, 내란 수괴까지도 국정 운영에 대한 무정부 상태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왔을 정도로, 2차 가해에 대한 사과마저 바닥난 신뢰를 증명하고는 말았다.

 

1. 그러나 우리는 시민 평화 집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다고 국회 투표 독려 운동 때문이 아니라, 바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보았기 때문이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정권 탈취라는 목적만이 아니라, 바로 노동 계급들에 대한, 투쟁까지도 함의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질서로부터 유지된 분란 조장이라는 점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여기서 우리에게 투쟁이란 바로 지배 정당들에 대한 여야 정당 권력에 대응하는 바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대한 임무 수행이라는 단계와 절차로 한 단계 진입했기 때문이다.

 

2. 그리고 우리는 보다 한 가지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기존 부르주아 독재는 쿠데타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정치적, 법적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이자, 목적으로부터 두 가지 모두를 탈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에 대한 국가 원수를 비롯한 여당 의원들은 뽑을 수 있는 카드마저 만지작거리기만 하다 퇴장하고 말았지만 보다 정확히는 끌어들이고자 했던 국민들에 대한 신임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국에 대한 애국심마저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의 각자가 위치했던 정치를 구성하는 가치관이나 철학마저 무너지고는 말았다. 그렇다. 그들에게 다음은 없다. 군대를 주무르고, 동상을 세워서 기념을 하겠다는 그러한 일반적인 의식이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호소한다고 먹힐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했고, 정치에 대한 속임수를 아주 대놓고 공개적으로 보여주고는 말았다. 여기서 죄송스러운 사과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 원수로도 불리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안도로는 잘 모르는 모양새다. 특히 국회를 주무르고자 했던 기존 여당 의원들과 장관 내각들을 포함한 그러한 극치까지 보여준 불가피한 탈당으로도, 바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모의 쿠데타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전통도 아닌 권위로부터 압박과 강제된 정치가 초래한 결과가 무엇인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무시한 결과까지도 잘 보여 준 사례라고 밝힌다. 그래도 늦지는 않았으니 고심이라도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2025. 04. 16.


계엄령 포고를 보며

 


환율이 올랐고, 증시도 더욱 하락했다. 오전 10시부터 특공대 대원들은 대기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들도 국회 앞으로 투입됐다. 국회를 점거하려고 했고, 포고령에 따라 관계인들, 언론 보도 때문에도 잦은 몸싸움도 일어났다. 사람들은 광주 사태 때를 되돌아 보고는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고민과 걱정을 떠안았다. 가까운 거리에 있었을 보수당 의원들은 눈치만 보다가, 공석을 유지했다는 부끄러운 사실마저 알게 됐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치욕스럽고, 분한 일들만 쌓이고 모아진 채로 군인들은 국회 유리창을 깨부수고자 침범하고는 말았고, 복구 비용도 예산으로 물게 생겼다. 과연 단지 예산 삭감 때문에, 그리고 반발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국회에서도 산정한 예산들이 개인 수중이 아니라 정부 정책으로도 올바르게 심사해서 직접 들어가거나, 또한 국민들에게도 혜택으로 돌아온 적은 얼마나 있었던가. 너무나 많은 심사 조건들과 정작 정책에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잘 돌아오지도 못한 정책들도, 그리고 좋은 정책이었지만 단지 정치적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정작 예산을 편성하지도 집행하지도 시행하지도 않았던 정책들도 또 얼마나 많았던가.

 

광주 사태 때도 그랬다.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국회는 늘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웠다. 상대 의원을 제거하고 단독으로 의회에 대한 입법까지 결정하고자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부를 지배한 독재자는 정작 모든 정치적인 의회, 행위를 부정하고는 말았고, 무엇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로 임의로 법률을 개헌하고자 또 조작하고는 말았다. ‘빨갱이’ 탄압으로 희생된 수 많은 주적들이 바로 같은 이름으로, 국회에서 죽음을 치렀고, 옥중에선 피눈물을 흘렀다. 동지와 참된 벗마저 잃었고, 잦은 음주일 뿐이던 실수 때문에, 큰 목숨을 떠올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여러 정당들과 연합들, 진보당과 노동당도, 그리고 사회민주당에서도 잊을 수 없는 과거를 떠올리며,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달했다.

 

그렇다면 또 물을 수밖에는 없다. 우리는 아직도 그저 ‘빨갱이’에 불과한 사람들인가. 그들에게 계엄령에 대한 이유가 고작 적색 쿠데타, 북한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위협이었다면, 정작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늘 노심초사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리고 침착하지도 못한 포고는 적어도 국민들에게도 안타깝다고 볼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같은 공산주의라도, 누가 허황된 망상을 보는지는 새삼 잘 알았다. 국가보안법으로, 그리고 언론 통제라는 명목 상 금서로도 지정됐던 수 많은 혁명 저작들에 대해서도 읽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삶이란 더욱 따분하고, 또한 비참하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2025. 04. 16.


제헌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가

 


대체로 사람들은 제헌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잘 해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의회에서 국회 의원들이란 그저 세금을 낭비하기 때문에, 필요 없는 존재들이라고 한숨만 내쉬거나, 의회란 폭탄을 던지기만 하면 곧바로 사라지는 터무니 없는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헌 의회를 해산하도록 할 수 있는 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 결정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간과하기 쉬운 점으로는 단지 세금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에, 의회를 해산해서, 정치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일반적이고 또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 전쟁이 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화를 위한 여러 협약들도 파기된 상태에서, 국회마저 없다면, 도대체 정치는 누가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실제로는 매우 오래된 물음이다. 바로 민주주의가 없으면 조직을 누가 결정하는가에 대한 문제와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오래 전 러시아 혁명 당시로도, 광산 노동 계급들도 빵을 구하고자 먼저 조건을 제시하지 않으면, 빵을 구할 수도 먹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했다. 이미 노동 계급들은 알고 있었고, 발 빠르게 시위를 조직할 수 있었고, 의회 해산에 대한 날카로운 투쟁 양상에 대해서도 그들만의 결정이 노동 계급들로 하여금 아무런 정책마저 실효도 없다는 점을 드러내고는 말았다. 그리고 현재까지 더욱 복잡하게만 꾸려졌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은 대체로는 골치 아파하는 듯 보인다. 왜냐하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없다고만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사회주의 정당들을 지지함으로부터도, 그러한 부르주아지들로 구성되거나, 내각을 이루고자 하는 여러 시도들에 대해서도 반대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아무리 골치 아픈 문제들이라도, 연구에 대한 흥미로는 노동 계급들에게도, 그리고 더욱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문제들로도, 쟁점들을 지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안이 민주주의로만 있다는 주장은 옳지 못하고 또 우리는 그러한 부르주아지에 대한 압력에 대해서는 전투를 벌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쟁과 평화를 운운해도, 실천에서 정책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그러한 강제들은 매우 일시적이고, 또 지배가들에게도 조금씩 드러나고, 보여주고 있는 낡은 자본 제도에 대한 오래된 습관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회주의로는 운동을 두고 어떻게 전개될지를 눈 여겨 보기도 하지만, 우리로는 보다 실천할 수 있는 방향에서, 그리고 더욱 부르주아 정부와 프롤레타리아트 정부는 매우 다르다는 점에서도 마냥 모든 정부는 이익만 추구하고, 권력만 따른다는 주장이 오류일 수 있고 또 허점이라고 파악했다. 따라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권력을 가질 수 있고 또,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양상에서,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의회는 여러 기능마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더욱 드러내고자 한다. 그렇다면, 무산 권력을 누가 쥘 수 있는가를 잘 물어야만 한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2025. 04. 16.


학생 시위가 보여주는 시사점

 


총장 독단 결정으로부터 한 대학가에서도 남녀 공학에 반대하는 투표는 가결로 부쳐졌다. 이로부터 한 숨 돌렸다는 의견들도 나왔다. 그리고 전원 반대를 표하기도 했다. 총장 독단 결정에 대한 반대이기 때문이고, 대학가 교수뿐만 아니라 아무런 상의도 없이 교육 전환에 대해서 논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여성 운동으로는, 학생 운동으로부터 보여준 명확한 한계를 드러낸 시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관계인들과 지도 교직 안에서도 분열을 책동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시위에 대한 방향을 잡아준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단편적인 운동으로만 끝나고는 말았다. 대학교 특성 상 일반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범죄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혐오에 대한 시각으로부터 성차별에 대해 맞서고자 여러 논쟁들도 개인적으로 벌여왔다고 한다. 같은 진술로는 동덕 여대로부터 보여준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한 훼손된 민주주의와 교내 평화를 헤쳤다는 지적들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 전체로 보자면, 폐쇄주의만 강화됐다. 대학교 교직원이나 학생들도 그러한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그리고 분란만 조장하고 책동하는 여러 여론들도 받아들이지만. 먼저 차분하게 제외하고자 한다.

 

이전 정부로는 다른 대학교에서는 경찰 투입에 반대하기도 했었고, 노래 시위를 하기도 했다. 대학가에서 입학을 둘러싼 부정 청탁과 교수진 특혜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그리고 매우 일시적인 불안에 대한 평화로운 집단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다른 대학교로는 정작 이번 시위와는 거리를 두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대학생들이 보여주는 총학생회 집단 행동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오히려 대학 보호가 아니라 맹동으로 빠질 수 있는 행동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졌다. 일부 교수진들로는 낡은 시국 선언으로부터, 또한 대학가 운동으로부터 탄핵 쟁점을 부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운동들은 예전 양상과는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벌어진 대학교로는 곧바로 내부 투쟁을 감행하고 또한 개시할 수는 있었다. 우리는 같은 대학교 가운데에서도, 여러 활동가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일부 학생들도 같은 표결을 부치더라도, 견해는 매우 다를 수 있었다. 연대를 표명하더라도, 제기된 쟁점에서는 극명하게 갈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러한 결정은 대학생들이 결정할 부분이다. 그리고 점차 교육이라는 기회는 소수로부터만 선택받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대학생들은 만약 학교가 소멸하더라도, 남녀 공학으로 전환하지는 않겠다는 일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가 잔존하는 한, 그러한 학교는 소멸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다. 지난 정부 때는 운동 양상에서 같은 부분들로는 잘 부각되지는 않았고, 민주주의 호소로만 그쳤다. 그러나 이번 양상에서 학생 시위는 대학가에 대한 그러한 냉소에만 도전했다는 점이겠다.

 

대학교 시위는 비록 학생 시위이지만, 오직 유치한 의식 재고 수준으로만 머물지도 않는다. 대학교 전체로 볼 때도, 이번 정부에 대한 문제가 이어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에서도 부각해서 조명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방향과는 다르게도, 학생 시위란 대학교로부터 보여주는 노동 투쟁으로 이끌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사태를 올바른 문제로 바라볼 수 있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