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마주한 자본
사업이 불안정할 때 지인을 초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2023년 무렵, 정규직으로 입사했던 첫 회사를 퇴사하고 생계를 유지할 여력조차 바닥을 치던 때였다. 사업도 어느덧 끝물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사업장 바로 옆 구역에는 대형 기업형 카페가 들어섰다. 대자본을 쥔 유명 기업가가 찾아왔을 때 지인과 직접 방문해 보았지만, 소자본으로 버티던 사업장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점심 무렵 찾아오는 동네 지인들이나 간간이 들르는 여행객만이 자리를 채울 뿐이었다.
본의 아니게 사업장 대표를 맡고 있었으나, 훗날 사업을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탕감받기 전까지 사업장에 갚지 못한 대출금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중소 사업장의 경우, 이처럼 누적되는 채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가업처럼 사업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비극이 종종 발생한다.
당시 아파트에 거주하면서도 사업장 옆 작은 별채에서 가족과 분리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배달업체의 수수료와 배달료를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판단해, 배달 영업을 가장 먼저 중단하자고 제안한 것도 본인이었다.
그 무렵은 초기 AI 기술이 막 개화하던 시기였다. 평소 영문학 교수의 논문을 구독해 읽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신행정주의’, ‘기계에 대한 불안’을 다룬 메일과 영상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영상 매체 ‘알고리즘’은 디스토피아적인 콘텐츠로 이끌었고, SNS 역시 자극적인 기계 문명의 암울한 전망을 끊임없이 띄어주었다. 고립된 공간에서 접한 그 정보들은 심리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하얀색 긴 옷을 입고, 아파트 안 대형 칠판에 적어 두었던 수많은 단상들을 지우며 점차 기계처럼 강박에 사로잡혀 가고 있었다는 것을. 사업에 대한 불안은 어느새 ‘기계가 언제가 자신을 삼켜버릴지도 모른다’는 망상으로 번져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AI 시대를 맞아 직장을 떠나는 노동자들의 불안이나 당시 본인이 겪었던 망상들은, 지배 계급이 은연중에 부추긴 시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비로소 가질 수 있게 된 시선이다.
결국 배달 영업을 끊고, 사업장 문 앞에 임시 휴업을 알리는 표지판을 걸어둔 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힘든 시간을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절박한 시도였다. ‘붉은 라디오’로 시작하여 글을 게시하기 시작한 것도 2023년 무렵이었다. 가까웠던 지인과의 연락마저 두절되자 심리적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가족과의 갈등도 깊어졌다.
첫 번째 걸음은 첫 회사를 향해 나선 길이었다. 사업장에서 출발해 중산간 도로를 지나 북동쪽으로 올라갔다. 약 22~24km 달하는 먼 길이었고, 5시간 반에서 6시간 반가량이 걸리는 고된 여정이었다. 물 한 모금 없이 앞치마만 두른 채 길을 나섰다. 이었다. 이른 점심에 출발했찌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중간에 화장실이 급해 염치 불구하고 타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실례가 되지 않도록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용변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 직접 바느질해 만든 컵 받침대를 가지고 그 집을 다시 찾아가 감사의 마음을 전했던 기억이 난다.
걸으면 금방 도착할 거라 생각했던 길이었지만, 이른 점심에 출발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당시 걸어가던 길목은 주위의 나무를 밀어내고 도로를 건설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쌩쌩 달리는 차들 옆을 걷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그렇게 도착한 첫 회사 터에는 그토록 아끼던 나무가 이미 뿌리째 뽑혀 있었다. 깊은 실망감을 안고 다시 돌아섰다. 돌아오는 5시간 반 동안 차선 불빛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마치 자궁의 형상처럼 피어오르는 환영을 보았다. 탈진 직전의 순간,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한적한 야밤, 캄캄한 도로를 혼자 걸어가는데 소형차 한 대가 불빛을 비추며 다가왔다. 운전자는 위험하다며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집으로 가는 중이라 답하자, 가로등이 나오는 도로까지 헤드라이트를 비춰주며 안내해 주었다. 곧이어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왔다. 생전 처음으로 경찰차를 타고 사업장까지 이송되어 돌아왔다. 그 후로도 한동안 운전 중 좌회전만 고집하거나, 맨발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근처 학교 운동장을 정처 없이 거니는 등 기행을 이어갔다. 사업의 불안 속에서 일자리를 잃고 사회 밖으로 내던져진 자의 방황이었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라디오에 기대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이번에는 시내까지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상으로 섬 절반을 하루 만에 돌겠다는 무모한 시도였다. 걸음은 망설임 없이 떼어졌다. 95~105km에 달하는 거리, 꼬박 24~26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여전히 물 한 모금 없이 앞치마 하나만 두른 채였다.
한겨울의 해안 도로에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 불빛만 남았을 때는 엄습하는 추위에 ‘이대로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마침내 공항 근처에 다다랐을 때 비행기 소리가 귓가를 울렸고 소방서의 모습도 보였지만, 사람들을 피해 계속 걸었다. 한밤중에 앞치마를 두르고 걸어가는 본인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었지만, 오직 걷는 데만 집중했다.
시내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하루가 지나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물도 마시지 못한 채 버티다, 앞치마 주머니에 들어있던 지폐 몇 장으로 편의점에서 간신히 간식을 사 먹었다. 하루 전 공항에 도착해 본인을 찾고 있을 가족들 생각이 나, 공항 전화기를 빌려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몇 번이나 사라진 자식 때문에 덜컥 겁이 났었다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이러한 무모한 수행 같은 걸음에도 사업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버틸 수 없는 구조였고, 동네 지인들이 그토록 아끼던 공간이었음에도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기를 끄고 세상을 차단해 버렸다. 소자본으로 시작해 10년 넘게 이끌어온 가계 사업이었지만, 노후화된 시설과 대자본의 공세 앞에서 한 개인인 소생산자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훗날 마르크스, 『자본』을 공부하며 그것이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도시로 넘어온 지금도 그때의 무리한 시도와 심리적 불안이 가끔 떠올린다. 끊임없이 더 많은 돈을 추구하는 굴레가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망가뜨리는지 깊이 실감하고 있다. 거대 자본을 쥔 이들은 한 개인으로서 사업장을 직접 운영하며 자신의 모든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결코 해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