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어설픈 입헌 민주당의 책동에 관하여



요즘 한국에서 민주당의 상황을 보자면, 적절한 비판보다는 수 많은 비난 공세가 더 많다. 오히려 러시아의 상황에서 사회혁명당의 케렌스키와 입헌민주당이 많이 생각난다. 흥미롭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가진 영향력에 비해서, 생각보다 부담 요소가 더 많이 작용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케렌스키를 잘 아는 연구자들도 간혹 있을 것이다. 아직도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인사를 두고는 좌파 인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회타협주의이라는 한계를 잘 보여준 인물이 무려 20세기 러시아에서도 민주당의 인사들도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기를 바란다. 중도주의에 대한 명확한 한계란, 바로 사적 유물론의 진가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질과 양, 개념의 객관적 통일이었다는 점을 보다 올바르게 파악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역사적 투쟁을 감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래 전 시민 혁명적 지침들에 대한 낡은 시대 정신이란, 계급 모순에 따른 창고 속의 보관된 소부르주아적 태도라는 점에서도 우리는 깊이 우려하는 바이다.

 

수 많은 비난 공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 차리주의 아래에서 봉건적 러시아는 케렌스키와 입헌민주당의 사회타협주의가 가진 한계를 잘 읽어보는 것도 시사하는 바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일설들도 많았으므로, 제아무리 '좌파'라는 공세를 퍼붓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굳이 비교를 들자면 도대체 어떤 점에서 한국의 민주당은 좌파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크나큰 의문점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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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국제 사회주의에 대한 실태 보고

 


「노동자 연대」에 대한 총평

 

먼저 취지로는 남북한으로 한정하지 않고, 국내에서도 '공산당'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고 논지를 펴가고자 한다. 우리는 논란도 많던 「노동자 연대」들을 비롯한 관련된 여러 단체들과도 조우했다. 최근의 본지로 보자면 오히려 우리 쪽이 레닌의 저작물과 입장을 모두 빠짐 없이 읽고 있는 탓이다. 「노동자 연대」에서는 공산당에 대한 과오를 자주 지적한다. 그러나 정작 근거는 부족하고, 자유론자들의 입장과 뜻을 같이하는 트로츠키주의의 오만이 여기에서도 작용하는 까닭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연대 성명을 작성할 시간은 부족하다.

 

내부 투쟁에서 기회주의란, 바로 수정된 사회배외주의라는 좌파적 조류와, 소부르주아적 자발성일 따름이다. 오히려 무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 투쟁을 진행한 20세기 독일을 보더라도, 스파르타쿠스, 유니우스 팀이 안고 있는 자발적 투쟁이라는 한계를 몸소 보여준다. 그것의 오류란 바로 소시민적 사고가 지닌 치명적인 한계와 노후화된 지식계급(인텔레겐치아)들에게 기댄 결과란 매우 자신들이 '과학적'이라고 치장하거나, 도대체 그들의 위선적인 주장들마저 차마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캘리니코스는 학자풍의 고지식한 담론만 닮고 있다. 또는 비전문적인 혁명에 대한 얇은 입장을 고수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인 좌파 단체들의 지적과는 별개로 <노동자 연대>와 함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동자 연대>는 아직도 자유론자가 내세우는 주장과 판박이일 정도로 국제공산당의 노력, 노동당과 스탈린주의에 대해서는 수상할 정도로 노골적인 비난을 가한다.

 

마무리하자면, 일부 진정 사회주의와 좌파들에게 혁명은 연속적일 뿐이다. 아직도 우리는 여전히 일관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무산 독재 실현에 관한 혁명에서도 단계적 준비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고로 앞서 공산당이란 차기 정권 창출 따위가 아니라, 실제로도 노동 계급과 함께하고 단결 임무를 즉각적으로 수행하고, 전문적으로 준비한다. 허구적 이면이라 불리던 진위 여부에서도 우리는 언제든 차근차근 증명할 수 있고, 폭 넓은 주제를 직접 다룬다. 그러나 내부 조직이 협소하거나, 불안정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우리는 조직 투쟁을 감행하며, 무산 독재의 실현을 향한 미래임을 밝히는 바다. 왜냐, 앞으로는 노동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전위 정당이 있어야만 할 것이기에.

 

민족 혁명,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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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신년 연설문



전국 공산당원들에게.

 

지금도 자본주의 속에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있다.

 

바로 제국주의와 전쟁이라는 구도 속에서.

 

어쩌면 전쟁이라는 에피소드가 하나 끝나고 있다. 사람들도 끝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투쟁이란 쟁취하는 것이다.

 

과거의 일은 아주 오래 전으로 미뤄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날마다 큰 일만 치르고는 작은 여유를 가질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꼭두새벽부터 기상해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작년이란

 

너무나 잊기 힘든, 그리고 괴로운 시기였다. 그저 한숨을 돌리고, 주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작년은 너무 많은 일들이 쏟아진 해였다.

 

단지 그동안 누적됐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부패한 정부를 보노라면,

 

뒷감당을 국민들에게 떠넘기고는, 새해를 맞이하고는 말았다.

 

그저 사고와 참사, 그리고 목숨이 날라가는 해였음에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묻지 않았고, 일부 사람들은 행복 회로만 돌리고 살았다고 한다.

 

소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논리 회로가 우선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논리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못한 정부와 국가 구성원들을 지켜본다.

 

언론 취재를 한다는 사람들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할 줄도 몰랐고.

 

방관을 객관이라고 여기곤 한다.

 

바로 뼈 아픈 후회가 아니라 뼈 저린 침묵이 남긴 결과란 바로

 

우리 삶에서도 목격하는 현실을 피하고만 살았다는 증거는 아닐지 반성해본다.

 

새삼 그들은 모두 어리석다.

 

새가 해롭다고 해서 새를 모두 쏴죽여야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똑같기 때문이다.

 

정작 논리에서도 늘 오류를 범한다.

 

정치에서 좌우파란 모두 단지 많이 가진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기득권이 아니라,

 

바로 시공간까지 좌우하려고 했던 정치 집단이자, 이익 집단들은 아니었을지

 

또 다시 묻고 싶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요구들 가운데 그러한 똑같은 반복만 보여준 결과와 장담할 수 없는

 

불안이라는 미래를 안고. 삶이라는 새로운 배움이라는 과정에서도

 

보람을 찾기를 바라는 한 해를 바래본다.

 

청년들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시름하는 젊음이란 씨름하는 마음과도 같으니.

 

2025. 1. 1. 한국중앙공산당(KC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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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생계보장법 발휘 요구

 


재판소는 탄핵을 심의한다. 그러나 심의하는 동안에도 자국에서는 무산 계급들도 날마다 국가에 대한 존립을 두고 고민한다. 바로 오래된 생계 노동에 대한 임금과 급여를 두고 노동계급들은 아직까지도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계 노동에 대한 근로준수법을 준수하자던 과거 노동 운동가들은 필사적인 희생 뒤로는 필수 법안 발휘에 대한 지연되거나 뒤늦은 처리를 보고만다. 장담하지도 못할 결과를 두고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생계에 대한 불안으로 스며든 자본주의는 체제로부터 국가 권력이란 곧 국가 폭력이었고, 또한 단지 억압적인 국가 기구가 아니라, 부르주아 일당 독재를 위한 기구였음을 만천하에도 알린 계기였다.

 

이제는 대놓고 노골적인 쿠데타를 모의하고, 노동 운동에 대한 주기를 끝내버리고자 하는 부르주아 독재를 보노라면, 근로준수법, 차별금지법마저 자본가들을 위한 법안이자, 정작 시급한 일자리를 잃은 노동 계급들에게는 취업이라는 더욱 오래된 관문 앞에서 좌절되고는 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본 경제 성장은 정부에 따라 크게 바뀌지도 않는다. 판에 박힌 정당 정치는 또 누군가에 대한 정당한 희생을 은밀하게 강요했고, 내분을 도왔고, 프롤레타리아트 간 전쟁으로 심화하도록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르주아 양 진영 간 중립으로만 머무리지 않는다. 부르주아 시민 사회 운동에서도 좌익 수정주의, 우파 기회주의에서도 보이는 좌우익 진영에서 무마된 자유 투쟁이란 때로는 매우 반동적이지는 않았는지 자문해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마르크스로부터 철학 비판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실감한다. 생계보장법으로부터 내용을 채울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무산 계급들 뿐이다. 더욱이나 무엇도 소유해서 가진 적 없는 사람들이라면 열악한 생계에 대해 보장할 이유는 충분하게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누가 보장하는가.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만 하는 프롤레타리아트 정부를 내세운다. 단순 체제 전환 따위가 아니라, 앞서 요구한대로 대표 발언으로 그치고 마는 정치 행위 따위도 아니고, 무산 혁명으로 사고하고, 직접 참가할 수 있는 집중된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그리고 지독하게 악독하고, 자신들만의 권리를 내세웠던 자유로운 자본가들에 대한 수익 분배와 사사로운 재산에 대한 몰수, 그리고 무산 계급들도 생계 노동이 아니라 보다 안전한 곳에서 여가를 가지고 깨끗하게 일할 수 있도록 우리는 앞으로도 더욱 요구한다. 그들 눈에는 매우 다른 요구로 보일 수밖에는 없다. 생계보장이라는 노동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든 무산 계급들에게는 매우 골 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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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국정 운영에 대한 방침과 보고


 

여기서 시국이란, 단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국 선언에 대한 비상 사태, 긴급 결정과는 매우 다르다. 그리고 현 시국이란 바로 말로만 듣던 혁명 프롤레타리아트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한국 정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도, 수행하지도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탄핵에 대한 부결이 부쳐졌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들은 모두 퇴장했다고 한다. 야외 야당을 포함한 주 야당들에서도 모두 한 자리에서 비난에 대한 목소리를 가했고, 대체로는 민주주의가 무너졌다고, 국민과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이번 탄핵 의결에 대한 국회 의원에 대한 이탈표도 있었다. 그러나 자정을 지나도, 군부 쿠데타나, 친위 쿠데타로 중립적인 군대마저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훼손한 사람들은 바로 여당 의원들이었다. 그들도 일제히 좌우파로 공격을 가했고, 쿠데타에 대한 모의 반란, 내란 수괴까지도 국정 운영에 대한 무정부 상태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왔을 정도로, 2차 가해에 대한 사과마저 바닥난 신뢰를 증명하고는 말았다.

 

1. 그러나 우리는 시민 평화 집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다고 국회 투표 독려 운동 때문이 아니라, 바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보았기 때문이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정권 탈취라는 목적만이 아니라, 바로 노동 계급들에 대한, 투쟁까지도 함의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질서로부터 유지된 분란 조장이라는 점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여기서 우리에게 투쟁이란 바로 지배 정당들에 대한 여야 정당 권력에 대응하는 바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대한 임무 수행이라는 단계와 절차로 한 단계 진입했기 때문이다.

 

2. 그리고 우리는 보다 한 가지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기존 부르주아 독재는 쿠데타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정치적, 법적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이자, 목적으로부터 두 가지 모두를 탈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에 대한 국가 원수를 비롯한 여당 의원들은 뽑을 수 있는 카드마저 만지작거리기만 하다 퇴장하고 말았지만 보다 정확히는 끌어들이고자 했던 국민들에 대한 신임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국에 대한 애국심마저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의 각자가 위치했던 정치를 구성하는 가치관이나 철학마저 무너지고는 말았다. 그렇다. 그들에게 다음은 없다. 군대를 주무르고, 동상을 세워서 기념을 하겠다는 그러한 일반적인 의식이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호소한다고 먹힐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했고, 정치에 대한 속임수를 아주 대놓고 공개적으로 보여주고는 말았다. 여기서 죄송스러운 사과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 원수로도 불리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안도로는 잘 모르는 모양새다. 특히 국회를 주무르고자 했던 기존 여당 의원들과 장관 내각들을 포함한 그러한 극치까지 보여준 불가피한 탈당으로도, 바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모의 쿠데타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전통도 아닌 권위로부터 압박과 강제된 정치가 초래한 결과가 무엇인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무시한 결과까지도 잘 보여 준 사례라고 밝힌다. 그래도 늦지는 않았으니 고심이라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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